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50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50화
50화
진용이 실력만 없다면, 금의위로서 공손각의 후원을 받고 있는 자만 아니라면, 사지를 찢어 죽여서 돼지 먹이로 주고 싶은 생각이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거릴 정도다.
왕효는 속마음을 누르고 태연히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대단하군, 대단해. 자네는 나로 하여금 자네가 스물도 안 된 사람이란 것을 가끔 잊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만.”
진용이 무심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에겐 그런 재주가 없습니다. 다만, 어린 나이에 너무 어렵게 살아오다 보니 그리 보이는 것뿐이지요.”
“으음…….”
끝내 공손각과 육두강이 인정한 능구렁이, 왕효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조산명은 물론이고, 있는 듯 없는 듯 말없이 진용의 옆에 앉아 있던 정광마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도 잊고 혀를 내둘렀다.
그들 눈에는 끝까지 한마디도 지지 않는 진용이 괴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진용 덕분에 황제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다는 왕효의 항복 선언(?)을 듣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좋아, 좋아. 서로 다 까놓고 이야기하자고. 그럼 되겠나?”
포기했다는 듯 왕효에게서 저속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처음으로 들어보는 왕효의 말투에 조산명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든 말든 왕효는 진용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왕효의 붉은 입술이 떨어졌다.
“삼왕은 개봉의 왕부에 없다.”
“도독께서도 그리 말씀하시더군요.”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그러니 다른 것을 내놔라.
왕효가 진용의 말뜻을 모를 리 없다.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강호로 나간 것 같아.”
강호? 황실의 삼왕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아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가 건곤흡정진혼결을 익혔다면.
“금판과 석판에는 오랜 옛날부터 전해지던 어떤 비결이 적혀 있었다 들었습니다.”
“흠. 비결이라…….”
마침내 진용의 입에서 본격적인 말이 나오자 왕효는 기분 좋은 탄성을 흘리며 하나를 더 내놓았다.
“강호의 어떤 문파가 삼왕과 연결이 된 것 같다고 하더니,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겠군.”
“강호의 문파라니요? 대체 어떤 문파가……?”
“천혈교라 하더군. 강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조차 아직 그들의 확실한 정체를 밝히지 못했다네.”
진용의 눈빛이 깊숙이 가라앉았다.
강호의 문파 천혈교, 삼왕, 고대 문자, 건곤흡정진혼결.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강호의 문파가 금판과 석판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 욕심 많은 삼왕에게 먼저 접근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삼왕이 힘을 얻자 자신의 욕망을 채울 목적으로 강호의 문파를 끌어들였을 수도 있고.
“그 비결이 무공과 관련이 있다 하더니 사실인가 봅니다.”
무공이란 말에 왕효의 눈 저 안에서 붉은빛이 번뜩였다. 그것은 어떤 기대감으로 인한 흥분의 광채였다.
“어떤 무공이기에 삼왕이 그리도 집요하게 고 학사를 닦달했단 말인가?”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그들이 십 년이 넘도록 아버지를 괴롭혔는지 말입니다.”
진용이 담담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그런…….”
한 발짝만 더 가면 자신이 가려던 목적지인데, 갑자기 절벽이 튀어나와 앞을 가로막힌 기분이 드는 왕효였다.
그는 실망감과 의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진용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단 한 톨의 거짓만 보여도 용서치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담고서.
그러나 진용은 왕효의 송곳 같은 눈빛에도 터럭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 세르탄이 아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독한 시르,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마법을 쓰다니…….’
그랬다. 진용은 능구렁이 왕효를 속이기 위해서 마법을 썼다.
감정을 제어하는 ‘휠 홀드’라는 마법을 스스로에게 걸어 만에 하나 보일지 모를 자신의 감정을 지워버렸다. 그러니 왕효가 보는 진용은 담담함, 그 자체였을 수밖에.
‘어쩔 수 없잖아. 귀찮은 일은 피해야지.’
‘그게 아니라 아까워서겠지, 뭐.’
‘그것도 그렇고. 내가 미쳤어? 저 능구렁이에게 다 털어놓게?’
‘하긴 시르가 누군데…….’
‘어째 뜻이 이상한데?’
‘내가 뭘?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지.’
진용은 더 이상 세르탄을 닦달하지 않았다. 세르탄의 말투가 슬쩍 비꼬는 말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만큼 왕효에게서 얻은 정보는 단순한 듯하면서도 중요한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그 정보 때문에 결정될 정도로.
삼왕이 강호의 문파와 관계가 있고, 왕부를 빠져나간 삼왕이 강호 어딘가에 있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어쩌면 아버지도 강호를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러고 보니 모든 상황이 강호를 향해 흐르고 있다.
잘하면 자신이 해야 할 또 다른 일이 조금 앞당겨질 것 같다.
긴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살을 에는 듯한 긴장감에도 진용은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왕효도 진용에게서 눈을 거두고 다탁에 놓인 찻잔을 들어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런 왕효의 두 눈은 먹이를 앞둔 구렁이의 눈빛처럼 무채색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일각이 지났다.
칼 들고 싸우는 것보다 더한 신경전을 벌이던 두 사람이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광과 조산명, 두 사람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특히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에 정광은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차라리 한바탕 싸우는 게 낫지, 이거 원.’
다시 일 다경이 지났을 즈음, 결국 정광이 참지 못하고 조산명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동창은 손님에게 밥도 안 주나?”
조산명은 정광이 먼저 입을 열어 침묵을 해소시키자, 처음으로 그가 고맙게 여겨졌다.
“왜 안 주겠소? 제독, 식사를 하시고 말씀을 나누시지요.”
그제야 왕효는 처음의 눈빛으로 돌아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은근한 압박을 가하며.
“그래, 동창이 야박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 고 백호, 식사를 하고 나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세. 혹시 아나? 그러다 보면 깜박 잊었던 이야기가 생각날지 말이야.”
진용도 생각을 접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속셈을 안다는 듯 조용히 웃으며.
“따르도록 하지요. 마침 저도 두어 가지 더 여쭤볼 것이 있었는데, 그 말씀을 들으니 이제야 생각나는군요.”
왕효는 물론이고 조산명과 정광조차 그런 진용을 질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2
식사를 마치고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지만 왕효는 진용으로부터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진용의 물음에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동창의 정보력은 정말 대단하군요. 아무리 금의위가 황궁의 일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이 정도까지 차이가 날 줄이야…….”
“아무래도 세상 돌아가는 일은 우리 동창이 더 많이 안다고 할 수 있겠지.”
“하면…… 그 일도 아실지 모르겠군요.”
넌지시 던지는 말에 왕효는 차마 외면을 하지 못하고 찜찜한 말투로 되물었다.
“뭘 말인가?”
“황궁의 고수 몇몇이 강호의 일에 개입하고 있다던데요. 혹시 그들이 누군지 아시는지요?”
순간 왕효의 눈빛이 잘게 떨리다 재빨리 원래대로 돌아왔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 공손 도독인가?”
“비밀리에 그 일을 조사하던 금의위의 천호장 한 분이 실종되셨다고 합니다. 해서 혹시나 아실까 하고 물어본 것뿐입니다. 누가 뭐래도 황궁 제일의 정보력을 지닌 곳 아닙니까? 황궁의 고수가 강호의 일에 개입했다면 동창에서 잡아들여야 할 일이고 말입니다.”
마치, 동창이 그곳도 모르면 직무유기를 한 것 아니냐? 라고 다그치는 듯했다.
물론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왕효는 순순히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그 일은…… 우리도 조사하고 있네만,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네. 나중에 조사를 마치면 알게 되겠지.”
“하긴 아무리 동창의 정보력이 뛰어나다 해도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겠지요.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종상현이란 분의 죽음도 밝혀내지 못했으니…….”
뜬금없는 말에 왕효가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자네 말이 맞아.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법이지. 한데 이상하군. 종 학사의 죽음은 이미 판명이 난 사건으로 알고 있네만…….”
“그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서요. 혹시라도 종상현이란 분의 죽음에 대해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알려주시겠습니까?”
“자네 말대로 그런 일이 있다면야 당연히 우리가 할 일이니 그리하지.”
뒤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이 겉도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럼에도 왕효는 진용과 마치 친가족처럼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속으로야 시궁창에 빠진 기분일지라도.
그리고 신시 초가 되었을 즈음, 진용과 정광은 구석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며 신세타령을 하고 있던 두충을 끌고 동창을 벗어났다.
* * *
진용이 떠나간 후 동창은 겨울 찬바람조차 얼려 버릴 정도로 극한의 냉기가 감돌았다.
특히 제독태감 왕효의 집무실은 얼음 구덩이, 그 자체였다.
태사의에 비스듬히 기댄 왕효의 앞에는 조산명을 비롯해 당두들 중 환관으로만 이루어진 열 명의 당두가 뻣뻣이 굳은 몸으로 엎드려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지옥이 자기 눈앞에 펼쳐지기라도 한 것처럼 딱딱하니 굳은 상태였다.
그러기를 일각여, 왕효의 살얼음 깨지는 목소리가 그들의 등에 떨어졌다.
“그가 어떻게 알았을 거라 생각하느냐?”
왕효의 질문에 조산명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분명 공손각이 말해줬을 것입니다.”
“그랬겠지. 그럼 공손각은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고가 꼬마를 시켜서 그것을 나에게 물은 의도가 뭘까?”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리던 왕효가 조산명을 바라보았다.
“모중암에게 연락해서 모든 것을 지우고 대기하라고 해.”
“존명!”
“그리고 역추적을 해서 입을 연 놈을 찾아내.”
“존명!”
“명심하도록. 삐끗하면 모두가 죽는다. 겨우 잡은 기회를 헛되이 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거야.”
“각골명심하겠사옵니다, 제독. 하온데…… 그를 그냥 놔둘 것이온지……?”
왕효의 눈에서 끓는 물조차 얼려 버릴 한기가 쏟아져 나왔다.
“아직은……. 그리고 그리 간단한 놈이 아니야. 나이는 어리지만 여우 몇 마리 찜 쪄 먹은 것 같은 놈이다, 그놈은. 내 따로 생각이 있으니 우선은 그냥 놔둬.”
3
하얀 손에 들린 붓이 먹물을 한껏 머금고 춤을 춘다.
짓누르고, 삐치고, 휘돌다가 날카롭게 스치듯 날아간다.
그럴 때마다 한 그루 강직한 기상을 지닌 대나무가 묵빛 광채를 뽐내며 곧게 자라난다.
새하얀 한지 위에는 묵빛 대나무, 언제부턴지 밖에서는 하얀 눈송이가 탐스럽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유난히 늦은 첫눈이다.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을 점점이 수놓으며 떨어지는 눈송이가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
하얀 손의 주인은 하얀 한지 위에 한 그루의 대나무를 다 키워놓고서야 손을 멈췄다.
이제 갓 스물이 되었을까. 하얀 손의 주인은 티없이 깨끗한 얼굴에 볼 살이 하늘에서 내리고 있는 눈송이만큼이나 탐스러운 젊은이였다.
그는 자신이 그린 대나무가 마음에 드는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옆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 끝에는 몸집은 그리 크지 않으면서도 화선지 위에 그려진 대나무만큼이나 강직한 눈빛을 지닌 노인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공손각이었다.
“예상대로 동창이 분명한 것 같사옵니다.”
“도독, 그들의 목적이 무어라 생각하시오?”
“소신이 나름대로 판단한 바에 의하면, 그들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사옵니다. 한데 그 두려움의 근원이 강호에 있기에, 그들은 강호의 정세를 살핀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보내 그 두려움의 근원을 제거하려 하는 것 같사옵니다, 황태자 전하.”
황태자 전하!
그렇다. 하얀 손의 주인은 당금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의 장자, 황태자였다.
그렇기에 무소불위라는 금의위의 도독 공손각이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붓을 내려놓은 황태자가 다시 물었다.
“그 일이 황궁에 어느 정도나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