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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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75화
75화
사실 요마의 진기나 멸혼마의 진기를 흡수하긴 했지만, 그중 극히 일부만이 진용의 진기와 합쳐졌다.
흡수한 진기 중 일부만이 자신의 공력과 융화된다는 것쯤은 진용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나칠 정도로 적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기운이 마령석의 기운을 녹이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진용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은…… 녹은 것 같다, 시르.’
세르탄도 그 사실을 알고 놀랐는지 말이 떨려 나왔다. 왠지 몰라도 희열에 찬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이 말썽꾸러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아무래도 언제 날 잡아서 그 이유를 파헤쳐 봐야할 것 같다.
잠시 후 정광을 끝으로 모두 눈을 떴다.
그러자 뜨거운 차 대신 차가운 냉수를 한 사발 들이켠 위지홍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수하들이 너무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니 곧 어떤 식으로든 명령이 떨어질 것입니다.”
위지홍의 말투에는 차가운 살기가 배어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번 일에 투입된 삼십여 명의 수하 중 살아남은 사람은 열두 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천제팔성 중 세 사람이 중상에 가까운 부상을 입었다.
단 한 번의 싸움에서 입은 피해로는 수십 년래 최대의 피해였다.
“백리 형이 화를 많이 내겠군.”
유태청의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 말속에는 무서운 뜻이 담겨 있었다. 백리 형이란 천제성주 백리자천을 말함이다.
그가 화를 낸다는 말은 곧 강호에 폭풍이 분다는 말.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위지홍은 유태청의 말에 무겁게 대답하며 한쪽에 널브러져 있는 혈심마를 바라보았다.
“고 천호, 저자를 본 성에 넘겨주지 않겠나?”
한쪽에서 묵묵히 앉아 있던 진용이 눈을 번뜩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지 대협, 저 역시도 저자에게 알아볼 것이 있습니다.”
“심문해서 정보를 얻는 거라면 본 성이 나을 거라 생각되네만.”
진용이 묘한 표정으로 답했다.
“글쎄요, 꼭 그렇다고만 볼 수도 없지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유태청이 의아한 얼굴로 진용을 쳐다보았다.
“천호라면…… 자네, 관인이었나?”
진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의위에 있습니다.”
유태청이 정말 놀랐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관인 중에 자네 같은 고수가 있었다니……. 한데 관인이 왜 강호를 돌아다니는 것인가?”
그 물음이 던져지자 위지홍은 언뜻 드는 생각에 급히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진용은 위지홍이 미처 입을 열 틈도 주지 않고 유태청에게도 천혈교와 황궁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시겠지만 이 일은 역모와 관계된 일입니다. 하니 노선배님께서도 신중히 생각하고 움직여 주셨으면 합니다.”
“신중히 생각하고 움직여라?”
“어차피 천혈교가 노선배님을 가만두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괜찮으시다면 함께 움직였으면 합니다만?”
“흠…….”
유태청은 신중한 표정으로 비음을 흘리고는 진용을 향해 말했다.
“혈혈구마를 움직일 정도면 분명 예사 놈들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 게다가 자네 말대로 한 번 공격한 놈들이 두 번 공격하지 말란 법도 없고 말이네. 그런데 자네, 그들을 상대할 방도는 있는가? 금의위가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졌다 하나, 그것은 일반인들이 봤을 경우지 강호인들에게는 그리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되는데.”
유태청의 가슴에 호기심이라는 괴물이 슬며시 들어앉았다는 것을 느낀 진용은 조용히, 그리고 나직이 답했다.
“위지 대협이 도와주기로 했으니 천제성도 어느 정도는 도와줄 테고, 또 여기 계신 팽 노선배를 비롯해서 다른 몇 분도 천혈교를 치는 일에 동참할 것입니다. 거기에 노선배님이 힘을 보태주신다면, 그 일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만…….”
진용의 말대로라면 천하에 상대하지 못할 곳이 없었다.
그런데 천제성이 과연 저 젊은 천호의 뜻대로 움직여 줄까? 팽가가 전격적으로 나서줄까?
아직 확실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든, 아니면 복수를 하기 위해서든 천제성과 팽가도 천혈교와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유태청으로선 천혈교가 계속 자신을 공격할 경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십절검존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싸우는 수밖에!
오랜 세월 잠들었던 무인의 피가 자신도 모르게 끓어오르자, 유태청은 차갑고도 강한 어조로 가슴 깊은 곳에서 한 자루 검을 꺼내 들었다.
“노부에게 검을 들이댔을 때는 그만한 각오도 했겠지! 친구들에게 아직 내가 골방에 처박힐 정도는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겠어!”
3
혈심마에 대한 심문은 진용이 직접 맡았다.
위지홍은 진용의 심문이 별 효과가 없을 경우 천제성으로 데려가 전문가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진용에겐 나름의 방법이 있었으니까. 바로 마법이.
세르탄에게 마안을 배웠다면 더 쉬웠을 일이다. 그러나 세르탄이 악착같이 버티며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환각 마법을 조합해서 쓰는 수밖에.
<환상의 일루젼, 현혹의 데즐! 그대 앞의 모든 것은 환상이며 또한 사실이다. 나는 그대의 주인, 나의 명에 무조건 복종하라!>
혈심마의 귀청을 울리며 전음으로 펼쳐진 환각 마법, 일루젼 데즐은 혈심마를 충실한 종처럼 만들어 버렸다.
무공을 잃은 혈심마가 이전보다 공력이 훨씬 늘어난 진용의 마법을 견딜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으으으……. 예…… 그대는 나의 주인…….”
혈심마의 동공이 커지고 초점이 허공에 걸쳐지자 진용은 주문을 외듯이 말했다.
“말하라, 천혈교에 대해 그대가 알고 있는 것을! 어느 하나 빼놓지 말고!”
결국 일각도 지나지 않아서 혈심마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줄도 모르고 자신이 알고 있는 천혈교에 대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일 뿐.
너무도 어이없는 상황에 사람들은 멍하니 진용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심문 방법에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이 사실인지 믿기 힘들다는 모습들이었다.
“혹시…… 섭혼대법인가?”
유태청의 질문에 진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환각 마법이나 섭혼대법이나, 결과만 봐서는 비슷하게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용은 자신이 펼친 마법을 섭혼대법이라고 할 수 없었다. 섭혼대법은 정파인이라면 모두가 경원시하는 마의 대법 아니던가.
“섭혼대법은 아닙니다. 굳이 말한다면…… 환각대법이라고 할까요?”
“환각대법? 환각에 빠진 상대를 자유자재로 조종한다, 그 말인가?”
“그와 비슷한 거죠. 혼을 빼앗는 사악한 대법과는 근본부터가 다릅니다.”
혈혈구마가 천혈교에 들어간 시기는 삼 년 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였다.
죽은 세 사람의 후인을 키운 그들은 전날보다 한층 강해진 자신들의 실력을 믿고 십절검존을 찾아가 복수를 하기 위해서 은거지인 혈운곡을 나섰다.
그때 그가 나타났다.
금면의 수라탈을 쓴 그는 자신을 천혈교주라고 칭했다.
어리둥절해 있는 그들에게 천혈교주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십절검존을 죽이게 해주겠다. 대신 십 년간 나의 손발이 되어라.”
십절검존이라는 이름이 동네 똥개 이름인 줄 아나?
혈혈구마는 코웃음을 치며 일거에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혈혈구마를 공격했다.
그 후 두 시진도 지나지 않아서 혈혈구마는 차례대로 그의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처참한 패배. 한껏 자신감에 차 있던 혈혈구마는 망연자실 넋을 잃고 할 말을 잃었다.
복수를 하겠다고? 십절검존을 죽이고 혈혈구마의 이름을 천하에 드날리겠다고?
말짱 개소리!
우습지도 않았다. 처음 들어보는 단체의 교주라는 자에게 무참히 깨진 자신들이 천하제일을 다툰다는 십절검존을 죽인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말이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십절검존. 그 이름이 넘을 수 없는 하늘의 벽처럼 보였다.
차라리 그냥 혈운곡에 처박혀 나오지나 말 것을……. 후회막심이었다.
그때 그가 다시 말했다.
“그따위 실력으로는 십절검존의 옷깃도 건들 수 없다. 앞으로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그러면 그대들의 원대로 십절검존을 죽이고 천하에 위명을 날릴 수 있을 것이다! 선택은 자유! 어찌할 것인가?”
혈혈구마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불가능하리라 생각한 파천의 문이 다시 열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당신…… 아니, 교주 말대로 하겠소.”
그러자 턱! 하나의 목갑이 무릎을 꿇은 혈혈구마의 앞에 던져졌다.
“내공을 높일 수 있는 단약이다. 본 교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다시 그대들의 거처로 돌아가 힘을 키워라.”
결국 그들은 다시 혈운곡으로 되돌아가서 천혈교주가 건네준 마단을 복용하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절치부심하며 힘을 키운 지 일 년 구 개월, 마침내 천혈교주에게서 연락이 왔다, 십절검존이 은거하고 있는 곳에 대한 정보가 담긴 서찰과 함께.
그리고 그들이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천제성이 그들을 뒤쫓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천혈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천혈교주의 진정한 정체도 몰랐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천혈교주가 그들을 제압하며 쓴 무공의 특성, 그리고 마단.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에 비하면 매우 유용한 정보였다.
“그가 일장을 휘두르면, 그의 두 손에서 악마의 그림자가 튀어나오는 듯했습니다! 시뻘건 악마가!”
4
진용을 비롯한 일행이 통나무집을 나선 것은 한 시진이 더 지나서였다.
혈혈구마 중 셋이 살아서 도망쳤다.
천혈교가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을 터. 어떤 상황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만큼 좀 더 몸을 완벽히 추스르기 위해서였다.
계곡을 나서는 그들 중 표정이 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막연히 신비 세력이라고만 알고 있던 천혈교라는 이름이 새삼 절정고수들이라는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 대부분의 무게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혈혈구마를 단신으로 제압한 자. 금면수라탈의 천혈교주!
그가 누군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절대적으로 강한 자라는 것이다. 십천존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삼태천에 비견될 정도로.
십절검존(十絶劍尊) 유태청, 천무제(天武帝) 백리자천, 만불성승(萬佛聖僧) 요공.
그 누구도 천혈교주의 정체에 조금이라도 부합되는 사람이 없으니, 일단 삼태천은 아니라고 봐야 했다.
그럼 누굴까? 십천존의 나머지 일곱 중 하나일까?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 아무것도…….
그 물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정광이었다.
축 늘어진 혈심마를 짊어지고 맨 뒤에서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일행의 뒤를 따라가던 정광. 그는 행여나 집 잃은 멧돼지라도 한 마리 있을까 열심히 눈알을 굴리다가 우연히 골짜기 한쪽 구석에 시커먼 뭔가가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부슬부슬한 털이 보이는 것 아닌가.
‘멧돼지는 아닌 것 같고…… 토끼인가?’
산토끼라도 좋았다, 쫄쫄 굶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정광은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힘껏 발을 휘둘렀다.
휙! 정광의 쇠 신발이 빨랫줄처럼 날아갔다.
많이 해본 솜씨.
퍽! 떼구루루…….
정통으로 맞은 그 시커먼 물체는 일 장가량 튕겨지더니 힘없이 얕은 골짜기 아래로 굴러갔다.
튕겨지던 물체의 반대쪽 모습이 보인 것은 그때였다.
그제야 정광은 그 물체가 무엇인가를 알아보고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헛!”
정광의 호들갑에 빠르게 십여 장 앞을 나아가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진용이 나서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도장님?”
정광은 손가락으로 골짜기를 가리켰다.
진용은 정광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미처 회수하지 못한 정광의 쇠 신발이 옅게 깔린 눈 위에 뒤집힌 채 놓여 있었다.
그리고 저만치 또 다른 뭔가가 보였다.
사람의 머리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