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8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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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85화
85화
“나를 따라가겠다고?”
“예, 이 기회에 강호의 경험도 쌓고… 에, 또…….”
“안 된다!”
“할아버지이이이이…….”
유태청의 단호한 거부에 운아영은 필살기로 대응했다. 그녀는 반 우는 소리를 하며 유태청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매달렸다.
“만일 할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저는 혼자라도 강호로 나갈 거예요. 힝!”
어울리지 않는 행동에 두충이 혀를 내밀며 진저리를 쳤다.
‘꼭 곰이 아양을 떠는 것 같네.’
당황한 유태청은 짐짓 노한 표정을 지었다.
“어허! 이놈아, 강호가 얼마나 험난한 줄 아느냐? 결코 여자가 마음대로 다닐 곳이 아니란 말이다.”
두충이 목까지 움켜쥐었다.
‘웩! 저 여자를 어떻게 할 남자가 강호에 어디 있다고. 걱정도 팔자시네, 정말!’
그때 운가명이 나섰다.
“저… 숙부님께서 당분간 데리고 다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엉? 자네까지 왜 이러나?”
운가명이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저 애 고집이 하도 세서… 한 번 하겠다고 하면 꼭 하는 애라 분명 저 혼자라도 나갈 것입니다, 숙부님. 그럴 바에야 차라리…….”
유태청도 지난 십여 일의 경험으로 운아영의 고집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운가명의 지금 마음이 어떠한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고심 끝에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어떤가? 이 애의 무공도 제법이니 그리 방해될 것 같지는 않은데.”
이미 유태청의 마음이 돌아선 것을 안 이상 진용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르신께서 그리하시겠다면 그리하시지요.”
일단 수용은 하고서 운아영을 향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 함부로 개인행동을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운아영의 입가로 환한 웃음이 번졌다.
“물론이죠! 걱정 마세요! 음호호홋!”
반면에 두충의 얼굴은 오뉴월 뙤약볕에 물먹은 호박처럼 처참하게 일그러져 버렸다.
‘크헉! 망했다! 미친도사만 해도 골머리가 아픈데, 이제는 저 검밖에 모르는 덩치 큰 할망구까지!’
그런데…… 이상하다. 왜 가슴이 뛰는 거지?
2장. 어둠 속의 피바람
1
숭산 백여 리 남서쪽 여주(汝州)에는 다름 아닌 정파무림의 결집체라 할 수 있는 정천무맹이 있었다.
정주에서 여주로 가는 길은 약 삼백여 리. 얼추 낙양을 가는 거리와 비슷했다. 그런데도 진용이 낙양으로 가지 않고 바로 여주로 향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어찌 생각하면 낙양에 가서 같이 가나 따로 가서 만나나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장단점이 있었다.
장점이라면 위지홍을 만날 경우 천제성이 가진 정보를 통해서 강호의 흐름을 먼저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칫하면 생명력을 잃어버린, 이미 단절된 정보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것이 단점이었다. 급박한 상황에서는 치명적인 단점.
진용은 살아 있는, 살아서 펄펄 뛰고 있는 정보를 얻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눈으로 강호의 흐름을 보고 싶었다. 어차피 지나간 정보는 나중에 만나서 얻어도 될 테니까.
그러기 위해선 직접 두 발로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야 했다.
그렇게 정주(鄭州)에서 남서쪽으로 백 리를 조금 더 가자 신밀(新密)이란 곳이 나왔다. 지금은 비록 황토에 묻혀 버렸지만 고대 하(夏)나라 시절, 한때 영화를 누렸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
진용 일행이 신밀에 도착한 것은 붉은 석양이 마지막 불꽃을 사르며 서산머리에 걸쳐진 채 절규할 때였다.
붉은 석양을 보고 두충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놈의 석양, 드럽게 빨갛네.”
“기분이 어째 으스스한데?”
정광도 눈살을 찌푸리며 한마디 했다.
“기분 나쁜 소리 하지 마슈.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려구…….”
“너만 조용하면 만사형통이야. 에구, 너를 어떻게 살려서 데려갈지 걱정이다, 걱정.”
씨근덕대는 두충은 본 척도 않고 정광이 휑하니 걸어가자 두충이 뒤에서 주먹감자를 먹였다.
‘이거나 먹으슈! 누가 댁보구 나 걱정해 달랬수? 패지나 않으면 밉지나 않지.’
그런데 자신의 손끝을 응시하던 두충이 뭘 봤는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곧이어 입마저 쩍 벌어졌다.
“우와!”
저 멀리, 마을의 남쪽에서 십수 명의 여인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한 대의 마차를 호위한 채 중앙대로 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중 마차의 좌우에 서서 따라가는 여섯 여인은 하얗고 연푸른 궁장을 화려하게 입고 있었고, 전후에 늘어선 채 서릿발 같은 차가운 표정으로 좌우를 훑어보는 여덟 여인은 붉은 경장에 모두가 검을 메고 있었다.
하나같이 두충의 눈이 튀어나올 만큼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그녀들을 본 것은 두충만이 아니었다. 진용도, 유태청도, 정광도, 그리고 운아영도 보았다.
“흥! 속물은 어쩔 수 없다니까.”
운아영이 차갑게 코웃음 쳤다. 때마침 정광이 침을 꿀꺽 삼켰다.
운아영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젊은 남자나 나이 먹은 남자나 남자는 다 똑.같.아!”
놈! 자가 튀어나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때 유태청이 말했다.
“봉황곡(鳳凰谷)의 봉황거(鳳凰車)군.”
그런데 매우 곤혹스런 표정이다. 그답지 않게 흔들리는 눈빛에는 작은 격동마저 담겨 있다.
“저 마차가 봉황곡의 마차라고요?”
진용이 가볍게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도 봉황곡에 대해선 들어본 바가 있었다.
여인들만으로 이루어진 곳. 강호의 대문파도 무시하지 못하는 곳. 그리고 당금 강호에서 가장 강한 열 개의 검 중 하나, 봉황신검의 주인, 봉황선자가 있는 곳. 그곳이 봉황곡이었다.
“강호에는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문파가 세 곳이 있네. 한 곳은 환밀궁이고, 또 한 곳이 보타암, 그리고 봉황곡이 바로 그곳이네. 하지만 그녀들은 어지간해선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네. 특히 봉황곡은… 사람을 구할 때 외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
유태청이 봉황곡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런데 잦아드는 마지막 말 몇 마디에선 왠지 모를 회한이 느껴졌다.
‘봉황곡과 무슨 사연이 있으신가?’
진용이 의아해할 때다. 그사이 봉황거와의 거리가 이십여 장으로 가까워졌다.
봉황거의 지붕 위에서 휘날리고 있는 깃발이 더욱 선명히 보인다. 붉은 비단 위에 날아갈 듯 황금으로 수놓아진 한 마리 봉황. 봉황의 진녹빛 눈동자가 신비롭게 빛나고 있다.
‘꼭 누구 눈 색깔하고 똑같군.’
진용이 속으로 말하자 세르탄이 발끈했다.
‘비교를 해도 꼭 저런 잡새하고 비교를 해!’
봉황이 잡새?
훗! 진용은 웃음이 나왔다.
하여튼 뜬금없이 사람을 웃게 만드는 데는 뭐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웃음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뒤통수가 후끈 달아오른 것이다.
‘뭐야? 세르탄, 왜 그래?’
‘시르, 이상해…….’
‘뭐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시르는 안 느껴져?’
진용도 가만히 내공을 끌어올리고 주위의 기운을 느껴봤다.
그렇게 특이할 만한 기운은 잡히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몇몇 무인들의 기가 느껴지지만 그저 그런 기운일 뿐. 그걸 가지고 이상하다고 하기에는 좀 그랬다.
‘대체 어떤 느낌인데 그래?’
‘뭐랄까… 귀신의 기운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렇게 시시껄렁한 귀신이 아니라 제법 본신의 기운을 갖춘 놈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아. 그것도 엄청 센 놈이.’
‘귀신이? 어디에? 마차에?’
‘아니, 그건 아니고…… 정확히는 모르겠어. 아래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입 다물고 있어. 사람 놀라게 하지 말고.’
‘그게 아니라니까…….’
진용이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자 세르탄도 조용해졌다.
사실 진용도 세르탄이 헛소리를 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확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맞장구치며 호들갑을 떨기에는 상황이 묘했다.
그사이 봉황거와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서서히… 인연의 굴레가 진용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서산머리에 걸쳐진 채 절규하는 붉은 석양을 등에 지고서 봉황거는 대로의 반 이상을 메운 채 나아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 속도가 진용 일행의 걸음보다 늦다는 것. 자연히 진용 일행의 걸음도 조금은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좁혀진 간격이 결국 삼 장의 거리까지 좁혀졌을 때다. 맨 뒤에 처져 있던 붉은 경장에 푸른 옥잠을 꽂은 여인이 고개를 돌리고는 쓰윽, 진용 일행을 훑어봤다.
어느 순간 그녀의 차가운 눈꼬리가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오 장 이상 떨어져서 따라오도록! 더 가까이 오면 뒷일은 책임지지 못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맨 앞에서 멍한 표정으로 걸어가던 정광과 두충이 움찔하며 걸음을 늦췄다.
그 바람에 유태청과 진용도 걸음을 늦춰야만 했다. 앞선 두 사람의 반응에 어이가 없는지 진용과 유태청이 마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흥! 꽤나 도도하군.”
운아영만이 꿈쩍도 않고 그대로 걸으며 차갑게 맞받아쳤다.
여자에 강한 게 여자라더니,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로 인해 조금 묘하게 틀어졌다.
“방금 뭐라 했지?”
푸른 옥잠의 여인이 이제는 몸까지 돌리고 운아영을 노려보았다. 그렇다고 기죽을 운아영이 아니었다.
“봉황곡이 이렇게 대단한 곳인 줄 몰랐는데? 길 가는 사람더러 빨리 가라, 늦게 가라 명령을 하다니 말이야.”
커다란 키, 아름다운 얼굴, 등에 멘 넉 자 장검,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강맹한 기세.
푸른 옥잠의 여인의 눈에 가벼운 놀람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감히 본 곡을 알면서도 시비를 걸겠단 말이냐?”
여전히 싸늘한 그녀의 말에 운아영이 코웃음을 흘렸다.
“흥! 이 길을 그대들이 샀나? 뭐? 감히? 어디서……!”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듯한 기세.
그때 봉황거가 멈췄다. 그리고 여덟 명의 홍의 경장 여인 중 후미를 맡고 있던 네 명의 여인이 일제히 진용 일행 쪽을 향해 돌아섰다.
상황이 이상하게 흐르자 유태청이 조용히 나섰다.
“영아야, 물러나거라.”
“숙조부님, 이들이…….”
“물러나거라.”
무거운 음성. 운아영은 푸른 옥잠의 여인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뒤로 물러났다.
푸른 옥잠의 여인이 냉소를 지으며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평범해 보이는 백발의 노인. 비록 고색창연한 검 한 자루가 옆구리에 달려 있지만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냉소가 조소로 변했다.
“그래도 나이 먹은 자라 그런지 눈치는 빠르군.”
유태청의 흰눈썹이 소금에 닿은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그러나 진용이 먼저 고저가 없는 목소리로 나직이 입을 열어 그녀를 나무랐다.
“아랫사람을 보면 윗사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거늘, 알 만하군.”
“뭐야? 책벌레가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책벌레? 정광과 두충이 동시에 진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광이 중얼거렸다.
“눈깔이 삐었군. 저 엄지발가락보다 굵은 손가락이 안 보이나?”
“이익! 도사라고 해서 봐줄 줄 아나 보지?”
푸른 옥잠의 여인이 한기가 날리는 표정으로 정광을 쏘아보더니 금방이라도 검을 빼어 들 것처럼 손을 어깨 위로 가져갔다.
팽팽한 긴장이 벼른 칼날처럼 날을 세운다.
누구든 손끝만 움직여도 터져 버릴 것 같은 상황!
그때 유태청이 입을 열었다.
“화설청이 아이들을 잘못 키웠군.”
손을 어깨 위로 가져가던 푸른 옥잠의 여인은 한순간 멈칫했다.
방금 저 늙은이가 뭐라고 했지? 내가 잘못 들었나?
놀란 동료들의 모습이 보인다.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순간 그녀는 분노가 치솟았다.
화설청!
저 늙은이는 분명 그리 불렀다.
그 이름은 전대(前代) 봉황곡주이자 강호십검 중의 한 사람으로 천하에 봉황곡의 이름을 드높인 봉황선자의 본명이었다. 결코 일개 별 볼일 없는 늙은이의 입에서 흘러나올 이름이 아닌 것이다.
“늙은이가 감히!”
그녀는 눈을 치켜뜨고 빠르게 검을 잡아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쿵!
진용이 한 발을 살짝 구르자 대지가 울음을 터뜨리고, 거의 동시 유태청의 전신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손을 등 뒤로 가져간 상태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온몸이 끈끈한 거미줄에 휘감기기라도 한 것처럼.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득한 느낌. 이해할 수 없는 갑작스런 상황에 그녀의 눈빛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내가 왜……? 설마 저 서생 때문에? 아니면 저 늙은이?’
이마에서 솟은 땀방울이 콧날을 가르고 가슴으로 뚝 떨어진다.
당황이 경악으로, 경악이 절망으로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무형지기에 감싸인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핏물이 배어 나왔다.
‘크윽! 끄어어…….’
그런 그녀를 보지도 않고 유태청이 말했다.
“검은 마음으로 뽑아야 하지. 그대 같은 마음으로 검을 뽑으면 애꿎은 피만 볼 뿐이야.”
그때다.
“수하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지요, 노선배님.”
푸른 옥잠을 한 여인의 뒤에서 옥음이 흘러나왔다. 옥음은 봉황거 안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마차를 향했다.
사라라랑…….
봉황거의 주렴이 걷히는 소리. 옥구슬 부딪치는 소리가 청량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