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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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18화
신룡전설 1권 - 18화
“사형!”
바람이 분다. 그리고 한 사내가 고개를 돌린다.
미남자. 사내의 얼굴은 이 세 글자로만 표현하면 더 이상의 미사여구(美辭麗句)는 필요치 않았다. 그런 사내가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응?”
사내가 돌아보자 뒤에 서 있던 청년이 말했다.
“본가에는 얼마 만에 가는 거예요?”
“정확하게…….”
잠시 뜸을 들인 사내가 말을 이었다.
“한 십 년쯤 되었나?”
사내의 말에 청년이 얼굴을 찡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에?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정확하게 십 년쯤? 무슨 대답이 그래요!”
“하하하하! 그런가?”
사내는 환하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청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다가 이내 무언가 또 생각이라도 났는지 사내를 불렀다.
“아! 사형!”
청년의 부름에 사내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응?”
“사형의 집은 무관이라면서요?”
“응.”
“그런데 왜 무당(武當)으로 왔어요?”
사내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하늘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왜 날 무당으로 보냈을까?”
“…사형.”
“하하하하!”
사내의 낭랑한 웃음소리에 청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형의 집도 무당파의 힘을 조금이라도 받고 싶은 모양이겠죠, 뭐.”
“그럴지도.”
“사, 사형… 그, 그게 아니라…….”
순간, 당황하는 청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사내가 빙긋 웃었다.
“사실… 내가 우리 아버지였더라도 내 자식을 무당파로 보냈을지도 몰라. 사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우리 무관은 작고, 보잘것없거든! 하하하!”
사내의 웃음소리에 청년이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사형, 그런 식으로 말할 건 없잖아요…….”
청년의 말에 사내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여전히 밝은 웃음과 함께 청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무렴 어때? 사실을 말하는 것뿐인데. 그나저나… 군보 녀석은 많이 컸겠지?”
“군보?”
“이 사형의 막내 동생이지! 음… 아마도 네 또래쯤 되었을 것 같다. 하하하하!”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내의 허리엔 한 자루의 송문고검(松紋古劒)이 걸려 있었고, 그의 하얀색 무복 등에는 태극 문양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정파 무림의 기둥인 무당파의 2대 제자 고군학!
그가… 10년 만에 자신의 집인 하문 검관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오른쪽엔 검, 왼쪽엔 도, 등엔 창, 어깨엔 커다란 짐을 짊어진 왕무적의 물음에 육소빈이 웃으며 대답했다.
“복주(福州)!”
육소빈의 대답에 왕무적이 다시 물었다.
“복주? 거기가 어딘데?”
“우리를 도와줄 있는 사람이 있는 곳!”
“우리를 도와?”
육소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런데 복주를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지?”
“당연히 말이나 마차를 사서 타던지, 아니면 걸어서 가야지.”
왕무적이 다시 물었다.
“얼마나 걸리는데?”
잠시 생각을 하던 육소빈이 대답했다.
“말을 타면 대략 열흘 정도가 걸리고, 걸어간다면…….”
육소빈의 대답에 왕무적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 물었다.
“혹시 복주가 바닷가야?”
“응? 뭐, 인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
육소빈의 물음에 왕무적은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잘됐다!”
“응?”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육소빈의 얼굴을 보며 왕무적은 그저 빙긋 웃기만 했다.
훤히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육소빈은 마음까지 탁! 트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적랑, 여긴 왜 온 거야?”
육소빈의 물음에 왕무적은 씨익 웃었다. 그리곤 바다를 향해서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금구야아아아아~!!”
“……?”
갑자기 바다를 향해 커다랗게 누군가를 부르고, 환하게 웃으며 바다를 빤히 바라보는 왕무적의 모습에 육소빈은 순간적으로 그가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바다에서 금빛 물결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뭐, 뭐지?”
육소빈이 당황하는 사이에 금빛 물결이 수면 위로 천천히 부상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눈부신 금빛을 번쩍이는 금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세, 세상에……!!”
육소빈이 두 눈을 부릅뜨며 놀라거나 말거나, 왕무적은 어느새 훌쩍 몸을 날려 금구의 등껍질 위로 올라탔다.
탁탁탁.
왕무적은 금구의 등껍질을 손으로 두드리며 친근한 얼굴로 물었다.
“금구야, 잘 있었어?”
-뭐야?
친근하게 묻는 왕무적과 다르게 금구는 여전히 퉁명스럽기만 했다. 아니, 오히려 화가 난 듯한 음성이었다.
“어?”
-왜 다른 인간을 데려온 거냐?
“아… 인사해, 내 친구야. 하하하하하!!
왕무적은 육소빈을 소개하며 자랑스러워했다.
금구는 사납게 부릅뜬 눈으로 육소빈을 노려보다가 이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일은 다 끝낸 거냐?
“아니!”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왕무적.
-…….
금구는 이내 길쭉하게 목을 빼 왕무적을 향해 커다란 눈을 부라렸다. 마치 일도 다 끝내지 못한 놈이 왜 불렀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웬만한 인간이라면 금구의 눈빛에 기가 질려버리겠지만, 왕무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금구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와아~ 금구야! 너, 눈 엄청 크다!”
-젠장!
금구는 자신의 눈빛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왕무적의 모습에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금구야, 우리 복주까지 가자!”
-뭐?
황당하다는 듯한 금구의 음성.
“복주까지 가자고.”
-내가 왜!
“바다 어디서든 부르면 네가 나타난다고 했잖아.”
-그게 무슨 상관인데!
금구의 말에 왕무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아… 바다에선 언제나 날 태워주는 거 아니었어?
-아니야!
“아… 그렇구나.”
-…….
그럼에도 왕무적은 금구의 등껍질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야, 내려!
“음… 복주까지 데려다 주면 안 될까?”
-내려!
금구는 왕무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외쳤다.
“쳇! 치사한 금구!”
왕무적은 금구의 등껍질에서 다시 육소빈이 멍하니 서 있는 바위로 올라섰다. 금구는 눈을 부라려 왕무적을 노려보곤 서서히 물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물끄러미 금구가 떠난 바다를 바라보던 왕무적은 조금은 미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소빈, 금구가 싫다고 하니까 그냥 걸어가자.”
“으, 으응. 그, 그런데…….”
번쩍! 번쩍! 번쩍!
사라졌던 금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곤 뭔가 잔뜩 못마땅한 얼굴로 왕무적을 빤히 바라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야, 타!
“어?”
-타라고!
“어라? 복주까지 데려다 주는 거야?”
금구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왕무적을 바라보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금구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왕무적을 도와주라는 용의 말을 전해 받았기 때문이다.
“소빈, 빨리 타자!”
“어… 어?”
왕무적은 육소빈의 팔을 잡고 금구의 등껍질 위로 뛰었다.
금구는 천천히 몸을 돌려 바다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머!”
“소빈, 꽉! 잡아야 해! 금구는 엄청 빠르거든! 하하하하!”
엄청난 속도로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는 금구의 등껍질 위에서 육소빈은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소빈! 나처럼 해봐! 야아아아아아아아아-!!”
파란 머리카락을 허공에 어지럽게 휘날리며 소리를 지르는 왕무적의 모습에 육소빈은 ‘풋!’ 하고 웃더니 이내 작게 소리를 질렀다.
“야아아.”
“소빈! 더 크게! 야아아아아아아아-!!”
왕무적의 모습에 육소빈은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응! 야아아아아아아아-!!”
왕무적과 육소빈의 고함소리에 금구가 소리쳤다.
-젠장! 시끄러운 인간들!!
금구는 한시라도 빨리 왕무적과 헤어지기 위해서 전속력으로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다.
“금구, 엄청 빠르지?”
“응! 그런데 금구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
금구의 도움으로 복주 인근의 바닷가까지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서 도착한 왕무적과 육소빈은 복주성을 향해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금구도 그놈이 소개시켜줬어.”
“그놈?”
“응!”
“…그렇구나.”
육소빈은 도대체 왕무적이 말하는 ‘그놈’이라는 존재가 누구인지 정말로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저 답답한 마음을 애써 달랠 뿐이었다.
“와아~!”
갑작스런 왕무적의 탄성에 육소빈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저기! 저기 엄청나게 큰 돌담이 쌓아져 있어!!”
왕무적의 외침에 육소빈은 ‘풋!’ 하고 웃었다.
왕무적이 놀란 얼굴로 감탄사를 터트리는 것은 복주를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막기 위해서 세워진 거대한 성벽이었다.
복주는 복건성의 성도이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복건성에서 복주보다 큰 도시는 없었다. 물론, 성도라고 가장 큰 도시여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저건 성벽이라고 하는 거야.”
육소빈의 설명에 왕무적이 두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성벽?”
“응. 뭐, 간단하게 말하면 외부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세워진, 적랑의 말대로 거대한 돌담이지. 호호호.”
“아… 그렇구나. 엄청 크다!”
복주성의 남문(南門)으로 향하던 육소빈이 왕무적의 옷깃을 잡아 그를 멈춰 세웠다.
“어라?”
왕무적이 왜 그러냐는 듯 육소빈을 바라보자 그녀가 품에서 호패(號牌)를 꺼내서 그에게 보여줬다.
“적랑, 호패나 노인(路引) 없지?”
육소빈의 물음에 왕무적은 그녀가 내민 호패를 자세히 바라보며 물었다.
“호패? 노인? 그게 뭔데?”
육소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저기 사람들이 줄서서 저 병사에게 이걸 보여주는 모습이 보이지?”
육소빈의 말에 왕무적은 경비 병사에게 일일이 호패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응.”
“호패나 노인은 ‘내가 누구다!’라고 증명할 수 있는 신원증명서야. 즉, 신원이 확실한 사람만 복주성으로 들여보낸다는 거야. 적랑처럼 호패나 노인이 없는 사람은 병사들이 성 안으로 들여보내주질 않아.”
“응? 왜?”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죄인들이 많거든. 즉, 죄를 짓고 도망을 다니는 도망자들이거나 뭔가 나쁜 의도를 갖고 성으로 잠입하려고 할 수도 있거든. 그리고 다른 나라의 첩자일 가능성도 있고. 물론 적랑처럼 호패라는 걸 모르는 세상과는 좀 동떨져 살던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육소빈의 자세한 설명에 왕무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또 한 가지를 배웠다는 사실에 즐거워하던 왕무적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어라? 그럼 난 복주성으로 못 들어가는 거야?”
왕무적의 물음에 육소빈이 배시시 웃었다.
“호패나 노인이 없다고 해서 들어가지 못하는 건 아니야. 적랑은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어?”
왕무적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동안, 육소빈은 그의 팔을 잡고 복주성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줄 끝에 섰다.
“어머! 저기 저 사람, 어쩜 저렇게 아름답게 생겼지?”
“어머머! 정말이네!”
“퉤! 무슨 놈의 사내새끼가 저렇게 생겼담!”
“흐흐흐… 사내놈이나 계집년이나 얼굴은 일품일세!”
“허허허! 꼭 내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군.”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군!”
사람들은 왕무적과 육소빈을 바라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어댔지만, 두 사람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이미 그동안 어딜 가나 들어온 말이 대부분이었기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왕무적은 자신을 바라보며 소곤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음까지 지어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왕무적과 육소빈의 검문 차례가 되었다.
“으음…….”
경비 병사는 왕무적과 육소빈을 놀란 눈으로 빤히 바라보다가 퉁명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호패나 노인을 보여주시오.”
“여기 있습니다.”
육소빈이 예쁘게 웃으며 자신의 호패를 건넸다.
“흠흠!”
경비 병사는 육소빈의 웃음에 헛기침을 하며 그녀의 호패를 확인하곤 돌려주었다.
“…….”
“…….”
왕무적이 호패나 노인을 보여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경비 병사가 다시 말했다.
“호패나 노인을 주시오.”
“…….”
왕무적은 여전히 경비 병사를 빤히 바라봤다.
‘뭐야, 이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