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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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13화
113화
유태충이 눈매를 씰룩이며 되물었다.
“천혈교에 대한 것도 최근에서야 알려지기 시작했으니, 전 같으면 그들의 움직임을 몰랐을 수도 있었지 않겠나?”
“물론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유 노사께서 생각하실 때 천제성이 유 노사의 거처를 알고 있었다고 보십니까?”
“음, 알고 있었을 거네.”
분명히 그랬다. 위지홍도 천암산에 유태청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면 혈혈구마와 유 노사의 관계를 아는 천제성이 왜 혈혈구마의 출현을 알고서도 유 노사께 미리 알리지 않았을까요? 아니, 하다못해 그들을 잡을 수 있는 고수들 정도는 파견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천제팔성이 왔지 않은가?”
“그들의 실력은 혈혈구마를 상대할 수 있을 뿐이지, 잡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혈혈구마도 이십 년 동안 놀고 지내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하니, 진정으로 적을 알고 잡으려 했다면 적어도 그때 보낸 전력의 세 배는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천제성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지요.”
그때 조용히 듣고만 있던 진용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제갈 대협의 말씀대로라면, 누군가가 유 어르신의 거처에 대한 정보를 고의로 흘렸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도록 조장했다는 말씀 같군요. 그 결과로 천혈교가 밖으로 드러난 데다 천제성마저 강호로 뛰쳐나왔고 말입니다.”
“나로선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네.”
“그 정보를 흘린 자가 천제성의 사람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렇다네.”
“그 목적이 천혈교가 움직이길 바란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으음, 내 생각으로는 그건 목적의 일부가 아닌가 하네.”
“목적의 일부라…… 그렇다면 정보를 흘린 그자는 오래전부터 천혈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봐야겠군요? 혈혈구마가 강호에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말입니다.”
“어쩌면…….”
“게다가 천제성의 정보망을 제어하고 고수들을 희생시킬 생각을 했다면 그 지위 또한 정점에 서 있는 자일 테고요.”
“아마도…….”
“대단한 자군요. 아무도 모르는 천혈교를 사전에 감지하고 몇 년에 걸친 계획을 짜다니. 비록 제갈 대협에게 들통이 났지만 말입니다.”
비웃는 것처럼 들렸는지 제갈운문은 눈을 부릅뜨고 진용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진용은 담담히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제갈 대협께선 그자가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한순간에 상황이 이상하게 흘렀다.
방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마치 추궁하듯 계속된 진용의 질문. 엉겁결에 답하는 제갈운문. 두 사람의 대화에는 천하를 뒤집을 정도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실일지 아닐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의문을 던진 사람이 정천무맹의 군사인 제갈운문이 아닌가 말이다.
숨소리가 한여름 밤 쓰르라미 우는 소리처럼 귀를 간지럽히고, 꿀꺽!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 사람들의 눈이 제갈운문을 향했다.
제갈운문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말 한마디에 천당과 지옥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거짓을 말할 수도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진용의 눈과 마주친 순간, 제갈운문은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는 미처 모르고 있었지만, 아니, 이 자리의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만, 진용이 마안(魔眼)의 능력을 펼쳐 그를 압박했던 것이다.
제갈운문으로선 진용의 마안을 회피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심중에 있던 이름을 꺼내 놓았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백리… 전주가 아닌가 하네.”
제검전주 백리성! 그를 말함이었다.
유태청이 눈을 부릅떴다.
“성아가 그리한 것 같단 말인가? 그 아이가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백리성을 아이라 칭하는 유태청의 말에 사람들은 잠시 곤혹스런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진용이 입을 열자 다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난세에 영웅이 나오는 법이지요.”
잠시 후 제갈운문이 조용히 말을 받았다.
“부친인 백리 성주를 뛰어넘고 싶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남궁창훈이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유 노사가 아니면 그들의 움직임을 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으음…….”
유태청의 감긴 눈이 격동으로 가늘게 떨렸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그의 눈이 뜨인 것은 근 반 각이 지나서였다.
“일단 그 일의 사실 여부를 먼저 알아보겠네. 그리고 사실이라면, 내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밝히도록 하겠네.”
“위험할 수도…….”
석장진이 다급히 입을 열다가 닫았다. 유태청의 손이 올라가 있었다. 유태청이 시리도록 맑고 깊은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바로 십절검존이네.”
두 사람이 나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남궁창훈이 석장진을 향해 말했다.
“어찌 생각하는가?”
“뭘 말인가?”
“유 노사의 몸이 정상이 아닌 것 같네만.”
“음, 자네도 그리 생각했나 보군. 내 생각도 그렇네.”
“무심이를 딸려 보내는 게 좋을 것 같군.”
“무심이를? 자네 본가에서 아이들이 왔다는 말을 들었네만. 그 아이들도 보낼 생각인가?”
“아니네. 그 아이들은 아직 여물지를 않았어. 차라리 수빈전(秀賓殿)에서 몇 사람을 빼내 무심이와 함께 보내게나.”
“그들을? 알겠네. 그리하지.”
“그리고 그 진용이라는 서생, 좀 묘한 구석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
“정말 알 수가 없는 청년이네.”
“유 노사가 그리 중하게 여기는 걸로 봐서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때 제갈운문이 입을 열었다.
“맹주, 아직 확인이 되지 않아 보고드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뭔가?”
“얼마 전 근교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유 노사 일행이 그 일에 관련된 것 같습니다.”
“상대는?”
“지금 조사 중입니다만, 곧 밝혀질 것입니다.”
남궁창훈의 미간이 좁혀 들었다.
“음… 변수가 될지 모르니 상대를 빨리 알아내도록 하게나.”
“알겠습니다. 저도 그게 염려되는 터라…….”
“그건 그렇고, 천혈교에 대한 정보는 더 들어온 것이 있는가?”
“밀은전의 정보망을 총 가동하고 있습니다.”
“원로들의 성화를 언제까지 견뎌낼 수는 없는 상황이네. 모두가 조급해하고 있어. 적이 강하면 강한 대로, 약하면 약한 대로, 최대한 빨리 정확한 것을 알아내야 하네.”
“명심하겠습니다.”
* * *
들어갈 때만큼이나 은밀하게 정천무맹을 나섰다.
정무관이 저만치 보이자 그제야 유태청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이라면 그들은 결코 어르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허허허…….”
유태청이 허탈하게 느껴지는 웃음을 흘렸다.
진용은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정천무맹을 나선 이후 그는 자주 허공에 눈을 두었다. 텅 빈 눈빛이었다.
“좀 도와주겠나?”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진용은 당연한 말을 그리 어렵게 하냐는 투로 말을 받았다.
“이제 제가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그들이 무슨 꿍꿍이인지 알고 싶군요. 날이 새면 바로 출발하죠.”
2
천제성의 무사들이 이틀 먼저 여주를 떠났다. 백리성이 이끄는 천제성 본진과 합류하기 위함이었다.
진요 일행은 이틀의 시간을 좁히기 위해서 아침이 되자마자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저녁에 미리 말을 해놓았기에 별다른 소란은 없었다.
밖으로 나서려는데 제갈민이 찾아왔다.
“마차에 건량과 식수를 실어놓았습니다. 삼사 일 먹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별말씀을. 빠른 시일 내에 찾아뵙겠습니다, 공자.”
그는 밝은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진심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고 공자님, 준비 다 되었습니다!”
밖에서 두충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용은 제갈민을 향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중에 만나죠.”
올 때는 다섯 명이었는데 떠날 때는 여덟 명이 되었다.
사도굉은 당연하다는 듯 마차를 타고, 비류명과 사마조양은 말을 구해서 마차의 뒤를 따랐다.
두충은 여전히 마부석 신세였다. 그래도 무척 밝은 표정이었다. 운아영이 바로 옆에 앉아 있었으니까.
마차는 정천무맹의 권역을 벗어나자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여주를 빠져나가 남쪽으로 향하는 관도에 접어들었을 때다. 뒤쪽에서 급박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본 사마조양이 안을 향해 말했다.
“저희들을 향해 오는 것 같습니다, 공자.”
진용은 고개를 내밀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 셋이었다. 선두에서 달려오는 자는 석장진의 아들 석무심이었다.
그는 마차와 가까워지자 속도를 줄이고는, 그때까지 고개를 내밀고 있는 진용을 향해 다가왔다.
“맹주께서 함께 움직이라 하셨소.”
“맹주께서?”
“그렇소. 연락과 잡다한 임무는 우리가 처리하도록 하겠소.”
진용은 석무심과 함께 온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강한 자들이다. 석무심도 강하게 느껴지지만, 삼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두 사람은 석무심보다 더 강해 보였다.
“저 두 분은?”
“본 맹의 수빈전에 계신 분들이오. 맹주께서 유 노선배님을 보필하라 보내셨소.”
마상에 있던 두 사람이 진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진용을 그냥 지나쳐서 마차 안쪽에 앉아 있는 십절검존 유태청을 향해 있었다.
“사공하라 합니다. 검존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흑의를 입은 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뒤질세라 남의를 입은 자가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전당이라 합니다.”
진용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구파오가에 속하지 않은 무사 중 능히 발군의 기재라 할 수 있는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수빈전이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십여 명의 고수가 있다고 했다.
맹주가 이들을 딸려 보낸 이유는 뭘까?
‘알고 있었나?’
보필하라는 말. 유태청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챈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고수를 단순히 잡무나 처리하라고 붙여주지 않았겠지.
“도와주시겠다니 고맙군요.”
사공하와 전당은 마차 안에서 고개만 내밀고 나불거리는 진용이 못마땅했다.
‘새파란 놈이 꽤 건방지군.’
‘유 노선배께선 왜 저런 놈을 중히 여기는 거지?’
그래도 유태청의 체면을 생각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진용의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걸렸다.
분명 고수는 고수다. 절정에 이른 고수. 하지만 그뿐이다.
저들은 알까?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적들이 얼마나 강한 자들인지?
어쨌든 아쉬울 것 없는 진용이었다.
“두 형, 출발하죠.”
여주를 벗어난 일행은 빠르게 남하했다.
다행히 천제성의 움직임은 빠르지 않은 듯했다.
석양이 질 무렵, 일행이 유하점이라는 작은 마을의 객점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을 때 두 군데서 동시에 연락이 왔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천제성의 주력이 무양에 머물러 있습니다.]
[천제성의 무사들이 무양의 웅천산장에서 움직이지를 않고 있음.]
하나는 정천무맹의 밀은전을 통한 연락이었고, 다른 하나는 금의위의 비선을 통한 풍림당의 연락이었다.
석무심은 진용이 자신들 외에 따로 정보망을 움직이는 것을 알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진용은 두 장의 전서를 읽고 고개를 들었다.
“모레쯤에는 만나지 않을까 싶군요.”
유태청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의문을 표했다.
“그때까지 그들이 그곳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삼백이 넘는 인원이니 빠르게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천혈교의 총단이 있다고 알려진 곳이 신양 아닙니까? 기껏해야 삼사 일 거리지요. 아마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직 정보 자체가 미미하니까요.”
석무심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천제성의 무사들은 비록 삼백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최정예들이오. 그들이 머뭇거릴 필요가 있겠소?”
천혈교를 왜 그리 조심스럽게 상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다. 사공하와 전당도 미간을 찌푸린 채 진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쩝쩝대며 마지막 한 조각의 고기마저 입 안으로 몰아넣은 정광이 고개를 들었다.
“도우는 천혈교를 얼마나 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