마법서생 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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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34화
34화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하나가 아니라고? 속에 뭐가 있냐고?
그럼 설마 세르탄의 존재를 눈치 채기라도 했단 말인가?
혹시 차신이라 적은 뜻이 그럼?
“무슨…… 뜻이죠?”
“자네가 더 잘 텐데? 그대에게선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것도 사람의 기운이 아닌 그 무엇이…….”
말을 하는 도중 중년 도인의 몸에서 은은하면서도 기이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여차하면 손이라도 쓰겠다는 듯.
진용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중년 도인을 바라보았다.
이자는 세르탄의 존재를 알아챘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는 상태지만.
어떻게 알았을까?
“죄송하지만 그에 대해선 정확히 대답해 드리기가 그렇군요. 다만 한 가지, 도장께서 말씀하신 그 무엇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는 못한다는 것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해를 끼치지 못한다고?”
“그래요. 그것이 저를 어찌하지 못하는 것처럼.”
중년 도인은 여전히 새파란 눈으로 진용을 직시하더니 서서히 눈빛을 거두었다.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많이 벌어지지.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믿지 않지만. 으음……. 그래, 자네에게 일어난 일도 그런 일이라 생각하면 되겠지. 나는 불가사의를 좀 믿는 편이거든.”
“그리 생각해 주신다니 다행이군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죠, 저에게 또 다른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걸?”
중년 도인은 처음처럼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진용을 올려다봤다.
한참이 지난 후.
“내가 지난 이십 년간 뭐에 미쳐 있었는지 아나?”
당연히 그 이유를 모르는 진용은 중년 도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중년 도인은 진용을 다시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갈등이 서린 눈빛.
자신의 이십 년 비밀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기회가 있을 건가. 고대 문자를 아는 자를 만나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 세상이거늘. 더구나 저자는…….
그는 결심한 듯 천천히 몸을 돌렸다.
“따라오게.”
달빛이 아무리 밝아도 밤은 밤이었다. 그늘진 곳의 어둠은 더욱더 칠흑이었다. 게다가 태산의 산능선은 대낮이라 해도 함부로 오를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르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중년 도인의 움직임은 한시도 멈춤이 없었다, 마치 진용을 시험하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굴곡진 바위를 일각이 넘도록 타 넘었다. 진용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무엇 때문에 따라오라 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만한 이유가.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 설령 말한다 해도 믿지 못할 머릿속의 세르탄을 알아본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두 사람의 간격이 조금 벌어지자 진용은 조용히 실피나를 불러냈다.
“실피나.”
―불렀어?
“응. 내 발 좀 받쳐 줘.”
―발만?
“응! 발을 받치기만 해.”
진용은 발을 강조했다, 몸을 날려달라고 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때부터 계곡의 험난함은 진용의 걸음을 막지 못했다.
쏴아아아!
야공을 울리는 폭포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귀청을 뒤흔들 때쯤에서야 중년 도인의 신형이 멈추었다.
그는 검은 물줄기가 떨어지는 폭포의 삼십여 장 위, 절벽을 깎아낸 듯 평평한 암반 위에서 진용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며 숨을 골랐다.
그가 숨을 두어 번 몰아쉬었을 때다. 나직한 음성이 폭포 소리와 섞여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멋진 곳이군요. 사람이 접근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태산에서 가장 멋진 곳 중에 하나일 것 같군요.”
중년 도인은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숨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진용이 고요히 서 있었다.
“내 생각보다 더하군.”
진정한 경탄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생의 모습에 가려진 진용의 무공이 겉모습과 달리 상당하다는 것은 이미 낮에 느낀 터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전력을 다하다시피 경공을 펼친 자신을 한 걸음도 뒤처지지 않고 따라오다니.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경지라는 말.
다른 것은 몰라도 그는 두 가지 능력만큼은 천하를 뒤져도 자신의 상대를 찾기가 힘들 거라 생각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경신공부였다.
그런데 그는 이제 자신이 없어졌다. 눈앞의 젊은이도 이러할진대 세상 밖에는 얼마나 많은 기인이 있을지 어찌 안단 말인가?
놀란 눈을 봉두난발 사이로 크게 뜨고 있는 중년 도인에게 진용이 말했다.
“바람을 잘 타시더군요.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배워? 뭘?
중년 도인이 여전히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진용은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저건가요, 저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중년 도인은 진용이 가리킨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놀람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계곡 안은 칠흑 같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 게다가 진용이 가리킨 곳의 절벽은 달빛에 의한 그늘로 더욱 어두워 보였다.
그런데 그곳에 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담담히 말하지 않은가 말이다.
“보이는가?”
“누가 새겼는지는 몰라도 정말 대단하군요. 총 칠십이 자 같은데요?”
칠십이 자. 보인다는 말이다.
중년 도인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오늘 하루에만도 몇 번짼지…….
“자넨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군.”
진용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중년 도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저걸 저에게 보여주시는 겁니까?”
정말 궁금했다. 자신이 아는 대로라면 중년 도인이 안고 있는 비밀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아니, 작은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감추고 싶은 비밀이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물론 저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에 한해서.
그런데 왜?
그때 중년 도인의 입에서 잔잔한 목소리가 흘러나와 바람 소리와 어우러졌다.
“무려 이십 년이네, 저것에 미쳐서 지낸 세월이. 그런데도 내가 알아낸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지. 그나마도 이제는 진전이 없네. 한계에 부딪친 거지.”
중년 도인은 진용을 돌아다보았다.
“자네에 대한 비밀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도 저것 덕분이네.”
다시 건너편으로 고개를 돌린 중년 도인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차신이혼(借身離魂), 지워진 글자를 합하면 그리되지. 스승님 몰래 벽하사에 있는 책을 모조리 뒤져서 지난 이십 년간에 걸쳐 알아낸 열여덟 자의 비밀 중 하나야.”
“차신이혼…….”
진용이 되뇌이자 중년 도인은 눈을 빛내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함께 풀어보지 않겠나?”
“굳이 저를 택할 이유가 있습니까? 천하에는 뛰어난 학자들이 수없이 많을 텐데요.”
중년 도인이 피식 묘한 웃음을 배어 물었다.
“학자는 많을지 몰라도, 내 장담하건대 자네 같은 사람은 없네. 생각해 보게. 단번에 고대 문자로 된 ‘차신’이라는 글자를 알아본 데다, 차신이혼이라는 말 그대로 또 다른 혼을 지닌 사람이 천하에 얼마나 있을 것 같은가? 그야말로 인연이 아닌가?”
맞는 말이었다.
고대 문자를 아는 사람이 천하에 몇이나 될 것인가? 게다가 천하의 학자들 중 누가 진용처럼 머릿속에 또 다른 영혼을 지니고 있을 건가?
중년 도인의 채근에 진용도 마음이 동했다.
“오래전에 배운 거라 아는 것이 많지는 않습니다. 아마 저 글을 해석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군요.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 테니까요.”
“시간이야 얼마든지 있네. 가능성이 문제지.”
하긴 이십 년을 노력하고도 기껏 열여덟 자밖에 해석하지 못했으니 시간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도 죽을 때까지 글자만 해석하고 싶은 마음은 없을 테니까.
그때 문득 진용의 뇌리에 세상에서 저 글자를 천하의 누구보다도 쉽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떠올랐다.
“아! 아버지라면 이 자리에 앉아서 당장 해석할 수 있을 텐데…….”
중년 도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 저 글자를 앉은자리에서 바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진용은 쓰디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올 수가 없는 분이죠. 갇혀 있으니…….”
“가세!”
“예?”
“갇혀 있으면 구하면 되지 않겠나? 어딘가? 갇혀 있다는 곳이? 내 이래 봬도 실력은 제법 괜찮다네.”
경공만 봐도 괜찮은 실력이라는 것쯤은 진용도 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자신보다도 더 서두르는 중년 도인을 보며 진용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황궁 뇌옥입니다. 십 년이 넘었죠.”
“황……궁 뇌옥? 십 년이 넘었다고?”
“예, 살아 계셔야 할 텐데…….”
중년 도인은 눈만 껌벅이며 진용을 바라보았다.
일반 관청도 아니고 황궁 뇌옥이라니. 그것도 십 년 전에 갇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른다는 듯한 말투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이십 년 젊음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구할 마음은 있겠지?”
“당연하죠. 지금 그 일로 북경에 가는 중입니다.”
“좋아, 그럼 나도 같이 가겠네.”
콰과과과과!!
굉음을 울리며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 태초 이래 누구의 몸도 허락하지 않았을 법한 곳에 두 남자가 벌거벗은 채 몸을 담그고 있었다. 뭐라 중얼거리면서.
“꼭… 씻어야 하나?”
“같이 가시겠다면서요?”
“그거야 그렇지만…….”
“일행 중에 여자가 있다는 것을 잘 아시잖습니까. 아마 제가 도장님을 이대로 데리고 가면 한바탕 소란이 일 텐데, 그럴 수는 없죠.”
박박, 둥근 자갈로 몸을 문지르던 중년 도인이 자신의 몸을 둘러보았다.
“뭐, 오랜만에 씻으니 기분이 좋긴 한데, 귀찮아서…….”
둥둥 떠다니는 찌꺼기들이 출렁이는 물결을 따라 진용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큰 것은 조금 과장해서 손바닥만 하다.
진용은 슬며시 기운을 흘려 찌꺼기들을 밀어내고는 고개를 내둘렀다.
“태산의 산신령이 뭐라 하겠습니다. 어휴…….”
“왜?”
몰라요?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어요?
차마 대놓고 말은 못하고 진용은 고개를 들어 뿌연 새벽안개가 피어오르는 폭포 위를 쳐다보았다. 그때다.
“어? 왜 안 보이지?”
분명 보여야 했다. 비록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이지 않을 정도도 아니다.
벌떡 몸을 일으킨 진용은 물을 박차고 옆에 솟은 일 장 높이의 바위 위로 올라섰다.
그래도 보이지가 않는다.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크군.”
“예?”
“험, 아무것도 아니네. 아! 글자가 왜 안 보이는지 모르지?”
“그럼 도장님은 아신단 말씀입니까?”
“물론이네. 나도 처음에는 한참을 헤맸었지. 그러다 알게 된 것이네만, 그 글자는 해가 뜨면 보이지 않아. 그리고 석양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쯤부터 보이기 시작하지. 그렇다고 아무 데서나 보이는 건 아니네. 우리가 서 있었던 곳에서만 보이거든.”
“예? 어떻게 그런……?”
“그래서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네.”
진용은 다시 한번 절벽 위를 올려다봤다.
폭포에서 피어난 안개가 꿈틀거리며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모든 비밀을 감추려는 듯.
참으로 신비한 일이었다.
4
“정광이라 하네. 이제는 도인이라 하기도 뭐하지만 아직 도명을 벗어버리지는 못했다네.”
벽하사로 돌아가는 길에 계속 도장이라고 부르기 뭐해서 물었더니 중년 도인이 한 말이었다.
“고진용이라 합니다.”
진용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정광의 행색은 하루 만에 천양지차로 변해 있었다. 껍질을 한 꺼풀 벗기고 머리를 묶자 생각보다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다.
수염이 텁수룩한 데다 부리부리한 눈은 일반 사람이 보면 움찔거릴 정도로 강인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무섭게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장난기가 조금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나도 젊을 적에는 좀 나갔지. 벽하사에 찾아온 젊은 처자들이 나만 바라보았으니까.”
피식, 웃음이 절로 나왔다.
“비웃는 건가, 못 믿겠다는 건가?”
“아, 아닙니다. 믿어야죠, 도사님 말씀이신데……. 일단 들어가시죠.”
대충 얼버무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저만치 벽하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겨울 정도로 많은 계단을 다시 올라 벽하사에 들어가자 오가던 사람들이 모두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중 한 도인이 정광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결국에는 눈을 크게 뜨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