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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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24화
24화
힐끔 독사 눈매의 초로인이 진용을 흘겨보았다.
다된 밥에 재를 뿌린 자였다. 해룡선단의 이인자를 잡을 절호의 기회였거늘. 저 새파랗게 젊은 놈, 단 한 놈에 의해 모든 게 틀어졌다.
믿을 수 없게도 저 한 놈에게 향주인 복소양이 당하고, 십여 명의 수하가 한순간에 당하면서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제기랄! 도대체 저런 괴물 같은 놈이 어디서 나와서는!’
중년인도 곤혹스런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밀리던 상황이 한순간에 뒤집어졌다는 것.
중년인은 이를 악물고 검을 고쳐 쥐었다.
그때였다.
“초정명! 다음에 보자!”
독사 눈매의 초로인이 잽싸게 뒤로 물러나더니, 신형을 날려 건너편의 배로 넘어갔다.
진용은 굳이 움직이지 않았다. 중년인이 움직이지 않는데, 자신이 먼저 움직여서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적을 치겠다고 설칠 이유가 없었다.
독사 눈매의 초로인이 해웅호로 넘어가자, 살아남은 해왕방의 무사들도 부리나케 그의 뒤를 따라 해웅호로 넘어갔다.
비룡호의 무사들 몇몇이 그들을 쫓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웅호까지 넘어가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갈고리가 걷혀졌다. 거센 해류가 빠르게 두 배의 간격을 벌렸다. 무사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는 사이 배의 간격은 오 장까지 벌어졌다.
초정명이 건너편을 향해 외쳤다.
“언제고 이 빚을 꼭 갚을 것이다, 소가야!”
건너편에서 독사 눈매의 초로인 소정봉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러기 전에 해룡선단이 먼저 사라질 게다! 어리석은 놈!”
초정명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소정봉을 잡아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러다 이를 부드득 갈고는 천천히 주위를 훑어보았다. 갑판이고 어디고 온통 시신에서 흘러나온 피로 뒤덮여 있었다.
“적의 시신은 바다에 던지고, 본단 형제들의 시신은 한쪽으로 모아라. 그리고 해왕방 놈들 중 살아 있는 놈들은 모두 묶어서 선창에 처넣어라!”
“예, 선장님!”
명이 떨어지자 살아남은 무사와 선부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모두가 말을 잊은 채 시신들을 정리하고, 진용에게 당해서 쓰러진 자들을 묶어 선창에 집어넣었다.
시신과 포로들이 정리되자 서너 명이 두레박으로 바닷물을 퍼 올려서 바닥을 씻어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덕에 선상은 빠르게 정리가 되어갔다.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는지 그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무표정이었다. 그러나 진용은 그들의 무표정이야말로 슬픔의 또 다른 표현임을 알 수 있었다. 동료의 시신을 바라보는 눈빛들이 울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선상이 정리되자 초정명이 진용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 배의 선장인 초정명이라 하네. 그대는 뉘신가?”
바다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사람. 나타남과 동시 절망적인 상황을 바꿔놓은 사람. 낡은 옷을 입고 나이는 스무 살 전후로 보이지만, 지닌바 무공만큼은 자신조차 파악하기 힘든 사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용은 저 멀리 떠서 상어들의 노리개로 전락한 선실의 문짝을 가리켰다.
“고진용이라 합니다. 저걸 타고 표류하던 중이었지요.”
초정명의 눈에도 상어들이 물어뜯고 있는 선실의 문짝이 보였다.
그런데 표류?
그때였다. 삐걱, 선실의 문이 열리며 나직하면서도 영롱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분의 말씀이 맞아요, 아버지.”
진용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한 여인이 선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창백한 안색, 신비한 눈빛을 지닌 여인이.
“괜찮으냐?”
“예, 아버지. 그런데 많은 분들이 죽어서…….”
“하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어쩌겠느냐. 그런데 네가 그 사실을 어찌 안단 말이냐?”
“선실 벽의 갈라진 틈으로 저분이 다가오는 것을 봤어요.”
그녀는 초정명의 물음에 답하며 신비하도록 맑은 눈을 들어 진용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진용은 중년인이 왜 선실의 앞을 벗어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딸을 놔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런데 이상하다. 뱃사람들은 손님 외에 여자를 배에 잘 태우지 않는다 했는데…….
진용이 뚫어질듯 바라보자 여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녀가 무안함을 벗어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표류를 하고 있었던 건가요?”
꼬로록.
배가 먼저 대답했다.
진용은 멋쩍게 웃었다.
참 한심한 일이다. 아름다운 여자가 묻는데 꼬로록이라니.
“제가 타고 있던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그 말에 초정명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배가? 어떤 배였는데 뒤집혔단 말인가?”
진용이 대답하기도 전에 여인이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공자가 타고 있었다는 저 선실의 문짝에는 용이 그려져 있어요. 제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저 문짝은 신룡호의 선실에 달려 있던 것이에요.”
진용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때 여인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진용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공자께선 신룡호에 타고 계셨나요? 뒤집힌 배가 신룡호였나요?”
신룡호라면 자신이 찾고 있는 배가 아닌가!
초정명은 딸의 능력을 알기에 일말을 의심도 하지 않고 놀란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 신룡호가 뒤집혔다고?”
진용도 경악한 마음이었다.
어떻게 저 문짝에 그려진 용 문양을 알아봤단 말인가? 희미해서 가까이 있어도 잘 보이지 않거늘!
그가 어찌 알까, 신안신녀(神眼神女)라 불리는 그녀의 능력을.
그녀에겐 두 가지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눈이 밝다는 것이다.
과장하지 않고, 그녀는 십 리 밖에서 날아가는 새의 부리에 뭐가 물렸는지를 정확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능력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눈을 가졌다는 것이다,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눈을.
그녀의 그런 능력을 잘 아는 해룡선단의 사람들은 그녀를 신안신녀라 불렀다. 그리고 뭘 찾을 때마다, 진실을 가려야 할 때마다 그녀를 초빙했다. 그녀가 지금 배에 있는 이유도 그러한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딸의 그러한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초정명은 항해를 나서며 그녀를 태우려 하지 않았었다. 딸의 안전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고집을 부렸다. 자신이 꼭 필요할 거라며.
그런데 지금, 그녀의 능력이 한 가지 사실을 밝혀냈다.
뒤집힌 배는 신룡호다!
딸의 말을 들은 초정명은 곤혹한 표정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저자가 신룡호를 타고 있었다고?’
의혹이 구름처럼 일었다. 하지만 일일이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어쨌든 상대는 자신들을 구해주지 않았는가?
게다가 무공 또한 그 깊이를 정확히 알 수도 없다. 공연한 적을 만들 필요는 없는 일. 자세한 것은 나중에 알아볼 기회가 있을 터였다.
그때 진용이 놀라움 가득한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며 순순히 인정했다.
“맞습니다. 저는 신룡호를 타고 있었지요, 뒤집히기 전까지는.”
“선원은……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나 죄수였소!’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 진용은 일단 둘러댔다.
“임시 선원이었습니다.”
초정명이 눈을 빛내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이상하군. 최근에 폭풍우도 없었는데 왜 신룡호가 뒤집혔단 말인가?”
진용이 동그래진 눈으로 되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며칠 전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쳤는데.”
“뭣이? 그게 사실인가?”
눈을 부릅뜬 초정명은 물론이고, 선상을 정리하던 사람들도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이상한 일이다.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진용은 사람들에게 간단하게 그때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마운이 몰려들고 엄청난 태풍이 불었습니다. 두 척의 배는 순식간에 뒤집혀 버렸고요. 어떻게 할 시간도 없었죠.”
“마운? 그럼 마풍이 불었단 말이잖아?”
“어쩐지 큰 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했더니…….”
웅성웅성.
둘러서 있던 모든 사람이 경악한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배가 마풍을 헤치고 빠져나온다는 것은 죽어서 지옥에 간 사람이 다시 살아 나오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오죽하면 해적을 만날지언정 마풍은 만나지 말라는 말이 있겠는가.
초정명이 멍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자 여인이 나섰다.
“그럼 바다를 표류한 지 사흘은 되었겠군요.”
여인의 목소리에 진용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아름다운 눈이 영롱한 빛을 발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티 하나 없는 순백의 한가운데 깊숙이 자리 잡은 흑옥(黑玉) 같은 눈동자.
‘진짜 신비하고도 예쁜 눈이군.’
‘예쁘긴. 재수없는 눈이야, 시르…….’
‘마족이 언제 저런 눈을 보기나 했어?’
‘꼭… 선계에 사는 선녀의 눈 같아. 진짜 재수없어!’
‘…뭐가 어째?’
과연 마족다운 이유다.
세르탄의 말에 어이가 없어진 진용은 여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서 말씀인데…… 먹을 것 좀 부탁합니다.”
진용이 너무 빤히 바라봐서인지 언뜻 여인의 얼굴에 희미한 노을이 어린다. 그녀가 노을 진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 일단 이분에게 먹을 것을 주고 쉬라 하세요. 고마움도 표하지 못했는데, 계속 물어보기만 하는 것도 실례니까요. 자세한 것은 나중에 물어봐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초정명이 힘없는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이분 공자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게. 옷도 한 벌 찾아보고.”
그리고 진용을 항해 말했다.
“어쨌든 고마웠네. 공자가 아니었다면……. 후… 좀 쉬시게. 내 조금 있다 찾아가겠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
“알겠습니다.”
진용은 선원을 따라 선실로 들어갔다.
선창에 남은 초정명은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친구여…….’
해룡선단의 이인자인 그가 직접 나선 이유는 천궁도에 갔다가 사라진 두 척의 배 때문이다.
그 배의 책임자가 바로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것이다.
그 친구를 찾기 위해 나섰건만 배는 찾지 못하고 숙적인 해왕방의 배를 만나 아끼던 수하만 잃었다.
그런데 친구가 이끌던 배들이 마풍을 만나서 뒤집혔다고 하지 않는가.
마풍을 만났다면 죽은 것은 기정사실일 것이다.
이래저래 힘이 빠졌다.
‘바닷사람이 바다에서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그렇게 입에 달고 살더니…….’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았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손. 딸이다.
돌아다보니 딸의 눈에 이슬이 맺혀 있다.
그는 딸의 손을 부드럽게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무사한 것으로 위안을 삼으마.’
그러고는 안개가 잔뜩 낀 눈을 돌려서 바다를 바라보며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잘 가게. 내세에서나 보세.’
간단하게 차려준 음식을 먹고 옷을 갈아입었다.
진용은 그제야 자신이 살았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머릿속의 세르탄이 눈앞에 있으면 껴안고 싶을 정도였다.
‘시르… 이제 확실히 산 것 같다. 그지?’
자신의 마음을 알았는지 세르탄이 목 메인 음성으로 말했다. 진용은 와중에도 자신이 약속을 잊지 않고 있음을 분명하게 주지시켰다.
‘세르탄, 두 가지야. 잊지 마.’
‘지독한……!’
세르탄의 감격에 찬 기분이 싸늘하게 식었다.
-상어보다 더한 놈!
이각쯤 지났을 때 초정명이 딸과 함께 진용을 찾아왔다.
두 사람은 보다 많은 상황을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진용으로서도 딱히 할 말이 많지 않았다.
그저 ‘천궁도를 떠난 다음 날 마풍을 만났다. 엄청난 해일에 두 척의 배가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었을 거다’. 그 말만을 할 수 있을 뿐.
초정명도 포기한 듯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후, 그래. 고 소협은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육지에 도착하면 북경으로 갈 생각입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진용이 순순히 대답하자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던 초정명의 딸이 물었다.
“저는 초연향이라고 해요. 무공이 대단하신 것 같던데, 어느 문파의 제자 분이신가요?”
‘초연향? 이름도 예쁘군.’
“문파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그냥 할아버지에게서 배웠을 뿐이오.”
초연향은 물끄러미 진용을 바라보았다.
잘 해야 스무 살?
옷을 갈아입자 사람이 달라졌다. 거지 중에 상거지 같던 사람이 옷 하나 갈아입고 머리 좀 정리했다고 풍기는 분위기가 저렇게 달라지다니…….
그녀의 눈에 비친 진용은 충격을 던져 주고도 남았다.
약간 마른 체격이긴 하지만, 선이 굵어 인상적인 얼굴이다. 특히나 두 눈은 그 깊이를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다, 자신의 신안으로도.
그리고… 자꾸만 자신의 감각을 자극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무엇.
‘대체 이 공자는 누굴까? 이런 고수가 일개 선원일 리는 없는데……?’
진용을 세세히 살펴보던 초연향이 멈칫했다. 그녀는 뒤늦게 어떤 사실을 깨닫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