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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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금의위가 되게나.”
진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금의위가 되라구요?”
“그렇다네. 그렇다고 계속 금의위로 남아 있으란 말은 아니네. 일단 조사를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금의위가 되란 말일세.”
뜻밖의 제안에 진용은 어지러워진 정신을 수습해야만 했다.
육두강의 생각을 모를 진용이 아니었다. 그러나 관인이 된다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었다. 자칫 관과 마주 서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금의위라면 당금 황궁에서 가장 권력이 강한 기관이라 할 수 있었다.
황궁의 호위와 황제의 의장, 그리고 죄인의 체포와 심문까지 하는 곳이 금의위가 아니던가.
또한 황제의 직속기관으로 병권과 형권까지 주물럭거린다고 소문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기관이 바로 진용이 알고 있는 금의위였다. 그런 금의위에 들라니…….
그러나 진용으로선 육두강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의 말은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사를 마칠 때까지만 하면 됩니까?”
“뭐, 더 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네.”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어딘가에 얽매인다는 것, 그것은 천궁도의 생활이면 충분했다.
문득 진용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한 사람이 더 있습니다만…….”
흥미진진한 태도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광은 진용이 자신을 돌아보며 말하자 펄쩍 뛰었다.
“내가 왜 그런 고리타분한 짓을!”
“그럼 태산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그, 그건…….”
그는 진용과 떨어질 마음이 아직은 없었다. 그리고 태산으로 돌아갈 마음도 없었다.
설령 고대 문자를 해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직은 세상을 누비며 더 놀고 싶었으니까.
“금방 끝나겠지?”
결국 태산의 말썽꾸러기 정광 도장도 금의위가 되기로 했다.
쾅!
이 장 밖에 있던 석등의 기둥에 한 치 깊이의 구멍이 뚫리자 육두강은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닌바를 펼쳐 보란 말에 진용이 대뜸 손가락을 뻗자 벌어진 일이었다.
환상타공지, 일명 판타지의 위력이었다. 그러나 육두강의 입을 비집고 나온 말은 다른 누구와 다르지 않았다.
“격… 공탄지……?”
진용은 차마 ‘힘을 반의반도 안 썼습니다’라는 말은 못하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금의위가 될 자격은 되겠습니까?”
“자격? 자네 지금 날 약 올리는 건가?”
그럴 리가요?
진용은 웃음 진 얼굴로 정광을 향해 손짓했다.
“도장님.”
휘익! 진용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광의 신형이 앉은자리에서 사라졌다. 동시!
퍽!
석등의 머리가 부서져 버렸다, 쇠신발에 얻어맞고.
순식간에 석등의 머리를 부수고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정광을 보고 육두강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정광은 진용처럼 굳이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조금 더 힘을 썼으면 기둥도 부서졌을 거외다. 험!”
하지만 그는 몰랐다, 육두강이 왜 아연한 표정을 짓는지.
“세상에, 신발을 무기로 쓰다니. 이거 저 양반을 금의위에 받아들이는 것은 다시 생각해 봐야겠네그려.”
“예?”
“생각해 보게. 신발 들고 설치는 금의위라니, 얼마나 체신머리가 없어 보이겠는가.”
순간 정광의 표정이 와락 구겨져 버렸다.
자신의 멋진 모습을 보고도, 뭐라?
정광의 엉덩이가 들썩거리자 진용이 급히 대변하며 나섰다.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안 쓰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요? 설마 매일같이 신발 들고 싸우겠습니까?”
“뭐, 그 정도라면야…….”
육두강이 어정쩡한 정광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하자 진용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풋! 하하하!”
육두강도 정광이 눈알을 굴리며 자신의 쇠신발을 만지작거리자 끝내 웃음을 참지 못했다.
“허허허허!”
정광은 그런 두 사람을 멀뚱히 바라보며 입술을 실룩였다.
‘신발로 그냥 확!’
5장. 나를 아시오?
1
구룡상방의 정문에서 이십여 장 떨어진 곳.
위당조는 수하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당과를 오물거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든가 말든가.
“이 자식은 뭐 하고 여태 안 오는 거야?”
위당조의 불만이 가득한 말투에 옆에 있던, 자칭 위당조의 오른팔 비향초는 힐끔 자신의 상관을 쳐다보았다.
‘제길! 쪽팔리게 다 큰 어른이 무슨 당과야, 당과는.’
그는 위당조가 당과를 빠는 게 불만이었다.
애들이나 먹을 당과를 살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먹고 싶다는데 어쩔 건가?
하지만 쪽쪽 소리가 나게 당과를 빨아대는 위당조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쳐다볼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차라리 자신이 구룡상방에 갈 것을.
그런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다행히 그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구룡상방에 들어갔던 동료는 반 각이 지나지 않아서 밖으로 나왔다.
위당조의 잔소리가 그를 반겼다.
“이놈아, 이십 명도 아니고, 두 사람의 소재를 파악해 보라는데 왜 이리 오래 걸리는 거야?”
잰걸음으로 위당조 앞에 선 길근양은 힐끔 위당조의 입을 바라보고는, 행여나 또 다른 잔소리 튀어나올까 급히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이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어디로?”
“그것까지는 잘…….”
퉤!
뻐억!
입에 물고 있던 당과가 정통으로 이마를 때렸다. 이마가 빠개지는 고통 속에서도 길근양은 흔들리는 몸을 바로잡고 즉시 말을 이었다.
“외성 북쪽이라고만…….”
“외성? 외성이 다 너네 집이냐?”
“흑수회를 움직여 즉시 알아보겠습니다.”
위당조는 땅에 떨어진 당과를 아까운 듯 바라보고는 품속에서 또 하나의 당과를 꺼내 물었다.
쪽!
“내일까지 알아봐. 알아내지 못하면…… 내 네놈을 팔아서 당과를 사 먹어버릴 거니까.”
길근양은 백마성의 공포, 광마수(狂魔手) 위당조의 말을 어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당과와 바꿔질 생각은 더더욱이나.
“흑수회 놈들을 모조리 동원하겠습니다, 당주!”
그 모습에 비향초는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야만 했다.
‘안 들어가길 잘했지.’
2
“이곳에서 기다리게나.”
진용과 정광이 아침에 육두강을 찾아가자마자 그는 두 사람을 이끌고 황궁에 입궁했다.
사실 두 사람은 황궁에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은근히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황궁을 구경할 기회란 일반인에게 흔치 않았으니까.
그러나 구경거리는 처음뿐이었다.
육두강은 자금성을 감싸고 흐르는 호성하(護城河)를 지난 후 엄청나게 높은 담장에 난 제법 큰 문을 지나더니,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다시 찾아가려 해도 찾기조차 힘든 그런 길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그렇게 일각 만에 도착한 곳은 이곳이 황궁인지, 아니면 여염집인지조차 모를 자그마한 건물이었다.
그리고 건물에 들어가서 육두강이 한 말은 기다리란 말이 전부였다.
“여기가 정말 황궁 맞아?”
정광이 불만 가득한 말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진용은 알지 못했다. 그도 어릴 적 뇌옥에 갇힐 때만 와봤을 뿐이다. 그때는 죄수로 왔으니 당연히 황궁에 대한 감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자금성의 담으로 보이는 거대한 담장과 호성하를 지났으니 황궁 안이라 짐작할 뿐.
“기다려 보면 알겠죠.”
때마침 지나가던 한 사람이 두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툭 던지듯이 말했다.
“촌놈들인가 보군.”
그는 관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도 무관의 복장이었다.
금빛이 번쩍거리는 금의위의 복장.
그의 말에 정광이 벌떡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무게를 잡고 말했다.
“어험! 이리 좀 와보게.”
금의위는 의아한 눈으로 정광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별 미친 말코가 사람을 오라 가라……. 에이, 재수없어!”
그래도 정광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더 이상 심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정광이 그 말에 곱게 물러설 리가 없었다.
“저, 저, 저…… 싸가지없는…….”
길길이 날뛰기 직전인 정광을 보고 진용이 한마디 했다.
“여긴 황궁입니다. 시끄럽게 굴면 곧바로 뇌옥행이지요.”
“흥! 누가 잡히기나 할까 봐?”
“그럼 저 혼자 움직여야 할 텐데……. 뭐,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그, 그건…… 아마 혼자 움직이려면 심심할 걸세. 끄응, 나이 든 내가 좀 참지 뭐. 험!”
이각이 지나서야 육두강이 돌아왔다. 바닥에 이상한 그림을 그리며 놀고(?)있는 두 사람을 본 그는 고개를 저으며 뒤돌아섰다.
“가세. 도독께 말씀드렸더니 한번 보자 하시네.”
“아, 예.”
언뜻 돌아서는 육두강에게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원, 사람들하곤. 애들도 아니고 무슨 땅따먹기를 하고 노나 그래.”
진용은 또다시 발작하려는 정광의 손목을 움켜잡고 전음으로 말했다.
<고대 문자를 풀고 있다고 사실대로 털어놓으시렵니까?>
그걸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 참을 수밖에.
정광은 씩씩대며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육두강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니가 금의위 천호장이면 다야!’
어쨌든 지금은 ‘다’였다.
3
금의위의 수장인 도독(都督)은 몸집이 크지 않았다.
그는 나이 마흔여덟에 금의위의 도독에 오른 후 십오 년째 금의위를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공손각. 그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황궁의 사람들은 그를 이름으로 부르기보다는 철심도독(鐵心都督)이라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도 남들이 자신을 그리 부르는 것을 뭐라 하지 않았다.
철심(鐵心)! 그것이 곧 자신이 행해야 할 일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마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육 부장에게 말은 들었네. 자네가 고 학사의 아들이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걸까?
“너무 마음 쓸 것 없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 방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니까.”
‘과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진용이었다. 자신의 표정만 보고도 생각하는 바를 짚어내다니.
“그렇습니다. 소생이 그분의 아들인 고진용입니다.”
“직접 조사를 하고 싶다고?”
“예, 도독.”
“흘흘, 아비의 행방을 직접 조사하고 싶다는 아들에게 하지 말라고 하면 욕하겠지?”
진용은 고개를 들고 공손각의 눈을 쳐다보았다.
“저는 군자는 아니나 그렇다고 무뢰한도 아닙니다. 뒤에서 욕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지요.”
진용의 대꾸에 공손각은 흥이 가득한 눈빛을 지었다.
“그래? 그럼 허락하지 않겠다면 어찌하겠는가?”
“그럼 이만 일어서야겠지요.”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아닌가?”
“포기라니요? 저는 다만 얼어붙은 나무에 뜨거운 물을 붙는다 해서 꽃이 일찍 피지 않는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그러니 어린아이도 아는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푸하하하!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
공손각의 웃음에 육두강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가 알기로 지난 십여 년간 공손각의 저런 웃음소리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도독…….”
“이봐, 육 부장. 자넨 정말 재미있는 사람을 데려왔군 그래.”
공손각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는 진용을 느긋이 바라보았다.
“어린아이도 아는 짓을 나만 몰랐던 것 같으이. 저 친구가 그걸 일깨워 주는구만.”
생각보다 공손각의 표정이 부드럽자 육두강이 넌지시 물었다.
“도독, 하오면……?”
“일단 맡겨보지. 나는 어린아이만도 못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거든.”
“아! 고맙습니다, 도독!”
“고맙기는, 내가 고맙지. 자청해서 일을 맡아준다는데.”
실실 웃음기 띤 얼굴로 공손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진용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공손각이 불쑥 말했다.
“일단 백호장으로 임명하게.”
“예?”
놀라는 육두강을 바라보며 공손각이 말을 이었다.
“필요한 정보는 모두 주고, 다른 누구도 고 백호장이 하는 일을 간섭하지 못하게 하게. 내 진무사에게도 일러놓겠네.”
너무 파격적인 인사였고, 직접적인 일 처리였다. 한 올의 미련도 두지 않고.
그러나 육두강은 알고 있었다. 공손각은 자기 기분에 내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자신이 몇 마디 했다고 해서 마음이 움직일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진용의 능력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을 했고,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한 뭔가를 봤을 것이다. 자신은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를 그 뭔가를.
육두강은 그게 뭔지 궁금했지만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육두강이 일어서자 진용과 정광도 일어섰다.
정광은 들어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다 일어섰지만, 그의 표정에는 조금도 불만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공손각이 자신에게 불필요한 말장난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육두강을 따라 밖으로 나가려던 정광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공손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혹시…… 우리 언제 만난 적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