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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서생 49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2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법서생 49화

 

49화

 

 

 

 

 

 

 

조산명으로선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우위양의 표정만으로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둘 사이에 있었음을 알고 급히 전음을 보냈다.

 

<위양, 일단 물러서라.>

 

그때 태연히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가는 진용의 입가에 싸늘한 웃음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좀 헷갈릴걸? 과대평가도 좋지 않지만, 과소평가도 그리 좋은 것이 아니지. 상대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수록 상대에게 많은 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법이라더군. 어디 한번 해보자고.’

 

하지만 조산명과 우위양은 각기 생각에 잠기는 바람에 그 웃음을 볼 수가 없었다.

 

 

 

 

 

 

 

8장. 제독태감 왕효와 황태자

 

 

 

 

 

1

 

 

 

 

 

동창의 제독태감 왕효의 나이는 오십팔 세다. 그러나 진용이 본 그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수염이 없는 데다 하얀 얼굴 때문인지 잘 봐준다 해도 마흔이 갓 넘었을까 싶었다.

 

그나마 눈처럼 하얀 백발만이 그의 나이가 보이는 것보다 더 들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게 해줄 뿐.

 

‘저 사람이 제독태감 왕효군. 어쩌면 모든 것을 쥐고 있을 지도 모르는 자라 했던가?’

 

대기가 침묵에 짓눌려 주위의 화려함조차 보이지 않았다.

 

진용이 입을 다문 채 제독태감만을 바라보고 있자, 조산명이 나름 무게가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일각 전보다는 훨씬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인사드리게. 제독이시네.”

 

그제야 진용의 고개가 숙여졌다.

 

“금의위 구소 소장, 고진용입니다.”

 

태사의에 앉아 있던 왕효가 감고 있던 눈을 반쯤 떴다.

 

방 안에는 그와 조산명, 그리고 진용과 정광 등 네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눈을 뜨자 주위의 모든 기운이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진용은 새삼 왕효에 대한 생각을 고쳐야만 했다.

 

‘상대하기가 쉽지 않겠는데? 조산명이 동창제일고수라고? 웃기는 소리군. 저 백 년도 더 묵어 보이는 능구렁이를 알고나 하는 소린지…….’

 

그때 왕효가 나이답지 않게 힘있는 목소리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비록 음색이 가늘어서 여인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는 했지만.

 

“흠, 생각보다 어려 보이는군. 나는 왕효라 하네. 황상 폐하의 은덕으로 동창을 맡고 있는 사람이지.”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동창과는 이상하니 인연이 있는 것 같군요. 이렇듯 제독까지 뵙게 되다니 말입니다.”

 

“클클클, 양 태감과의 일을 말하는 건가?”

 

“그 당시 제독께서는 양 태감과 함께 첩형 중 한 분이셨다고 들었습니다.”

 

“분명 그랬지. 해서 그대를 보고자 한 것이야.”

 

왕효의 눈이 웃고 있다. 진용은 그 모습이 의아했다. 

 

왕효의 웃음이 차라리 비웃음이라면 상대하기가 편할 텐데, 그게 아니다. 진정으로 기뻐하고 있는 듯하다.

 

왜 왕효가 저런 웃음을 짓고 있는 걸까? 무엇이 저 노회한 동창의 제독태감을 기쁘게 하는 것일까?

 

진용은 더 이상 말을 돌려봐야 답을 얻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진용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저에게 물어보고 싶은 거라도 있으십니까? 그래서 부르신 겁니까?”

 

“맞네. 자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지. 어떤가? 그게 무엇이든 답해줄 수 있나?”

 

진한 기대감으로 물들어 있는 왕효의 눈빛. 그걸 보는 순간 진용은 묘한 기분이 전신을 엄습했다.

 

“일단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흠……. 그래? 좋아,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 했으니 내가 먼저 물어보겠네.”

 

왕효는 시원스럽게 입을 열며 몸을 바로 했다. 그리고 마치 옛날이야기를 하듯 천천히 입을 떼었다.

 

“자네 아버지와 자네가 잡혀 들어왔을 당시, 나는 황궁 밖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듣지 못한 상태였지. 해서 자네 아버지인 고 학사가 잡혀 들어왔을 때도 그러려니 했었다네. 그저 학사 하나가 황궁을 모독해서 잡혀 들어왔나 보다, 하고 말이야. 그러고는 무려 십 년간이나 그 일을 잊었다네, 멍청하게도. 그런데…….”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진용의 표정도 굳어졌다. 무심함을 유지하려 해도 왕효의 이야기가 뜻하는 바를 아는 진용으로선 무심함을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얼마 전 양 태감이 관리하던 서류를 정리하던 중 내용이 묘한 서류 하나를 입수했다네.”

 

왕효가 말을 끊고 진용을 바라보았다.

 

“바로 자네 아버지인 고 학사와 종상현이 관련된 서류더군.”

 

깊어진 그의 두 눈에는 그 어떤 흔적도 놓치지 않겠다는 집요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표정이 굳어진 진용의 두 눈은 그사이 무저의 심해로 침잠해 들어가 있었다.

 

왕효는 진용의 눈빛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서류를 분석한 분석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고 학사가 잡혀 들어오고 종상현이 죽음으로 내몰린 이유가 바로 양 태감이 뭔가를 얻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더구먼.”

 

그 말이 떨어지자, 마침내 깊숙이 침잠해 들어갔던 진용의 눈빛이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본론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인가?’

 

진용의 반응을 지켜보던 왕효가 그제야 입가에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알고자 하는 것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내가 아는 고 학사는 고대 문자의 전문가. 그렇다면 양 태감이 얻었다는 것이 고대 문자로 되어 있는 물건이라는 말이 아니겠나?”

 

진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 정도는 알고 묻는 것. 더구나 왕효가 진정으로 원하는 핵심적인 질문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 들었습니다.”

 

진용이 순순히 답하자 이제 때가 되었다는 듯 왕효가 강한 어조로 물었다.

 

“자네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거라 생각하네만. 뭔가? 그것은!”

 

반드시 말을 해야만 한다는 듯 강압적 말투다.

 

그럼에도 진용의 표정은 한 점 변화도 없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중요하네, 무척.”

 

“이유를 알아도 되겠습니까?”

 

왕효는 잠시 침묵을 지키고서 진용을 직시했다.

 

의외였다. 나이가 어려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이 뿜어낸 기세에도 흔들리지를 않는다. 조산명의 말대로 보통 놈이 아니다.

 

‘흥! 제법 버티기는 한다만, 결국은 입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그는 한 마디 한 마디 못을 박듯이 말했다.

 

“아직 외부에 알리지는 않았네만, 얼마 전, 우리는 양 태감으로 의심되는 시신을 발견했네.”

 

순간 진용이 경악하며 눈을 부릅떴다.

 

“예? 양 태감이 죽었단 말입니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양 태감은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왕과 함께. 그런데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니.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네.”

 

“무슨 말씀입니까? 확실하지 않다니요?”

 

그에 대한 대답은 한쪽에 묵묵히 서 있던 조산명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입고 있던 옷이나 시신이 지니고 있던 물건은 양 태감의 것이 분명했네. 그러나 시신이 너무 훼손되어 있었지. 사람의 시신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외적인 물증이 있는데도 확신을 못하다니, 무엇 때문입니까? 시신에 어떤 특별한 점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때였다. 왕효가 결론을 내리듯이 입을 열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자네에게 물은 것이네. 그 시신이 양 태감 본인이든 아니든, 그 시신에 남아 있는 흔적이 그가 얻었다는 그 무엇과 관계가 있을 거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네.”

 

“시신에 남아 있었다는 흔적이 어떤 것이기에 그리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진용이 묻자, 왕효는 얼마 전에 보았던 그 시신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음……. 해골에 껍질만 씌운 시신이었네. 게다가 온몸이 오그라들어 있어서 그 시신이 죽기 전에 지녔을 본래의 체격조차 감을 잡기가 힘들 정도였지.”

 

왕효의 설명을 듣는 순간,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친 진용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혹시 건곤흡정진혼결에 당한 것 아냐?’

 

‘그런 내용은 없었잖아?’

 

잠잠하던 세르탄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반문하며 끼어들었다.

 

그러나 다른 때와 다르게 진용은 굳이 세르탄을 제지하지 않았다. 

 

‘우리가 모르는 게 있을 수도 있어. 아버지가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러니까 시르 말은, 시르 아버지가 건곤흡정진혼결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는 말이야?’

 

‘그럴 수도 있어. 아무래도 그에 대한 연구를 더 해봐야겠다. 세르탄, 너 말이야, 당분간 다른 생각 하지 말고 건곤흡정진혼결이나 연구해 봐.’

 

‘……내가? 왜 내가 해?’

 

‘너는 남는 게 시간이잖아. 딱이네 뭐.’

 

‘그럼 너는?’

 

‘나중에 네가 알려주면 되잖아. 나는 할 일이 많잖아?’

 

‘쳇, 털도 안 뽑고 거저먹으려고…….’

 

‘마계의 대전사에게 그 정도 일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데. 사실 그런 일을 세르탄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어?’

 

‘그거야 그렇지만…….’

 

왠지 당한 것 같다, 날강도(?) 같은 시르에게. 

 

그런데도 세르탄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시르가 자신을 인정하고 일을 맡기지 않는가 말이다.

 

어째 찝찝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좋아, 일단 해볼게.’

 

 

 

표정이 굳어진 진용이 눈을 반쯤 감고 생각에 잠겨 있자, 왕효와 조산명은 진용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가만히 놔두었다.

 

그러다 진용의 굳은 표정이 풀어지는 것을 보고는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던졌다.

 

“말해주겠나? 그것이 뭔가?”

 

하나를 얻었다. 그렇다면 하나를 줘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것을 얻을 수 있다.

 

“좋습니다, 말씀드리죠. 하나 제가 아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조차도 모르네.”

 

“제가 아는 것은, 양 태감이 고대 문자로 된 금판과 석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몰론 그 내용에 대해서도 알겠지?”

 

진용이 왕효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갇혔을 때 제 나이 여덟 살이었습니다, 제독태감. 그 나이에 저 역시 뇌옥에 갇혔다가 유배되었지요.”

 

바로 당신들, 동창에 의해서!

 

진용의 눈빛이 뜻하는 바를 왕효와 조산명이 어찌 모를까?

 

그러나 왕효는 집요했다.

 

“어린 나이라 해도 자네는 매우 영특한 아이였다 들었네. 그러니 스물도 안 된 나이에 지금의 위치에 선 것이겠지.”

 

“양 태감과 동창이 눈에 불을 켜고서 지키고 있는데, 무공도 익히지 않은 아버지가 뭔가를 빼돌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뛰어난 사람들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재주가 있지. 그리고 내가 들은 자네의 아버지 고 학사는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네.”

 

“아무리 뛰어나도, 아버지는 천궁도로 유배된 아들에게 뭔가를 전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왕효는 하얀 얼굴을 굳히고서 탐색하는 눈으로 진용을 쏘아보았다. 진용은 왕효의 눈이 가슴속을 헤집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진용이 누군가. 마계의 대전사 세르탄이 인정한 인간이 아니던가.

 

“믿지 못하시겠다면 그만 하죠. 믿음이 없는 대화는 시간 낭비일 뿐이니까요.”

 

마지못한 듯 왕효는 눈빛을 누그러뜨렸다.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네. 그만큼 그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야.”

 

‘욕심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겠지, 능구렁이 태감 나으리.’

 

하지만 겉으로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만…….”

 

“뭔가?”

 

“혹시, 삼왕의 근황에 대해 들어온 소식이 있는지요?”

 

꿈틀, 왕효의 가느다랗고 흰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진용의 정보가 그리 값어치 없는 정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삼왕에 대한 정보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되로 주고 말로 받겠다는 심보. 왕효가 생각할 때 진용의 심보는 그와 다름이 아니었다.

 

“아직 정확한 정보는 들어온 것이 없네.”

 

“저도 정확한 것을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어찌 저라고 정확한 것을 바라겠습니까?”

 

순간 왕효의 눈이 다시 가늘어졌다. 가늘어진 눈에서 하얀 눈빛이 쏟아졌다.

 

진용의 말은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다.

 

더 말할 게 있는데도 바라는 게 있어 말하지 않았다는 뜻. 거꾸로 풀이하면, 네가 정확한 정보를 주면 나도 그만큼 주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동창의 제독태감으로 천하를 굽어보는 왕효가 어찌 기분이 좋을 수가 있겠는가.

 

‘이놈이…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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