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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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16화
116화
비가 내리는 처마 밑에서 실피나의 모습이 드러났다.
―주인아, 불렀어? 비 오네? 설마 비 오는데 돌아보라는 것은 아니지?
실피나가 먼저 선수를 쳤다. 불안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이제 구미호가 다 되었다.
‘끄응.’
진용은 그런 실피나에게 차마 한 바퀴 돌아보라는 말을 하기가 그랬다. 하라면 하겠지만, 물론 투정도 당연히 할 것이다.
세르탄이 어이가 없는지 툴툴거렸다.
‘비 맞는다고 옷이 젖어, 몸이 젖어? 덜떨어진 것이 좌우간 가리는 것도 많네. 저래서 정령들은 빡세게 굴려야 한다니까. 자꾸 봐주니까 주인 말도 안 듣잖아.’
진용도 그 말이 들렸지만 못들은 척 말했다.
‘세르탄, 천상 네가 신경 좀 써야겠다.’
‘내가 왜? 실피나를 시켜!’
‘기운을 느끼는 것은 네가 훨씬 낫잖아.’
‘그거야 당연하지만…….’
‘비가 멈출 때까지만 신경 써. 비가 멈추면 실피나 시킬 테니까.’
누군가가 뒤따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워낙 멀리 떨어져 있고 은밀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기운이었다.
자신들을 쫓을 자들은 그들밖에 없다. 삼존맹!
‘와라! 어차피 부딪쳐야 한다면 철저히 부숴주마!’
* * *
천지가 어둠으로 물들 즈음에서야 비가 멈췄다. 일행은 일단 관운묘에서 밤을 새기로 했다.
비가 와서인지 밤이 되자 날씨가 서늘해졌다.
화르륵!
마른 나무 쪼가리를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흔들리는 불빛에 관운장의 신상도 흔들렸다.
간간이 들리는 두충과 운아영의 거친 숨소리. 두 사람은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서 한쪽에서 검을 들고 연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벌써 두 시진째였다.
석무심 일행은 그런 두 사람을 기이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유태청의 일행치고는 두충의 무공이 너무 약해 보이는 게 이상했다.
‘단순한 일꾼인가?’
보따리를 매고 있는 걸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운아영의 여자답지 않은 강한 검격을 바라볼 때는 짧은 감탄이 간혹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의 연무가 그칠 줄을 모르자 한 사람 한 사람 몸을 눕혔다.
진용도 실피나나 세르탄에게서 별다른 보고가 없자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신왕의 무공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렇게 눈을 감고서 신왕의 무공에 대해 생각한 지 일각가량 지났을 때다. 비가 멈춘 후 정찰을 보낸 실피나가 다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모닥불이 거세게 흔들렸다.
왔군!
―주인아! 사람들이 오고 있어.
<몇 명이나 되는데?>
―어…… 열…… 넘어. 제법 세게 보여.
<어디쯤 왔지?>
―저 앞에 길이 꺾어지는 곳에.
그렇다면 백 장 밖이란 말이다.
‘빠르게 다가오는데?’
세르탄도 그들을 느꼈는지 빠른 말투로 중얼거렸다.
진용은 일어서서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나직이 말했다.
“운기를 멈추시죠, 어르신.”
가부좌를 틀고 있던 유태청이 감았던 눈을 떴다.
“무슨 일인가?”
“손님이 온 것 같습니다.”
두 말도 필요 없었다. 정광이 벌떡 일어섰다. 사도굉도 뒤질세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일입니까?”
석무심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우들이 보고 싶어하던 사람들이 왔나 보군.”
정광의 살짝 비꼰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시르, 놈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세르탄의 경고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생각보다 빠른 움직임.
“유 노선배님께선 운 소저와 두 위사를 보호해 주십시오.”
“알았네.”
적들의 기운이 느껴진다. 거리는 이십여 장 정도.
<실피나, 적들의 걸음을 늦춰봐!>
―알았어!
실피나가 신이 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정찰은 귀찮아도 싸움이라면 신나는 실피나였다.
잠시 후, 밖에서 광풍이 몰아쳤다.
3
관운묘와는 이제 이십여 장의 거리.
상관욱은 서너 번의 도약이면 도착할 거리를 남겨놓고 갑자기 광풍이 불자 몸을 떨었다.
‘이 바람은……?’
그날도 광풍이 불었었다. 주위는 고요한데도 자신들만을 향해 불어왔었다.
그 후 절정에 달한 고수들이 어이없게도 바람에 나가떨어졌었다.
‘그다! 그가 우리의 접근을 눈치챘어!’
본능이 속삭이고 있었다.
-물러서! 어서!
상관욱은 달려가던 속도를 늦췄다. 흘낏 상관욱을 바라본 엽시명도 속도를 늦추었다.
천은단 단원들은 두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바람처럼 달려갔다.
그때다. 광풍이 갑자기 회오리바람으로 변하더니 선두를 치달리던 천은단원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걸 본 상관욱은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닫고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우연히 부는 바람이 아니야. 저 바람은 분명 그와 연관이 있어!’
“뭐, 뭐야?”
천은단원이 멈칫한 사이.
번쩍! 번개 한 줄기가 바람을 가르더니 한 사람이 관운묘를 향해 날아갔다.
그의 주위를 감싼 안개도 함께 밀려갔다.
유태청이 천유를 잡고 일어서며 말했다.
“놈들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나 보군.”
진용이 입구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깊어진 눈으로.
“포기할 자들이 아니죠.”
그 말이 신호라도 되는 듯 대기를 짓누르는 기운이 관운묘를 향해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저희들이 먼저 상대해 보겠습니다.”
비류명과 사마조양이 진용을 지나쳐 몸을 날렸다.
석무심과 사공하와 전당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밖으로 나갔다. 전면을 바라본 그들은 눈을 부릅떴다.
관운묘를 향해 안개가 밀려오고 있었다.
고오오오…….
평범한 안개가 아니었다. 안개 속에 바위도 가르고 부숴버릴 힘이 실려 잠재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긴장한 표정으로 무기를 빼 들었다.
그때다. 밀려들던 안개 속에서 번개가 쳤다.
칼날의 번개!
쩌정!
첫 번째 공격을 사마조양의 창이 맞이했다.
“크읍!”
사마조양은 정면으로 일격을 맞부딪치고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비류명이 소리치며 그의 앞으로 튀어나갔다.
“물러서!”
구유도가 짧은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안개가 출렁이더니 번개의 칼날이 다시 번쩍였다.
사도굉이 놀라 다급히 외쳤다.
“무벽도(霧壁刀)? 그럼 구언양? 위험하다! 물러서라!”
쩌저저정!
찰나간에 대여섯 번의 칼질이 허공에 불꽃을 튀겼다.
“으음.”
짧은 신음성과 함께 비류명도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안개가 걷히고, 관운묘에서 흘러나온 모닥불 빛에 사람의 형상이 드러났다.
그는 한 자루 커다란 칼을 들고 있었다.
칼에는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겹치고 겹친 번개 문양이.
그는 번개 문양의 칼을 가슴에 세우며 의외라는 눈으로 비류명과 사마조양을 응시했다.
“제법이군.”
외마디 감탄과 함께 그가 다시 움직였다.
츠츠츠츠…….
동시에 사방에서 살을 에는 기운이 폭풍처럼 몰아 닥쳤다. 단번에 끝장을 내버리겠다는 듯.
비류명과 사마조양은 이를 악물고 번개에 마주쳐 도와 창을 휘둘렀다.
콰과광!
어둠을 뒤흔드는 굉음이 일고, 비류명과 사마조양의 신형이 빠르게 튕겨졌다. 여실히 드러나는 실력의 차이.
역부족인가?
비류명과 사마조양이 창백한 안색으로 손에 들린 무기를 곧추세웠다. 비감으로 얼룩진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설상가상 천은단의 고수들이 구언양의 좌우로 들이닥친다.
다행히 정광이 이미 신형을 날려 허공을 날고 있었다. 손에 쇠신발을 들고서.
뒤질세라 사도굉도 곰방대를 빼 들고 달려드는 천은단의 무사 하나를 찍어간다.
허공에선 정광이, 지상에선 사도굉이, 마치 손발을 맞춘 듯 한쪽 방향을 틀어막았다.
석무심도, 사공하도, 전당도 정광의 반대편을 향해 쏘아져 갔다. 동시에 그들의 손에 들린 도검에서 예리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하얗고 푸르게 뿜어져 나왔다.
상대는 하나같이 고수들. 흔들리는 모닥불빛에 비친 그들의 움직임은 결코 자신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석무심은 필생의 힘을 끌어올려서 낙일무정십삼도를 펼쳤다. 엽시명이 그의 상대였다.
자부심이 산산이 부서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없었다.
단 두 번의 칼질 만에 그는 엽시명의 가느다란 협봉검을 어깨로 받아야 했다. 엽시명은 그의 칼질에 가슴을 살짝 베였을 뿐이고.
그나마 사공하와 전당은 천은단의 고수들을 맞이해서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안색에서도 이미 예전의 평온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격렬한 혈전이다.
어둠을 찢어발기며 울려 퍼지는 굉음. 솟구치는 선혈! 사위를 조여오는 살기!
강기를 끌어올릴 틈도 없다. 뒤로 물러설 공간도 없다.
한 번의 실수가 죽음을 부르는 살벌함만이 존재할 뿐!
비겁? 예의? 명예? 모두가 웃기는 소리다!
이건 비무가 아니다. 생사투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는 생사투! 살아남은 자만이 승자다!
순식간에 난전이 벌어지자 진용은 빠르게 상황을 살펴보았다.
적은 열 명 정도로 보였다. 여주의 숲에서 맞이했던 적들보다 더 강한 자들.
특히 번개 문양의 칼을 쓰는 자는 정광보다 더 강해 보인다. 자신과 유태청만이 감당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숲 속에서 틈만 엿보고 있는 자들이 또 대여섯 명이다. 아마 틈이 생기면 그들이 공격을 할 것이다.
목표인 자신을 향해!
문제는 두충과 운아영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유태청이 움직일 수 없다는 것. 대신 그로 인해 관운묘의 상황은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되니 피장파장이다.
어쨌든 유리하지 않은 상황.
진용은 한 발을 내딛어 자신을 노출시켰다. 기회만 엿보고 있던 두 사람이 관운묘로 뛰어들더니 진용에게 달려들었다.
한 발을 더 내디뎠다. 찰나간에 두 사람과의 간격이 좁혀졌다.
진용의 커다란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파공지의 능력이 실린 그의 손가락이 눈앞에 다가온 검첨을 움켜쥐었다.
땅!
부러져 나간 충격으로 찔러오던 검의 방향이 한 자가량 틀어졌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진용의 신형이 그 틈 사이로 스며들었다.
너무도 빨라 두 사람의 몸이 달라붙은 것만 같다.
퍽!
부러진 검을 든 채 아연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자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튕겨졌다.
그의 심장은 이미 부서져 있을 터. 진용은 튕겨진 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신형을 꺾었다.
또 다른 공격자의 검이 한 뼘 차이로 지나간다. 오싹한 한기를 뿜어내는 검기에 이마가 시원해진다.
찰나, 진용의 오른손이 흐릿해졌다. 파르스름한 수영이 허공을 움켜쥐는 순간!
콰직!
“끄억!”
급히 뒤로 물러서려던 공격자의 목이 진용의 손 안에서 으스러졌다.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는 냉정한 손속!
순식간에 두 명의 고수가 힘도 쓰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단순해 보이는 두 번의 손짓에.
숲 속에서 틈만 엿보던 자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충분히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거꾸로 자신들의 동료가 죽었다.
어찌 된 일이지?
오직 상관욱만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만은 안다.
놈은 전보다 더 강해졌다!
움직임을 최소화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전신이 떨려왔다.
그때 옆에서 굵은 목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친다!”
구천진살 안승도의 목소리.
상관욱은 막고 싶었다.
-안 됩니다! 저놈은 전보다 더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그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여기가 내 무덤 자린가?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좋아! 죽을 때 죽더라도 비겁하게 죽지는 않겠다! 악마 같은 놈! 한 번 해보자!’
옆에서 명을 기다리던 천은단 고수들이 일시에 숲을 뛰쳐나가 관운묘로 쇄도한다. 그도 검을 빼 들었다.
그때다! 바람이 그를 덮쳤다.
―오호호홋! 전에 봤던 인간이잖아? 너는 내 거야!
한편 진용은 두어 걸음 더 앞으로 나서서 자신을 적들의 이목에 노출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숲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자들이 일제히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쇄도한다.
그들을 바라보는 진용의 입가에 냉소가 맺혔다.
예상대로 적들은 아직 자신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자신의 뜻대로 흐를 것이다.
‘너희들은 오지 않아야 했어.’
그가 퍼렇게 물든 손을 들었다. 두 손끝엔 어느새 푸르스름한 기운이 뭉쳐 있었다. 뇌전의 능력!
번쩍!
손끝에 맺힌 뇌전이 전면을 향해 폭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