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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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46화
46화
키도 좌사응보다 큰 데다 턱까지 쳐들자 저절로 눈이 내리 깔려졌다. 그 모습에 좌사응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지금 한번 해보자는 거요?”
한광이 번뜩이는 눈, 한 점 흔들림도 없다.
정광은 좌사응의 눈빛이 똬리를 틀고 고개를 쳐든 뱀의 눈빛처럼 느껴졌다.
미간을 찌푸리며 천천히 고개를 내린 정광이 좌사응의 눈을 직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은 말 할 때…… 그 뱀 눈깔 내려.”
순간적으로 좌사응의 가늘게 뜨인 눈에서 묘한 빛이 번뜩였다.
그가 씨익 웃음을 지었다. 하얀 웃음, 북해의 빙설 같은 웃음이다.
“황궁에 있는 도사는 모두 다섯. 그러나 그중에 당신 같은 도사는 없어, 내가 아는 한.”
정광도 씩 웃었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뱀 같은 놈. 모르면 알아둬. 이제부터 여섯이야.”
순간 좌사응의 가늘게 뜨인 눈에서 새파란 한기가 흘러나왔다.
“끝내 해보자 이건가?”
허리에 걸려 있는 검을 잡아가는 그를 보고 번역들이 그의 주위로 모이며 검 자루를 잡아간다. 그러자 좌사응이 싸늘하게 소리쳤다.
“모두 물러서! 내가 처리한다!”
좌사응의 말이 떨어지자 번역들은 지체없이 뒤로 물러섰다.
“금의위와 함께 왔다고 봐주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도록.”
“미친놈.”
말은 그리하면서도 좌사응에게서 흘러나오는 싸늘한 기운에 정광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솔직히 황궁의 무사들이 강해봐야 얼마나 강하랴 생각했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들에게 따끔한 훈계를 내리리라!
그것이 정광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좌사응과 마주 선 지금,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전면 수정해야만 했다.
황궁에도 제법 싸울 줄 아는 놈이 있다, 물론 자신보다는 한참 못 미치지만.
두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점점 거세지자 주위에 떨어져 있던 낙엽들이 사방팔방으로 원을 그리며 밀려났다.
그 사이로 씨익 웃으며 정광이 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낙엽이 기세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며 휘돌았다.
순간 좌사응의 눈이 번쩍였다.
동시에 휘도는 낙엽 사이로 뻗치는 한줄기 번개!
하지만 번개가 꿰뚫은 자리에 정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번역 중 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허공!”
말이 떨어짐과 동시!
좌사응의 몸이 낮게 깔리더니 왼발을 축으로 한 바퀴 휘돌았다. 휘도는 그의 몸에서 허공을 향해 폭사하는 시퍼런 검광!
일순간, 폭이 좁은 좌사응의 검날이 허공을 그물처럼 난자했다.
“아!”
허공을 향해 고개를 쳐든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들의 눈에 비친 정광은 이미 호랑나비가 되어 있었다.
바람이 흐르는 대로, 검광이 뻗치는 대로 그는 자유롭게 허공을 누볐다. 그물처럼 펼쳐진 시퍼런 검광의 그물도 나비가 되어 바람의 결을 헤집고 움직이는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
호랑나비가 검광으로 만들어진 그물을 밟으며 종잡을 수 없이 움직일 때마다 괴이한 격돌음이 울린다.
까가가가강!
찰나 간에 십여 번의 격돌.
그때다! 검의 탈력을 이용해 허공으로 튕겨 올라간 정광이 빙글 몸을 뒤집더니 떨어져 내렸다.
떨어져 내리는 그의 손에 시커먼 뭔가가 들려 있다. 어느새 벗어 든 쇠신발이었다.
그는 조금도 망설임없이 손에 들린 쇠 신발을 검광의 물결 속으로 집어넣고 휘저었다.
따다당!
일성 굉음! 그물처럼 펼쳐졌던 검광의 물결이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다.
그 충격에 주르륵 일 장 이상을 물러난 좌사응. 그는 더욱 하얗게 변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정광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정광의 손에 들린 시커먼 쇠신발을.
그때!
“그만 하시지요.”
나직하면서도 목덜미를 잡아끄는 음성이 한쪽에서 흘러나왔다. 진용이었다.
진용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 바람처럼 좌사응을 덮쳐 가던 정광이 맞바람에 날린 솜털처럼 훌쩍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바람에 쓸린 듯 옆으로 흘러 내려섰다. 가경할 신법이었다.
일시지간 장내를 짓누르는 무거운 침묵에 모두가 입을 닫았다.
뚝, 좌사응의 이마에서 한 방울 땀이 맺혀 떨어졌다. 그의 눈은 여전히 독사의 그것처럼 빛나고 있었지만 처음보다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놈 눈깔은 여전하군. 끌끌끌…….”
정광이 숨을 고르며 묘하게 웃었다.
비웃는다 느껴졌는지 이를 악문 좌사응의 이맛살에 서너 개의 주름이 그어진다. 그때 진용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동창에서 무엇 때문에 밀옥을 뒤지는 겁니까?”
진용의 물음에 좌사응의 주름이 두어 개 더 늘었다.
보기에는 평범한 서생이다. 그러나 그의 말에 미친 듯이 달려들던 도사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금의위 위사. 결코 단순한 내력을 지닌 자가 아니다.
“그대는 누구요?”
진용이 품속에서 명패를 꺼내 들었다.
“금의위 제구소 소장으로 임명된 고진용이라 합니다.”
“구소 소장?”
가벼운 놀람이 그의 눈에 떠올랐다. 금의위에는 총 십사소가 있다. 그중 하나의 장이라는 말은 그가 적어도 금의위의 서열 이십 위 안에 든다는 말.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다.
“나는 동창의 당두 좌사응이라 하오.”
“백귀라 불린다 하더군요.”
그대를 알고 있다는 말. 좌사응은 진용의 말에 두충을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진용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이 그리 부른다 들었소.”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곳 밀옥은 그동안 금의위에서 조사하던 곳이었습니다. 한데 무슨 일로 동창이 나선 것입니까?”
좌사응의 가느다란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직하지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말투가 그의 심기를 건드린 듯하다.
“대답하지 않겠다면?”
진용은 무심한 눈으로 좌사응의 독사 같은 눈을 직시한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럼…… 동창의 흑랑백귀 중 흑랑만 남게 되겠지.”
그 말에 좌사응의 눈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가능할까?”
그가 검을 고쳐 잡았다. 그러자 뒤에 있던 번역들도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쓰윽, 진용이 앞으로 나아갔다.
좌사응도 검을 중단으로 올리고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두 사람 사이가 찰나 간에 일 장의 간격으로 좁혀졌다.
바라보던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 안에 배인 끈적한 땀조차 느끼지 못한 채 그들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눈을 떼면 모든 상황이 끝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라도 드는지.
그때 진용의 입에서 단호하면서도 오금을 저리게 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든, 앞을 막으면, 용서치 않는다.”
“건방진!”
노호성이 터짐과 동시 좌사응의 손이 움직였다.
번쩍!
지금까지 수십 번의 대소전투에서 한 번도 자신의 의지를 배신하지 않았던 검이었다. 비록 미친 도사와의 몇 수 겨룸에서 밀리기는 했지만, 자신에게 마지막 한수가 남아 있으니 결코 패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좌사응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콰직!
상대의 어깨를 향해 번개가 무색할 정도의 속도로 뻗어진 자신의 검이 멈추어 있었다. 그것도 검신이 상대의 손에 잡힌 채.
그러나 놀랄 틈도 없이 다가오는 주먹!
좌사응은 왼손으로 가슴을 막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모든 것은 찰나 간에 이루어졌다.
검을 뻗은 것도, 잡힌 것도, 그리고 다가오는 기운을 느끼고 본능처럼 왼손을 들어 막은 것도.
너무도 빠른 격돌. 눈을 빤히 뜨고서 바라보던 사람들조차 제대로 본 자가 몇 없을 정도였다.
쾅!
좌사응의 왼손 손바닥에 진용의 주먹이 꽂히고 좌사응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간 순간, 검을 움켜쥔 진용의 신형도 좌사응을 따라 움직였다.
좌사응은 결코 검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검은 그의 생명이었다. 그러니 검을 놓친 그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팔이 떨어져 나가는 한이 있어도, 검만은 지켜야 했다.
그는 튕기듯 물러서며 철마각을 휘둘렀다. 상대의 손을 자신의 검에서 떨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진용은 그의 철마각을 비웃듯이 검을 놓아버렸다. 그러자 좌사응의 균형이 미세하게 무너졌다. 그거면 족했다.
일 보, 진용은 그림자처럼 좌사응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진용의 우수가 그대로 좌사응의 가슴에 달라붙었다 떨어졌다.
떵!
“크윽!”
처음으로 좌사응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비틀거리며 다섯 걸음을 물러선 좌사응은 창백하게 변한 얼굴을 숙여 가슴을 바라보았다. 가슴의 옷자락에는 손바닥 모양으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붉게 달아오르긴 했으나 상처 하나 없는 맨살이 구멍 속에 그대로 보였다.
그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살아 있어도 산목숨이 아니었다.
좌사응은 처참히 일그러진 얼굴을 들어 진용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이리도 간단하게 패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다.
“그대는…….”
진용은 더 이상 핍박하지 않고 멈추어 서서 좌사응을 마주 직시했다. 더 이상 핍박한다는 것도 그랬다. 상대는 동창의 당두. 더구나 이곳은 황궁 안이다.
“왜 검을 놓지 않은 거요?”
그랬다면 이토록 빨리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용은 그것이 의문이었다.
좌사응이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내려다보았다.
“이놈은 내 목숨을 몇 번이나 살려준 놈이오. 한데 내 목숨이 아깝다고 배신을 할 수는 없지 않겠소?”
진용은 기이한 눈으로 좌사응을 응시했다.
검사에게 있어 검은 목숨과도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다. 그렇다고 저토록 극단적으로 검을 위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연이 많은 자 같군.’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밀옥의 일은 우리 금의위에서 맡겠소. 인정하시겠소?”
좌사응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힘과 일은 또 다른 경우다. 그러나 밀린 이상 막을 방법이 없다.
“제독께서 지시한 일이오. 그러나 싸움에서 졌으니 무슨 말을 하겠소.”
“동창 제독께서 직접 지시한 일이란 말이오?”
“그렇소.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는 나도 모르오. 혹시 이 일로 제독께서 도독께 따지지 않으실지 모르겠소.”
좌사응은 자신이 할 말은 모두 했다는 듯 뒤를 향해 소리쳤다.
“모두 돌아간다!”
“당두…….”
“책임은 내가 진다.”
백귀 좌사응이 책임진다는데 감히 자신들이 뭐라 하랴. 번역들이 자신의 말에 뒤돌아서자 좌사응은 진용과 정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련이 남은 목소리로 입을 열고는 신형을 돌렸다.
“나중에…… 다시 한번 붙어봅시다.”
좌사응과 동창의 사람들이 떠나간 밀옥은 어수선했다. 그들이 들어낸 서책과 물품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이미 적지 않은 물품들을 옮겼는지 남아 있는 것들은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정광은 재빨리 남아 있는 서책들을 뒤지더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는 다시 천연덕스럽게 낄낄거렸다.
진용을 괴물 보듯 바라보고 있던 두충이 긍금함을 참지 못하고 정광의 어깨너머로 책을 넘겨다보았다. 그러다 그 책의 정체를 알고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정광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참나…….”
“너, 그 눈깔 뽑히고 싶지 않으면 빨리 돌려.”
밀옥 안으로 들어간 진용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밀옥의 안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이미 시서화는 떼어져 사라졌고, 장난처럼 긁힌 자국이 있던 회벽은 뭔가로 깨끗하게 문질러져 있었다.
결국 진용이 좀 더 알아보려 했던 것은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 것이다.
‘어제 끝까지 확인해 봤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좌사응을 쫓아갈 수도 없었다. 그들에게 묻는다 해서 지워진 글이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 테니까.
“후우…….”
한숨을 내쉰 진용이 밀옥을 나서자 정광이 다가왔다.
“왜?”
그러다 방 안의 광경이 달라진 것을 알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이놈들이 제법 깨끗하게 치워놨는데?”
“너무 깨끗이 치워서 문젭니다.”
괜히 실소가 나왔다. 좌사응과 싸우면서까지 밀옥에 대한 주도권을 차지한 이유가 우습게 되어버렸다.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동창에서 어떤 식으로든 반발을 해올 것이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별수 없지. 내가 한 일에 대해선 내가 책임지는 수밖에.’
진용은 고개를 내저으며 두충을 향해 말했다.
“문연각으로 안내해 주시겠소?”
정광에게서 어렵게(?) 얻은 소녀경을 읽고 있던 두충은 재빨리 책을 정광에게 건네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소장님!”
그는 이제 아는 것이다. 미친 도사 정광도 순하게만 보이는 서생 진용의 말만은 잘 듣는다는 것을.
그러니 어쩌랴. 미친 도사의 손에서 벗어나려면 줄을 잘 서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