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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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15화
115화
만붕오로 중 넷째 안승도가 혀를 차고 있고, 천은단주 궁음상은 비웃음을 머금은 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내려서 땅을 바라보았다.
이들에겐 어떤 말도 소용없었다.
하긴 자신이 당하고도 믿기지 않는 것을 이들에게 이해시킨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도 몰랐다.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자들. 좋다, 어디 당신들 맘대로 해봐!’
6
진용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눈길은 만붕성의 고수들만이 아니었다.
“만붕이로가 천은단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들만으로 성공할 확률은?”
“사 할입니다.”
“사 할? 너무 적군.”
“그게…… 놈의 정확한 능력에 혼란이 생겨서…….”
은청색 장포로 온몸을 두른 초로인이 가느다란 웃음을 베어 물었다. 의미를 판단하기 힘든 웃음이었다.
“그것 참, 이해하기가 힘들군. 놈에 대한 정보를 처음 받았을 때만 해도 단순히 천제팔성과 비슷한 정도의 고수였어. 그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지. 그런데 단 몇 달 사이에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해졌단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유태청 때문인가?”
은청색 장포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흑의중년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아닐 겁니다. 지금의 유태청은 선천진기를 상해서 오히려 고진용이라는 서생보다 약한 상황입니다.”
“후후후. 자넨 다른 것은 다 좋은데, 그게 문제야. 너무 직접적으로만 바라보려고 하거든.”
“예? 하오면…….”
“노인의 강함이 어디서 비롯되는 것 같은가? 오랫동안 연마해 온 무공이라 생각하나?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말이야. 진짜 강한 힘은, 바로 살아온 세월이라네. 유태청이 살아온 세월은 그가 지닌 무공보다 훨씬 더 강하다네.”
“유념하겠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야. 놈이 더 이상 크기 전에 싹을 꺾어버려야 해.”
“하오면……?”
“마침 구양무경이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 우리는 옆에서 조금 도와주는 정도로 하지.”
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광혼단에서 네 명만 추려 보내.”
동시에 흑의중년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직 알려지기에는 이르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힘을 조금 보여준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네. 어차피 시기가 무르익어서 거두어들일 때가 다 되었으니까 말이야. 그래도 정 걱정되면…… 다 쓸어버려!”
강하게 말을 끝맺은 은청색 장포의 장년인이 싸늘히 웃었다. 흑의 장년인도 마주 웃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7
탕!
술잔에서 농적색 술 방울이 파편처럼 튀어 올랐다.
“죽일 놈들!”
그는 이를 갈며 홱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여인이 다시 술잔에 술을 따랐다. 망사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은 은밀한 부위의 속살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여인의 표정은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는 그러한 모습이 더 싫었다. 꼭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은 것이다.
짝!
그의 손이 거침없이 여인의 뺨을 후려쳤다.
여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우윳빛 젖무덤이 망사 옷 밖으로 빠져나와 덜렁거렸다.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었다. 오기가 일어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개 같은 놈! 물건도 새끼손가락만 한 놈이!’
그녀는 옆을 바라보았다. 목이 뒤로 꺾인 동료의 눈이 흰자위만 드러낸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언제고 네놈은 내가 죽일 거다! 두고 봐!’
그녀의 눈에서 독기가 뿜어졌다. 하지만 고개를 드는 그녀의 눈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무심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으리, 고정하시고…….”
“네년들도 다 마찬가지야! 잠자리에서 신음하는 것도 다 시켜서 하는 것이겠지? 하라는 대로 하면 황금을 안겨주기로 했느냐? 때려죽일 년들!”
그의 눈이 다시 탁자 위를 향했다. 유등에 비친 술이 더욱 붉게만 보였다. 피라도 받아놓은 것 같다.
그는 선혈처럼 붉은빛이 가득한 술잔을 번들거리는 입 안으로 단숨에 털어 넣고 시뻘건 눈으로 방문을 노려보았다.
휙! 쨍그랑!
그의 손에서 날아간 술잔이 벽에 부딪치며 산산이 부서져 하얀 회벽을 붉게 물들였다.
“개만도 못한 놈들! 감히! 나를!”
지놈들이 누구 때문에 컸는데!
지놈들만 믿고 모든 것을 버렸거늘!
그런데! 그런데 뭐가 어째? 얌전히 처박혀서 천수나 누리라고?
“이놈들!”
네놈들이 감히 나를 농락하다니!
* * *
촤아악!
물속에서 황금빛 잉어가 튀어 오른다. 잉어는 물 위에 떠 있는 먹이를 낚아채고는 꼬리를 힘차게 내리쳐 방원 십 장이 넘는 연못이 출렁대도록 파도를 일으켰다.
“허! 그놈. 이제 클 대로 다 컸구나. 흘흘흘.”
연못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탄성에 섞여 흘러나왔다.
웃음의 주인은 바싹 마른 갈대처럼 금방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노인이었다. 노인은 자신이 준 먹이를 먹고 아쉬운지 주위를 맴도는 잉어를 바라보다 천천히 허리를 세웠다.
그가 마치 잉어에게 묻듯이 말했다.
“주치는 어찌하고 있느냐?”
대답은 뒤에서 들려왔다.
“술에 취해서 소리만 지르고 있습니다.”
고저가 없는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간담 작은 사람은 절로 무릎이 꺾어질 소름 돋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가 울리자 앞에서 맴돌던 잉어가 쏜살같이 도망친다.
“그대로 놔두어라. 정 미친 짓거리를 하거든 계집이나 두엇 더 붙여주고.”
“두 아이로 하여금 그자의 수발을 들게 하고 있습니다.”
“한 번 가졌던 자는 그 시절을 못 잊고 쉽게 목숨을 끊지 못하는 법이니 자결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 너무 망가져도 안 되니 적절히 살피라 이르거라.”
“알겠습니다.”
노인은 손을 탈탈 털고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암적색 장포로 전신을 감싼 중년인이 삼 장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노인. 주름에 갇힌 가느다란 눈이 가늘게 떨렸다.
중년인의 움직임이 없는 눈에는 아무런 빛이 없다. 심지어 자신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다.
‘이제는 나조차도 어찌할 수 없겠구나. 참으로 무서운 힘이로다.’
노인은 잠시 중년인을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너는 후회를 해서는 안 된다.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너의 어미를 위해서도.’
걸음을 옮기며 노인이 말했다.
“슬슬 때가 된 것 같구나. 본보기로 남궁세가를 칠 것이다. 남궁가의 어린놈이 미쳐 날뛰게 말이다. 너는 마지막 힘을 얻는데 최선을 다하거라.”
중년인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예, 외숙부.”
여전히 고저가 없는 목소리다. 그는 노인의 등을 향해 대답을 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노인과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기이한 광망이 떠오르는 눈. 그 눈이 하늘을 향했다.
‘그가 다가오고 있다. 내 힘의 반쪽이…….’
3장. 벽력탄
1
바람이 분다. 따스한 훈풍이다. 봄은 봄인가?
진용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이 청명하기 그지없다.
아래에선 말발굽 소리, 마차의 바퀴 구르는 소리가 장단 맞춰 대지를 울린다. 그리고 앞에서 들려오는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소리.
언뜻 진용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마부석의 두충이 가끔씩 운아영에게 질문을 건네고 있었다. 운아영도 두충의 질문에 싫은 표정 하나 없이 일일이 답을 해준다. 대부분이 검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두충이 그 짝이다.
“두가야! 지금 가는 길이 맞는 길이냐?”
정광이 시시때때로 묻지 않았다면 아마 길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비류명과 사마조양이 마차의 옆을 따라가고, 사공하와 전당은 석무심과 함께 뒤에 처져 따라오고 있었다.
어제 일 이후로 세 사람의 굳은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었다.
삼존맹이 적이라니. 자신들을 노릴지 모른다니.
믿기 힘든 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의문을 품은 눈치는 아니다.
그들에게 공격받은 사람 중 하나가 유태청이다. 누가 감히 의문을 품을 수 있을까.
진용은 그들에게서 눈을 떼고는 눈을 반쯤 감고 있는 유태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 하루 거리다. 상대를 알아놓아야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터.
“백리성이라는 분은 어떤 분입니까?”
“뛰어난 사람이네. 백리 형에게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유태청이 입을 열며 눈을 떴다. 그의 눈은 허공을 향해 있었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완전히 믿을 수가 없네. 비록 성격이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면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을 꾸밀 정도로 독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진용이 다시 물었다.
“적유라는 분과 백리 전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적유?”
“예, 상당히 능력이 뛰어난 분 같던데요.”
“글쎄, 적유는 본래 천제성의 사람이 아니었네. 백리 형이 그의 능력을 높이 사서 끌어들였지. 하나 성아가 그를 완전히 포용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군.”
그때 사도굉이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입을 열었다.
“적유의 스승은 귀명조 유승으로 알려져 있지. 그런데 그게 좀 이상해…….”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유승은 죽기 삼 년 전, 생일을 친구들과 함께했었네. 그때 유승의 제자라고 인사를 한 사람은 반시명 하나뿐이었어. 유승도 반시명을 자신의 유일한 제자라 했었고.”
월조옹이라는 별호답게 사도굉은 별 시시콜콜한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냥 흘려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진용의 눈 깊은 곳에서 기광이 반짝였다.
“나중에 받아들인 제자일 수도 있잖습니까?”
“자네 말대로 나중에 제자로 들어갔다고 치더라도 그렇지, 유승이 죽기 전까지 기껏 이삼 년 정도 배웠을 텐데 그사이에 백리자천 성주의 눈에 들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겠나?”
“전에 다른 스승을 모셨다가 후에 유승을 스승으로 삼았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상하다는 거지. 그 정도의 고수가 밝혀진 것이 너무 없거든.”
“굳이 스승을 사칭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뭐… 굳이 이유라고 한다면, 유승과 백리성주가 가까운 사이였다는 정도일 것이네.”
유태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승은 백리 형의 외사촌이었네. 한데 왜 그러나? 적유에 대해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는가?”
진용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딱히 마음에 걸린다기보다는 천제팔성의 다른 분들보다 훨씬 강한 것같이 느껴졌는데, 혹시라도 상대해야 할 일이 있을지 몰라서 그에 대한 것을 알아두려는 것입니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선은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자신이 직접 알아보면 될 터.
‘세르탄, 그의 기운이 분명 마기였지?’
‘응. 지독한 마기였어. 흐릿하게 감춰지긴 했지만.’
2
파릇파릇한 새순이 온갖 나무를 연녹으로 물들인 은평산을 끼고 돌아갈 즈음, 하늘이 어두워졌다.
왠지 음산하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비라도 오려는지 바람에 차가운 물기가 느껴진다.
“비가 오려나? 십 리 정도 가면 관운묘가 있네. 그곳에서 쉬어가자구.”
사도굉이 하늘을 바라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 말을 들었는지 두충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일행은 반 각이 조금 넘어갈 때쯤, 제법 커다란 관운묘를 볼 수 있었다.
비록 낡긴 했지만 잠시 머물러 쉬어가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저희가 살펴보겠습니다.”
비류명이 사마조양과 함께 앞서 달려갔다.
관운묘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곧바로 나와 손을 흔들었다.
“아무도 없습니다. 조금만 손보면 쉬어 가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말고삐를 잡아매는데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광과 사도굉이 먼저 관운묘 안으로 들어갔다. 진용도 숲을 한 번 뒤돌아보고는 유태청과 함께 따라 들어갔다.
칠이 벗겨진 관운장의 신상이 노려본다. 관리를 하지 않은 지 꽤 된 듯 팔 하나가 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는 천장과 벽에서 떨어진 나무 쪼가리와 누군가가 깔고 잔 것처럼 보이는 풀 더미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비류명과 사마조양은 익숙한 동작으로 바닥을 정리했다. 두충과 운아영이 그들을 도왔다.
맨 뒤에 들어온 석무심과 사공하와 전당도 그냥 서있기가 뭐했는지 머뭇거리며 나서서 그들과 함께 자리를 정리했다.
대충 치워졌을 즈음, 밖에서 비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다. 봄비치고는 굵은 비였다.
진용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실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