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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서생 86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6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법서생 86화

 

86화

 

 

 

 

 

 

 

오색 주렴이 걷히자 쏟아지는 석양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마차 안에서 두 명의 여인이 모습을 보였다. 젊은 여인과 삼십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었다.

 

순간, 주위가 정적에 잠겼다.

 

침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정광과 두충은 물론이고 진용조차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심지어는 여인인 운아영의 눈매마저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유태청만이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

 

중년의 여인도 아름다웠지만 젊은 여인은 아름답다는 말로도 형용하기에 부족했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흑단 같은 머리를 틀어 올려 봉황잠으로 마무리한 그녀의 얼굴은, 밤새 내린 백설이 아침 햇살에 드러난 것처럼 백색 궁장과 어울려 우윳빛으로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범려가 오왕 부차에게 바쳤다는 서시가 저렇게 아름다웠을까? 당현종의 비였다가 안사의 난 때 죽은 양귀비가 저리 아름다웠을까?

 

화월용태니 뭐니 굳이 여러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었다.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의 아름다움. 마차에서 나온 여인이 그러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서 달콤한 화향이 풍겨 나오는 듯하다.

 

“소녀는 화인화라고 합니다. 노선배님께선 어찌 저희 할머님의 함자를 아시는지요?”

 

“할머니? 네가 화설청의 손녀란 말이냐?”

 

여전히 아랫사람 대하듯 말하는 유태청을 보고 화인화는 화가 나기보다는 의아하기만 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할 정도의 기운이 아니었다면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겐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런데도 마차를 나와야만 했다.

 

그만큼 조금 전에 느낀 기운은 생전 처음으로 대해보는 가공할 기운이었다. 봉황곡의 누구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자신을 압도하는 그런 기운.

 

막상 진용이 입을 열지 않았기에 그녀는 그 기운이 오직 유태청에게서만 흘러나온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그녀는 혼란스런 마음이었다.

 

저 노인은 어떻게 해서 세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할머니를 아시는 것처럼 말하는 걸까. 대체 누구기에…….

 

그때 중년의 여인이 유태청의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그녀는 유태청의 얼굴을 곤혹한 눈빛으로 쳐다보고는, 눈을 내리더니 유태청의 허리에서 달랑거리고 있는 천유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크게 떠진 것은 그때였다. 그녀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설마…… 천… 유?!”

 

중년 여인, 유모의 말뜻을 화인화가 알아듣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없었다.

 

화인화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천유검? 그럼……?”

 

유태청이 화인화의 놀람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년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비록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실제 나이는 오십이 다 되었다는 것을. 그녀가 바로 화설청의 수양딸인 설봉선자 은서령이라는 것을.

 

“그대가 이것을 알아보다니 의외로구나. 하나 거기까지만 하거라.”

 

정체를 밝히지 말라는 말.

 

무릎을 꿇어 인사를 하려던 중년 여인과 화인화는 유태청의 말뜻을 알아듣고 깊숙이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화인화가 말했다.

 

“어르신의 분부를 어찌 거역하겠사옵니까. 소련이 어르신께 죄를 지었으니, 참으로 죄송할 따름이옵니다.”

 

“됐다. 모르고 한 일이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감사하옵니다. 어르신, 소녀가 어르신을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어요.”

 

화인화가 고개를 들고 말하자 유태청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인연의 끈인 것을…….”

 

그러고는 진용을 향해 말했다.

 

“고 공자, 가세.”

 

진용은 말다툼이 끝난 게 아쉽기라도 한 것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러시지요.”

 

화인화는 유태청의 말투에서 묘한 차이를 느꼈다.

 

나이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자신이 본 십절검존과 서생은 여러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십절검존의 말투는 결코 한참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투가 아니다.

 

그녀는 진용을 바라보았다.

 

간편한 서생복을 입고 있는 그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일 듯했다.

 

‘누굴까? 일개 서생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저 어르신이 평배에 가까운 말투를 사용하다니.’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화인화는 자신의 눈빛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 빠진 것만 같았다. 선이 굵은 것만 아니라면 특별나게 잘생긴 얼굴이 아닌데도 그녀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먹물을 진하게 갈아 부어놓은 듯한 눈동자.

 

‘저 눈동자.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어. 아무것도……. 도대체 저 사람은 누구지?’

 

진용의 눈도 가늘게 흔들렸다. 비록 잠시였지만.

 

‘초연향만은 못해도 맑은 눈이군.’

 

눈이 마주친 시간은 촌각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촌각의 시간은 운명이었다. 누구도 모르는 그런…….

 

진용은 유태청과 함께 화인화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화인화의 눈이 진용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 진용이 뒷모습을 보일 즈음 그녀의 눈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푸르스름한 눈빛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그 눈빛을 본 사람은 없었다.

 

‘시르, 또 느껴진다.’

 

오직 세르탄만이 괴이한 기운을 느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진용은 세르탄의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볼까 하다가 공연히 오해를 살까 봐 포기하고 걸음을 옮겼다. 세르탄도 진용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더 이상은 그 일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그때는 아무런 일도 없이 운명이 그냥 스쳐 지나갔다.

 

 

 

 

 

2

 

 

 

 

 

“놈들이 신밀의 객잔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찌할 생각이신지?”

 

상관욱의 물음에 흑의장포를 걸친 노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유태청이 심한 내상을 입었다고 했던가?”

 

“멸혼마가 자신있게 한 말이니 틀림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어떤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노구에 그토록 심한 내상을 입었다면 아마 지금도 완전한 몸은 아닐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흑의장포노인이 눈빛을 번뜩였다.

 

“그래? 봉황거의 움직임은?”

 

“그들도 같은 객잔으로 갈 거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제일 크고 깨끗한 곳이 그곳인지라…….”

 

“흠, 유태청과 봉황선자와의 염문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군.”

 

오해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이 오해든 이해든, 문제는 각기 따로 흐르던 물줄기도 한곳에서 만나면 결과는 같다는 것이다.

 

흑의장포노인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다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상관욱은 그의 눈이 뜨이고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결정은 암군이 내린다. 그리고 자신은 실행한다.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의 주관자가 바뀌었으니까.

 

그러나 상관욱은 그 모든 불만을 가슴속에서 삭여야만 했다.

 

암군은 만붕성의 삼군 중 한 사람. 자신보다 서열 면에서도 한 단계는 위다.

 

또한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대해선 자신보다 눈앞에 앉아 있는 암군이 훨씬 전문가였다. 지금까지 암군이 노린 자 중 살아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이 그걸 증명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상관욱이 불만을 삭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진용 일행과 가까워질수록, 처음의 투지가 사라지고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천암산에서 보았던 광경이 머릿속에서 선명히 떠오른 때문이었다.

 

자신만만하던 자신들 사이를 무인지경으로 누비며 팔다리를 부수던 서생의 모습.

 

그리고 하늘에서 쏟아지던 지옥의 불꽃!

 

‘제기랄!’

 

일각이 지나서야 암군이 눈을 떴다.

 

“기회가 오면 한 번에 끝낸다. 일단 우리 암황단이 놈들을 외길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럼 그대들이 마무리를 지어라.”

 

의외의 말이었다. 자기들이 다 끝낼 거라 할 줄 알았거늘.

 

“명심하도록.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선 자신의 목숨도 내놓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놈들을 죽이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3

 

 

 

 

 

“어? 저 마차도 이곳으로 오잖아?”

 

두충의 말에 일행은 객잔의 이층에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마을 사람들의 관심 속에 봉황거가 객잔의 뒷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연락이 되어 있었던 듯, 객잔의 주인으로 보이는 자가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봉황거를 맞이했다.

 

객잔 주인을 따라 나와 있던 두 점소이는 마차가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자 구경꾼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재빨리 문을 닫아걸었다.

 

진용은 어이가 없었다.

 

봉황거가 같은 객잔으로 들어올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비록 소련이라는 여인의 민감한 반응으로 일어난 일이었지만, 이럴 줄 알았다면 천천히 뒤따랐으면 되었을 일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화인화를 코앞에서 볼 수 있었으니 어찌 생각하면 행운이라 할 수도 있었다.

 

이층에서 바라보는 눈길을 느꼈는지 마차에서 나온 화인화가 고개를 들어 이층을 바라보았다.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가움과 당황이 뒤섞인 묘한 표정으로.

 

진용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자신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는 뒷문을 통해 객잔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눈가에 왠지 모를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왜 저런 눈빛을 짓는 걸까?

 

잠시 후 음식을 가져온 점소이에게 정광이 물었다.

 

“이봐, 아까 마차 타고 온 아가씨는 어디로 갔는가?”

 

점소이가 몽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모란꽃보다 더 아름다운 분은 별원으로 들어가셨습니다요.”

 

길에서 유태청에게 하던 행동을 생각한다면 이층으로 올라오지 않고 바로 들어간 것이 조금은 이상했다. 

 

하지만 누구도 더 이상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두충과 정광만이 별원으로 통하는 회랑을 한 번 힐끔거렸을 뿐.

 

그리고 그날 밤, 그 일이 일어났다.

 

 

 

멀리서 산부엉이가 울어대는 자시 무렵.

 

갑자기 어디선가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흐으으으…….

 

끄아아아…….

 

처음에는 을씨년스러운 바람 소리인가 했었다. 아니면 멀리서 누군가가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를 토해내고 있든지.

 

운기를 하느라 감각이 극대화된 상태인데도, 소리가 워낙 작아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시간이 가면서 점점 선명해졌다. 게다가 솜털을 간지럽히는 기이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천단심법과 건곤의 기를 합치는 데 열중이던 진용은 운기를 멈추고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멀지 않은 곳이다!’

 

신음 소리는 객잔 인근에서 나고 있었다. 그것도 꽤나 가까운 곳에서!

 

‘시르! 바로 그 여자야!’

 

세르탄이 갑자기 소리쳤다.

 

‘뭐? 설마, 화인화?!’

 

진용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화인화가 신음 소리의 주인이라니. 

 

그녀가 왜 저런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를 뱉어낸단 말인가?

 

‘확실해?’

 

‘씨이, 그렇다니까! 처음부터 말했잖아, 이상한 귀기가 느껴진다고.’

 

‘그거하고 저 소리하고 무슨 상관인데?’

 

‘멍청하긴! 지금 이쁘장하게 생긴 계집애가 저러는 것도 다 그 귀기 때문이란 말이야!’

 

세르탄이 멍청하다고 하는데도 따지고 들 기분이 아니었다.

 

진용은 벌떡 일어섰다.

 

나지막이 들려오는 간절함이 담긴 신음 소리. 그 소리와 함께 뭔가 괴이한 기운이 미미하게나마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력한 기운이 서서히 객잔을 조여오고 있었다. 

 

자신이 이제야 느꼈을 정도라면 답은 하나다.

 

누군지는 모르나 강한 자!

 

문득 화인화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그늘이 떠올랐다.

 

‘누가 화 낭자 일행을 노리는 것인가? 안 되겠다. 일단 가보자!’

 

덜컹!

 

진용은 문을 열고 회랑으로 나갔다.

 

회랑으로 나온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다.

 

진용과 거의 동시에 방을 나온 사람이 있었다. 유태청이었다.

 

“자네도 그 소리를 들었나?”

 

“봉황곡의 화 낭자가 내는 소리 같습니다.”

 

“뭐라고? 어떻게 그리 단정하는가?”

 

“신음 소리와 함께 기이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그 진원이 바로 화 낭자가 있는 곳입니다. 누군가가 화 낭자 일행을 노리는 듯합니다.”

 

진용의 기운을 느끼는 재주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유태청으로선 그 말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일단 가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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