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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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97화
97화
3
정천무맹은 여주의 서쪽 외곽에 있었다.
무려 삼십만 평의 땅에 지어진 무맹의 규모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정천무맹의 부속 건물들이 있는 외곽까지 합하면 백만 평에 가까웠다.
내성에는 모두 백여 채의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그 건물들은 모두 열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었는데, 건물과 건물 사이에 만들어진 인공 가산이 교묘하게 열네 개의 구역을 가렸다.
땅이 넓고 건물이 많으니 그 안에서 상주하는 사람도 많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오천 정도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었다. 물론 그들이 모두 무인들은 아니었다. 오천 중 무인의 숫자는 절반인 이천오백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런 정천무맹으로 가는 대로에 한 대의 마차가 나타난 것은 이월의 둘째 날 해가 중천에 떠오를 무렵이었다.
마차가 멈춘 곳은 정천무맹의 외곽에 있는 제법 커다란 건물 앞이었다.
[순명원(順命院)]
조금 기이한 이름의 현판이 달린 그곳은 약재를 파는 곳이었다.
진용 일행이 순명원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상인이 한껏 웃음을 지으며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찾으십니까?”
진용은 주인을 보지도 않고 주위의 약재들을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금으로 된 봉황의 깃털을 찾소만.”
주인의 얼굴이 찰나간 굳어졌다 펴졌다. 그는 웃음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진용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물건은 안에 있는뎁쇼.”
“가봅시다, 직접 보고 고를 테니.”
“그럼, 따라오시지요.”
진용이 주인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진용의 뒤를 따라갔다. 주인은 잠시 멈칫했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했는지 그냥 계속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채는 약재를 파는 점포와 외따로 떨어져 있었다. 주인은 안채의 건물로 들어가더니 뒤따라 들어온 진용을 향해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한데, 공자께선 그 물건의 값을 어떻게 치르실 건지요?”
진용은 안채의 내부를 한 번 훑어보고는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금패를 꺼내 들었다.
“이거면 될 듯싶은데…….”
순간 진용의 손에 들린 금패를 일견한 주인의 안색이 시커멓게 변했다.
“헉! 그것은?”
“모자라지 않았으면 싶군요.”
진용이 금패를 품속에 집어넣으며 입을 열자 주인의 무릎이 무너지듯이 꺾어졌다.
“삼가…….”
“됐습니다. 듣는 귀가 있을지 모르니……. 음, 그래요, 그냥 남들처럼 고 공자라고 부르세요.”
“하오나…….”
주인이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숙이자 정광이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 사람 참, 됐다면 된 거지.”
주인의 고개가 살짝 돌아 정광을 향했다. 꼭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 표정이다. 정광은 어깨를 쭉 펴고 말했다.
“백호 정광이 나야, 나.”
주인의 입꼬리가 묘하게 틀어졌다. 정광은 그 표정에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주인이 몸을 일으키며 정광을 향해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천호 임진태라고 하네. 요즘 백호들은 다 자네 같은가?”
천호? 정광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제기랄, 요즘은 되는 게 하나도 없네.”
고개를 뻣뻣이 든 정광이 임진태에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를 걸었다.
“반갑수, 천호 나으리.”
임진태의 표정도 냉랭하게 변했다.
“인사가 그게 뭔가? 하극상을 하겠다는 건가?”
그렇다고 기죽을 정광 또한 아니었다.
“이 정도면 공손히 한 거지, 뭘 그렇게 따지는 거요?”
임진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차가운 기운이 임진태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버릇없는 백호 하나 때려잡아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듯이.
물론 정광으로선 대환영이었다.
‘차라리 덤벼라! 한바탕해 보게!’
두 사람의 기가 팽팽히 맞섰다.
임진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정광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저 엉터리 도사 같은 자가 백호 맞아?’
정광도 임진태가 제법 자신의 기운을 견디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쭈? 제법인데?’
그때 진용이 나섰다.
“그만 하시지요. 도장님도 그만 하시고.”
일순간에 두 사람의 기운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임진태가 해연히 놀란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황궁에서 온 소식은 매우 간단했다. 누군가가 방문할 것이니 적극적으로 협조하라는 것. 그리고 그의 신분은 천호지만 또 다른 신분이 있으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것 정도였다.
비밀이 새어나갈 것을 걱정해 그리 적은 듯해서 사실 찾아올 사람이 누군지 매우 궁금해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다 직접 보니, 솔직히 나이가 젊어 얕본 면이 없잖아 있었다. 도독이 무슨 뜻으로 저렇게 젊은 자를 보냈는지 의문이 일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 신분이 수천호령사라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거늘, 이제는 그 무공마저 자신과 저 도사의 기운을 동시에 제압할 만큼 대단하지를 않는가.
“언제 지위 무시하고 한번 합시다.”
마침 정광이 뜬금없는 도전장을 던지자 임진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그거야…… 좋지.”
조금 불안감이 깃든 대답이었다. 그러자 정광이 씩 웃었다.
‘그려, 한번 붙자고. 쇠 신발로 이마를 그냥!’
진용은 그런 정광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임진태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나에게 온 전서가 없습니까?”
임진태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두 통 와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임진태가 휘장으로 가려진 안쪽으로 들어가자 유태청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찌할 셈인가. 정천무맹에 직접 들어가 볼 건가?”
진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입니다. 중원무림에 대한 것도 좀 익히고, 정천무맹이 어떻게 움직일 건지도 알아볼까 합니다. 게다가 삼존맹의 공격은 당분간이나마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으니까요.”
“그도 그렇군. 한데 공적인 신분으로 들어갈 건가?”
어쩌면 그것이 제일 좋을지 몰랐다. 반역에 대한 것을 조사한다는 명목을 대고 금의위의 신분으로 들어가면 별다른 제지도 받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된 정보를 얻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고 봐야 했다. 황궁의 금의위에게 진실 된 이야기를 할 자가 몇이나 될 것인가.
그때 문득 든 생각에 진용의 입가로 가느다란 웃음이 맺혔다.
“그냥 한 사람의 무인으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이래 봬도 북경의 암흑가에서는 고가장이 꽤나 유명하거든요.”
“흠,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그런데 암흑가라니, 무슨 소린가?”
조용히 있던 운아영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암흑가에서도 대단한가 보군요?”
두충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대단하지. 우리 고 공자님이 북경의 암흑가에 나타나면 암흑가의 두목이 납작 엎드릴 정도거든.”
딱!
오랜만에 정광의 주먹이 두충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이놈아, 그리 말하면 남들이 진짜로 고 공자를 암흑가의 사람으로 알 것 아니냐?”
두충은 눈물이 찡하니 앞을 가리자 정광을 쏘아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놈의 미친 말코, 다리가 아니라 팔모가지가 부러졌어야는데…….’
하지만 두충이 모르는 게 있었다. 정광은 이제 두충의 눈빛만 봐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정도였다.
“너 지금, 내 팔 부러져라 기도했지?”
‘컥! 역시 미치면 신기(神氣)가 들린다더니.’
때마침 임진태가 휘장을 걷고 나오는 바람에 정광의 눈이 돌아갔다. 그러자 두충은 재빨리 운아영의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왜 그래?”
운아영이 어리둥절하며 묻자 두충은 보따리를 내려놓는 척하며 딴청을 피웠다.
“무거워서, 보따리 좀 내려놓으려고.”
“대체 그 속에 뭐가 들었는데 그렇게 소중히 들고 다니는 거야?”
“너는 몰라도 돼.”
아직은 누구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특히 보따리 속에 든 몇 가지는 절대 운아영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에이. 그건 버리든지 해야지 원. 가만? 그냥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겠군. 우히히…….’
두충이 혼자 속으로 자신의 계획에 만족하고 있을 때 임진태가 진용에게 두 개의 서신을 건넸다.
진용은 서신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봉인을 뜯었다. 그러자 임진태가 흠칫하며 급히 입을 열었다.
“수천… 고 공자, 방을 드릴 테니 그곳에서…….”
진용이 빙그레 웃으며 좌우 벽을 바라보았다.
“임 천호께선 저분들을 믿습니까?”
움찔거린 몸짓으로 눈을 가늘게 뜬 임진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사람들입니다. 제 목숨을 내맡겨도 좋을 만큼 믿을 만한 사람들입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만큼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진용은 무저갱처럼 깊은 눈으로 임진태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분들도 그렇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서신을 펼쳤다.
파라락, 장내에는 서신이 펼쳐지는 소리만이 들렸다.
갑작스런 침묵에 진용은 서신을 바라보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태청은 조용히 웃음 띤 얼굴이었고, 운아영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들……?”
정광이 벌건 얼굴로 말했다.
“역시 멋쟁이라니까.”
두충은 안개 낀 뿌연 눈으로 진용을 보며 말했다.
“누구도 본 좀 받아야 하는데……. 공자님, 제 보따리, 언제 보여 드릴까요?”
힐끔, 정광이 주책 맞게 두충을 흘겨보았다.
‘나도 보자!’ 그런 눈빛으로.
두충이야 ‘됐네, 이 양반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싹 돌려 버렸지만.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진용은 멋쩍은 표정으로 임진태를 쳐다보았다.
“조용한 방으로 가죠.”
“예? 예, 따라오시죠.”
우르르…….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진용을 따라 자리를 옮겼다.
믿는다고 해놓고 설마 쫓아내지는 않겠지?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대머리 참새가 둥지를 떠났음. 꼬리를 붙였는데 중간에 짤렸음. 참새들은 사냥꾼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 참새가 까마귀를 만나러 간 것 같음. 까마귀의 부리가 날카로우니 조심하기 바람…….]
피식, 서신을 읽어가던 진용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분도 참, 이 서신을 제독태감이 보면 진짜 머리카락 다 빠지겠군.”
대머리는 거기에 털 없는 환관을 빗대어 한 말인 듯했다. 참새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뜻하는 듯했고.
‘삼존맹의 공격이 단순히 전날의 복수만은 아니었던 것 같군.’
진용이 생각에 잠겨 있자 임진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놈들의 방해로 서신이 조금 늦게 정주에 도착한 데다 공자께서 설마 풍림장에 계실 줄 짐작도 못한 바람에 미리 전해 드리지 못하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미리 전해졌다면 대비 정도는 했을 것이다. 그럼 유태청이나 정광이 그렇게 큰 부상을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다.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져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진용은 서찰의 마지막 부분에 눈을 두었다. 그곳에는 간단하게 두 줄만 쓰여 있었다.
[추신:일(一), 구양 노인에 대한 사면령이 내려졌음. 이(二), 정광이 말썽 피우면 작신 패서 태산으로 돌려보내기 바람. 다리를 부러뜨려도 상관없음.]
정광이 고개를 삐죽 내밀고 보다가 그 글을 보고는 후다닥 고개를 집어넣었다.
하지만 진용은 정광의 그런 태도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할아버지!’
아마도 육두강이 손을 쓴 것 같다.
그러나 사면령이 내려졌다고 해서 과연 할아버지가 바로 나올지는 자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빠른 시일 내에 모셔오고 싶은 게 진용의 마음이었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 그곳이라면 당분간 할아버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리고 기왕이면 신 털보아저씨까지 풀어달라고 해야겠군.’
진용은 첫 번째 서신을 한쪽에 놓고 두 번째 서신을 뜯었다.
[천혈교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네. 야접을 침투시킬 생각이니 뒷일은 전적으로 그대에게 맡기겠네. 접선 방법은…….]
그는 빠르게 읽어갔다. 뒤쪽에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