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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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93화
93화
원정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사조 어르신을 말씀입니까?”
곁에 있던 두 승려도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사람들이 더 쳐다본다.
유태청은 결국 전음으로 입을 열었다.
<유태청이란 친구가 오랜만에 뵙고자 한다고 전해주게나.>
원정은 잠시 그 이름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입을 쩍 벌렸다.
‘십절검존 유태청! 이 노인이?’
하지만 그는 입 안에서 맴도는 이름을 뱉어낼 수가 없었다. 유태청이 그의 입을 미리 막아버린 것이다.
<소란스러운 것은 원하지 않네. 그냥 안에 기별만 넣어주게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노시주.”
떨리는 음성으로 답한 원정은 사형제들의 의아해하는 눈길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중년승이 뛰듯이 밖으로 나왔다.
그는 유태청을 보고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반장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효운이 이십이 년 만에 유 노시주를 뵙습니다.”
그 광경에 원정의 눈이 커졌다.
원정이 다른 사람이 아닌 효운을 데려온 것은 이유가 있었다.
유태청이라는 노인이 정말 자신이 생각한 그인지, 아니면 이름을 사칭한 사기꾼인지 확인을 해야 장로원에 기별을 넣을 텐데, 마침 사숙인 효운이 언젠가 한 말이 생각난 것이다.
효운 사숙은 이십이 년 전 자신과 마찬가지로 산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때 십절검존 유태청을 봤다고 했다.
“참으로 영광이었지.”
그런 사숙이 감격에 겨워하고 있다. 눈앞의 노인을 유 노시주라 부르며.
진짜로 그였다.
맙소사! 내가 십절검존과 이야기를 나눴다니!
원정도 감격했다.
3
당금의 정천무맹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였다. 그중 구대문파에서는 무당과 화산이, 오대세가 중에서는 남궁세가와 제갈세가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처음 정천무맹의 창맹을 주도했던 소림은 이제 잠든 거인에 지나지 않는다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 말했다.
삼태천 중 하나라는 성승 요공이 있음에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가 있기에 그리되었는지도 몰랐다.
그가 너무 뛰어났기에, 그렇게 뛰어난 그가 달마동에 이십 년째 은거해 있기에 최소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몰랐다.
소림은 무엇 때문인지 그 사실을 부인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잠에 빠져들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감고 염불만 외워댔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사람들의 말이 틀리지 않은 듯 보였다.
‘하지만 십절검존은 아니라 했다. 보면 알겠지…….’
진용은 맨 뒤에 처진 채 드넓은 경내를 가로지르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림은 조용했다. 제법 많은 향배객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들리는 것은 발자국 소리와 향배객들의 염원을 비는 웅얼거림뿐이었다. 앞쪽은 그저 평범한 불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도 진용은 실망하지 않았다.
문제는 뒤였다. 불전 너머 저쪽, 숭산의 장중함만큼이나 맑고도 거대한 기운이 가라앉아 있는 곳.
효운을 따라 커다란 불전을 돌아가자 작은 문이 하나 나 있는 붉은 벽돌담이 보였다. 작은 문이 보이자 앞서 가던 정광이 말했다.
“소림에는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많다고 들었는데… 학승과 무승이 따로 생활한다고도 하고…….”
효운이 고개를 돌리고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저곳부터는 무승들이 있는 내소림(內少林)입니다, 시주.”
“우리도 들어갈 수 있나요?”
운아영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효운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허락을 받지 않고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시주.”
효운은 유난히 ‘누구도’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안을 보고 싶은 진용은 그 말에 신경이 쓰였다.
“허락만 받으면 된다는 말이군요.”
진용의 말에 효운이 여전히 웃음 진 얼굴로 말했다.
“문제는 허락을 받기가 쉽지 않지 않다는 것이네. 장로 이상의 신분을 지닌 분께 허락을 받아내야 하는데, 그분들께서 쉽게 허락을 내어주실 리도 없고…….”
그러면서 서생이 무승들이 있는 곳에 뭔 관심이냐는 눈빛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사실 유태청의 일행이 아니었다면 대꾸도 하지 않았을 그였다.
정광이야 중년의 나이에 도복을 입고 있으니 혹시 몰라 무시할 수 없었고, 운아영은 여인의 몸임에도 엄중한 기세가 사뭇 대단해 보여서 예를 갖추었다.
하지만 뒤에 처져서 두리번거리며 따라오는 진용은 아니었다.
깨끗하긴 하지만 평범한 서생복에, 건은 어디로 갔는지 머리를 질끈 동여맨 끈은 무명천이었다. 아무리 잘 봐줘도 낙방서생 정도로 보였다.
저런 자가 어떻게 십절검존하고 함께 다니는 걸까?
문득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한구석에서 의문이 일었다.
그때 유태청이 말했다.
“고 공자를 가로막을 곳이 어디 있겠나?”
효운이 눈을 크게 뜨고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유태청의 말에 숨은 뜻을 짐작한 때문이었다.
그는 가고 싶은 곳을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 말이 아닌가?
진용을 다시 보았다.
자신이 무엇을 못 본 것이지?
여전히 똑같은 차림, 평범한 체구, 유약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강해 보이지도 않는 기세.
별것은 없어 보이는데…….
그때다. 진용이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맑은 눈, 너무 깊어 끝도 보이지 않는 눈.
순간, 효운은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 들었다. 진용의 두 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함이 잠들어 있는 눈이었다.
머릿속에서 천둥이 울렸다.
효운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오랜 세월 정진했음에도 그는 자신이 평생을 노력하며 깨려 했던, 자신의 고질적인 마음의 벽이 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는 깨어져 없어졌다 생각했거늘.
이놈! 효운아! 부처가 눈에 보이더냐!
사부이신 요수 대사의 호통 소리가 귀청을 울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평생 숙원처럼 깨려 했던 벽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미타불…….”
이십여 장을 더 가자 네 채의 불전이 나왔다.
그곳부터는 간간이 무승들도 보였다. 비록 손에 든 것은 염주뿐이었지만 진용은 그들의 전신에 깃든 내력이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효운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진용 일행에 대한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네 채의 불전 중 보광전이라 쓰인 불전을 돌아가자 다시 담이 나오고 작은 문이 하나 나왔다. 그 안에는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 하나 서 있었다.
묘하게도 주위를 둘러싼 불전들이 그 건물을 가리고 있어서, 만일 누군가가 막는다면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곳이 바로 소림의 방장실이었다.
방장실을 바라보는 진용의 눈 깊은 곳에서 놀란 눈빛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몸을 숨긴 채 경계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럼에도 주위의 기운은 방장실을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휘돌고 있었다.
효운 스님의 안내가 아니었다면 설령 자신이나 유태청이라 해도 쉽게 들어오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대소림!’
하긴 오죽하면 수많은 사마외도들이 몰래 소림의 방장을 해하려 왔다가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했을까.
그 생각을 하니 새삼 소림이 다시 보였다.
효운이 무거운 표정으로 다가가자 건물에서 나오던 어린 사미승 하나가 효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효운 사숙을 뵙습니다.”
효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장문인, 유 노시주님을 모시고 왔사옵니다.”
창노한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아미타불, 안으로 모시거라.”
효운은 유태청을 향해 반장을 하며 깊게 허리를 숙였다.
“들어가시지요, 노시주.”
“수고하셨네.”
유태청은 효운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용을 돌아보았다.
“들어가세.”
“예, 노선배님.”
진용은 대답을 하면서도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소림의 방장이라 해도 십절검존의 방문을 앉아서 맞다니.
안에 누가 있는 것이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십절검존의 이름에는 그만한 무게가 있는 것이다.
안에는 다섯 사람이 서 있었다. 세 사람은 나이가 육십이 넘어 보이는 소림의 장로들이었고, 두 사람은 오십이 넘어 보이는 초로의 속인들이었다.
뭔가 회의를 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래서 나와 보지 못한 것인가?’
유태청을 필두로 진용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자 다섯 사람의 눈길이 일제히 진용 일행을 향했다.
그중 붉은 가사를 입은 노승이 유태청을 향해 반장을 취했다.
“아미타불. 유 시주를 다시 뵙게 되다니, 부처의 가호에 감사드릴 따름이오이다.”
유태청은 소림의 장문인인 요료의 인사에 마주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오, 장문인. 그리고 두 분 장로도 오랜만이외다.”
천천히 고개를 든 유태청이 두 속인을 바라보았다.
“손님이 계실 줄은 미처 몰랐구려.”
유태청이 바라보자 두 초로인이 공손히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올렸다.
“삼가 황보가의 황보염이 십절검존 유 선배를 뵈오이다.”
“강녕하셨습니까, 유 선배.”
황보염은 황보세가의 장로로 전대 가주인 황보청의 동생이었다. 유태청은 황보염의 이름을 듣고서야 그가 이십수 년 전 황보청의 오십 회 생일 때 만난 적이 있는 자임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그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백호수사(白虎修士) 여정. 세인들은 그를 그저 황보가의 군사 정도로 평가한다. 하지만 유태청은 그의 능력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머리도 좋지만 무공은 더욱 뛰어난 사람이었다. 황보청이 당시 삼십대에 불과했던 그에게 자신의 아들을 믿고 맡길 정도로.
“정말 오랜만이군. 한데 황보가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을 소림에서 보게 되다니, 황보가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황보염이 여정을 바라보았다. 여정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림과 본 가의 관계가 어디 하루 이틀이겠습니까?”
유태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랬다. 소림과 황보가는 거리가 가까운 만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비록 지금 보이는 모습이 그런 단순한 것은 아닌 듯했지만, 유태청은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때마침 조금 전에 보았던 사미승이 찻잔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요료가 유태청에게 자리를 권했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여정이 유태청에게 물었다.
“하온데 유 선배님께선 어인 일로……?”
유태청은 순순히 그 물음에 답해줬다.
“성승을 만나러 왔네.”
여정의 눈에 놀람이 가득했다. 유태청은 여정의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요료를 바라보았다.
“장문인, 성승을 만날 수 있겠소?”
“아미타불. 허허허, 유 시주의 청을 어찌 거절할 수 있으리오마는 사형께서 달마동에 들어 계신지라…….”
“이미 이십 년 폐관은 끝난 것으로 알고 있소만.”
“들고나는 것은 사형의 뜻. 우매한 빈승은 그저 사형의 뜻에 따를 뿐이외다.”
“음…….”
나오지 않겠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수도 없는 일.
“그럼 내 말 하나만 전해주겠소?”
“말씀하시지요.”
“공야무릉이 세상에 나왔다는 말을 전해줬으면 하오.”
진용의 얼굴에 의외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명옥(冥獄)의 주인. 유태청과 비슷한 고수.
그것만으로도 놀랄 일이었거늘, 그가 성승과도 관계가 있다는 말 아닌가?
다섯 사람 중에서도 그 이름을 알아들은 사람이 있었다.
“공야무릉이라면… 그 천혈교라는 곳에서 보낸 배첩에 쓰인 이름 아닙니까?”
여정이었다. 그는 의혹이 가득한 표정으로 유태청을 바라보며 물었다.
“맞네.”
“유 선배께서 그 이름에 신경을 썼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이겠군요.”
“그도 맞네. 그는 충분히 내가 신경을 쓸 만한 사람이지.”
여정이 놀란 눈빛을 빠르게 굴리고 있는 사이 조용히 있던 노승 하나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그의 이름이 요공 사형을 불러낼 수 있을 정돈지요?”
“요양…….”
요료가 책망하는 눈빛으로 자신의 사제인 요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미 뱉어진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
그때 유태청이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분명히 나올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