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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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74화
74화
7장. 또 다른 죽음
1
몽혼혈마가 괴이한 죽임을 당한 직후, 요마가 죽고 멸혼마마저 젊은 놈의 손에 죽어버렸다. 그것도 결코 정상적인 죽음이 아닌 왠지 섬뜩한 수법에 의해서.
광혼마는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고 싶은 생각이 눈곱 반절만큼도 없었다.
“떨어져라, 거머리 같은 놈!”
그는 정광을 향해 일순간에 십팔 장을 휘둘렀다.
그러고는 정광이 날개 뜯겨진 나비처럼 정신없이 날아다니며 피하자, 유리한 싸움도 마다하고는 죽어라 도망을 쳐버렸다.
그러자 쇠신발을 양손에 든 정광이 주저앉아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딜 도망가! 아직 끝나지 않았단 말이다! 이리 안 와! 헥! 헥!”
삼 년 쓰고 버리기 직전의 걸레처럼 되어버린 도복만 봐도 그가 얼마나 힘들게 싸웠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사실 누가 도와준다면 모를까 본심은 절대 다시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으니 일단 큰소리는 치고 봤다.
그런 정광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천제팔성 중의 두 사람, 비검신영 교은형과 거룡패권 석철강이 바로 그들이었다. 특히 교은형의 눈빛은 새로운 세계를 본 감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정광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저는 교은형이라 합니다. 도장의 도움,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허허!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이까.”
“과연, 도문에 계신 분이라 마음이 넓으시군요. 한데… 도장의 신법은 정말 굉장하더군요.”
“음하하! 신법이라면야…….”
두어 마디 오가는 사이, 정광과 교은형은 마치 십년지기라도 되는 듯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부러진 팔뚝을 대충 옷으로 감싼 석철강이 볼멘소리로 한 소리 했다.
“형님, 수하들의 시신을 저대로 놔둘 거유?”
한편 진용은 널브러진 멸혼마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갈라진 사이로 쪽빛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가슴속은 납덩이가 들어찬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광혼마가 달아나건만 쫓을 기분도 들지 않았다.
기절해 있는 혈심마가 없었다면 억지로라도 쫓았을지도 모르지만, 심문을 할 대상이 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자세 그대로 진용이 입을 열었다.
“왜 손을 쓰지 않으신 거죠?”
무심히 흘러나오는 진용의 말에 유태청은 자신의 손에 들린 천유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백광이 사라진 천유는 차가운 빛을 발하며 고요해져 있었다.
“글쎄… 나도 그걸 모르겠군.”
그러더니 고개를 들고 진용에게 물었다.
“내가 손을 썼다고 해도 그대로 당할 생각은 아니었을 텐데?”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 들어찬 납덩이가 조금은 가벼워졌을지도 몰랐다. 진용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유태청의 가늘게 뜨인 노안은 동공이 작게 수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지난 이십 년 동안의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마 정상으로 돌아오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군. 덕분에 살아났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을 해야겠지.”
“만족하신다 하심은, 그들을 그냥 놔둘 생각이신가 보군요.”
“허허, 설마 이 늙은이더러 그놈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라는 말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
“혈혈구마를 충동질하고 움직여서 노선배님을 공격한 그들, 천혈교 말입니다.”
“천혈교?”
모르고 있었나보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갑작스런 기습을 받은 상황에서 이것저것 물을 시간도 없었을 테니, 이십 년을 은거하며 살아온 유태청이 어찌 천혈교를 알 것인가.
유태청은 깊어진 눈빛으로 나직이 말했다.
“그리되면 그들도 알게 되겠지. 늙은이는 결코 검만으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야.”
노인에게는 또 다른 무기가 있다. 더구나 십절검존쯤 되면 그 무기는 결코 검 못지않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칠십 년간의 경험, 그리고 십절검존이라는 이름. 그것은 그 무엇보다 무서운 무기였다.
진용도 유태청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계곡의 입구로 몇 사람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위지홍과 팽기한 등이었다. 그들은 빠르게 계곡의 중심부로 다가오더니 주위를 훑어보고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절정의 고수들, 흔적만 보고도 그 흔적을 남긴 사람이 어느 정도의 고수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척은수의 설명을 듣고서야 자신들과 싸운 자들이 이십 년 전에 죽은 혈혈구마의 후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자신들은 쌍혈검마와 잔혈마가 도망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하물며 안으로 들어온 육마야말로 이십 년 전의 혈혈구마 본인들이 아니던가.
그렇다 해도 계곡에 남은 흔적은 그들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한쪽에 힘없이 서 있다 자신들을 보고 고개를 숙이는 교은형이나 석철강이 살아 있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위지홍은 두 사람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유태청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위지홍입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머리는 흐트러져 있고, 표정도 창백한 것이 아무래도 내상이 심한 듯 보였다. 게다가 옷은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으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럭저럭 견딜 만하네.”
비록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유태청은 위지홍을 알아보았다.
그는 눈을 돌려서 팽기한을 바라보더니 반가움과 놀라움이 겹친 눈빛을 지었다.
“오랜만이군.”
“유 형을 다시 보게 되다니, 내 일만 아니었다면 삼 일 밤낮을 취하도록 마시고 싶구려.”
“술 좋아하는 것은 여전하나 보군. 한데 무슨 일로 직접 나섰는가? 설마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닐 거고.”
“아들을 죽인 놈을 잡으러 온 거외다.”
순간 유태청의 눈썹이 굼틀거렸다.
자신 역시 혈혈구마에게 아들을 잃지 않았던가?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다.
그때 위지홍이 나서서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해 줬다.
“요마에게 팽가의 사람들이 당했습니다. 그자도 이곳에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요마?”
유태청은 가볍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요마의 시신을 향해.
위지홍은 직감적으로 유태청의 행동을 이해하고는 요마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아는 요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의혹에 찬 위지홍의 눈이 유태청을 향했다. 그러자 유태청이 입을 열며 턱짓으로 진용을 가리켰다.
“그가 바로 요마네. 저 젊은이에게 죽었지.”
“예?”
위지홍은 물론이고 팽기한마저 어리둥절해 있다가 놀란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진용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만 해도 중년인의 얼굴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오뉴월 가뭄에 말라비틀어진 오이처럼 주름이 많고 쭈그러든 모습이어서 그렇지, 분단장한 얼굴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요마가 저런 모습으로 죽어 있단 말인가?
그때 팽호중이 앞으로 나섰다.
“숙부님, 일단 그 물건이 있나 찾아봤으면 합니다.”
이맛살을 찌푸린 채 요마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던 팽기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팽호중과 팽무중이 나서서 요마의 시신을 뒤졌다.
시신의 품속을 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팽호중이 하나의 흑색 목갑을 꺼내 들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목갑을 열어보고는 환한 표정으로 팽기한에게 목갑을 내밀었다.
목갑 안에는 오리알만 한 붉은 옥이 하나 들어 있었다.
“찾았습니다, 숙부님.”
팽기한은 묵묵히 붉은 옥을 응시했다.
“비록 원수를 직접 갚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물건이라도 찾아서 다행이구나.”
그때였다. 유태청이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팽가가 무슨 일 때문에 홍옥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군.”
팽호중이 목갑을 닫으며 말했다.
“노선배님, 이것은 단순한 홍옥이 아닙니다.”
“홍옥이 아니라고? 그럼 그것이 화령옥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팽호중이 바로 입을 열지 못하자 팽기한이 대신 말했다.
“그렇소이다, 유 형.”
유태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화령옥은 가운데 불꽃 문양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말에 사람들의 눈이 모두 목갑에 쏠렸다.
팽호중은 급히 목갑을 다시 열었다.
붉은 옥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그 옥의 어디에도 불꽃 문양은 보이지 않았다.
“그 말씀…… 정말입니까? 정말 화령옥에는 불꽃 문양이 있습니까?”
다그치듯 묻는 팽호중의 말에 유태청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제야 팽호중은 아차 하며 입을 닫았지만 이미 내뱉어진 말, 주워 담기에는 늦어버렸다. 팽호중이 눈을 내리깔자 유태청이 굳은 어조로 말했다.
“내 이름을 걸지.”
십절검존 유태청의 이름이 주는 무게에 팽호중은 숨도 쉬지 못했다. 다행히 팽기한이 나서서 무겁게 짓눌린 분위기를 해소시켰다.
“유 형의 말씀을 어찌 못 믿겠소. 다만 화령옥에 한 아이의 목숨이 달려 있다 보니 조카가 미처 앞뒤를 가리지 못한 것 같소이다. 용서해 주시구려.”
팽기한이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사이, 팽무중이 다시 요마의 시신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요마의 품속에서는 화령옥과 비슷한 그 무엇도 찾을 수가 없었다.
뜻밖의 상황에 지켜보고만 있던 진용이 앞으로 나섰다.
“혹시 호가에서 받은 물건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까?”
팽기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가가 우리 팽가를 적으로 삼을 작정을 했다면 모를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네.”
“그럼 목갑은 화령옥이 담겨 있던 목갑이 맞습니까?”
“확실치는 않지만 맞는 것 같네. 목갑에 새겨진 문장은 분명 호가의 문장이네.”
목갑은 맞는 것 같은데 물건은 아닌 것 같단다. 그런데도 호가는 분명 진품을 보냈을 거라고 한다.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진용은 미간을 찌푸리며 팽호중의 손에 들려 있는 목갑을 바라보았다.
“그럼 일단은 저 물건이 홍옥이든 화령옥이든, 호가에서 보낸 물건인지를 먼저 확인해 봐야겠군요.”
“으음…….”
끝내 팽기한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진용이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어디서 잘못된 일인지 알 수 있겠지요.”
“자네 말이 맞네.”
팽기한은 즉시 팽호중에게 목갑을 가지고 팽무중과 함께 호가로 갈 것을 명했다.
그리고 자신은 당분간 진용과 함께하기로 했다.
진용에게 역모에 대해서 들은 이상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 팽기한이 내세운 이유였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상의 이유고 사실은 한 가지 의문 때문이었다.
2
일단 죽은 수하들과 혈혈구마 넷의 시신은 땅에 파묻었다.
상황 정리가 끝나자, 척은수와 교은형, 석철강은 위지홍의 명령에 따라 살아남은 수하들을 이끌고 본성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교은형과 이런저런 작별인사를 길게 나눈 정광이 혈도를 제압한 혈심마를 둘러메자, 남은 사람들은 계곡 가장 안쪽, 텃밭으로 둘러싸인 유태청의 통나무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통나무집 옆으로는 삼 장 높이의 그리 높지 않은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작은 개울을 이루며 흐르고 있었다.
거기다 병풍처럼 사방을 두른 깎아지른 듯한 절벽, 그 절벽에 뿌리를 박고 자란 소나무들…….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통나무집 안에 들어선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절경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은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자리를 잡고 내력을 다스렸다.
천혈교가 혈혈구마만 보냈는지, 아니면 후속 조치를 취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십절검존을 죽이려 혈혈구마를 보낸 자들, 또 다른 누가 온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니 대비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대비의 첫 번째는 몸을 정상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반 시진이 지나자 하나둘 눈을 뜨기 시작했다.
천단심법으로 대주천을 행한 진용도 천천히 눈을 떴다.
한없이 깊어진 그의 눈빛에는 전에 보지 못했던 어둠의 노을이 옅게 깔려 있었다. 마기라고 하기도 그렇고, 사기라고 하기도 그런 묘한 기운이었다.
그 자신도 미묘한 차이를 느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내공이 훨씬 강해졌다. 하지만… 반이 어둠의 기운이다. 요마와 멸혼마의 기운이 마령석의 기운을 녹인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