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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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01화
101화
지난 일 년이 지옥 같았다.
숙부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정천무맹의 내성에는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보고도 수하를 시켜서 올렸다.
사실 너무나 억울했다. 자신이 내놓은 안건은 너무나 훌륭해서 한 해의 예산만 해도 은자 수천 냥을 아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인원이 내성에서 밖으로 내몰려 성무당의 힘이 약해지긴 했지만, 열두 명만으로 백 명이 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있으니 상을 받아도 큰 상을 받아야 할 일이었다.
실제로 작년 말에는 거금 일천 냥의 상금을 받기도 했다. 자신에게 돌아온 건 한 푼도 없었지만.
“차라리 집으로 돌아갈까?”
한두 번 생각해 본 것이 아니다. 문제는 돌아갔을 경우 환대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아마 환대는커녕 집에서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직계라면 몰라도 방계의 자손들은 아무리 똑똑해도 한 번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현실이니까.
“그래도 정 매는 반겨주겠지?”
약혼녀인 장현정이 떠오르자 실없이 웃음이 떠오른다.
이 년 전에 약혼을 했고, 삼 년 후인 내년에 혼인식을 올리기로 했다.
“가가, 저는 가가를 사랑하지 가가의 배경을 사랑한 것이 아니에요. 건강하게만 돌아오세요.”
얼마나 착한 마음씨란 말인가.
문득 마음이 한쪽으로 기운다.
‘돌아갈까? 가서 세가의 일이나 하면서 조용히 살까? 솔직히 이전투구 하는 꼴도 보기 싫은데.’
장현정을 생각하자 딱 한 번 가슴에 안아봤던 그날이 떠오른다. 제법 봉긋하니 솟은 가슴의 감촉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느껴진다.
말랑말랑하니…….
한순간 제갈민의 입가로 묘한 웃음이 그어졌다.
“눈이 풀렸군.”
그때 뜬금없이 들려오는 소리.
제갈민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장현정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흐려졌다. 얼마 만에 떠올린 얼굴인데.
‘어떤 놈이!’
하지만 제갈민은 석 자 앞에서 뚫어지게 바라보는 호안(虎眼)을 마주하고는 목구멍까지 치솟은 고함을 꿀꺽 삼켰다.
“어…… 뉘시오?”
“누구긴, 정천무맹에 볼일이 있어 온 사람들이지.”
그런데 한 사람이 아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신원을 밝히면 방을 준다고 하던데……?”
“좀 이상한 사람이군요.”
“식곤증 때문에 졸린가 봅니다.”
“그게 아니라, 눈빛을 보니 여자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요?”
“좌우간 남자들이란 시간만 나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자 청의도사의 뒤에 다섯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였다. 하나같이 똑같은 차림을 한 사람이 없었다.
순간, 그의 감각이 소리쳤다.
―조심해! 보통 사람들이 아냐!
하지만 약혼녀를 잃은(?) 그의 마음은 평상시의 예민함을 잃어버렸다.
제갈민이 조금은 퉁명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시오?”
진용이 답했다.
“우린 고가장에서 왔소.”
“고가장?”
처음 들어보는 곳이다. 한마디로 별 볼일 없는 문파라는 말. 하긴 저렇게 젊은 서생이 어른들 앞에 불쑥 나서서 말할 정도라면 알 만한 문파다.
‘반월관으로 줘버려? 에이, 그래도 노인이 둘이나 되는데……. 여자도 있고.’
큰맘 먹고 최하급의 객실은 주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까.
“이곳에 성함을 적고 화정관으로 가시오. 하루에 각 방당 은자 두 푼이오. 객잔보단 훨씬 싸니 이의를 달지는 마시오.”
그는 기명부를 진용 앞으로 내밀었다.
[고가장에서 온 사람들, 총원 여섯 명]
진용이 붓을 들었다.
[장주 고진용]
유태청이 붓을 잡고 잠시 망설이더니 간단히 휘갈겼다.
[유청, 사굉]
정광이 조금 불만에 싸인 사도굉을 아랑곳하지 않고 붓을 이어 잡았다.
[태산진인 정광]
기가 차지도 않는지 두충이 정광을 째려보고는 아래쪽에다 커다랗게 휘갈겼다.
[북경거사 두……]
딱!
“건방진 놈!”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거센 충격에 두충의 전신이 흔들렸다.
“이리 줘! 내가 써줄 테니까.”
정광이 붓을 홱 잡아 뺏더니 ‘거사’를 지우고는 그 옆에다 조그맣게 두 글자를 썼다.
[북경유구(北京乳狗) 두충]
북경의 젖 먹는 강아지?
두충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움켜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두씨 집안의 장손을 어떻게 보고… 으으으…….’
“어른들 앞에서, 뭐? 거어어사?”
네 개의 눈구멍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기가 찬 표정으로 두 사람의 하는 짓거리를 바라보고 있던 운아영이 빽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두 사람의 눈싸움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애들도 아니고!”
찔끔한 두충이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정광도 헛기침을 뱉어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갈민을 바라보았다.
“허험! 이보게, 화정관이 어딘가?”
한편 제갈민은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했다.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기명부를 바라보았다. 쓱쓱 마음대로 지운 자국이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화가 나기는커녕 웃음이 절로 나온다.
북경유구…….
아마 기명부를 적기 시작한 이래 가장 웃기는 별호일 것이다.
갑자기 우울했던 조금 전까지의 기분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입가에 웃음이 걸릴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제갈민은 웃는 얼굴로 때마침 안에서 나오던 수하 하나를 불렀다.
“이봐, 용수!”
“예, 서기관님.”
“이 사람들을 화정관으로 안내해 주게. 방은 세 개를 주도록 하고.”
진용 일행이 용수라는 수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제갈민은 피식 웃으며 장현정을 다시 떠올리려 애썼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제갈민은 기명부를 다시 쳐다보았다. 내용 한 가지가 적혀 있지 않았다.
[방문 목적]
“그러고 보니 방문 목적을 물어보지 않았잖아?”
고개를 돌려봤지만 이미 그 웃기지도 않는 일행은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결국 제갈민은 자신이 직접 빈 공란을 채웠다. 앞장에 수없이 적힌 글귀 그대로.
[작은 힘이나마 보태 정천무맹과 함께 강호의 협의도를 세우기 위해 방문…….]
7장. 정무관에 부는 바람
1
위지홍의 소식을 듣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천제성이 워낙 대규모로 움직였기에 이른 아침부터 소문이 파다하니 퍼져 있었던 것이다.
정무관의 커다란 식당은 그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귀가 있다면 그 소식을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진용이 있는 방으로 모두가 모여들자 유태청이 진용에게 말했다.
“어찌할 생각인가? 천제성의 사람들이 내성에 들어갔다는데.”
“일단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볼까 합니다.”
“우리도 내성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운아영이 잔뜩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태청은 그녀의 기대감을 외면했다.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단순히 강호의 일만 생각한다면야 그리 못할 것도 없지만, 고 공자의 정체를 알게 되면 그들은 거리를 두게 될 것이야. 우선은 고 공자의 말대로 정천무맹과 천제성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뒷일을 결정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진용이 빙그레 웃으며, 뾰로통하니 입술을 내밀고 있는 운아영을 향해 말했다.
“풍림장의 연락을 받은 위지 대협이 우리들을 찾을 겁니다. 그 뒤에 움직이도록 하지요. 아마 그들도 지금쯤 적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테니 움직임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운아영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대신 태평하게 차만 홀짝거리고 있는 두충을 노려보았다.
두충이 운아영의 눈빛을 의식하고 맹한 눈으로 물었다.
“뭘 봐?”
운아영이 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휴, 앞으로는 태평무사 두충이라고 해.”
그때 사도굉이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고개를 쑥 내밀었다.
천제성이 어쩌고저쩌고, 위지홍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을 거라는 둥, 도대체 저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서생이 얼마나 대단한 자이기에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뭐? 천제성이 조심하고 있다고?
한마디로 웃기는 말이 아닌가 말이다.
“그 적이라는 곳이 한 곳은 천혈교라는 것을 알겠는데, 다른 한 곳은 어딘가? 당금 천하에 천제성을 위협할 만한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진용이 툭 던지듯 말했다.
“삼존맹입니다.”
사도굉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용과 유태청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다 한순간, 쿵! 사도굉은 간덩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진용이 한 말의 의미는 단순하면서도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었다.
―삼존맹이 우리들의 적이다!
“그러니까… 공자와 유 선배의 적이… 천혈교와 삼존맹?”
진용이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제 적이죠.”
사도굉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절대 주어진 명보다 짧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 그런……. 그럼 나는 빠져야…….”
“이제는 늦었습니다. 노선배가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는 이상은.”
“무슨……?”
의아한 것은 사도굉만이 아니었다. 유태청과 정광 등도 모두 진용을 바라보았다.
“놈들이 이곳에 와있습니다. 쉽게 손을 쓰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보고만 있지도 않을 겁니다. 떠나면 놈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죠.”
간단하게 굵은 올가미가 사도굉의 목에 씌워졌다. 사도굉은 당황한 얼굴로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유 선배…….”
“고 공자의 말이 맞네. 당분간은 함께해야 하네. 쯔쯔, 그래서 말린 것인데, 이제는 어쩔 수 없지. 자네가 가진 재주도 적지 않으니 너무 걱정만 하지 말게나. 최선을 다한다면 놈들도 우리를 어쩌지 못할 거네.”
-가진 바를 다 내놔라. 그래야 살 수 있다.
결국 그 말이었다.
사도굉은 또다시 전날처럼 고민의 바다에 풍덩 빠졌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누군데 삼존맹과 천혈교를 적으로 삼고 있는 거냐고!’
사도굉이 넋 빠진 얼굴로 식어버린 찻물에 고개를 처박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고함 소리가 섞여서 들려왔다.
와장창!
“그대가 감히!”
두충이 뽀르르 창문으로 달려가더니 덜컥 창문을 열고 밖을 내려다봤다.
정무관의 건물과 건물 사이는 제법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곳은 정무관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통성명을 하며 얼굴을 익히는 만남의 장소였다.
지금 그곳에서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었다.
깨끗한 하늘색 청의로 한껏 멋을 낸 이십대 후반의 청년과 허름한 흑의를 입고 흐트러진 머리로 인해 그 나이를 짐작키 힘든 장한이.
청의청년의 손에는 한 자루 청강장검이 들려 있었다. 제법 화려한 걸 보니 돈깨나 주고 산 듯했다.
반면 흑의장한의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석 자 길이의 칼은 도신을 낡은 가죽으로 대충 감아놓은 협도였다.
“본인은 은평 손가의 손인묵이라 한다! 너는 누구기에 감히 본 공자의 여인을 건드는 것이냐?”
청의청년이 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의 옆에는 제법 예쁘장한 여인이 겁에 질린 얼굴로 흑의장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흑의장한은 여인을 보지 않고 손인묵을 향해 말했다.
“나는 달려오는 여인을 피했을 뿐이오.”
“뭐라? 그런데 왜 양 매가 겁에 질려 있단 말이냐? 분명 그대가 어떤 수작을 피웠으니 그런 것이 아닌가?”
억지 같으면서도 언뜻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단순히 피하기만 했다면 여인이 겁에 질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실 그 이유를 장한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놓고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소. 그것은 저 여인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오.”
분명 그랬다. 여인, 소현양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일이 생각보다 커지자 쉽게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정인이 엉뚱한 소란만 피운 꼴이 될 테니까. 그럼 얼마나 창피한 일이란 말인가?
마침 손인묵이 물었다.
“양 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소? 혹시 저자가 당신을 밀거나 하지 않았소?”
소현양은 엉겁결에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랬어요. 저자가 저를 밀었어요, 살짝…….”
“흥! 그럼 그렇지! 들었나?”
흑의장한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소현양을 가만히 바라보고는 손인묵을 향해 말했다.
“나는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할 수 없소. 또한 더 이상 쓸데없는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소. 당신은 내가 어찌하길 바라는 거요?”
손인묵은 득의의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의 일로 소란을 일으키는 것은 그도 바라지 않았다. 정무관에서 소란을 피우면 뇌옥에서 삼 일간 지내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그였다. 그저 자신이 나선 체면만 세우면 될 뿐.
“무릎을 꿇고 양 매에게 사과해라. 그럼 용서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