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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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14화
114화
석무심이 굳은 눈으로 정광을 직시했다.
고기를 먹는 정광이 그에겐 엉터리 도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수장 중에 십천존이 둘이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소만, 그렇다고 해서 본 맹이 두려워할 정도라고는 생각지 않소.”
“도우뿐만이 아니라 정천무맹의 노친네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많은 사람이 그리 생각할 것이오.”
그때 유태청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궁 맹주가 왜 염려하는지 알 것 같군.”
“예? 무슨 말씀이신지……?”
석무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들에겐 십천존이 있고, 십천존은 강하네. 남궁 맹주는 그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정천무맹의 장로들은 생각이 다른 것 같아. 그렇지 않은가?”
“그런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역시 그들이 본 맹이나 천제성을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비록 십천존 중 두 명이 그들을 이끌고 있긴 하나, 그들만으로는 저희를 상대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강자에게는 강한 수하들이 따르는 법이지. 특히 마도의 무리들은 더욱더 그런 성향이 짙다네. 그들은 패도를 추구하니까.”
“그들에게 본 맹을 대적할 수 있는 강한 수하들이 있을 거라는 말씀입니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서 남궁 맹주는 그들의 정확한 힘을 알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세.”
“노선배님의 생각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본 맹의 힘은 거대합니다. 지난 삼십 년 동안 키운 힘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요.”
석무심의 말에서 고집이 느껴졌다. 일일이 그에 대해서 말대답을 할 수도 없는 일. 유태청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그러자 진용이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투로 말했다.
“강한 힘도 제대로 써야 빛을 발하는 법. 부디 오판으로 상황을 잘못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석무심의 눈이 진용을 향했다.
진용은 간단하게 몇 마디 더 내뱉고는 찻잔을 들었다.
“적어도 삼존맹은 우리의 동지가 아닙니다.”
석무심의 표정이 굳어졌다.
동지가 아니다? 그럼 적이란 말인가?
옆에 있던 사공하가 조금은 비웃는 표정으로 진용을 쳐다보았다.
“삼존맹이 동지가 아니다? 어찌 그리 확신하는가? 그대는 그대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하나 보군. 삼존맹을 그리 평가하다니.”
“크크크큭! 아이고 우스워라.”
느닷없이 정광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두충에게 물었다.
“두가야, 들었냐? 고 공자더러 대단하게 생각하냔다. 어떻게 생각하냐? 꼴에 검 좀 쓰는 것 같긴 하다만.”
두충보다 운아영이 먼저 힐끔 사공하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차 마시고 취한 사람은 처음보네요.”
탕!
사공하가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그는 차마 여인인 운아영에게 뭐라 하지는 못하고 여전히 실실 웃고 있는 정광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도장, 말이 너무 험하신 것 같소.”
실실 웃던 정광의 입가로 하얀 웃음이 번졌다.
“우흐흐! 험하다고? 진짜 험한 것이 뭔 줄 알기나 하나?”
“뭐요?”
“그런 말은 나중에, 살아남은 후에 해. 꼴갑 떨지 말고.”
“지금 나를 모욕하겠다는 거요?”
“그 말도 살아남은 후에 해. 아! 미리 말해주는데…….”
말꼬리를 길게 끈 정광이 머리를 쑥 내밀고 나직이 말했다.
“살아나려면 젖 먹던 힘까지 써야할 거야. 무.량.수.불.”
사공하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유태청만 아니면 당장 검을 뽑을 것 같은 표정.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자 진용이 조용히 나섰다.
“도장님, 그만하세요.”
정광이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심심하던 차에 좋은 기회였는데…….’
정광이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진용의 눈이 사공하를 향했다.
“저는 저 자신을 한 번도 대단하다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들과 싸운 적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죽을 뻔한 적도 있고요.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닙니다.”
진용은 말을 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우리와 함께하기로 한 이상, 귀하들도 그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나머지 말은 도장님 말씀대로 살아남은 다음에 하십시오.”
사공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진용을 노려보았다.
‘지금 우리에게 충고라도 하겠다는 건가?’
하지만 십절검존이 있는 자리. 더구나 진용이란 자는 십절검존이 중시하는 자가 아닌가.
더 이상의 말다툼은 아무런 득이 되지 않았다.
‘십절검존도 몸이 안 좋아서 우리의 도움을 받아야할 판인데, 상황판단을 못하는군.’
3
산 너머 작은 호수에서 밀려든 안개가 야산을 뒤덮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밀은전 순무단의 말단조장인 황보운은 공연히 짜증이 났다.
수색을 시작한지 이틀째다. 처음 싸움의 흔적을 찾았을 때만 해도 주위를 수색하면 뭐든 나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 외로 썩은 쇠 쪼가리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황보진의 명이었다.
“무조건 찾아라!”
한마디면 족했다. 그는, 하다못해 십 년 전에 묻힌 깨진 사발이라도 찾아서 들이밀어야 명을 거둘 사람이었다.
“젠장! 이번에는 어떤 놈이 상금을 타려나…….”
더구나 하루가 지나자 상금이 걸렸다. 가끔씩 정탐 작전이 벌어지면 정탐조의 사기를 진작시킨다는 차원에서 행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황보운은 상금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비가 오기 전에 일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뿐.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엽전 한 개 주어본 적이 없는 그였다. 당연하게도 삼 년간 한 번도 상금을 타본 적이 없었다.
공짜복이라고는 더럽게 없는 사람.
오죽하면 그의 수하들이 조장 잘못 만났다고 다른 조의 조원들에게 하소연을 할까.
‘썩을 놈들, 그럼 지들이라도 잘해서 타 먹으면 될 거 아냐?’
투둑!
마른 나뭇가지가 밟혀 부스러진다.
헛생각을 하고 있던 황보운은 흠칫 놀라며 앞에 쌓인 낙엽 더미를 신경질적으로 차올렸다.
촤아악!
낙엽이 비산하며 바람에 흩날린다. 삼 장 떨어진 곳에서 주위를 수색하던 수하 한 놈이 쳐다본다. 왠지 안됐다는 눈빛이다.
‘저 자식, 눈알에 곰팡이 슬었나. 왜 저런 눈빛으로 쳐다봐?’
에라이!
수하 놈의 대가리를 찬다는 기분으로 한 번 더 낙엽 더미를 차올렸다. 조금 전보다 훨씬 많은 낙엽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빨간 낙엽, 노란 낙엽, 벌레 먹은 낙엽, 길쭉한 낙엽, 손바닥처럼 넓은 낙엽. 제법 운치가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그제야 그는 조금 풀어진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딱 한 걸음만!
그리고 몸이 굳어버렸다.
낙엽이 헤쳐진 곳에서 홉떠진 눈알 두 개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 목에서 발 치워!’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만 같았다.
‘씨, 씨발!’
황보운은 자신도 모르게 목을 밟고 있던 발을 슬며시 치우고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힘껏 소리쳤다.
“차, 찾았다!”
떨리는 목소리가 야산을 타고 울려 퍼졌다.
수하들이 도저히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다가온다.
뭘 찾았다는 거야? 도라지라도 찾았나? 아니면 뱀새끼라도?
그 눈빛을 못 알아볼 그가 아니었다.
자식들이 왜 사람 말을 못 믿는 거야? 믿어서 남 주나?
그는 밑에서 자신의 사타구니를 노려보는 눈알을 발끝으로 톡톡 치며 어깨에 힘을 줬다.
“이놈들아! 오늘 저녁은 내가 쏜다! 음하하하!”
그 즈음에야 안개가 부슬비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끈적끈적한 바람에 섞여서.
4
“현장과 삼백여 장 떨어진 골짜기에서 묻혀 있는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붓을 놀리던 제갈운문의 고개가 들렸다.
“정체는 밝혀냈나?”
“시신 중에 추월검 송안명이 끼어 있었습니다. 그는…… 삼존맹의 척천단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주.”
“삼존맹?”
“저… 그리고, 정무관 근처에 머물고 있던 만붕성의 무사들이 어제 떠나갔습니다.”
제갈운문은 붓을 내려놓고 미간을 찌푸렸다.
“삼존맹이 왜? 가만……?”
그는 한쪽에 쌓여 있는 서류를 황급히 뒤적였다. 그러더니 서류 한 장을 꺼내서 자세히 읽어보았다.
[천암산에서 천제성의 무사들을 죽인 자들이 삼존맹의 고수들로 의심된다 함. 천제성에선 그 일을 비밀리에 조사 중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고 난 그는 천천히 깍지를 끼고 눈을 감았다.
삼존맹이 천암산에 나타났다면? 그렇다면 그들 역시 혈혈구마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 말은 또 다른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가 눈을 뜬 것은 일각이 지나서였다.
“지금부터 삼존맹의 감시 단계를 갑종 천밀의 단계까지 올려라.”
황보진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갑종 천밀이면 최고의 감시 체제를 말함이었다. 당금 강호에서 갑종 천밀의 감시 체제에 들어간 곳은 오직 천혈교뿐이었다. 심지어 천제성조차 갑종 지밀의 감시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 정도로 심각한 사안인지요?”
“친구는 아니더라도, 가까이 했던 자가 결정적인 순간에 칼끝을 돌린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 말씀은… 삼존맹이 본 맹을 적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좋겠지. 하지만 한 번 속인 자는 두 번도 속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저들은 우리를 이미 한 번 속였다.”
속였다고? 무엇을?
황보진의 의문을 풀어주려는 듯 제갈운문이 말을 이었다.
“어쩌면 천제성뿐이 아니고, 저들도 천혈교의 존재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그럼 이제 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만 남은 건가? 저들의 힘은 익히 알고 있으니…….”
갑자기 제갈운문은 하던 말을 멈췄다. 입을 꼭 다문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우리가 정녕 저들의 힘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만약 아니라면?’
그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맹주를 만나야겠다. 더 이상은 머뭇거릴 시간이 없어. 그대는 즉시 갑종 천밀을 발동하고 대기하도록.”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전주.”
황보진이 나가자, 제갈운문은 황급히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비가 더 굵어질 모양이었다.
5
“놈들과의 거리는?”
고개를 땅에 처박은 청의무사가 즉시 대답했다.
“일각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사옵니다.”
“일각? 지금부터 반 각으로 좁혀라. 놈들이 은평산으로 들어가면 공격할 것이니 마음을 단단히 먹도록.”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상관욱이 나섰다.
“어르신, 우리들만으로 칠 생각이십니까?”
“우리 두 사람과 천은단의 무사가 열둘. 게다가 자네와 엽가도 있지 않은가? 여주에서야 정천무맹 때문에 보고 있었지만, 이곳에는 놈들뿐이다.”
“하오나 저희 척천단과 무영천귀를 비롯해 암군과 암혼대마저도 놈들을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만붕오로 중 셋째 구언양의 눈에 불쾌함이 떠올랐다.
삼군과 오로는 서로가 승패를 장담하지 못하는 강자들. 그만큼 자존심 또한 강했다. 상관욱의 말은 팽팽한 실에 칼날을 가져다 댄 꼴이었다.
“자네는 노부를 너무 무시하는 것 같군.”
“어찌 감히… 다만 대맹주께오서 원군을 보낸다 하셨으니 그때까지 만이라도 기다리시는 것이…….”
“그러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 내가 보기에 십절검존의 내상은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이 최적의 기회야.”
“어르신!”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상이 심한 십절검존이라면 천은단 서넛이면 충분히 해볼 만해. 게다가 무공이 약한 놈들도 있으니 나머지 천은단으로 그 옆에 있는 놈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그리되면 남는 놈은 그 젊은 놈 하나뿐이야. 너는 설마 우리가 그깟 놈 하나 상대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상관욱은 일전에 고진용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기만 했을 뿐.
“허허허! 이제 스무 살 어린놈에게 암군이 당했다고? 자네, 실패를 계속하다 보니 헛것이 보였나 보군!”
“상관 단주, 서생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소? 우리 천은단원은 서생 따위를 겁내지 않소이다. 하하하!”
그 후로 상관욱은 그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든 납득시켜야만 했다. 아니면 모두가 죽는다.
“어르신,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서생에게 암군이 죽었습니다. 조심에 조심을 기해야…….”
“그만! 너는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것 같구나. 대맹주께서 너무 감싸 키웠어. 쯔쯔…….”
상관욱은 입술을 깨물고 옆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