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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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40화
40화
진용이 묘한 미소를 배어 물고 답했다.
“그자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르나, 우리는 그와 아무런 관계가 없소이다, 육 장군.”
금의위 장수, 육두강의 눈이 번쩍였다.
“나를 아는가?”
“아마 장군도 저를 알 겁니다.”
“내가 그대를 안다고?”
육두강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그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진용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점차 눈을 크게 떴다.
“그대는 내가 아는 누구를 닮았군.”
“아마 장군이 아는 그가 저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는 성이 고씨네.”
“제 성도 고씨지요.”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렇군, 그래……. 자네가 바로 그군.”
괴이한 상황에 두 명의 금의위 제기는 육두강을 향해 물었다.
“장군, 이자를 어찌 처리하실지…….”
그제야 육두강은 백의인에게로 눈을 돌렸다.
“오늘은 기쁜 날이라 그냥 보내주겠다. 그러나 다시 한번 내 귀에 그대의 행실이 들려오면…… 그때는 그대가 누구의 아들이든 다리 하나를 부러뜨려서 뇌옥에 처박아 버릴 것이다!”
육두강에 대한 소문을 익히 잘 알고 있는 백의인, 금적성으로선 육두강의 말이 절대 빈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빠져나가는 것 자체를 포기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육두강에게 걸린 이상, 시랑이라는 고위직에 있는 아버지라 해도 어쩔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그냥 보내준다니.
너무도 뜻밖의 일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는 자신을 육두강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해준 진용 일행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오늘의 일을 잊지 않겠소, 형장. 이래봬도 나 금적성, 은혜를 잊는 놈은 아니외다. 그럼 나중에 뵙겠소.”
절뚝거리며 부리나케 현장을 떠나가는 그를 보고 진용이 미소를 지었다.
“애정지사를 조금 과하게 표현하는 자인가 보군요. 눈빛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데…….”
육두강이 피식 웃었다.
“저놈은 내가 모시는 도독의 따님을 삼 년 전부터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놈인데, 그 끈질김에 도독조차 골머리를 앓고 있을 정도네. 평이 그리 나쁜 자는 아니야. 한때는 포기하고 같이 맺어줄까 생각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지 아비의 힘을 믿고 건달들하고 돌아다니는 통에 도독께서도 망설이고 있는 중이라네. 그래서 내가 한 번 혼내주려 작정하고 있었지. 뭐, 자네 때문에 공염불이 되어버렸지만.”
육두강은 멀어지는 금적성을 바라보며 말을 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다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반갑군, 정말 반가워.”
“궁금하지 않습니까?”
“궁금하지, 무척. 하나 그러면 뭐 하나. 자네가 이렇게 내 눈앞에 있는데.”
이상한 일이다. 자신의 등장에 크게 놀라야 할 육두강이다. 그런데 놀라긴 했어도 생각만큼 크게 놀란 표정이 아니다. 마치 당연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진용은 육두강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8
태평루의 선육탕은 정광의 입맛을 매혹시켰다.
“도사가 고기 먹으면서 저리도 좋아하다니, 도장님의 스승님이 아시면 아마 거기를 터뜨려 버릴 것입니다.”
한입 가득 선육탕을 떠 넣고 오물거리던 정광이 실눈을 뜨고 진용을 바라보았다.
“자네만 입 다물고 있으면 돼. 나중에 스승님이 이 사실을 문제 삼으면 그건 다 자네 탓으로 알겠네.”
진용은 빙긋 웃으며 육두강에게 고개를 돌렸다.
“유모가 그러더군요, 장군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도움은 무슨……. 나는 그저 죄수의 근황을 계속 전해줬을 뿐이네.”
자신의 선행을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사로 말하는 육두강을 진용은 고마움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천호장이 되신 것, 뒤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하하! 운이 좋았을 뿐이네. 하필이면 내가 가는 길 앞에 도독께서 쓰러져 계실 것이 뭔가?”
“운도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지요.”
“사실 내가 운이 좋았다기보단 상대가 운이 없었지. 하필이면 내가 가는 앞에서 도독을 죽이려 했으니 말이네.”
“진짜 운도 지지리 없는 자들이군요.”
“하하하! 맞네, 맞아.”
육두강의 웃음 진 얼굴을 바라보며 진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의위의 도독을 죽이려 하다니,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군요.”
“그러니 황태자 전하마저 죽이려 했겠지.”
진용의 눈이 굳어졌다.
“삼왕 무리였습니까?”
“그들이 아니고서야 황궁에서 감히 금의위의 도독을 죽이려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육두강의 말을 들으며 진용은 천천히 술잔을 입에 대었다. 이제 겨우 세 번째 마셔본 술이지만 진용은 술이 달게 느껴졌다.
그때 육두강이 던지듯이 물었다.
“아버지에 대한 일이 궁금하겠군.”
술잔을 내려놓은 진용이 무저의 늪처럼 깊어진 눈으로 육두강을 직시했다.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육두강의 표정도 굳어졌다.
“집에 가서 이야기하지.”
진용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광을 돌아다보았다. 일단 정광이 식사를 마칠 동안은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굳이 기다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의 앞에 있던 커다란 접시는 어느새 바닥을 보인 채 반질반질 빛나고 있었으니까.
“집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러게 말이네. 무슨 도사가…… 개방의 제자도 아니고…….”
안도의 눈빛을 짓는 두 사람을 보고 정광이 뚱한 눈으로 말했다.
“머는 거 가꼬 머라 하느 거 아여.”
그런 그의 입에서는 씹히다 만 선육 쪼가리가 빠져나와 흔들리고 있었다.
9
육두강의 집에는 식구가 몇 없었다.
자신과 집안을 돌봐주는 할아범을 비롯한 세 명의 일꾼이 전부였다.
“저와 비슷한 아들이 있다 하셨는데……?”
“오 년 전에 아비를 놔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갔네. 불효막심한 놈.”
육두강의 눈이 잘게 흔들렸다.
“죄송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자네가 죄송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제놈의 복이 그것뿐인걸.”
“그럼 부인께선?”
“그 사람도 일 년 후에 가버렸네, 아들놈을 따라서.”
잘게 흔들리던 눈이 제자리를 찾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진용은 육두강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아무런 말도 걸지 않고 가만히 놔두었다.
일각 정도가 지났을 때가 되어서야 육두강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아픔을 떨치기 위해선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고 학사의 실종에는 많은 의문이 있다네.”
진용에겐 차라리 그게 나았다. 자신의 아픔도 적지 않은데,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 지켜보기엔 그의 가슴에 남은 공간이 너무나 적게만 느껴진 것이다.
“놈들이 데려갔습니까?”
“그게 좀 이상하네.”
육두강의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진정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고 학사가 머물던 밀옥은 시설이 잘된 일반 건물이긴 하지만 사실 뇌옥이나 다름이 없던 곳이네. 안에서는 결코 열 수 없게 되어 있는 곳으로 매우 특별한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지. 만일 그들이 데려갔다면 문을 열고 데려갔을 터인데, 고 학사가 사라진 건물은 벽이 허물어져 있었다네. 마치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터져 버린 것처럼 말이야.”
진정 괴이한 일이었다. 만일 그게 고중헌의 짓이라면 더욱 괴이했다.
갇혀 있기만 한 그에게 느닷없이 그런 힘이 생겼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런 힘이 있었다면 그토록 오랜 세월을 갇혀 있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게다가 고 학사가 사라지자 삼왕과 양 태감이 오히려 더 당황한 것 같더군.”
“그러니까, 아버지는 그들이 아닌 다른 어떤 힘에 의해서 그곳을 빠져나갔다는 말씀이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 하나 그것도 이상해. 고 학사에 대한 것은 삼왕과 양 태감이 철저히 단속을 하고 있었네. 그런데 누가 있어 고 학사를 빼돌릴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수년간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가 갑자기 말이야.”
확실히 이상한 일임에는 분명했다. 그러나 일이란 것이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는 법.
“조사는 해보셨습니까?”
“물론이네. 처음에는 동창에서 했지. 양 태감의 지휘 아래.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삼왕이 황태자 전하를 내치려다 거꾸로 음모가 드러나면서 쫓겨났다네. 그때부터는 내가 그 일을 맞았지. 도독께서 밀어주신 덕분에.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네. 자네에겐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뿐이야.”
“최선을 다해주신 것만도 고마운데 미안하기는요. 오히려 제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요. 한데…….”
“뭔가, 말해보게.”
진용은 육두강의 눈을 직시하며 자신이 육두강을 찾은 진짜 목적을 꺼내놓았다.
“제가 직접 조사해 볼 방법은 없겠습니까?”
육두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네가? 직접?”
“예, 아버지가 만일 뭔가를 남겼다면, 그걸 알아볼 사람은 저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자네는 자네 아버지가 뭔가를 남겼을 거라 생각하나?”
“전부터 아버지는 그랬었습니다. 황궁에 들어가기 전부터요.”
육두강은 심각한 표정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황궁에 들어가기 전부터라……. 내가 모르는 뭔가를 자넨 알고 있단 말이군. 그런 뜻으로 봐도 되겠나?”
진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몰론 나에게 털어놓지는 않겠지?”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은…….”
“그럼 나중에는 알려주겠나?”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약속하겠습니다.”
“흠, 고씨 고집을 꺾기는 힘들 테고…….”
뭘 생각했는지 육두강이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진용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빠르군.”
“예?”
“자네에 대한 사면 신청을 해서 받아들여진 지 이제 보름일세. 그러니 천궁도에 사면 명령서가 제아무리 빨리 도착했어도 칠 일 전에나 도착했을 것이야. 그런데 자네는 수천 리나 떨어진 이곳에 벌써 왔으니, 날아온 것이 아닌 다음에야……. 아니, 날아왔어도 그렇지…….”
진용은 벙찐 표정으로 육두강을 바라보았다.
사면 신청이라니? 그럼 자신은 이제 죄수가 아니란 말? 그래서 자신을 보고도 그리 놀라지 않았단 말인가?
그런데 유모는 왜 모르고 있었지?
진용의 의문을 짐작이라도 한 것처럼 육두강이 실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유모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다네. 자네가 찾아와서 놀라게 해주길 바랐거든.”
진용의 어이없어하는 마음을 알 리 없는 육두강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어쨌든 자넨 이제 죄수가 아니니 황궁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네. 물론 적절한 신분이 있다면 더 좋겠지. 특히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하기 위해서라면.”
“적절한 신분요?”
“보아하니 무공을 익힌 듯싶은데…….”
육두강이 진용의 두 손을 내려다보고 말하자 진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숨길 것도 없었다.
물론 마법을 익혔다는 말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조금 익혔습니다. 마침 천궁도에서 할아버지로 모신 분이 있어서요.”
“구양 노인 말인가?”
진용의 눈이 크게 뜨였다.
“모르시는 게 없군요.”
피식, 육두강이 웃었다.
“그곳은 유배지네. 금의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야. 그러니 구양 노인에 대해선 알 만큼 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사실 삼왕 무리의 눈 때문에 서신을 보낼 수는 없었지만, 자네가 구양 노인의 품에 있다 해서 그동안 안심하고 있었다네. 삼왕에 대한 일만 끝났다면 내가 직접 사면서를 가지고 천궁도로 갔을 게야.”
새삼 고마움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진용은 진심 어린 고마움으로 육두강에게 허리를 숙였다.
“어릴 적 그곳에 계신 관병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육 장군께서 저에 대해 당부를 해두셨다고 하더군요. 이제야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허허허, 너무 마음 쓰지 않아도 되네. 자네를 잡아들인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약간 신경을 쓴 것뿐이야.”
육두강은 허리를 숙인 진용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되었으니 이제는 어느 정도 죄책감이 가신 것 같구만.”
“육 장군…….”
“험, 그래, 이제 본론을 이야기해 보세. 구양 노인에게 무공을 배웠다면 그리 약하지는 않을 것이고…… 어떤가?”
느닷없는 육두강의 물음에 진용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육두강이 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게. 황궁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조사를 일반인에게 맡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금의위의 자존심이 상할 일 아닌가? 하나…….”
말을 끊은 육두강이 묘한 눈빛으로 진용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금의위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하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