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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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59화
59화
“예?”
“삼존맹에 대해 부탁을 받은 것이 있거든요. 물론 삼존맹 전체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부탁을 들어주려면 삼존맹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을 텐데…… 어쨌든 기회가 되면 해왕방과 일양회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군요.”
어이가 없다는 듯 초연향이 물었다.
“삼존맹과 마찰이라구요? 대체 그 부탁이 뭐기에 그런 거대한 강호 세력과의 마찰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죽어 마땅한 자가 있습니다. 저를 돌봐준 할아버지의 원수죠. 저는 할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그를 죽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십 년이 걸리더라도.”
진용의 대답에 초연향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누군데 죽어 마땅한 자란 말인가요?”
진용은 지그시 초연향을 바라보다가 나직이 이름 하나를 내뱉었다.
“그의 이름은…… 구양무경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천수무적이라고 부르죠.”
“누구요? 설마? 마, 맙소사!”
어리둥절해하던 초연향은 그 이름의 주인을 생각해 내고는 끝내 입을 쩍 벌리고 말을 잊었다.
이 사람은 하늘을 무너뜨리겠다고 하는 것이다.
열 개의 하늘 중 하나를!
초연향은 차를 한잔 다 비운 후에야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후로 진용은 초연향과 몇 가지 사소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천혈교에 대해서 알아낸 사실은 되는대로 빨리 연락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일양회와 해왕방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정보를 모아보겠다고 했다.
진용은 이미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작심했었다. 설령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기에 자신이 거기에다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충분히 초연향이 바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일어설 때까지 진용은 초연향의 손을 잡아보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에라, 소심한 놈! 멍청한 놈! 남자란 놈이…….’
진용은 속으로 소심하기만 한 자신을 책하며 고개를 돌렸다. 초연향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초 소저…….”
그런데 바로 코앞에 초연향이 있었다. 깊은 생각에 빠진 모습.
그녀는 미처 진용이 선 것도 모르고 계속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진용의 가슴이 눈앞에 닥치자 움찔 걸음을 멈추고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쳐들었다.
“예? 왜, 왜요?”
묻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다.
바로 코앞에서 흘러들어 오는 풀꽃 향기.
머릿속이 몽롱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진용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덥석!
“어머! 허억! 읍!”
시간이 멈췄다. 사고도 멈췄다. 세상이 멈춰 버렸다.
손끝에서, 입술 끝에서 시작된 벼락이 발끝으로 치달리고, 머리꼭대기를 뚫고 관통해 버렸다!
‘시, 시르…… 무슨 일……?’
진용은 몽롱한 와중에도 초연향 몰래 재빨리 중지를 말아서 뒤통수에 대고 튕겼다. 꿀밤을 먹이듯이.
세르탄도 기절(?)해 버렸다.
이제 두 사람만이 황홀한 기분으로 우주 한가운데를 유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만에야 방문이 열렸다. 방을 나서는 진용의 얼굴에선 가벼운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입가에 헤벌쭉 맺힌 웃음이 지워질 줄을 모른다.
정광이 하군상에게 물었다.
“왜 저런 표정이지? 너 혹시 아는 것 있냐?”
하군상이 정광을 쓱 흘겨보고는 말했다.
“도사님이 별 걸 다 알려고 하시네. 그냥 신경 꺼요. 괜히 배 아파 하시지 말고.”
정광의 눈이 반짝 빛났다.
“혹시… 방 안에서……?”
두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입술에 뭐가 묻은 것 같은데…… 뭐 먹고 온 거지?”
붉게 달아오른 두 뺨에 손을 댄 초연향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배시시 웃었다.
“고마워요. 폭풍우 몰아치는 망망대해에서 절대 뒤집히지 않을 배를 만난 것 같아요. 다음에는 더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마지막 말은 모기 날갯짓 소리보다 작게 흘러나왔다.
“조금 더 해도 됐는데…….”
진용은 정문을 십여 장 남겨놓고 걸음을 멈추었다.
하주령이 정문의 입구에 서서 빙긋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호호! 이게 누구신가요? 금의위의 일로 바쁘신 분께서 어쩐 일이신가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했던가?
진용도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마주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군요. 잠깐 볼일이 있어 왔을 뿐입니다. 그럼 다음에 뵙지요.”
진용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하자 하주령이 새침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였다.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저 여자는 누굽니까?”
두충이 멍하니 쳐다보다 슬며시 정광에게 물었다. 정광이 이마를 찌푸리며 대답했다.
“이 집 주인 딸. 왜? 관심 있냐?”
두충이 힐끔 하주령을 바라보고는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관심은 무슨……. 저는 저렇게 대가 센 여자하고는 못삽니다.”
“왜? 서방 잡아먹을 여자로 보여서?”
정광의 빈정거림에 하주령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하지만 정광의 무위를 잘 아는 그녀는 차마 심한 말은 하지 못하고 싸늘한 눈빛만 쏟아냈다.
“도장님께선 말씀이 심하시군요.”
“내가 원래 좀 그렇다오. 거짓말을 못하는 성미라서. 험!”
거짓말을 못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진짜 서방 잡아먹을 여자처럼 보인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드는 정광을 쏘아보며 하주령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진용은 이때라는 듯 하주령을 향해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조금 전의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우리는 이만 가겠소. 일이 바빠서…….”
하주령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어? 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그녀도 보통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굳은 표정을 풀고 진용을 바라보았다.
“제가 잡는다고 머물 분이 아니니 어쩌겠어요. 하지만 언제고 한 번 단둘이 뵙고 싶군요.”
아름다운 여인의 은근한 목소리.
진용은 가타부타 대답도 하지 않고 가볍게 다시 고개만 숙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초 소저에게 허튼짓만 해봐라. 가만 안 둘 테니까.’
‘흥! 시건방진 놈!’
하주령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그녀는 진용이 정광과 두충을 데리고 구룡상방을 나서자, 어정쩡하니 서 있는 하군상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잠깐 저 좀 봐요.”
“응? 어, 그래.”
보자는 이유야 뻔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겠지?
그는 끈적끈적한 진창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코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야만 했다.
‘네가 어찌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겠냐? 쯔쯔쯔, 어리석은…….’
그때 밖으로 나선 진용 일행에게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글쎄, 여자란 얼굴만 이쁘다고 다가 아니라니까요.”
“어쭈, 제법인데? 그래도 저 정도 껍데기면 괜찮은 편인데도 홀리지 않다니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제가 도장님보다야 여자에 대해선 더 잘 알고 있잖습니까? 저 여자 말이죠. 얼굴만 이쁘지 눈 보니까 정나미가 떨어지더라고요.”
“너도 그러냐? 나는 밥맛도 떨어지던데…….”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렇다고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말에 하주령의 눈에서 새파란 독기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움켜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죽일 놈들! 두고 봐라! 언젠가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후회할 날이 있을 테니까!’
하군상은 그런 하주령을 곁눈질하고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누구보다 하주령에 대해 잘 아는 그가 아니던가? 자칫하면 초연향에게 그 영향이 미칠지도 몰랐다.
그런데, 왜 이리 속이 다 시원하지?
3
쾅!
거대한 대문이 발길질 한 번에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안채에서 심복들을 데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걸어나오던 곽호는 이맛살을 와락 구겼다.
“웬 놈이 감히……!”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말을 꿀꺽 삼켜야만 했다.
떨어져 나간 문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그 문이 달려 있던 곳에서는 도사 하나가 들었던 발을 천천히 내려놓고 있었다.
구멍이 뚫린 대문과 도사의 발.
아무리 머리 쓰는 것을 싫어하는 곽호라 해도 일의 경과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더군다나 문밖에서 적어도 이십 명은 되어 보이는 수하들이 하나같이 바닥을 기고 있지 않은가.
‘지미랄! 그놈들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괴한들이 쳐들어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대낮부터 미친 소리를 지껄인다며 보고한 수하를 패대기쳐 버렸다.
그러다 똑같은 보고가 연이어 세 번이나 올라오자, 확인하는 차원에서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오던 차였다.
그런데 거짓이 아니었다. 적은 발길질 한 번에 한 뼘 두께의 대문을 박살 낼 정도로 무식하면서도 강한 놈이었다.
‘저런 무식한 놈이 온 줄 알았으면 수하들을 시켜 먼저 힘을 빼놓았어야 했는데……. 조또!’
곽호는 즉시 말투를 바꿨다.
“귀인께선 무슨 일로 본 장원을 찾아오신 게요?”
자신의 말이 먹혀들어 갔는지 무식하게 보이는 도사가 발을 털며 말했다.
“여기가 흑호라고 불리는 멍청한 호랑이가 사는 집 맞느냐?”
곽호는 속에서 불길이 일었지만 쉽게 발작하지는 않았다. 그의 경험이 속삭이고 있었다.
―대들면 다친다. 세 번 참으면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게 너일 수도 있다. 그러니 참아라, 참아.
곽호는 뒷짐을 지고 경험이 이르는 대로 꾹 참고 말했다.
“험, 내가 바로 북경의 검은 호랑이, 흑호라 불리는…….”
“이상하네?”
감히 자신의 말을 끊다니!
속이 부글거리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참았다.
“뭐가 말이오?”
그때 도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내 눈이 이상한지 호랑이는 안 보이고 시커먼 똥개만 보이거든?”
그 말 정도는 곽호도 금방 알아들었다.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귀에서 연기가 솟았다.
최소한 곽호는 그렇게 느꼈다. 그 바람에 결국 마지막 한 번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말코가 눈에 껍질이 두어 겹 씌었나 보군! 모두 저놈의 도사를 잡아!”
결과는 그가 바라던 것과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휙!
눈앞에 뭐가 번쩍이는 듯하자, 곽호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순간, 어느새 다가온 도사의 발이 머리카락을 자르며 스쳐 지나간다.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머리카락!
‘뭐, 뭐야? 발에 칼이라도 숨겨져 있나?’
모골이 송연해진 곽호는 즉시 뒤로 물러서며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뭐 하느냐? 놈을 막……!”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말을 마저 다할 수가 없었다.
퍽!
“꺼억!”
쇠뭉치가 이마에 틀어박히는 충격을 느낄 사이도 없이, 입을 쩍 벌리고 뒤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그러자 옆에서 튀어 나가려던 다섯 명의 장한들은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싸움이라면 이가 갈리도록 해본 자신들이다. 그러기에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 사람들은 강호의 고수들이다! 덤비면 최하 중상이다!
“왜? 너희들도 덤벼보지 그러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코앞에 들이닥친 도사가 손에 들린 신발을 흔들며 말한다. 분명 조금 전에 북경의 검은 호랑이 곽호의 이마에 환상처럼 틀어박힌 그 신발이다.
그것도 쇠신발!
움직이면 자기들 역시 곽호의 신세가 될 것은 뻔한 일.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정광이 흔드는 신발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때 정광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온 진용이 바람처럼 그들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저 사람 깨워서 데리고 들어오세요.”
“들었지? 너희들이 할래, 아니면 내가 할까?”
다섯이 일제히 외쳤다.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처음보다는 작아진 보따리를 짊어진 두충이 지나가며 그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툭! 툭!
“그래, 빨리빨리 움직여라. 늦으면 미친 도사가 날뛸지 모르니까.”
“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