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88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88화
88화
군데군데 튀어나온 바위가 시선을 막고 굴곡져 흐르며 떨어지는 물소리가 그들의 청각을 방해하고 있었다.
조심에 조심을 더해도 모자랄 상황이었다.
하지만 십 리를 들어가도록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실피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밤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정적만이 맴돌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진용은 건곤흡정진혼결을 끌어올려 주위의 기운을 살펴보았다.
별의별 기운들이 다 느껴진다. 죽음의 기운, 약한 화기, 은은한 냉기. 모든 것이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있다.
그러더니 계곡의 안쪽에서 살아 있는 자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상당한 숫자, 그것도 강한 자들의 기운! 놈들이다!
‘왜 실피나가 오지 않는 거지?’
의아했지만 일단 적의 기운을 발견한 이상 실피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놈들이 백여 장 안쪽에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겨울의 찬바람이 계곡의 절벽을 타고서 안으로 흐르고 있었다.
진용은 바람의 기운에 몸을 맡기고 안으로 날아들어 갔다.
유태청과 정광도 좌우를 견제하며 진용을 뒤따랐다.
전진한 지 열을 셀 시간도 되지 않았을 때다. 집채만 한 바위를 타넘고 계곡의 굴곡을 따라 꺾어지자 제법 넓은 공터가 나왔다. 사방 넓이가 이십여 장에 이르는 곳이었다.
순간적으로 진용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구석구석에서 인기척이 미미하게 느껴진다. 개중에는 내력을 끌어올리지 않고서는 진용의 능력으로도 바로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은신술이 뛰어난 자도 있다.
그때 하늘에서 실피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아! 나쁜 놈들이 여기 다 모여 있어!
젠장! 미리 와서 말해주면 덧나나? 대체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주인이 지키고 있으라고 해서 계속 지켜봤는데, 주인을 기다리고 있나 봐. 죽일려구. 나쁜 놈들!
윽! 내가 지켜보라 했다고 여기에 계속 있었단 말이야?
‘저 멍청한 정령 때문에 함정에 빠졌잖아!’
세르탄이 어이가 없는지 빽 소리쳤다.
아니나 다를까, 세르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싸늘한 예기가 어둠을 가르며 소리없이 날아들었다.
진용은 실드 마법으로 방어막을 치고는 양손을 휘둘러서 날아드는 예기를 움켜쥐었다.
손에 잡힌 것은 열십 자 형태로 된 암기였다. 암기는 마른 갈대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양 진용의 손에서 가루로 부서져 흘러내렸다. 순간!
스스스스…….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소음이 사방에서 일더니 하늘을 가득 메운 암기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젠장! 미친놈들, 더럽게 뿌려대네!”
정광이 이를 갈며 양손에 쇠 신발을 움켜쥐고 허공을 휘저었다.
유태청은 아무런 말도 없이 천유를 들어 허공에 커다란 원을 그렸다.
따다다당!
수백 개의 암기가 하늘로 비산하며 튕겨졌다.
“실피나! 암기들을 거꾸로 날려 버려!”
진용의 명령이 떨어지자 실피나가 신이 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어! 마족만큼 나쁜 놈들! 이거나 먹어라!
거기서 왜 마족이 나와?
세르탄이 열받아 소리쳤다.
‘저, 저 멍청한데다 덜떨어진 정령이 감히 위대한…….’
하지만 진용은 둘의 넋두리를 들어줄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다.
‘조용해! 그러잖아도 정신 사나우니까, 싸우려면 나중에 싸워!’
나중에 언제? 어떻게?
실피나의 광풍에 암기들이 사방으로 날아가자 절곡 안에선 순식간에 혼란이 일었다.
누군지 모르는 암습자들도 그렇지만 유태청조차 쏟아지던 암기가 거꾸로 날아가자 어찌 된 일인지 몰라 검을 뻗은 채 허공을 쳐다보았다.
한두 번 경험(?)이 있는 정광이 진용을 힐끔 돌아보고는 전음으로 물었다.
<또 그가 한 짓인가?>
진용은 당연하지 않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탄이 열받아서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것도 모른 척하고서.
그때 절곡의 바위틈에서 이십여 명이 소리없이 빠져나오더니, 공터에 서 있는 세 사람을 향해 쇄도했다.
그런데 객잔의 별원에서 봤던 흑의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흑의인들의 그림자에 파묻힌 자들. 그들은 흑의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자들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진용의 눈빛이 한순간 싸늘한 한광을 토해냈다.
한 번 봤던 자들이다. 천암산에서 무차별적인 살겁을 자행한 놈들. 삼존맹의 주구들.
진용은 그제야 오늘 일어난 일의 원인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놈들이 노린 것은 화인화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 아니면 십절검존 유태청을 노렸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화인화를 데리고 이런 막다른 곳으로 도망치지는 않았으리라.
진용이 나직이 입을 열어 적들의 정체를 밝혔다.
“천암산에서 살겁을 행한 살귀들입니다.”
유태청의 안색이 굳어졌다.
진용의 말이 떨어지고서야 정광도 놈들을 알아봤다.
정광은 이를 악 다물고 쇠 신발을 쥔 손에 힘을 더한 채 놈들을 노려보았다.
그는 안다, 놈들이 얼마나 무서운 놈들인지. 자신조차 둘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놈들이 아니던가.
“저 빌어먹을 놈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자세한 대답을 해줄 시간이 없었다. 놈들이 코앞에 다가왔다.
진용은 대답 대신 지면을 스치듯 날아가며 두 손을 휘둘렀다.
일 장 거리에 들어서자 구슬처럼 뭉쳐진 장력이 폭발하며 터져 나갔다.
쾅!
피떡이 되어 튕겨 나가는 흑의인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쳐다볼 시간도 없었다. 동료들이 튕겨져 나가는 것에 아랑곳없이 놈들이 계속 공격해 온다.
진용은 튕겨 나간 흑의인의 자리에서 그림자처럼 솟구치는 갈의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시퍼런 뇌전이 밤하늘에 번쩍였다.
쩌저적!
어둠이 찢겨져 나가며 비명을 지른다.
갈의인의 어깨 부위가 폭죽처럼 터져 나간다.
그럼에도 갈의인은 덜렁거리는 팔이 자신의 팔이 아니기라도 한 것처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진용을 향해 달려든다.
그자뿐이 아니다. 좌우에서 또 다른 자들이 달려든다.
합이 네 명!
진용은 이를 지그시 깨물고 몸을 휘돌렸다.
일순간에 십여 줄기의 뇌전이 진용의 두 손에서 폭사되었다.
쩌저저저적!
갈의인들이 모두 강기를 뿜어내며 진용의 뇌전에 부딪쳐 갔다.
콰과과광!
사생결단을 내겠다는 듯 작정한 공격!
강기의 파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그 여파에 네 명의 갈의인이 주춤거리자 허공에서 다시 흑의인 셋이 떨어져 내렸다.
진용은 떨어져 내리는 자들을 향해 쌍장을 올려치고는, 부딪친 반탄력을 이용해서 옆으로 미끄러졌다.
그러자 다시 사방에서 갈의인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좌우에 하늘마저 막혔다.
숨조차 쉴 여유가 없는 가공할 공격.
절정고수 일곱의 합공은 무시무시했다.
단 서너 번의 격돌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진용은 또다시 뇌전을 쏘아내 상대를 뒤로 물리고는 빠르게 상황을 살펴봤다.
저들의 목적이 유태청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유태청에게도 많은 수가 달려들고 있지만 그중에 절정고수는 네 명에 불과하다. 그들은 유태청을 당장 쓰러뜨리려는 것보다는 유태청의 행동 반경을 좁히는 것에 주력하고 있을 뿐이다.
유태청이 본래의 무공을 회복했다면 십초지적도 되지 않을 자들. 하지만 현재의 사정은 그렇지가 못했다. 시간을 오래 끌면 거꾸로 당할지도 모르는 판.
정광도 다섯 명의 흑의인과 드잡이질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장기인 풍혼이 아니었다면 벌써 쓰러졌을지 모를 정도로 몰렸다. 흑의인 중 유난히 강해 보이는 두 사람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들이 흑의인을 움직이는 자인 듯했다.
진용은 다급히 실피나를 불렀다.
“실피나! 한쪽을 맡아!”
실피나가 신나서 싸움터로 날아들었다.
―오호호호! 알았어, 주인아!
언제 폭주할지 모르지만 뭔가 방도를 취해야 했다.
‘우선 적의 합공을 깬다. 균형이 깨지면 혼란이 오겠지!’
그러기 위해선 눈에 보이지 않는 실피나가 제격이었다.
―바람의 창! 받아라! 나쁜 놈들!
실피나가 바람의 창으로 오른쪽에서 날아드는 갈의인을 공격했다.
난데없이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날아드는 공격에 갈의인이 대경하며 검을 휘둘렀다.
한쪽이 막히자 약간이지만 여유가 생겼다.
진용은 재빨리 옆구리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고 앞을 향해 휘둘렀다.
순간, 강력한 공력이 주입된 제나의 지팡이에서 휘황한 빛이 뿜어졌다. 갑작스런 빛에 갈의인들이 주춤거렸다.
그 바람에 잠깐의 틈이 생겼다. 이 장의 거리!
“하늘의 신화(神火)! 화염주, 탄(彈)!”
제나의 지팡이 끝이 붉게 물들었다 싶은 순간!
화아악!
주먹만 한 화염주가 시뻘건 불길을 뿜어내며 쏘아졌다.
이미 진용의 마법에 한 번 당한 경험이 있는 척천단의 고수들은 맞부딪치지 않고 대경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화염주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불꽃이 터져 나갔다.
콰과광!
무영천귀조차 달려들지 못하고 엉거주춤 몸을 사렸다.
진용은 마법을 몇 번 더 펼치려다 생각을 바꿨다.
실피나와 힘을 나누고 있는 상황에서는 결코 득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적이 계속 피하기만 한다면 자칫 내력이 고갈되어 위험을 자초하는 꼴이 된다. 아무리 중단전의 힘을 사용한다 해도 결국은 내 몸 안의 기운이 아니던가.
진용은 마법을 펼치지 않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무영천귀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일단은 하나라도 더 숫자를 줄이는 게 중요했다.
스르륵, 흩어진 진용의 잔상이 무영천귀의 앞에 나타났다.
무영천귀가 검을 소리 없이 뻗었다.
진용은 검을 한 치 간격으로 흘리며 일장을 내갈겼다. 그러고는 결과도 보지 않고 신형을 튕겼다.
전신을 찢어발길 듯한 공세가 사방에서 밀려오는 것이다.
퍽! 무언가가 파열되는 둔탁한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동시에 두 줄기의 검강, 도강이 옷자락을 스치며 지나간다.
찰나의 순간, 진용은 몸을 뒤집으며 또 다른 두 명의 무영천귀에게 떨어져 내렸다. 너무나 빨라 잔상이 사방에 넘실거린다.
당황하는 두 무영천귀. 그들 사이로 스며든 진용의 잔상이 춤사위를 펼쳤다.
지팡이로 한 사람의 가슴을 찍고, 휘도는 발이 도를 치켜드는 자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퍼벅!
“끄억!”
하나는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하나는 답답한 신음을 흘리며 훌훌 날아갔다.
그때였다.
허공에서 한줄기 강맹한 기운이 진용을 향해 쏘아져 왔다.
“이놈!”
분노의 목소리! 그자다! 상관단주라는 자!
진용은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풍혼의 요결에 따라 몸을 맡겼다.
밀려오는 기운을 따라 신형이 흘렀다. 급박한 상황에 그거면 족했다.
상대에게 타격을 주기는커녕 상대가 자신의 공격을 이용해 이동하자 상관욱의 공격이 흔들렸다.
몸을 휘돌린 진용은 기운이 약해진 검을 우수로 쳐내고 상관욱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뜻밖이었는지 상관욱의 입에서 다급성이 터져 나왔다.
“헉!”
하지만 상관욱은 산전수전 다 겪은 고수. 그는 당황하지 않고 전력을 쏟아 검을 내리그었다. 만근 바위조차 두 동강을 낼 정도로 강맹한 일격이었다.
진용은 상관욱의 검을 경시하지 못하고 신형을 옆으로 틀며 건곤의 기운이 실린 일장을 내질렀다.
쾅!
절곡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렸다.
그 충격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뒤로 물러섰다.
엇갈린 두 사람.
상관욱은 창백히 질린 얼굴로 물러서긴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나 진용에겐 무영천귀들이 달려들고 있다. 동시에 척천단의 고수들마저 달려든다.
진용은 풍혼에 가속 마법인 헤이스트를 섞어 펼쳤다. 흔들리는 진용의 신형이 둘, 넷으로 갈라졌다.
그럼에도 절정고수 오 인의 조직적인 합공은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실피나가 두 명의 고수를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게 다행이었다.
그렇게 십여 초쯤 흘렀을 때다.
“실피나! 들어가 있어!”
진용이 실피나를 불러들였다. 언제까지고 싸울 수는 없는 일. 모험을 해서라도 끝내야 할 때다.
실피나가 뾰로통한 입을 내밀고 안개처럼 사라졌다.
순간, 진용은 전력을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자신에 찬 표정으로 달려드는 전방의 두 사람을 향해 쇄도했다.
두 사람은 진용이 갑자기 쇄도하자 발악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용의 손이 자신들의 검과 도를 맨손으로 걷어내는 순간, 진용의 기세가 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대경하며 뒤로 물러났다.
때늦은 방어였다.
우수가 흔들리며 건곤의 장력이 발출되고 좌수에 들린 지팡이에서 뇌전이 번쩍였다.
떠덩! 쾅!
“크억!”
두 명이 한꺼번에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적어도 한동안은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남은 자는 셋!
그러나 실피나에게 시달리던 두 사람이 뒤늦게 진용의 공격에 합세하기 위해 날아온다.
진용은 서둘렀다. 이미 상당량의 공력이 손실된 상황. 기회를 잡았을 때 끝내야 했다.
“타앗!”
허공으로 신형을 뽑아 올린 진용은 건곤천단심법을 운용해 모든 공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두 손을 쓸어냈다.
시퍼런 뇌전이 줄기줄기 뻗쳐 나간다.
가공할 강기의 파도가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고오오…… 쩌저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