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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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81화
81화
조금도 흔들림 없는 태도.
운가명은 그런 진용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결국에는 입술을 깨물며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밝혔다는 것은 결국 전(全), 무(無).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말.
운가명으로선 택할 길이 하나밖에 없었다.
“신 운가명, 삼가 수천호령사를 뵈오이다.”
뜻밖의 상황에 진용이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심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무릎을 꿇을 줄이야.
“이러지 마시고 앉으십시오. 이러시면 제가 유 노선배님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운가명의 무릎이 절로 펴졌다. 진용이 내력을 뿜어내 운가명의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 것이다.
운가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들은 모르지만 자신도 유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내공을 익혔다. 그것도 강호의 고수들 못지않게.
그런 자신을 강제로 일으켜 세우다니.
오기로 버텨보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상황을 짐작한 유태청이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허허허, 고 천호는 내가 정상이었다 해도 쉽지 않은 사람이니라.”
“원, 유 노선배님도. 유 노선배님이 부상만 당하지 않으셨다면 제가 어찌 유 노선배님의 상대가 될 수 있겠습니까? 가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운가명으로선 더 이상 놀랄 기력도 없었다. 진용의 겸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태청이 결코 헛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
‘분명 뭐가 잘못된 걸 거야.’
이야기를 나누기 전 운가명이 말했다.
“도움은 드릴 수 있으나, 풍림당의 안위에 관계된 일은 저의 목을 벤다 하셔도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진용은 한마디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수천호령사의 지위를 나타내는 수천금령(守天金令)을 꺼내 들고.
“그럼 이까짓 금패, 황궁으로 돌려보내고 남자 대 남자로서 이야기를 나누죠.”
지위를 버리겠다는 뜻.
어이가 없는지 와중에도 운가명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까짓 금패? 수천호령사의 지위가 이까짓 거라고?
‘제정신 아닌 사람이 제일 상대하기 까다로운 법인데…….’
공연한 걱정이 태산처럼 쌓였다.
어쨌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운가명과 진용은 그 후로 반시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연 풍림당의 정보는 결코 진용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강호의 정보라면 모를까, 황궁과 유림에 관계된 정보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진용이 금의위의 천호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삼왕이 강호의 문파에 몸을 숨겼다는 소문은 저희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천혈교라는 것도. 하나 천혈교라는 곳이 워낙 신비한 곳이라 그곳에 대해선 정확히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행이라면 동창에 대해서 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창의 몇몇 당두들이 강호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딘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일단 천제성의 하부 조직인 백인검문이라는 곳에 그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곳 말고도 또 다른 곳이 한 군데 더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백인검문!
마침내 그들이 있는 곳이 밝혀졌다. 뜻밖의 소득이었다. 그런데 천제성의 하부 조직? 한 군데 더 있다고?
“알아봐 주실 수는 있겠습니까?”
“알아는 보겠습니다만, 강호의 문파에 접근한다는 것이 워낙 위험해서……. 더구나 흑도 쪽인 것 같으니 조금 시간을 주셔야 할 것입니다.”
그 정도만 해도 어디인가.
“시간이야 당연히 걸리겠지요. 게다가 흑도라면 따로 일을 시킨 사람들도 있으니 너무 마음에 부담은 갖지 마십시오. 그리고 혹시…… 밀옥을 탈출한 제 아버지에 대해서 들은 말은 없습니까? 아니면 조금 광기를 띤 고수가 새로 나타났다는 이야기라든지…….”
운가명은 말뜻을 눈치 채고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글쎄요. 그건 아직…….”
안타깝게도 그런 정보는 들은 적이 없는가 보다.
그래도 진용은 실망하지 않고 운가명에게 부탁했다.
“혹시라도 그런 정보를 얻거든 즉시 저에게 연락을 해주십시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수천호령사.”
일단 두 가지는 풍림당의 도움으로 일이 쉬워질 것 같았다.
천혈교에 대한 조사, 그리고 동창의 비밀 고수들에 대한 것.
더 깊은 것은 어차피 유문인 풍림당의 힘으로는 무리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삼존맹에 대한 것을 물었지만 풍림당 역시 일반적인 것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힘이 닿는 데까지는 알아봐 주겠다고 했으니 혼자 움직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터였다.
우선은 그 정도에 만족하기로 했다. 어차피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을 테니까.
다음 날 아침, 진용은 밤새 쓴 두 통의 서신를 운가명에게 부탁했다.
비문으로 쓴 한 통은 공손각에게 보내는 편지였고, 다른 한 통은 초연향에게 보내는 서신이었다.
첫 번째 서신을 쓰는 데는 일각도 걸리지 않았다. 날밤을 샌 이유는 두 번째 서신 때문이었다.
킬킬거리는 세르탄 때문에 뒤통수를 때려가며 쓰다 보니 아침이 되자 머리가 멍할 지경이었다.
3
그가 사람을 보내온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한편으론 황궁 권력의 정점에 선 그가 자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 반갑기도 했다.
“어인 일이시오, 공사에 바쁜 분이 강호의 무부를 다 찾아주시고?”
구양무경은 마주 앉은 하얀 얼굴의 중년 환관을 바라보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동창에 단 두 명뿐이 첩형 중 한 사람이 바로 눈앞에 앉은 정환이었다.
한때는 아랫사람처럼 취급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는 천하의 권력을 쥐고 흔드는 동창 제독의 명을 받고 온 자. 더구나 첩형이다. 허투로 상대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닌 것이다.
간단한 인사가 오가고 나자 정환이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제독께서 대맹주의 능력을 빌리고 싶어하십니다.”
“호!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몸이 된 분께서 대체 무슨 일로?”
“은밀히 한 사람을 납치해 주시면 되는 일입니다.”
“한 사람? 납치?”
“만일 납치가 어렵겠거든 죽여도 상관은 없습니다. 물론 그 가치는 좀 다르게 평가되겠지만 말입니다.”
구양무경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자신에게 누군가를 납치해 달라는 청부라니.
아무리 권력의 정점에 섰다 해도 자신을 어떻게 보고 감히 그런 부탁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런 부탁을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구양무경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정환을 뚫어지게 직시했다.
“대단한 사람인가 보구려, 천하를 주무르는 동창에서 그런 부탁을 하다니.”
쏘는 듯한 말투에 그의 기분 상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정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무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금의위의 천호외다. 또한 황태자의 신임이 각별한 자이기도 하지요. 문제는 우리가 했다는 표식이 나지 않아야 하는데, 금의위가 우리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어서 당장은 직접 움직이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 말에 구양무경의 표정이 굳어졌다.
금의위의 천호? 황궁의 사람을 납치해 달라고?
‘대체 무슨 꿍꿍이속이지?’
그때 정환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대단한 고수인지라…….”
일은 급한데 상대가 고수여서 표시나지 않게 일을 처리할 자신이 없다는 말.
“고수? 제독이 그리 판단했다면 보통 인물이 아니겠구려.”
“적어도 절정에 이른 고수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맹주께서는 많은 사람을 부리고 계시니, 그 일을 비밀리에 처리할 수 있는 적절한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정환의 말에 구양무경은 생각을 달리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자신을 번거롭게 한다 생각했었다. 아무리 예전에 도움을 받은 일이 있고, 권력의 정점에 선 동창 제독의 부탁이라 해도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에게도 그리 해가 될 일이 아니었다. 아니, 많은 득을 가져올 만한 일이었다. 동창이 급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뜻.
구양무경의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걸렸다.
“사람이야 많지요. 그러잖아도 제독께 부탁드릴 일이 하나 있었는데 잘되었구려. 먼저 대가를 치를 수 있게 되었으니…….”
정환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대맹주께서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허허허, 별말씀을. 한데 그가 누구기에 그리도 고민하시는 거요?”
“그는 고진용이란 잡니다.”
정환은 일각에 걸쳐 고진용에 대한 설명을 마쳤다. 그리고 구양무경이 내민 조건을 머릿속에 담고 천붕전을 나갔다.
얼마가 지난 후, 생각에 잠겨 있던 구양무경이 혼잣말을 하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암군(暗君)을 불러라.”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암군을……?”
“그리고 상관욱에게 사람을 보내 잠시 기다리라고 전해라.”
“존명…….”
구양무경의 입가로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재미있는 일이야. 정보가 틀리지 않다면, 그놈이 그놈인데…… 그놈의 정체가 금의위였다니. 그것 참…….”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구양무경의 눈빛이 곤혹스럽게 변했다.
“도대체 동창 놈들은 그놈의 실력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것인지 원…….”
얼마 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놈을 죽이기 위해 사람까지 보냈지만, 설령 죽이지 못한다 해도 자존심만 상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관욱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죽이든 납치를 하든, 어느 쪽으로든 끝장을 봐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그놈, 나이도 어린 놈이 인생 꽤 복잡하게 사는군. 후후후…….”
하지만 그는 생각도 못했다. 이 일로 진용과 그의 관계가 좀 더 적극적인 관계로 변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인생도 꽤나 골치가 아파졌다는 것을.
4
밤이 깊어가자 황금빛으로 물든 달이 중천으로 떠올랐다. 구름도 없고 안개도 끼지 않아 달은 더욱 찬란한 황금빛 가루를 쏟아냈다.
진용은 살짝 이지러진 황금 쟁반을 바라보다 조금은 힘없는 목소리로 세르탄을 불렀다.
‘세르탄.’
‘어.’
‘마계에도 저런 달이 떠 있어?’
‘아니. 달은 있는데 조금 달라. 두 개거든.’
마계는 마곈가 보다. 달이 두 개나 되다니.
‘가족이 몇이야?’
‘…….’
한참이 지나도록 세르탄이 말을 하지 않았다.
‘없어?’
‘아니, 많아. 셀 수 없을 정도로.’
‘혼자 이곳에 있으려니 마음이 많이 아프겠군.’
‘조금. 이곳에 있다 보니까, 인간들이 왜 울적해하는지 알 것 같아.’
‘나도 좀 그래. 아버지도 보고 싶고 초 소저도 보고 싶고. 에이, 모르겠다. 세르탄, 그런 울적한 생각 떨치기 위해서라도 우리 시작하자.’
‘뭘?’
‘마안을 배워보자고.’
‘…….’
‘왜, 싫어?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은 법이야. 다른 것은 나중에 배우고 먼저 마안부터 해보자고.’
‘다, 다른…… 것?’
‘아니면 폭공지부터 먼저 할까?’
‘이, 이…….’
그때 진용이 가슴속에서 한 권의 책을 꺼냈다.
‘정광 도장님이 이거 오늘 밤만 보라고 했는데…… 그냥 갖다 줄까?’
세르탄의 말투가 급변했다.
‘뭐, 어차피 가르쳐 주기로 약속했으니까……. 하지만 마안만 가르쳐 줄 거야.’
글쎄, 누구 맘대로?
진용이 눈을 뜬 것은 인시가 거의 다 지나갈 무렵이었다.
눈을 감은 것이 해시가 되기도 전이었으니 네 시진이 훌쩍 지나간 후였다.
마안을 익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마나, 즉 기를 연약하기 그지없는 눈에 집중시켜야 하는 만큼 환타지를 배울 때보다 배는 힘이 들었다. 더구나 육체적인 움직임으로 펼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감응시켜서 펼쳐야 했다.
당연히 쉬울 리가 없었다.
그래도 배워놓으면 제법 쓸모가 많을 듯했다.
원할 경우 눈빛만으로도 심지가 약한 자는 제압할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을 심안공으로 제압하려는 자에게는 거꾸로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더구나 자신은 남을 속일 수 있지만, 남은 절대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그것은 귀계가 난무하는 강호를 행보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진용이 미처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마안의 능력에는 또 하나의 효능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세르탄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아마 알았다면 절대! 가르쳐 주지 않았을 것이다.
‘세르탄, 며칠 배워서는 안 되겠는데?’
‘당연하지! 아마 십 년은 배워야 할걸?’
‘십 년은 무슨. 일 년이면 될 것 같은데.’
‘시르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야. 정신을 극한까지 집중시켜야 하거든.’
‘그러니까 세르탄은 십 년이 걸려도 나는 일 년이면 된다는 거야. 나는 세르탄처럼 말도 많지 않고, 말썽 피우느라 딴 짓도 잘 하지 않거든.’
‘그래도…… 오 년은 걸릴걸?’
‘세르탄이 머릿속에서 좀 도와주면 일 년이면 충분해. 앞으로 하루에 세 번씩만 외워, 또박또박. 알았지?’
‘싫…….’
‘이제 들어가서 책 보자. 날도 찬데 노인 양반 병들라.’
‘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