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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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33화
33화
“이놈! 죽여 버…….”
그러나……
퍼벅!
다시 두 번에 걸친 타격음.
데굴데굴 두어 바퀴를 구른 하군상은 벌떡 일어섰다.
젠장! 이번에는 눈두덩이다. 그러잖아도 시퍼렇게 물든 눈두덩에 극심한 고통이 몰려온다.
“비, 비겁하게…….”
진용은 신수백타로 하군상의 눈두덩에 가볍게 일권을 적중시키고는 조용히 서서 하군상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제법인데?’
탁인효와의 권각 다툼을 보고 강할 거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능히 곽천중에 비해도 떨어지지 않는 실력이다.
“그 정도로는 나를 혼낼 수 없어.”
“이, 이놈!”
하군상은 극심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모든 내공을 끌어올렸다.
하필이면 초연향의 앞에서 이런 꼴이라니!
장포가 바람도 없는데 휘날린다.
은은히 흐르는 공기가 하군상을 정점으로 휘돌고 있다.
그때다.
“그렇게 죽.고. 싶.나?”
진용의 입이 열리고, 싸늘한 한마디가 기의 회오리를 부수며 하군상의 귀를 파고들었다.
단순한 목소리가 아니다. 진기가 응집된 기의 화살!
세르탄에게서 배운 절대음의 능력 중 천공음(天空音)이었다!
“크으읍!”
난데없는 충격에 하군상은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부릅뜬 두 눈은 이미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흔들리는 초점을 잡으려 고개를 흔들었다.
“이, 이게 무슨…….”
진용은 대답 대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손을 들었다.
손가락 끝에서 시퍼런 번개가 번뜩인다. 뇌전의 능력!
“죽고 싶다면 죽여주지!”
일순간, 혼을 뒤흔드는 일갈!
진용의 손끝에 뭉쳐 있던 뇌전이 하군상을 향해 폭사되었다.
눈 깜짝할 새도 없이 귀밑을 스쳐 지나가는 뇌전!
하군상의 온몸이 굳어버렸다.
쩌저적! 쩡! 푸스스스…….
찰나! 탁자 위의 찻잔이 가루로 변해 흩날렸다.
하군상은 그제야 덜덜 떨리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겨, 격공…… 타, 탄지강?”
경악으로 푸들거리는 하군상을 향해 진용이 다시 일보를 내디뎠다.
동시에 들린 커다란 손. 하군상의 초점이 흐려진 눈에 커다란 손바닥이 보인다 싶은 순간!
퍽!
복부가 터져 나가는 것 같은 충격에 하군상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전율이 발끝에서 머리꼭대기까지 치달린다.
하지만 그는 오기로 꼬꾸라질 것 같은 몸을 억지로 세웠다.
“내, 내가…… 우웩!”
퍼벅!
덕분에 그는 두어 대를 더 얻어맞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진용이 그의 얼굴만은 더 이상 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용이야 표나게 치지 않으려 그리한 것이지만, 하군상은 쓰러지는 와중에도 얼굴을 더 맞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털썩!
마침내 하군상이 쓰러지자 진용은 초연향을 바라보았다.
“괜찮습니까? 걱정 마세요, 다 끝났으니까.”
그제야 두 사람의 기세에 짓눌려 입도 뻥끗 못한 채 한쪽 구석에 물러나 있던 초연향이 비칠거리며 다가왔다.
그녀는 아연한 표정으로 진용과 하군상을 번갈아봤다. 그러고는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 공자는 그냥 장난으로 그랬을 뿐인데. 손금 봐준다고……. 일이 커지는 것은 아닌지…….”
“…예? 손금요?”
하군상이 눈을 뜬 것은 이각이 흘러서였다.
진용이 내력을 불어넣어서 도와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진용이 보이자 학질 걸린 사람처럼 전신을 푸들거렸다. 새파랗게 질린 채.
진용이 어색함을 감추려고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게 왜…….”
하군상은 정신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 아니…… 오. 사실 향 매에게는 그냥 장난으로…….”
조금 전에 초연향도 그랬었다. 그냥 장난을 친 것이라고. 손금 봐준다면서.
그러다 진용이 들어서서 뭐라고 하자 오기가 생겨 그런 거라고.
‘그래도 그렇지, 지가 뭔데 초 소저의 손을 잡아? 그리고 손금을 봤는지 뭐 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어쨌든 진용도 조금은 미안한 감정을 실어 말했다.
“그럼 우리 둘 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 잊기로 하죠. 어떻습니까?”
하군상이 이번에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자랑할 게 있다고…… 당연히…….”
자신도 쪽팔리는 일. 묻어버린다면 당연히 환영이었다.
“험, 다행이군요, 그리 생각하신다니. 그건 그렇고,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만…….”
부탁? 실컷 패놓고 뭔 부탁?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속마음은 그래도 표정만큼은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눈두덩의 시퍼런 멍에 주름이 잡혔다, 꼭 너구리가 웃는 것처럼.
“뭔데… 말씀… 하시죠.”
자신이 덧칠한 눈두덩을 보고 진용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말했다.
“사실 제가 호위무사를 하고 있는 것은 그에 대한 대가를 받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대가?”
일하고 대가 받는 거야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군상이 의아해하자 진용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생각하고 계신 것과 조금 다른 대가지요. 다름이 아니라 약간의 정보를 얻기로 했습니다.”
“정보요? 무슨 정보를……?”
“뭐,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이죠. 구룡상방의 정보력이 대단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차라리 하 형에게 부탁하는 것이 나을 것 같군요. 어떻습니까? 좀 알아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를 악문 하군상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진용의 말에 덫이 깔려 있다고 생각했다.
사소하다고?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저렇게 사람을 죽도록 패놓고 부탁한다는 인간이 사소한 일을 가지고 정보 운운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 그건…… 내 마음대로 할 수가…….”
하군상이 머뭇거리자 진용의 눈빛 깊은 곳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생각보다 줏대가 없는 자는 아니다.
또한 조금 약삭빠르게 보이기는 하지만, 눈빛에 악기가 보이지는 않는다. 내공도 정종의 심법을 익혔는지 제법 튼실하면서도 깨끗했고.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악동일지는 몰라도 악인은 아니라고 해야 되나?’
첫인상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심하게 다루지는 않았을 텐데…….
어쨌든 모든 것은 초 소저에게 장난을 친 하군상의 잘못이었다, 최소한 진용이 생각하기에는.
진용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구룡상방이 황궁의 정보에 정통하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바로 황궁에서 벌어진 자그마한 일에 대한 것이지요. 그 정도는 알려준다 해도 결코 구룡상방에는 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해가 된다 생각되는 정보는 안 알려줘도 무방하고 말입니다. 설마 초 소저가 구룡상방에 해가 될 정보를 알려주겠다고 했겠습니까?”
자신보다 훨씬 똑똑한 초연향이 그런 대가를 약속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해가 되는 정보라 판단되면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지 않는가?
일단 하군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알아보도록 하지요. 하지만…… 제 힘으로도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저도 안 되는 것을 억지로 얻으려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저 알고 보면 순한 사람입니다. 그냥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십시오.”
순하다고? 거짓말! 순하다는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개 잡듯 패냐?
“왜요, 싫습니까?”
하군상은 진용이 부드럽게 말할수록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마치 두들겨 맞은 자리에서 악마의 이빨이라도 솟아난 것처럼.
결국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하얘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싫지는 않은데… 고수를 친구로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 * *
하군상을 두들겨 팬 일도 그렇고, 초연향의 얼굴 보기도 미안하고, 공연히 싱숭생숭해진 진용은 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담을 돌아 나오는 허리가 굽은 백발의 노도인이 보였다.
순간 진용은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노도인에게 다가갔다.
“도장님,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노도인이 고개를 돌리고 진용을 바라보았다.
“뭘 물어보신다는 겐가, 공자?”
그제야 진용은 노도인의 머리가 한쪽만 백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기이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진용은 조금도 표를 내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에 보니 봉두난발에 허름한 도인께서 저쪽 구석에 계시던데, 혹시 그분이 이곳에 기거하는 분이신지요?”
“그 미친놈?”
노도인은 대뜸 그를 미친놈이라 불렀다. 진용의 고개가 살짝 들렸다.
“미쳐요?”
“그놈은 이십 년 전부터 뭔가에 미쳐서 제를 올리는 것도 잊고 싸돌아다니는 놈이라네. 그놈에 대해선 신경 끄게나.”
하지만 진용은 그가 미쳤든, 미치지 않았든 그에게 신경을 쓸 이유가 있었다.
“혹시 어디를 가면 그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
“거참, 그 미친놈을 뭐 하러 만나려 그러나? 뭐, 어쨌든 정 그 미친놈을 만나겠다면, 내 그놈이 자주 가는 곳을 알려주겠네.”
3
황금빛으로 물든 둥근 달과 유유히 흐르는 은하수가 태산의 밤하늘을 수놓은 야심한 밤.
뎅! 뎅!
산 아래 산사에서 울려오는 종소리가 계곡 사이사이를 메아리치며 자정을 알리자, 반고(盤古)의 머리, 태산조차 깊게 잠들었다.
그런데 잠든 태산의 숨결 사이로 누군가가 야심을 틈타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한 걸음에 벽하사의 담을 타 넘더니, 바람을 타고 흐르듯 순식간에 벽하사에서 멀어져 갔다.
잠시 후, 벽하사를 빠져나간 그는 교교한 황금빛 월광이 쏟아지는 태산의 정상 옥황봉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진용이었다.
월광 아래 우뚝 선 진용은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탄성을 토해냈다.
“멋지군! 태산이 높다 하되 어쩌구저쩌구 하더니 그 이유가 있었어.”
사방을 둘러봐도 태산보다 높은 산이 없었다. 그러니 더욱 높게만 보인다.
게다가 장엄하다. 마치 달도 별도 태산을 중심으로 흐르는 것만 같다.
진용이 잠든 거인처럼 누워 있는 태산을 묵묵히 바라보며 감흥에 젖은 지 일각이 지났을 즈음, 뜬금없는 말이 진용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제 그만 나오시죠.”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이 야밤에 누가 정상에 있다고.
그러나 오래지 않아 목이 쉰 듯 그르렁거리는 목소리가 십 장 정도 떨어진 바위 뒤에서 들려왔다.
“너는 누구냐?”
부스스 바위 뒤에서 걸어나오는 자. 그는 낮에 벽하사에서 봤던 봉두난발의 중년 도인이었다.
“제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럼 뭐가 중요하단 말이냐?”
진용은 봉두난발의 중년 도인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낮에 벽하사에 계신 노도인께 물어보았지요. 허름한 도복을 입은 분이 계시던데 그분이 누군지 아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분이 말씀하시더군요. ‘그 미친놈은 이십 년째 뭔가에 미쳐 있는 놈이네. 신경 쓰지 말게’라고요.”
대놓고 미친놈이라고 하면 기분 좋을 사람이 없다, 진짜 미친 사람이라 해도. 그런데도 봉두난발의 도인은 눈을 빛내며 씩 웃었다.
“그 노도인이 혹시 머리카락이 반쪽만 하얀 분이 아니시던가?”
“맞습니다. 바로 그분입니다.”
“클클클……. 그럼 그분 말대로 자넨 나에게 신경 쓸 것이 없네.”
“저도 그러고 싶었지요. 한데…….”
진용은 미친 듯이 클클거리다 뒤돌아서려는 그에게 조용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차신(借身)!”
단순한 한마디에 돌아서려던 중년 도인의 몸이 굳어졌다.
진용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글자 옆에 원문으로 보이는 고대의 귀갑문자가 반쯤 지워져 있더군요. 저도 고대 문자에 관심이 많아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죠. 게다가 뒷부분이 지워져 있으니…… 그냥 지나치기에는 제 호기심이 그냥 놔두지를 않는군요.”
중년 도인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의 눈에선 어느새 새파란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가 새파랗게 빛나는 눈으로 진용을 직시하며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자네처럼 어린 서생이 어찌 귀갑문자를……?”
“제 나이에 고대 문자를 알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음, 좋아. 그럼 다른 것을 묻겠네. 자네는…… 분명 하나가 아니야. 내가 잘못 알지 않았다면. 대체 자네는 누구지? 자네의 내면에 뭐가 들어 있는 거지?”
이번에는 진용의 몸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