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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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51화
51화
“왕 태감의 뜻대로 그 일이 조용히 마무리된다면, 이익은 없을 것이나 해가 되지도 않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조용히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 경우, 분명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며 황궁을 소란케 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말이 소란이지, 황궁이 뒤흔들릴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 공손각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공손각은 황태자에게 대놓고 그리 말할 수는 없었다.
“흠, 하면 도독은 어찌하려 하시오?”
곧바로 이어진 황태자의 질문에 공손각은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며 황태자와 눈을 마주쳤다.
“믿을 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그 일을 밝히는 데 투입할 생각입니다. 해서 황태자 전하께 한 가지 청을 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청? 하하하! 공손 도독께서 나에게 청을 할 때가 있다니 별일이구려. 어디 말씀해 보시구려.”
황태자가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무척 밝은 웃음.
참으로 오랜만이다. 황태자의 입에서 그러한 웃음이 터져 나온 것도. 아마 몇 달 만에 처음일 것이다.
공손각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조금이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에게 한시적으로나마 수천호령사의 권한을 주고자 하옵니다. 하오나 일의 특성상 알려져서는 안 될 일. 황태자 전하께서 폐하의 윤허를 받아주셨으면 하옵니다.”
황태자의 웃음기 띤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수천호령사? 흠, 하긴 금의위의 힘만으로는 그들을 어찌할 수는 없을 터. 좋소, 윤허는 내가 받아내도록 하겠소.”
“감읍하옵니다, 전하.”
“하하하, 나라를 위해 일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그 정도도 못해줘서는 안 되지 않겠소? 한데 그가 누구요?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구려. 도독이 그리도 신임하는 사람이라니 말이오.”
그 말에 공손각은 문득 진용의 모습이 떠오르자 고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4
“어디를 가시려는 겁니까?”
“황태자 전하를 뵈러 가는 길이네.”
“황태자 전하를 만나러 가신다고요?”
“그렇다네. 전하께서 자네를 보고자 하시네.”
늦은 아침, 입궁하자마자 공손각이 함께 갈 곳이 있다고 할 때만 해도 별다른 생각 없이 따라나섰다.
그런데 황태자를 만나러 간다니. 그것도 황태자가 자신을 불렀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아무리 진용의 간덩이가 커도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이 왜 저를 만나보시겠다는 겁니까?”
“전에 내가 일을 하나 맡기고 싶다는 말을 했었지?”
“그러셨지요.”
“그 일과 관련된 일로 만나려는 것이야.”
공손각을 따라 태자전으로 들어서자 오가던 궁녀들이 허리를 숙이며 힐끔거렸다. 칠팔 명에 달하는 그녀들의 시선은 일제히 진용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헐헐, 꽃 같은 처자들이 이 늙은이는 쳐다보지도 않는구만.”
공손각의 장난기 섞인 말에 얼굴이 살짝 붉어진 진용은 피식, 실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진용이 웃는 모습을 보고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다.
“어머! 날 보고 웃었어. 호호호호…….”
“무슨 소리야? 저분 공자님은 나를 보고 웃었는데.”
“너무 멋져! 저 눈빛 좀 봐. 너무 깊어서 퐁당 빠지고 싶어…….”
호호호, 깔깔깔, 재잘재잘…….
궁녀들의 호들갑에 진용은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어떤 궁녀는 내놓고 진용을 뚫어지게 바라다보기도 했다. 어떤 궁녀는 살짝 눈웃음을 치기도 하고, 어떤 궁녀는 진용을 바라보면서 엉덩이를 유난히 크게 흔들며 걸었다.
차라리 생사대적을 만나 싸우라면 훨씬 편할 것 같은 기분이다.
“도독, 아직 멀었습니까?”
공손각은 처음으로 보는 진용의 당황한 모습에 참지 못하고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이 사람, 이제 보니 영 쑥맥이구만!”
‘제 나이 이제 열아홉입니다, 도독 영감!’
‘확실히 여자들 엉덩이는 마족보다 이곳 여자들이…….’
‘시끄러!’
공손각을 재촉해 태자전의 내실로 들어선 진용은 두어 걸음 옮기는 사이 태자전의 모든 것을 한눈에 훑어보았다.
화려할 거라 예상했던 태자전 내의 모습은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았다. 적당한 화려함, 적당히 고풍스런 장식, 그리고 그 가운데서 편안한 자세로 차를 들고 있는 한 사람.
‘저자가 황태자인가 보군.’
황태자는 차를 마시던 중이었는지 자신들을 보고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고 있었다.
공손각이 그를 보고 허리를 숙였다.
“황태자 전하, 전에 소신이 말한 그를 데려왔나이다.”
공손각의 눈짓에 진용도 무릎을 꿇어 예를 표했다.
“금의위 백호, 고진용이 황태자 전하를 알현하옵니다.”
황태자는 흑백이 뚜렷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어리둥절한 눈을 들어 공손각을 향했다. 그러자 공손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부로 천호장이 될 사람입니다, 전하.”
공손각의 말에 진용이 먼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 공손각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공손각은 진용에겐 눈도 돌리지 않고 황태자를 향해 말했다.
“무공이 매우 뛰어나며, 머리는 더욱 뛰어난 사람이옵니다. 동창의 왕 태감조차 인정했을 정도이니 그 일에 이보다 더한 적격자는 없다 사료되옵니다.”
황태자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잘해야 스물이나 되었을까 싶다. 게다가 서생이 아닌가. 저런 자가 무공이 뛰어난 자라니.
“반발은 없겠소? 아무래도 천호장으로 임명한다면 위장들의 반발이 거셀 텐데.”
공손각이 빙그레 웃었다.
“전하께서 임명하라 하셨다고 하면 반발은 그리 염려할 것이 아니라 사료되옵니다. 누가 감히 황태자 전하의 명에 대항하겠사옵니까? 또한 그리한다면 고 천호의 행보에 대한 의심도 덜어질 것이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적당한 추켜세움에 황태자도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어쨌거나 여러모로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그대가 인정했으니 그렇다 쳐도,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소?”
“오히려 그러하기에 더 나을 수도 있사옵니다.”
“더 나을 수도 있다?”
공손각이 또다시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왕효조차 고 천호의 나이가 어린 걸 보고 이용하려다 되레 당하지 않았사옵니까?”
“그러니까, 도독의 말은 약점이 장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이 말이오?”
“충분히 가능한 일이옵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단점의 일부는 지위가 메워줄 것이옵니다. 그리고 경험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 또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소신이 아는 자 중 강호에서 수십 년 굴러먹은 자가 하나 있사온데, 그를 이 일에 끌어들일 생각이옵니다.”
“호! 그래요? 하나 내 듣기로 강호의 사람들은 황궁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하던데……?”
“그는 절대 소신의 말을 거절할 수 없사옵니다. 너무 심려 마옵소서.”
황태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제야 만족의 웃음을 지었다.
그가 아는 공손각은 치밀하고도 무서운 사람이다.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 공손각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위세가 한껏 커졌을 적의 동창조차도 결코 건드리지 않으려 했던 사람.
황태자 기(基)는 그런 공손각이 자신있게 추천하는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더욱 깊어졌다.
“고개를 들라.”
황태자의 명에 고개를 든 진용,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티없이 맑아서 하얀 눈 위에 한 점 먹물이 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황태자의 눈, 너무도 깊어서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는 진용의 눈.
눈이 마주치자 황태자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대의 나이가 어찌 되는가?”
뜬금없는 황태자의 물음에 진용은 약간 장난기 섞인 대답을 했다.
“한 달만 있으면 스물이 되옵니다.”
당신과 별 차이가 없다는 뜻으로 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뭐가 그리도 좋은지 황태자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럼 나보다 어리구나. 나는 한 달만 있으면 스물하나거든.”
옆에서 바라보던 공손각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달이라는 기간을 이용해서 서로 나이를 올리고 있는 두 사람이다.
진용이 쉽게 숙일 거라고는 애초에 생각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겁도 없이 황태자와 나이 다툼이라니…….
거기다 황태자는 또 어떠한가. 화를 내기는커녕, 십여 년 동안 만났음에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해맑은 웃음이 입가에 매달려 있다. 마치 친한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대체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든 것일까? 공손각으로선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수십 년 동안 사선만 넘나든 그가, 이제 와서 어찌 젊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때 진용이 질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소신의 생일은 정월입지요. 전하의 생일은 십일월로 알고 있사옵니다만…….”
그러자 황태자가 즉시 대답했다.
“누가 그러더구나. 하루 햇볕이 어디냐고 말이다.”
한마디로 ‘아무리 그래 봐야 너는 내 밑이야’ 이 말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황태자의 말투에 공손각은 아연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는 이제 이해하려 머리를 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 봐야 얼마 남지 않은 검은 머리마저 다 백발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황태자의 그 말에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리는 이도 있었다. 당연히 세르탄이었다.
‘켈켈켈! 황태자가 뭘 아는군. 그럼, 하루 차이도 엄연한 차이지. 그걸 모르는 인간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동안 진용에게 당한 것이 억울하다는 투다. 당연히 가만히 있을 진용이 아니었다. 그 인간은 분명 자신일 테니까.
‘세르탄, 네가 살던 곳은 백 년이 일 년인 세상이니까, 너는 그래 봐야 열한 살 꼬맹이야. 조용해!’
‘이런 엉터리…….’
세르탄이 머릿속에서 난리를 치는 가운데 진용은 황태자를 향해 씩 웃었다.
“그런데 나이는 왜 물으신 것이옵니까, 전하? 형님 아우 할 것도 아니실 텐데…….”
형님 아우라는 말에 황태자가 풀썩 웃으며 묘한 눈빛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부러워서지.”
부럽다고?
“다른 누구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거야. 더구나 그대와 같은 나이에 공손 도독과 같은 사람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천하에 몇이나 될 것 같나?”
정말로 부럽다는 눈빛이다. 진용은 그런 황태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지었다. 별소리 다 듣는다는 표정으로.
순간 황태자의 얼굴이 슬며시 굳어졌다.
“내 말이 그리도 웃기는가?”
일순간에 상황이 이상하게 흐르는 듯하자 공손각이 재빨리 나섰다.
“고 천호, 자네…….”
그러나 공손각이 미처 뭐라 할 사이도 없이 진용이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는 욕심도 많으시옵니다. 도독께서 전하를 따르시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사옵니까? 소신이야 떠나면 그걸로 그만이지만, 전하께서는 계속 도독을 곁에 두시게 될 터인데, 그래도 제가 부러워 보이시옵니까?”
황태자의 굳어졌던 표정이 잘게 흔들렸다.
“내가 욕심이 많다고? 정말 그렇게 보이는가?”
“소신은 그저 곁에 있는 것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서 멀리 있는 신기루에 욕심을 부리시는 것은 결코 현명한 군왕의 덕이 아니라 생각할 뿐이지요.”
신랄하면서도 막힘이 없는 진용의 어조.
감히 황태자의 면전에서 저토록 거침없이 말을 내뱉다니.
공손각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여차하면 자신이 나서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그의 걱정은 기우였던 듯, 황태자의 격했던 감정은 서서히 평온한 바다처럼 잔잔해지고 있었다.
“그런가? 그렇겠지? 하하하하! 시원하군, 시원해! 오랜만에 제대로 혼나보는 것 같군.”
결국 황태자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자 공손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그는 질린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왕효에 이어 이번에는 황태자까지.
‘도대체 저 얼굴 어디에 저런 독설이 숨어 있는 것인지 원…….’
하지만 진용은 여전히 편안한 표정으로 황태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옵니다만, 나중에 저더러 황궁에 남으라는 말은 하지 마시옵소서.”
황태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어떻게 알았나? 그러잖아도 일을 마치고 나면 내 곁에 있어 달라 하려고 했는데?”
“그래서 미리 말씀드린 것이옵니다. 저는 황궁에 갇혀서 살 팔자가 아니온지라…….”
“파, 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