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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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54화
54화
안창과 추종명이 힘도 못 쓰고 무너졌다. 어쩌면 장대중조차 고진용을 이기지 못할 거라고 나름대로 예측은 했었다. 그리고 결과도 예측대로 장대중이 패했다.
문제는 너무 빨리 승부가 났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무식한 방법에 의해, 다문 입이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진용은 그 자리에 서서,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장대중을 가만히 응시했다.
검조차 놓아버린 그는 이미 조금 전의 기세등등하던 장대중이 아니었다. 그의 초점이 흐려진 눈은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이 단순해 보이는 몇 초식의 권각에 무너진 것이 어이가 없는 듯했다.
본신의 힘을 되찾기 위해선 족히 한 달간은 근신하며 치료를 해야 할 부상을 입었는데도, 지금 당장은 정신적인 충격이 더 큰 것 같았다.
그런 장대중을 향해 진용이 입을 열었다.
“장 천호께선 검을 너무 쉽게 놓으시는군요. 내가 아는 누구는 검을 자신의 인생이라며 죽어도 놓지 않으려 하던데 말입니다.”
부르르, 몸을 떤 장대중이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구경하던 위사장들 사이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호로서의 실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그였다. 남진무사 양호경.
“무공만이 능사가 아님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대는 다른 부족한 것을 무공만으로 메울 수 있을 정도야. 천호장이 되었음을 진심을 축하하네.”
진용은 양호경을 담담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천천히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진무사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 그나마 좋은 방향으로 끝나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임무가 있어서…….”
진용이 자신의 말만 하고 돌아서자 양호경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는 결코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 진용에게 뭐라 해봐야 자신의 위신만 깎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부디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길 바라겠네.”
돌아서서 걸어가는 진용의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맺혔다.
‘물론 그래야겠죠. 당신이 생각하는 임무와는 조금 다른 임무지만 말입니다.’
진용이 움직이자 정광과 두충도 돌아서 진용의 뒤를 따랐다.
육두강도 양호경에게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올리고는 신형을 돌렸다. 그러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 초야, 오 초야? 너무 빨리 끝나는 바람에 헷갈리네.”
5
공손각은 아무런 말도 없이 하나의 서찰을 내밀었다.
“뭡니까?”
“한 사람에게 보내는 서신, 그리고 약간의 돈이 들어 있네.”
돈이라는 말에 정광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러자 공손각이 말했다.
“돈은 절대 저놈에게 맡기지 말고 반드시 자네가 관리하도록 하게.”
찔끔한 정광이 툴툴거렸다.
“누가 뭐라 했다고 그러십니까?”
“사숙도 못 알아보는 놈에게 돈 맡겼다가 잃어버릴까 봐 그런다, 이놈아!”
“크크큭…….”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정광이었다. 그렇다고 두충이 옆에서 키득거리는 것까지 참을 정광 또한 아니었다.
“이놈이 어디서!”
주먹이 허공에 들렸다. 순간적으로 두충의 목이 자라처럼 쏙 들어갔다. 다행히 공손각의 앞인지라 정광은 손을 내려치지는 않았다.
“한 번만 더 웃어봐라, 요놈.”
진용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공손각에게 물었다.
“누굽니까, 이 서신을 받을 분이?”
“내 오랜 친구네. 만나지 않은 지 이십 년 가까이 되었네만, 아직 멀쩡하게 살아 있다더군. 좀 괴팍하긴 하지만 그만큼 강호사에 밝은 사람도 몇 없을 친구지. 그를 찾아가 서신을 전하면 그가 자네를 도와줄 거네.”
언뜻 공손각의 눈빛이 아련한 추억을 더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그 친구라는 사람과 가까운 사이였던 듯했다.
“그의 이름은 선우신광이라 하네. 강호의 사람들은 그 친구를 독행귀자라 부른다더군. 일 년 전만 해도 무당산 언저리에 살고 있다 들었네. 아마 내 생각대로라면 지금도 거기 있을 거야.”
진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독행귀자 선우신광이요?”
“아나?”
“들어는 봤습니다.”
정광과 두충은 눈을 디룩디룩 굴리며 공손각과 진용을 번갈아 봤다. 그들의 눈이 묻고 있었다.
그게 누군데?
진용이 고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조금 주위가 시끄러워지기는 하겠지만, 그분이 도와준다면 강호를 행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한데 그분이 무조건 도와줄까요? 만난 지 이십 년이나 되었다면서요.”
“도와줄 거네. 그로선 그럴 수밖에 없거든. 내 이름을 걸지. 클클클…….”
“……?”
* * *
공손각의 집무실을 나온 진용은 묵묵히 걸으며 공손각이 들려준 말을 되새겨봤다.
“삼왕이 사라진 지 보름이 지났을 때, 동창의 움직임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된 것은 우연이었네. 처음에는 그들이 그저 양 태감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 생각했지. 우리는 그 일을 동창 스스로 처리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냥 놔두었고 말이야. 그런데 문득 이상한 점이 자꾸 보이더구만. 움직임 자체가 너무 지나치게 은밀한 데다 양 태감을 잡으려 하는 것치고는 너무 많은 수가 움직였지.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동창의 고수들 중 몇 명이 사라진 거야. 자네도 어렴풋이 느꼈겠지만 동창에는 우리 금의위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많은 고수들이 있다네.”
맞는 말이었다. 진용이 본 동창은 금의위와 비교하면 복마전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우리도 모르게 비밀리에 기른 고수들도 있지. 사라진 자들이 바로 그들인 것 같았네. 처음에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지. 그런데 누가 그러더군. 동창의 누구누구가 언제부턴가 안 보이는데, 동창의 사람들조차 그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대부분 환관들 중에서도 고수로 유명한 사람들이라는 거네. 해서 나름대로 조사를 해봤지, 그냥 동창의 움직임을 정확히 알아볼까 해서. 그러다 알아낸 사실은 우리에게 상당한 충격을 줬다네. 그게 뭔지 아나?”
그 말을 할 때는 공손각의 표정이 침중히 굳어졌었다, 철혈도독 공손각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창의 비밀 고수들이 강호의 일에 참견하고 있다는 거였어. 그 이유가 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리가 한 명의 천호를 희생하면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동창은 뭔가 밝혀지기 두려운 일을 영원히 묻어버리기 위해서 고수들을 강호에 내보낸 것 같았네. 문제는 그 일이 차라리 그대로 묻혀 버리면 다행인데, 그러지 못하고 밖으로 드러나면 황실이 혼란을 겪을지 모른다는 거네. 그게 문제지……. 아참! 처음에 동창의 고수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 게 누군지 아나? 바로 두충이라네.”
그가 한 긴 이야기 중 진용의 관심을 끈 대목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 거기에 자네 아버지와 관련된 뭔가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네.”
그럴지도 모른다. 삼왕이 연루되어 있고, 동창이 쫓고 있는 거라면 그럴 가능성은 충분했다. 진용은 그거면 족했다.
“좋아! 가능성만 있다면 일단 뭐든 다 조사를 하고 본다. 판단은 그 다음이야.”
* * *
황궁을 나선 것은 유시 초였다.
가져온 것이 없으니 챙길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두 시진이나 걸린 것은 순전히 두충 때문이었다.
두충은 뭐가 그리도 챙길 것이 많은지 한 보따리나 들고 나왔다. 그나마 금의위라는 신분과 평소 수문위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두충이었기에 별다른 검사를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게 다 뭐냐?”
황궁을 벗어나 고가장으로 가는 도중 정광이 물었다. 두충은 힐끔 정광을 돌아보고 시무룩하니 말했다.
“신경 끄슈, 도장님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물건들이니까.”
“혹시 책도 있냐?”
움찔, 두충이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피웠다.
“있지? 그렇지?”
“있기야 있지만, 도장님이 볼 만한 책은 아니라니까요.”
그는 알고 있었다. 정광이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하는지. 그렇기에 절대 자신의 책을 보여주고 싶지가 않았다. 보여주면 분명 빼앗아갈 테니까.
두충이 하도 강력하게 아니라고 하자 정광은 의심을 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분명 뭔가가 있어, 저놈. 흐흐흐, 이놈, 어디 나중에 보자.’
앞서 걷던 진용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과연 저 두 사람을 데리고 험난한 강호를 어떻게 돌아다녀야 할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냥 확, 혼자 가버려?’
오죽하면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아직 정광과 풀어야 할 숙제도 있고, 연락을 위해선 두충도 필요한데.
“후, 두 위사, 그 보따리 계속 가지고 다닐 겁니까?”
두충이 멀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당연하지요.”
당연하단다. 자기 몸집의 반쯤 될 것 같은 보따리를 계속 들고 다니는 일이.
“대체 뭐가 든 겁니까?”
“그냥, 이것저것…… 옷도 있고 제가 필요로 하는 물건도 있습지요. 어쨌든 이것을 놓고 다닐 수는 없습니다.”
“전부 다요?”
“뭐, 다는 아니지만…….”
“그럼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다니세요. 먼 길을 가야 할 텐데 그걸 어떻게 들고 다니려고 그럽니까?”
두충이 살짝 일그러진 얼굴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봇물이 터진 듯 참고 참았던 말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천호장님이나 정광 도장님이야 무공이 강하니 강호에 나가도 걱정이 없겠지만, 어디 저야 그럽니까? 무공은 잘해야 삼류 수준을 겨우 벗어날 정도고, 그렇다고 신분이 높은 것도 아닌데 어떡합니까? 강호에 나가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가련한 청춘, 가진 재주라도 총동원해야 목숨이라도 붙어서 돌아오죠!”
그게 보따리하고 무슨 상관인데?
정광은 별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 다 들어본다는 눈빛으로 두충을 꼬나보았다. 그러나 진용은 무엇 때문인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마저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여태 제가 두 위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군요. 거참…….”
한 달 동안 함께 황궁 생활을 했으면서도 깊은 부분은 아는 게 없다.
그저 두충이 말 많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길 잘해서 보고 들은 게 많다는 것. 황궁의 마당발. 그 정도뿐이다.
우스운 일이 아닌가? 아무리 관심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고 해도, 단 하나 있는 수하에 대해 그토록 무관심했다니.
“내 잘못이 크군요. 미안합니다, 두 위사.”
“아, 아니… 뭐, 그렇게까지는……. 굳이 천호장님께서…….”
이상하게 흐르는 상황에 두충이 땀을 삐질 흘렸다.
“앞으로는 신경을 좀 더 쓰도록 하지요. 그래도 앞으로 험한 길을 함께 가야 할 사이 아닙니까?”
“저도 좀 더 신경을…….”
그때 정광이 나서더니 안절부절못하는 두충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미안하다. 뭐라고 할 줄만 알았지 거기까지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어. 그래도 어쩌겠냐? 네가 이해해야지. 그동안 워낙 많은 일이 일어났잖냐.”
“물론 이해…….”
정광마저 나직한 목소리로 위로하며 어깨를 토닥거리자 두충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앞으로는 함부로 때리지 않으마. 내가 뭐 네가 미워서 때렸겠냐?”
“도장님…….”
“그래, 그래. 이해해 준다니 고맙다.”
그러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 정광.
“그럼, 이제 그 보따리 속에 뭐가 들었는지 말해봐, 응? 내가 뭐 말한다고 해서 뺏어가겠냐? 안 그래? 뭐.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