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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서생 83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법서생 83화

 

83화

 

 

 

 

 

 

 

유태청의 이마에 진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천 년 전의 이름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제야 유태청의 주름이 펴졌다. 그가 어이없어하는 눈빛으로 진용을 직시했다. 머리마저 앞으로 내민 채.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천 년 전의 이름을 알고 있냐고 물은 건가?”

 

진용이 슬쩍 고개를 뒤로 뺐다.

 

“예…….”

 

내가 못할 말을 했나? 공연히 미안해지는 마음이다.

 

진용의 그런 마음과는 상관없이, 유태청이 또박또박 끊어진 어조로 말했다.

 

“미안하네만, 나는 옛날 일에 대해선 잘 모른다네. 자네는 내가 그 수수께끼 같은 이름을 알아봐 주길 원하는가, 아니면 자네가 펼친 무공에 대해서 말해주기를 원하는가?”

 

“그야 당연히 후자…… 죠.”

 

“그럼 엉뚱한 소리 말고 조용히 좀 있게. 겨우 실마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심심하면 저 바위 위에 다시 앉든지.”

 

할 말이 없어진 진용은 다시 본래 앉아 있던 바위로 다가가 철푸덕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자 세르탄이 웃으며 넌지시 말했다.

 

‘크크크크. 시르, 그러지 말고 우리 그 책이나…….’

 

뭐가 어째?

 

진용은 이를 지그시 깨물고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찍었다.

 

딱!

 

‘켁!’

 

‘쪽팔리게, 저 양반 앞에서 어떻게 그런 책을 보라고…….’

 

너무 세게 쳤는지 뒤통수가 조금 아팠다.

 

진용은 고개를 쳐들고 가볍게 머리를 두어 바퀴 돌렸다.

 

하늘에 별빛이 싸리눈처럼 흩어져 있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달도 은하수 물결에 휩쓸려 흘러가고 있었다.

 

문득 엉뚱한 궁금증이 고개를 내밀었다.

 

‘마계고 이계고,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사위가 조용하고 유태청마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진용은 앉은 김에 천단심법을 끌어올리고 대주천을 행공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유태청이 감은 눈을 떴다. 어둠이 새벽의 찬 기운 가득한 어스름에 밀려날 무렵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가 잘못 익힌 것은 아닌 듯 하네만, 완벽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 내 생각으로는 흐름의 길은 맞지만 강약의 조절이 되지 않았던 듯싶네.”

 

진용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느끼고 있던 바다. 문제는 그 해답을 알지 못해 고민이었을 뿐.

 

“때로는 너무 머리를 써서 억지로 맞추려 하면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틀어져 버리는 경우가 있지. 특히 내공심법이 본래의 것이 아니라면 더할 거네.”

 

확실히 그랬다. 본래의 내공심법이 없다 보니, 성질이 다를지도 모르는 자신의 심법에 흐름을 꿰어 맞추어야 했다.

 

“나라면 내가 익힌 내공심법에 맞추어 재정립해 볼 거네. 흐름이야 약간의 변화는 있겠지. 하지만 그리 큰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 같거든. 그게 멀리 돌아가는 듯하면서도 완성으로 가는 지름길일 것 같은데…….”

 

새로운 정립? 본래의 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만든다? 돌아가는 게 때로는 빠르면서 완벽하다?

 

문득 구양 할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동화됨보다 조화됨을 중시해라! 변화를 무서워하지 마라!”

 

 

 

진용은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무명의 초식 때문만이 아니었다. 신수백타도 요즘 들어 왠지 모르게 갈증이 일고 있었다. 그런데 유태청의 말을 듣다 보니 그 모든 것이 결국 자신의 마음 때문이었다. 

 

틀에 박힌 고정관념!

 

왜 변화를 줄 생각을 못했을까? 천단심법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모든 것에 완벽한 것은 아니거늘.

 

구양 할아버지의 말대로 상고시대부터 발전해왔다는 신수백타는 천고의 무공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천단심법은 신수백타의 발전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어쩌면 본래부터가 권각을 다루기 위한 심법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몰랐다.

 

그래! 거기에 신수백타의 갈증이 있었던 거였어!

 

진용은 멍하니 서 있다가 유태청이 몸을 돌리자 그제야 다급히 허리를 숙였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언뜻 유태청의 걸음이 멈칫거리다 다시 옮겨졌다.

 

“얻는 것도 복이 있어야 얻는 걸세. 뭔가를 얻었다면 그것도 다 자네의 복이지. 그나마 면박을 당하지 않아 다행이구먼. 허허허…….”

 

 

 

운가명은 유태청이 넌지시 건넨 말을 듣고 진용에게 조용한 뒤쪽의 별채를 하나 내어줬다.

 

진용은 자신이 지닌 무공도 정리하고 정보가 들어오기를 기다릴 겸 풍림장에서 며칠을 더 머물기로 했다.

 

그사이 정광에게 고대문자에 관한 책자를 건네주고는 틈틈이 만나 고대문자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덕분에 그럭저럭 글자 몇 개를 해석해 내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충에겐 나름대로 권각법을 정리해서 한 권의 책자로 만들어주었다. 비록 대단한 비급은 아니었지만 두충은 눈물을 한 바가지나 흘리면서 기뻐했다.

 

누가 뭐래도 천하의 고수 진용이 만들어준 무공 아닌가!

 

두 사람에게 과제를 안긴 진용은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을 가다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열흘이 흘렀다. 그 열흘은 진용에게 새로운 시작이었다.

 

우선은 마안의 기초를 다졌다. 그러기 위해서 진용은 삐쳐 있는 세르탄에게 소녀경과 금병매를 세 번씩이나 보여줘야 했다.

 

물론 진용도 봤다.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펴가며.

 

‘음음, 이건 순전히 초 소저를 위해서야…….’

 

그렇게 핑계대며.

 

그리고 무명의 일곱 초식을 전보다 더 편안해진 마음으로 세세히 훑어보았다. 덕분에 얻은 것이 적지 않았다.

 

신수백타는 접근전의 최고봉인 반면 원거리 공격인 격공(擊攻)에서 약점이 있었다. 그런데 무명의 초식은 그 약점을 보완해 주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 두 가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천단심법에 새로운 변화를 줄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었다.

 

그 바탕에는 천단심법의 최대 장점인 타 심법에 대한 포용력과 건곤흡정진혼결 중 강맹하면서도 마공의 기운이 약한 건곤결이 있었다.

 

어찌 생각하면 모험이었다. 자칫 정심(正心)한 천단심법에 마기가 침범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우려는 우려로 끝났다. 천단심법은 건곤결을 별다른 이질감도 없이 무난하게 품어버렸다. 

 

진용은 그 심법의 이름을 건곤천단심법(乾坤天端心法)이라 명명했다.

 

 

 

 

 

2

 

 

 

 

 

“흠, 날씨 한번 좋군.”

 

유난히 포근한 날씨였다. 진용은 방을 나와 풍림장의 정원을 거닐었다. 

 

정원의 작은 연못 속에선 서너 마리 물고기들이 서로 꼬리를 문 채 헤엄치고 있고, 물 위에는 뒤늦게 떨어진 낙엽들이 떠다녔다.

 

진용이 연못을 한 바퀴 돌아 월동문을 지나가려 할 때였다. 담 너머에서 힘찬 기합성이 들려왔다.

 

“차앗! 이얍!”

 

진용의 입가로 희미한 웃음이 맺혔다.

 

여인의 기합성. 운아영이 유태청의 옆방으로 거처를 옮겼다더니 아마 그녀가 유태청을 졸라대 검을 익히고 있는가 보다.

 

문득 호기심이 동했다. 그녀의 무공이 일류에 다다랐다는 것은 처음 봤던 그날 이미 느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낸 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그녀가 무공을 펼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긴 자기 자신부터가 식사할 때를 제외하면 무명의 일곱 초식과 건곤천단심법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몰랐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흠, 한번 가볼까?’

 

월동문을 나서자 공터에서 검신만 석 자가 넘는 거대한 장검을 휘두르고 있는 운아영이 보였다.

 

여인의 검답지 않은 웅혼함과 커다란 덩치의 움직임이라 믿을 수 없는 표홀함이 잘 어우러진 검무였다.

 

‘제법인데?’

 

옆에서 뒷짐 진 채 그녀의 검무를 흐뭇한 모습으로 보고 있던 유태청이 마침 진용을 발견하고는 빙그레 웃으며 반겨주었다.

 

“아! 어서 오게나. 고 공자가 어쩐 일인가?”

 

“제가 공연히 방해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다 끝나가고 있으니 상관없네.”

 

때마침 운아영이 숨을 크게 들이쉬며 검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그녀는 몸을 돌리다가 진용을 보고는 이채를 발했다.

 

‘저 비쩍 마르고 힘도 없어 보이는 서생이 할아버지도 장담할 수 없는 고수라고?’

 

그녀는 절대 믿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맘씨 좋은 할아버지가 치켜세워 준 것이겠지.

 

그때였다. 문득 그녀의 눈가로 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고 공자, 할아버지가 그러시는데 대단한 고수라면서요?”

 

“하, 하! 고수는요. 그냥…….”

 

“조금 전에 할아버지에게 배운 검이 있는데, 한 수 가르쳐 주실래요? 할아버지, 괜찮죠?”

 

그녀의 속마음을 모를 유태청이 아니었다. 그가 말했다.

 

“허허, 그야 고 공자가 허락만 한다면야…….”

 

속으로는 ‘요것아, 대들 사람한테 대들어야지. 어디 한번 혼 좀 나봐라’ 그런 생각이었지만.

 

운아영은 유태청마저 승낙하자 어깨를 떡 펴고 말했다.

 

“들으셨죠? 어때요, 설마 거절하시지는 않겠죠?”

 

못을 박듯이 말하는데 어찌 거절할 수가 있을까.

 

진용은 어색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정 원하신다면 할 수 없죠. 하나 조심해야 합니다. 겨루다 보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천천히 두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는 주먹을 늘어뜨렸다.

 

운아영의 눈매가 움찔거렸다.

 

“설마 맨손으로……?”

 

“제 손은 남보다 크기도 좀 크고 보기보다 질깁니다. 걱정 마시고 검을 펼치세요.”

 

진용이 조용히 말하며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운아영의 눈매가 치켜떠진다.

 

‘뭐? 손이 질겨? 그래, 얼마나 질긴가 보자!’

 

비록 강호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손이 질기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검을 잡은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투지가 솟았다.

 

“좋아요. 이제 보니 권각의 고수셨군요. 그렇다면 상관없겠죠.”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유태청의 태도가 신경 쓰였다. 진용이 맨손인 것을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은근히 화가 났다. 그녀는 검을 만병지왕이라 생각하는 무인. 더구나 자신의 검은 매일 손을 봐서 머리카락조차 자를 정도로 날이 서 있었다. 

 

그런 자신의 검을 맨손으로 대하겠다고?

 

손만 크면 대순가? 

 

어디 혼 좀 나봐라!

 

그녀는 진용을 향해 일보를 내딛으며 천천히 검을 잡아 뺐다.

 

츠르르릉!

 

넉 자에 가까운 검신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가요!”

 

일순간, 그녀의 허리에서 번갯불이 번쩍였다.

 

검광이 진용과 그녀 사이를 일직선으로 갈랐다.

 

쾌의 진수, 일섬쾌(一閃快)였다!

 

어디를 노리는지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검광.

 

진용의 어깨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번개가 허공을 가르며 지나간다.

 

운아영의 이가 악다물렸다. 그녀의 손목이 비틀리고 검광이 열십자로 갈라졌다. 순간,

 

쩡!

 

운아영의 눈이 부릅떠졌다.

 

검신이 진용의 엄지와 검지에 잡혀서 파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어, 어떻게……?”

 

진용이 검을 놓으며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검은 몸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하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런데 의욕이 앞서서 검과 몸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선 몸만 상할 뿐, 제대로 된 검을 펼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운아영의 부릅뜬 눈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부끄러움인지 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미안해요.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하는데…….”

 

진용이 의외라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약점을 지적당하고 기분 나빠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무인이라면 더할 것이다. 그런데 운아영은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녀의 강한 성격을 생각하면 의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흠, 유 어르신이 왜 운 낭자를 아끼는지 알 만하군.’

 

그리 생각하니 진용도 은근히 흥이 돋았다.

 

“자, 다시 해볼까요?”

 

운아영이 전보다 훨씬 편안한 표정으로 검을 가볍게 말아 쥐었다.

 

“좋아요. 이번에는 조금 다를 거예요. 다시 가요!”

 

그녀가 검을 뻗었다. 완전히 몸과 하나가 되어서.

 

지나가던 실바람도 그녀와 한 몸이 되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유태청의 얼굴에 흐뭇한 웃음이 떠올랐다.

 

‘녀석, 지적을 고깝게 생각하지 않다니……. 허허허.’

 

 

 

 

 

3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 교교한 월광이 내리비치는 전각 안. 

 

실눈을 한 중년인이 엎드린 채 음울한 어조로 말했다.

 

“혈혈구마가 모두 죽었습니다.”

 

그의 앞에는 황금빛 수라탈을 쓴 자가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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