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6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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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68화
68화
“오령주와 칠령주가 구마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알았다. 우리도 곧바로 태원으로 갈 것이다. 전서를 태원 지부로 날려서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라. 그리고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나에게 알리도록!”
“존명!”
위지홍은 일단 수하를 먼저 떠나보냈다.
마차로 다가온 그는 앉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마차 안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진용을 향해 말했다.
“즉시 출발해야 하겠네. 아무래도 놈들의 행동이 심상치 않아.”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 만큼 궁금한 점도 적지 않았다.
특히 유태청의 이름에 팽기한은 노안을 가늘게 떨기조차 했다.
“십절검존이라고 했나?”
“가면서 말씀드리죠. 한시가 급한 것 같습니다.”
가는 길에 위지홍은 돌아가는 상황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팽기한과 팽가쌍호는 표정이 굳어버렸다.
천혈교에 대한 것도 그렇고, 천제성의 대대적인 움직임도 그렇고, 도대체가 강호의 움직임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팽가가 모를 정도라면 천하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위지홍의 이야기에 모두가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진용이 조용히 물었다.
“십절검존 유태청과 천수무적 구양무경을 비교하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아십니까?”
뜻밖의 질문에 위지홍이 진용을 돌아보았다.
“흠, 뭐라 말하기 곤란한 질문이군.”
위지홍이 대답을 망설이자 팽기한이 입을 열었다.
“이십 년 전만 해도 천수무적은 십절검존에 비해 뒤진다 할 수 있었지.”
위지홍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용이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은 별 차이가 나지 않을 거라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십절검존이 한계를 깨지 못했다면 그럴 것이네. 천수무적 구양무경이 거의 따라잡았을 테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정상을 남겨둔 채 벽에 부딪친 자와 쉼없이 올라간 자와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좁혀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결국 십절검존을 만나보면 구양무경의 무위를 짐작할 수 있단 말이군.’
‘그자들이 저 팽가 늙은이보다 더 강하다는 거야?’
‘아마, 훨씬 더.’
‘……인간들은 도대체가 알 수가 없어. 어떻게 보면 한없이 나약하고, 어떻게 보면 웬만한 마족보다 강하고…….’
‘나는 마족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더 알 수가 없는데?’
‘그거야 당연하지. 위대한 마족의 능력을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겠어?’
‘그러니까 세르탄이 자세히 알려줘 봐. 일단 숨겨놓은 것부터 하나씩…….’
‘싫어!’
-내가 또 당할 줄 알고?
2
세 사람이 직경 일 장에 이르는 거대한 탁자를 가운데 두고 품 자를 이루며 앉아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가 여느 젊은이보다 강인해 보이고, 이마에 난 커다란 붉은 점이 어지간한 사람을 주눅 들게 할 만큼 괴이한 기운을 뿜어내는 적포노인.
백설처럼 하얀 비단옷의 가슴에 푸른 청송이 수놓아진 백염의 노인.
그리고 쪽빛 청의를 입고 앉은 모습이 고요해진 호수처럼 잔잔하게 느껴지면서도, 눈 깊은 곳에선 꺼지지 않을 것 같은 불길이 머물러 있는 초로인.
단 세 사람이었지만, 한쪽 벽이 십 장에 달하는 대전이 꽉 찬 느낌이었다.
시녀로 보이는 미부가 발걸음도 조심스럽게 들어와 탁자에 찻잔을 내려놓고, 청색과 황색이 절묘하니 조화를 이룬 찻잔에 따랐다. 심신을 맑게 해주는 다향이 대전 안에 맴돌았다.
미부는 찻잔을 채우고 뒷걸음질로 대전을 나갔다.
그때까지도 침묵은 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러다 찻잔이 거의 다 비워질 즈음, 백색 비단옷의 노인이 질식할 것 같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천제성이 은밀히 움직이고 있네.”
“이유가 무엇인가? 고고한 척하던 그들이 은밀하게 움직이다니.”
적포노인의 물음에 백색 비단옷의 노인이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혈혈구마를 쫓고 있네.”
“혈혈구마라……. 정말 그 일 때문에 움직이는 거라고 보나?”
적포노인이 미간을 찌푸리자 백색 비단옷의 노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백리자천의 속을 누가 알겠나? 혈혈구마를 쫓는 게 정의를 위함인지, 아니면 억눌려 있던 야망을 펼치기 위함인지.”
그때 청삼의 초로인이 말문을 열었다.
“그냥 보고 있을 것입니까?”
“그럴 수야 없지. 혈혈구마를 쫓는답시고 천하를 종횡할 게 분명한데, 그리되면 결국 우리는 구경꾼밖에 더 되겠나? 우리는 천하 정세를 주도하기 위해 모였지, 남의 활약을 구경하며 박수 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네.”
“하면, 어떤 계획이라도……?”
백색 비단옷의 노인이 차가운 웃음을 배어 물고 말했다.
“그들이 혈혈구마를 쫓는다면, 우리는 그들을 쫓는 것이네.”
“예?”
“올라온 정보대로라면 혈혈구마는 예전의 혈혈구마가 아니야. 전보다 훨씬 강해졌고, 게다가 전처럼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배후가 있어.”
적포노인의 눈빛이 번쩍였다.
“전보다 강해진 혈혈구마를 거느릴 만한 단체가 어디란 말인가?”
백색 비단옷의 노인이 기이한 눈빛을 흘리며 물었다.
“천혈교라고 들어봤는가?”
“천혈교?”
“군사의 말을 빌리자면, 아직 강호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능히 본 맹의 한 곳과 비슷한 힘을 지녔다 하더군.”
“그런……!”
청삼의 초로인이 가볍게 놀란 표정을 짓자 백색 비단옷의 노인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의 뒤를 쫓으며 그들이 놓친 사냥감을 거둬들이는 것이야. 그럼 그들은 닭 쫓던 개 꼴이 되겠지.”
“그거 재미있겠군!”
“결국 강호의 골칫거리, 혈혈구마를 제거한 공은 우리가 갖는다 그 말이군요.”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천제성의 입지도 조금은 약해질 수가 있지. 거기에… 덤을 얻을 수 있다면 더 좋을 테고 말이야. 후후후…….”
덤. 덤이라…….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적포노인의 눈에서도 불꽃이 피어났다.
“흠, 백리자천의 코를 납작하게 한다, 이 말이지? 좋아! 구양 맹주의 계획대로 하세.”
결국 청삼의 초로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좋습니다. 한데, 누굴 보내실 생각이신지?”
그 말에 백의 노인, 구양무경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는 염마존(閻魔尊) 영호광과 일양마검(一陽魔劍) 천인효의 눈을 하나하나 바라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들을 시험해 볼 절호의 기회라 보네만.”
“그들? 설마……?”
청삼인과 적포노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기대 반, 우려 반의 눈빛.
“너무 이르지 않은가?”
“너무 안에서만 키워선지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네. 실전을 경험하기에 지금처럼 좋은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야. 게다가 척천단이 그들의 뒤를 따를 것이네. 그러니 그들로 인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우선은 일대만 보내기로 하지.”
“으음, 그렇다면야……. 좋네. 그렇게 하지.”
영호광이 고개를 끄덕이자 구양무경은 천인효를 바라보았다.
“못 보낼 것도 없죠.”
천인효마저 찬성하자 구양무경의 얼굴에 만족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럼 무영천귀(無影天鬼)를 산서로 보냈겠네.”
3
진용 일행이 태원부에 도착한 것은 이틀이 지나서였다.
위지홍은 태원부의 동문을 들어서자마자 비령단의 누군가가 남긴 표식을 근처 객잔의 기둥에서 찾아냈다.
그로부터 일각이 지났을 즈음, 위지홍은 태원부 동쪽 거리에 있는 작고 조용한 장원으로 진용 일행을 안내했다.
그들이 위지홍을 앞세우고 장원 안으로 들어가자 남색 무복을 입은 무사 하나가 일행을 맞이했다.
그는 위지홍을 알아본 즉시 무릎을 꿇고 작지만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비령단 산하 제사대주 오공혁이 이령주를 뵙습니다!”
“놈들의 현재 위치는?”
“오늘 아침, 넷 모두가 천암산에 들어섰다는 보곱니다, 령주! 현재 오령주와 팔령주께서 수하들을 이끌고 그들을 쫓고 계십니다.”
한 사람의 령주 휘하에는 열 명씩의 수하가 있다. 모두 일당백의 고수들이다.
그러나 상대는 혈혈구마 중 넷, 그것도 과거보다 훨씬 강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자들이다. 결코 수월한 상대가 아니다.
“다른 자들의 행방은 찾지 못했는가?”
“나머지 다섯은 섬서에서 모습을 보인 후에 행방이 묘연해졌다 합니다.”
“으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위지홍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들의 행적을 놓쳤을 리는 없을 텐데?’
그때 진용이 물었다.
“위지 대협, 그 다섯이 천암산으로 올 확률은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그들이 인근에 나타났다면 비룡단의 눈에 뜨이지 않았을 리가 없네.”
그 말에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진용이 다시 물었다.
“비룡단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던 혈혈구마가 한꺼번에 넷이나 행적이 밝혀졌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는군요. 혹시 그 과정에서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이상한 점? 이상한 점이라…….”
눈살을 찌푸린 위지홍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상한 점이라 하기는 뭐하네만, 사실 꽁꽁 숨어 있던 그들의 행적이 좀 쉽게 밝혀진 점은 없잖아 있다고 봐야겠지. 그 바람에 비령단이 정신없이 바빠졌…….”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위지홍이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진용이 물었다.
“만일 아홉이 모두 천암산에 모인다면, 현재 천암산에 있는 전력만으로 그들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위지홍의 표정이 딱딱하니 굳었다.
“설마…… 자네 말은?”
“갑자기 행적이 밝혀진 자들이 넷, 나머지 다섯은 그 행적조차 놓친 것으로 압니다. 강남에 있는지 북해에 있는지. 그런데 보란 듯이 행적을 드러낸 넷이 한군데로 모이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단순히 십절검존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일까요? 쫓기는 상황임을 알고 있을 텐데도 무리수를 둘 정도로 그들이 그렇게 멍청할까요?”
진용이 위지홍의 부릅뜬 눈을 직시했다.
“그들 뒤에는 암중 세력인 천혈교가 있다고 했지요? 위지 대협께선 그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천혈교의 힘이 혈혈구마를 아우를 정도로 강한 이상 그들이 천제성의 움직임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정광이 진용의 말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당랑포선 황작재후(螳螂布扇 黃雀在後)라 그 말이군.”
버마재비는 매미를 노리고, 참새는 버마재비를 노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노리고 있는 사냥꾼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말을 그렇게 자주 들으면서도 언제나 남의 일 같이만 생각한다. 언제든 자신의 뒤를 노리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하긴 오죽하면 장자(長子)조차도 그 상황에 닥치고 나서야 자신의 우매함을 깨달을 수 있었겠는가.
위지홍의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었다. 자신이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거울에 비추어 보기 전에는 자신의 등에 무엇이 묻어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자네는…… 혈혈구마가 모두 천암산에 모였을 거라 생각하는군.”
“그렇든 그렇지 않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요.”
그렇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상대는 혈혈구마. 그것도 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아니던가.
위지홍은 팽기한을 바라보았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일단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바로 떠날까 합니다만.”
“그리하는 게 좋겠군.”
두충은 태원부에 남겨두기로 했다.
마다 할 두충이 아니었다. 한겨울에 눈 덮인 산을 오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그였다.
더구나 이름만 들어도 살벌한 혈혈구마와 싸워야할지 모르는 판이다. 마다하기는커녕 감지덕지할 일이었다.
‘함께 가자고 했으면 진짜 도망쳐버렸을지 모르는데…….’
4
태원부 남문을 나서 서남방으로 백여 리를 달리자, 흰 모자를 깊게 눌러쓴 천암산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동서로 오십 리, 남북으로 삼십 리, 마치 거룡이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는 천암산은 짙은 구름 아래 정적만이 맴돌고 있었다.
잠시 후, 진용 일행은 오공혁의 안내로 비룡단이 기다리고 있다는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방에 흩뿌려진 붉은 핏물뿐이었다.
핏물을 본 위지홍의 눈빛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젠장, 벌써 붙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