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30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30화
30화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던 사람이 달려들어 정신없이 흙을 뿌려댔다. 그제야 불꽃이 조금씩 사그라졌다.
살이 타 들어가는 고통에 더욱 높아지는 비명 소리.
“으아아아!”
유량과 검을 맞대고 있는 동호진을 제외한 모두가 질린 표정으로 겨우 불꽃이 꺼져 가는 동호청을 바라보았다.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찌른다.
꿈틀거리며 땅을 긁는 그의 손가락에서 시커멓게 그슬린 껍질이 벗겨진다.
부르르 어깨를 떠는 사람들. 누군가가 떨리는 입을 열어 소리쳤다.
“아, 악마의 술법이다. 악마의 술법이야!”
“아니야! 극양의 마공이다! 저건 마공이야!”
마공이든 술법이든, 단 한 수에 영풍삼위 중 둘째의 손이 으스러지고, 불꽃 한 방에 첫째 동호청이 새카맣게 타버렸다.
공포가 새벽안개처럼 무사들의 가슴속으로 퍼져 나갔다.
덤벼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인의 자존심으로는 당연히 덤벼야 한다. 그러나 자신들도 사람이다. 상대는 자신들보다 월등히 강한 두 사람을 한순간에 제압한 자. 더구나 사람을 새카맣게 태워 버리는 마공 술법을 지닌 자다.
모두가 망설일 때다.
와중에 몇 사람이 이를 악물고 진용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 대협을 구해! 모두 덤벼!”
그 순간, 진용의 신형이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바람이 되어 달려드는 무사들 사이를 누볐다.
그 모습은 양 떼 속의 호랑이나 다름없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꺾어지고, 발에 걸리는 대로 부서진다.
땅! 퍽! 우지끈!
검도 부러지고, 팔다리도 부러진다.
거의 일시에 터져 나오는 처절한 비명!
“으악!”
“케엑! 내 팔!”
진용은 신수백타로 순식간에 일곱 명의 팔다리를 꺾어버렸다.
바람이 스친 곳에는 비명과 시뻘건 피와 부서진 잔해만이 남았을 뿐이다.
공포에 질린 채 꿈틀거리며 조금이라도 진용에게서 멀어지려는 사람들.
무심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진용의 입에서 사람들의 혼조차 얼려 버릴 것 같은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건곤흡정진혼결이 실린 채.
“스물세 명인가요? 물론… 지금이라도 포기하겠다면 저 역시 당신들을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만…….”
스물셋 정도는 자신 혼자서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말.
거짓이 아니다. 영풍삼위 중 두 명이 단 한 수에 당하고, 일곱 무사는 제대로 검도 겨눠보지 못하고 팔다리가 부러졌다. 게다가 서생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살기 어린 음성. 간이 오그라드는 판이다.
진용이 말하며 한 걸음을 나아가자 영풍보의 무사들도 주춤거리며 두어 걸음을 물러섰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그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덤비면 죽는다!
여전히 손이 으스러진 채 진용의 앞에 꿇어앉아 있던 동호강도 창백한 안색이 시커멓게 죽어버렸다.
소름이 돋을 일이었다. 평범한 서생으로 보이는 자의 입에서 저런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오다니.
동호강이 부들거리며 혼신을 다해 입을 열었다.
“끄으으……. 그럼… 살려주겠다는…….”
“물론. 나는 살인을 즐겨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물러서겠다는 사람까지 다 죽일 이유가 없단 말이지요. 단, 왜 초 소저를 데려가려 했는지 정도는 말씀을 해주셔야 합니다.”
“그, 그건…….”
“시간이 없어요. 저분은 화상을 깊게 입으셔서 빨리 의원에게 데려가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 그……. 좋… 소. 말하겠… 소.”
그 말에 진용은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그뿐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오연히 동호강을 바라보는 진용. 그의 눈빛에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동호강의 표정이 귀신이라도 본 듯하다.
내공을 끌어올려 마음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내공이 모아지지 않는다. 손이 부서졌기 때문이 아니다, 결코.
‘분명 내공이 빨려 나갔었다. 선천진기가……. 크으윽!’
“이제 말을 해보세요. 왜 초 소저를 납치하려 했죠?”
동호강이 공포에 질린 눈을 들어 진용을 올려다봤다.
“천화상단의…… 부탁이 있었소.”
그 말에 마차 안에 있던 초연향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탁 공자가 부탁했나요?”
동호강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렇… 소. 그분이 부탁했소. 초 소저를 모셔오라고…….”
“강제로 말인가요?”
“그, 그건……. 우리는 단지 꼭 모셔와야 한다기에…….”
“후우, 그랬군요.”
한숨을 길게 흘린 초연향은 쓰디쓴 표정으로 입을 닫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는 진용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뭔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이 끼어 있는 것 같다. 초연향은 그에 대해 짐작하고 있는 듯하지만 더 이상 입을 열고 싶은 마음은 없는 듯했다.
‘탁 공자라…….’
진용은 애써 외면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곳에선 유량이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동호진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떠더덩!
한순간, 두 사람의 검이 거세게 부딪쳤다 떨어졌다.
“그만 하지.”
두 걸음 물러선 유량이 검을 하단으로 내리고 동호진을 바라보았다. 동호진도 일그러진 표정으로 유량을 직시했다.
“아직 지지 않았다!”
“죽고 싶나? 죽고 싶다면 죽여주지. 하나 지금은 아니야.”
싸우자 하면 싸우지 못할 것은 없다, 영품삼위 중 둘을 한순간에 불능으로 만들어 버린 진용이 있으니까.
어쩌면 모두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리되면 싸움은 이곳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영풍보는 해룡선단이 단독으로 상대하기에는 벅찬 상대. 자칫 오늘 일로 인해 영풍보와 해룡선단의 싸움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해왕방과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는 해룡선단으로선 양쪽에서 적을 맞이해야 할 상황이 올지 모른다.
그러니 끝내야 할 때 끝내는 게 상책이다. 저들 역시 떳떳한 이유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니까.
“전면전으로 치닫는 것은 그대의 보주도 원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유량의 말에 동호진의 표정이 괴이하게 변했다. 이미 상황은 절체절명. 거기다 유량의 뜻을 모를 그도 아니다.
“제기랄, 목숨을 구걸받다니……. 좋아, 물러가겠다!”
유량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이없는 상황. 단 한 사람에 의해 영풍보의 이십여 무사가 얼어붙어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다. 물론 영풍삼위 중 두 사람이 단숨에 제압당하고 그들을 구하려던 무사들이 일순간에 팔다리가 부러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유량은 지금의 상황이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무사의 혼조차 얼어붙게 만든 미지의 기운.
‘이걸 믿어야 하는지… 대체 고 공자가 익힌 무공이 무엇이기에…….’
유량이 둘러보는 사이, 무엇 때문인지 진용은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야. 건곤흡정진혼결을 함부로 써선 안 되겠어.’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어차피 벌어진 일.
진용은 고개를 들어 동호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저가 없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곧 비가 올 것 같군요. 의원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그 말에 동호진은 재빨리 동호강의 곁으로 다가가서 손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동호청을 안아 들었다. 그는 두려움과 한이 범벅된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은원은 잊지 않겠소.”
동호진은 이를 갈며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동호강을 바라보았다.
“형님, 갑시다. 큰형님을 빨리 의원에게 데려가야겠습니다.”
동호강도 진용을 떨리는 눈으로 흘려 보고 몸을 일으켰다.
“크윽, 그래.”
영풍보의 무사들은 팔다리가 부러진 채 쓰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는 동료들을 들쳐 업었다. 그들의 표정은 멀쩡한 자나, 팔다리가 부러진 자나 모두가 한결같이 공포에 질려 있었다.
잠시 후 몰려들 때보다 더 빠르게 영풍보의 무사들이 썰물처럼 물러갔다.
그리고 진용도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남은 것은 여전히 마차 한 대와 다섯 필의 말에 타고 있는 창백한 얼굴의 해룡선단 무사들뿐.
무사들은 마차를 힐끔거리며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어려운 임무라 했다.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했다.
그런데 이제 빛이 보인다. 우리는 살 수 있다!
“다친 사람은?”
“약간의 경상을 입긴 했지만 크게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다행히 중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유량은 마차를 향해 말했다.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네, 고 공자.”
진용은 눈을 감고 있다가 유량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소를 머금었다.
팔다리를 부러뜨린 것은 그다지 마음에 걸리지 않는다. 그거야 시간이 지나면 나을 테고, 무인들치고 그 정도 상처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마법으로 사람을 태워 버렸다는 것.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살심이 치솟았다, 살심을 누르기 위해 따로 내공을 끌어올려야 했을 정도로.
‘건곤흡정진혼결 때문인 것 같아.’
동호강의 손을 잡은 순간, 상대가 내공을 밀어 넣자 자신도 모르게 건곤흡정진혼결을 운용했다. 순간 으스러진 손을 통해 상대의 내공이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 살심이 일었다.
대경한 진용은 재빨리 운용을 멈추어야만 했다. 그리고 때마침 동호청이 공격해 오자, 진용은 빨아드린 내공을 이용해서 파이어볼, 일명 화염주를 펼치며 빨아들인 내공을 소진해 버렸다.
덕분에 살심이 조금 누그러져 손을 멈출 수 있었지만, 아마 그들이 멈추지 않고 덤볐다면 정말로 모두를 죽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마터면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을 모두 죽일 뻔하지 않았는가. 그저 자신의 살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아무래도 건곤흡정진혼결에 자신이 아직 파악하지 못한 뭔가가 있는 것만 같다.
세상에! 그토록 지독한 살심이라니…….
‘건곤흡정진혼결에 대해 더 깊게 연구해 봐야겠어.’
진용이 눈을 감고 고민에 잠겨 있자 초연향이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도 동호청이 불에 타는 것을 보았다. 놀라서 입을 틀어막아야 했을 정도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것, 더 심한 경우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힘드시겠지만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앞으로 더한 경우를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강호란 그런 곳이라 들었거든요.”
강호란 그런 곳이라고?
“피가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 자신이 무서울 뿐이죠.”
그때 밖에서 유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 공자가 그리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을 거네. 때론 한 번의 단호함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지.”
틀린 말이 아니다. 진용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비교하면 이 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벌건 피가 땅을 적시고 많은 사람이 죽어갈 것이다.
그때마다 감정에 젖어 있을 것인가?
답은 간단했다.
‘그럴 수는 없다!’
진용의 눈빛이 저녁 하늘의 어둠처럼 그 끝을 알 수 없게 깊이 가라앉았다.
“단호함이라…….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나직이 대꾸한 진용은 초연향을 돌아보았다.
“그건 그렇고, 애초의 계획은 물 건너간 것 같군요.”
“그러게요. 고 공자의 무위를 숨기려 서생복까지 입혔는데…….”
“뭐 어쩌겠습니까? 이제 와서 옷을 바꿔 입는다는 것도 그렇고, 계속 서생 흉내나 내는 수밖에요.”
마차가 출발하려는데 한두 방울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차가 정림사에 도착할 즈음, 먹장구름이 시퍼런 벼락의 칼날에 찢겨지며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진용의 가슴에 엉겨붙은 고뇌의 찌꺼기를 씻어내려는 듯이.
2
쏴아아아!
정림사에 도착하자마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초연향의 말대로 쉽게 그칠 비가 아닌 듯했다.
회색빛으로 변해가는 산사의 풍경. 답답한 자신의 마음만큼이나 어두워진다.
쏟아지는 폭우를 바라보던 진용은 찻잔을 들다 말고 지나가듯이 초연향에게 물었다.
“탁 공자란 자가 누굽니까?”
“그는 천화상단의 주인인 탁중보의 둘째 아들로 이름이 탁인효예요.”
남경에 본단을 둔 천화상단은 구룡상방과 함께 천하에서 가장 큰 세 개의 상인 집단 중 하나다. 그런 곳의 둘째 공자라면 한마디로 남부러울 것이 없는 자다.
“그자가 왜 초 소저를 납치하려는 거죠?”
초연향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