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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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39화
39화
뼈에 껍질만 씌워졌다는 말이 바로 유모의 몸을 두고 한 말 같다. 너무도 말라 한 근도 나갈 것 같지가 않았다.
“유모! 정신 차려요!”
그런 유모의 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눈친데 몸이 떨리니 말이 나오지 않는가 보다.
“유모, 일단 마음을 가라앉혀요.”
“요, 요, 용… 도련님…….”
그때였다. 진용을 따라 안으로 들어온 정광이 재빨리 유모의 몸 두어 군데를 짚었다.
그제야 유모의 떨림이 잦아들더니, 유모는 천천히 눈을 감고 몸을 늘어뜨렸다.
“도장님?”
진용이 놀라 돌아보자 정광이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노인네한테 너무 큰 충격은 자칫 큰일이 날 수가 있네. 일단 수혈을 짚었으니 몸이 그 충격을 완화시킬 때까지 그대로 놔두게나.”
정광의 말이 옳았다. 평상시라면 자신도 그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큰 감격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이제 겨우 유모를 만났는데…….
“고맙습니다, 도장님. 제가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런데…… 우신 겁니까?”
“응? 울긴? 내가 왜? 운 건 자네지 내가 아니네. 킁!”
어색한 변명을 해대며 코를 푸는 정광의 눈 가장자리에는 분명 물줄기가 흐른 자국이 있었다, 비도 안 왔는데.
방 안은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방에 개어져 있는 옷이 어릴 적 입었던 그 옷이라는 것까지.
울컥! 진용은 그 옷을 본 순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어헝!’
하지만 자신보다 세르탄이 먼저 울었다.
‘왜 울어, 세르탄?’
‘몰라. 그냥 울고 싶어.’
‘머릿속 지저분해지니까 그만 울어.’
‘꼭 말을 해도……. 감정 깨지게, 씨이…….’
세르탄 덕분에 진용은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한쪽에 쌓여 있는 책도 그대로 있었다, 먼지 하나 없이.
맨 위에 있는 책을 들어 살펴보았다.
예기의 한편을 묶은 중용(中庸)이었다. 성선설을 중심으로 천인합일의 사상을 명백히 하고 있다는 중용.
한참 동안 겉표지를 바라보고 있던 진용의 입에서 중얼거림이 흘러나온 것은 책을 집어든 지 일각가량이 지나서였다.
“인(仁)의 덕(德)을 지니고 있음으로써 사람이 되고, 만일 인(仁)을 잃게 되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했다. 또한 사람이 사람인 연유는 인(仁)이 있기 때문이고, 인(仁)의 도(道)야말로 사람의 도(道)라 했다. 그러나…… 아버지와 관계된 일에 관해서 만큼은 그 어떤 것도 필요없다. 아버지를 해한 자는 모두 악일 뿐이다.”
진용의 손에 들린 책자가 한 줌 가루가 되어 산산이 흩어졌다.
그것은 분노였다! 그리고…… 다짐이었다!
“그 누구도 용서치 않는다!”
아버지의 방도 자신의 방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오늘 아침까지도 사람이 살았던 방 같았다.
진용은 아버지의 침상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오래전의 추억을 되살려 봤다.
하지만 진용의 눈에 떠오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칼을 찬 채 머리가 흐트러진, 뇌옥에 갇혀 있을 때 본 마지막 모습뿐이었다.
털썩!
진용은 무릎을 꿇고 침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모든 것을 잊고서…….
얼마나 지났을까,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햇살이 남쪽 창문으로 스며들어 등을 따스하게 쓰다듬는다. 그제야 진용은 침상에 파묻은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든 진용은 한쪽 벽을 바라보았다.
산수화가 보였다. 봉쇄된 지하 서고로 통하는 열쇠가 감춰진 곳.
방에 들어와 처음으로 진용의 입이 열렸다.
“석벽의 고대 문자를 풀려면 열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그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버지의 방을 나와 별채로 들어가자 정광이 유모의 맥을 살피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진용이 묻자 정광이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몸이 너무 약해.”
그럴 것이다. 이미 몸을 안아 들었을 때 느꼈던 바였다.
하긴 마음 약한 유모가 뭘 제대로 먹었을까. 먹어도 소화나 되었을지……. 그나마 살아 계신 것만도 천만다행이 아닌가 말이다.
혈을 깊게 누르지 않아서인지 유모는 반 시진가량이 지나자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유모는 진용을 보고 또 한참을 울었다.
진용도 글썽이는 눈물을 감추지 않고 유모와 함께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정광은 두 사람을 바라보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마음에도 없는 한 소리를 하고서.
“그러고 보니 문을 안 닫고 온 것 같군. 도둑 들면 어쩌려고…….”
나가기 전 본 그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마도 진용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 나간 듯했다.
생각보다 순진한 도인이었다.
5
“종 어르신이 돌봐주셨지요. 이 년 전까지…….”
“종 숙부님은 잘 계시죠?”
진용의 물음에 유모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 또 눈물을 글썽거린다.
“혹시?”
“이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에혀.”
“그, 그런…….”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맞은 듯하다. 그놈들이 종 숙부님을 그냥 놔두었을 리가 없을 거라 생각했거늘.
죽일 놈들!
진용은 차마 유모 앞에서 살기를 드러내지는 못하고 이를 악 다물었다.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밤에 황궁에서 돌아오다 도적에게 당했다오. 세상에, 해칠 사람이 없어서 그런 분을 해치다니… 에구, 나쁜 놈들 같으니라구.”
도적이라고? 도적은 무슨!
북경의 내성에서 도적들이 돌아다니며 관인을 해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술 먹고 행패 부리던 자가 술김에 길 가던 종 숙부를 그리했다는 편이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범인은 잡았습니까?”
유모는 고개를 저었다.
“한 달 정도 바짝 시끄럽더니 조용해지고 말았다오.”
“그럼 숙모님하고 송 누님은 어떻습니까?”
유모는 진용의 손을 잡더니 어렵게 입을 떼었다.
“종 어르신이 죽기 며칠 전 두 분은 외가로 갔다오. 듣기로는 송 아가씨의 외조부님 칠순이 다가와서 갔다고 하는데, 이 늙은이가 생각하기로는 꼭 그런 것만이 아닌 것 같았지요.”
아마도 위기를 느끼고 숙모와 송 누님을 피신시켰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두 분만 보낼 종 숙부가 아니다.
“종 어르신의 시신도 나중에 다른 사람이 와서 모셔갔다고 하더구려.”
진용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랬군요. 그랬어요. 결국 저희 때문에 종 숙부님 가족이…….”
“에구, 세상도 무심하시지…….”
또다시 말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침내 진용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유모에게 물었다.
“유모, 아버지는…… 어떻게……?”
유모는 멍한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더니 천천히 눈을 내려 진용을 바라보았다. 유모도 말을 꺼내기가 무척이나 힘든 표정이었다.
그런데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떼는 유모의 표정이 조금 아리송하다.
“사라지셨다오.”
“예?”
놀란 눈을 크게 뜬 진용을 향해 유모가 눈을 좁히며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아마 황궁에서 난리가 나기 며칠 전이었을 겁니다요. 나으리가 계시던 건물이 부서졌는데, 나으리께선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들었지요.”
사라지셨다?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육 장군이 찾아와서 알려줬어요. 나으리가 사라지셨다고.”
“육 장군이라면…… 혹시? 육두강?”
“맞아요, 도련님. 바로 그분이 이 늙은이에게 간간이 소식을 알려줘서 그나마 늙은 목숨을 악착같이 부지하고 있었지요. 행여나 나으리가 돌아오실까 해서…….”
말인즉, 안 오셨다는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빠져나오긴 정말 빠져나오신 걸까?
6
“일단 황궁에 들어가 볼 생각입니다.”
진용의 말에 정광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들어갈 방법이 있나?”
“금의위에 육두강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만나면 무슨 수가 생길 것 같습니다.”
“금의위?”
휘둥그레진 눈에 어이가 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그분이 유모에게 소식을 전해줬다 합니다. 그러니 만나보면 보다 정확한 것을 알 수 있겠지요.”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정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가볼 건가?”
“지금 가죠.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으니.”
진용의 방에서 나온 두 사람이 마당에 들어섰을 때다. 유모가 부엌이 있는 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손에는 찻주전자를 들고서.
“어딜 가실려구?”
“예, 유모. 육 장군님을 좀 만나보려고요.”
“가실 때 가시더라도 차는 한잔 마시고 가시구려.”
유모는 대답도 듣지 않고 두 사람의 옆을 지나 다실로 들어가더니 다탁에 찻잔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찻잔에 차를 따랐다.
순간 진용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찻잔에서 은은히 피어오르는 다향, 아버지가 그리도 좋아하시던 그 향기였다.
“어떻게… 설마……?”
“전에 남은 것을 잘 보관해 두었다오.”
유모의 말에 진용은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정광을 향해 말했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야 없겠습니까? 마시고 가죠.”
정광도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찻물이 가득한 찻잔을 바라보았다.
“뭔 차인가? 향기가 기가 막힌데?”
“용정입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광은 다실의 문턱을 넘고 있었다.
“용.정? 하하! 차 한잔 마실 시간이야 얼마든지 있지. 뭐 하나? 어서 오게.”
7
육두강은 내성의 동문 쪽에 살고 있었다.
십 년 전만 해도 백부장이었던 그는 이제 버젓한 천호장이 되었다. 금의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핵심 인사가 된 것이다.
진용이 정광과 함께 육두강의 집에 찾아간 시각은 미시 말. 육두강이 아직 황궁에서 돌아오지 않은 때였다.
“너무 일찍 왔나 보군요.”
“거, 황궁에는 모두 농땡이 피우는 사람만 있다더니…….”
“그런 사람이 천호장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뇌물을 쓰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하던데…….”
“거참, 도장님도. 꼭 어디서 그런 이야기만 듣고 와서는……. 하긴 이십 년 동안 놀기만 한 분이 뭘 알겠습니까마는.”
“잉? 뭐야?”
“식사나 하러 가시죠? 뭐 드실래요?”
정광은 돌아서는 진용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노려보고는 대뜸 소리쳤다.
“선육탕!”
길을 되돌아 나가자 대로에 깃발이 내걸린 주루가 보였다.
두 사람은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주루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평루.]
“천하태평, 진짜 주루다운 이름이군.”
정광의 태평스런 말에 진용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태평루로 다가갔다.
그런데 두 사람이 태평루의 입구로 다가갈 때다.
촤르륵, 주루의 주렴이 뜯길 듯이 걷히더니 누군가가 빠르게 튕겨져 나왔다.
자신의 의지에 의해 그런 것이 아닌 듯, 튕겨 나온 그는 서너 바퀴 바닥을 구르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그의 뒤를 따라 주루를 나온 두 관인이 그의 양옆을 막아섰다.
금색 무복을 입은 자들이었다.
그들을 보고 정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금의위?”
금의위의 제기로 보이는 자들 중 한 사람이 힐끔 정광을 일견하고는, 바닥을 구르고 몸을 일으킨 자를 향해 소리쳤다.
“어딜 도망가려 하느냐?”
가고자 하는 곳은 진용과 정광이 서 있고, 양옆은 두 명의 관인이 막고 서 있다. 남은 곳은 주루의 입구뿐. 그러나 그는 주루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했다.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금의위에서 왜 나를 핍박하는 것이오?”
스물이 조금 넘어 보이는 나이. 깨끗한 얼굴에 입고 있는 백의가 단아한 것으로 보아 일반 평민은 아닌 듯했다.
그는 금의위의 행사에 불만인 듯한 표정이면서도 감히 대들지는 못하고 주루의 입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 주루의 주렴을 빠져나온 한 사람이 나직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런지 모른단 말이냐?”
그는 금빛 무복을 입은 금의위 제기와 다르게 금빛 갑주를 착용하고 있었다. 적어도 백호장 이상이라는 뜻.
그가 나서자 백의인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감히 도독 어르신의 따님을 농락하고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다니, 참으로 얼굴 가죽이 두터운 놈이로구나.”
백의인이 조금은 기가 죽은 목소리로 사정하듯이 말했다.
“남녀 간의 애정지사를 어찌 그대가 평가한단 말이오?”
“흥! 애정지사라고? 지나가는 여인을 둘러싸고 협박을 일삼는 게 애정지사란 말이냐?”
금의위의 장수는 백의인을 향해 일갈을 내지르고는 주위를 쓸어보았다. 그러다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진용과 정광을 발견하고는 눈을 빛냈다.
“그대들도 이자와 볼일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