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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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29화
129화
2
탐스런 백염이 가슴까지 내려온 노인은 황폐하게 변해 버린 천웅전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는 끌끌 혀를 차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돈깨나 들여서 지었다더니, 확실하게 부서졌군.”
“면목없습니다, 아버님.”
“됐다. 내가 봐도 살아날 가망성이 없으니 그 일에 대해서는 추궁하지 않겠다. 기왕이면 그의 시신까지 확보했으면 했는데……. 음, 어쩔 수 없지.”
“미처 그 서생의 능력을 생각지 못해서……. 더구나 놈들에게 황궁에서 반출이 엄금되어 있는 벽력탄까지 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백리자천의 노안에 기이한 광망이 스쳤다.
“금의위의 천호라 했던가?”
백리성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사옵니다. 하옵고…… 수천호령사라 했습니다.”
백리자천의 이마가 꿈틀거렸다.
“수천호령사? 그 고진용이라는 젊은 서생 놈이?”
“놈이 이 일을 따지지 않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믿을 수 없는 게 사람인지라…….”
“그럼 그냥 믿어라.”
“예?”
“그리되면 좋은 일이고, 아니더라도 그만이다. 비록 그가 수천호령사라 해도 어차피 그 한 사람이 뭐라 한다 해서 움직일 황궁도 아니니까. 어디 우리는 놀고만 있다더냐?”
“알겠사옵니다.”
백리자천은 그 일에 대해선 할 말이 끝났다는 듯 몸을 돌렸다.
“우선은 천혈교를 치는 데만 주력해라. 구양무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아무래도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다.”
백리성이 눈을 치켜떴다.
“구양무경이 말입니까?”
“그래. 생각 같아서는 놈의 속을 알기 위해서 한 번 건드려 봤으면 싶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다. 거기다 흥미롭게도 놈이 고진용이라는 서생 놈을 죽이려고 하는 것 같더군.”
“저도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벌써 많은 고수들이 유태청과 고진용의 술법에 죽었다 합니다.”
“후후후, 구양무경이 속 좀 타겠군.”
“잘만 이용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님.”
백리자천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두 마리 토끼라…… 그것도 좋겠지. 다만 너무 많은 사람을 투입하진 마라. 천혈교를 치는 일에 지장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백리성이 고개를 숙이자 백리자천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번 일을 반대한 사람들이 있다 들었다. 어찌할 생각이냐?”
“대세에 따르지 않는 자들은 없느니만 못하다는 것이 소자의 생각입니다.”
“흠, 그래? 좋다. 네가 잘할 거라 믿고 맡겨두겠다.”
그제야 백리성은 궁금해 하던 한 가지 질문을 조심스레 던졌다.
“하온데, 소식도 없이 어인 일로 나오셨는지요?”
백리자천의 가늘게 뜬 눈에 깊은 회상이 스쳐 지나갔다. 백리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죽기 전에 매듭지을 일이 있어서 나왔다. 나에 대해선 너무 신경 쓸 것 없다. 천강오호법과 함께할 것이니. 이 번 일이 끝나면 나는 본성에서 나오지 않을 셈이야. 후후후, 유태청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지.”
순간 백리성의 눈빛이 표나지 않을 정도로 흔들렸다.
천강오호법. 전대의 천강오령위를 말함이다. 각자가 자신과 비견될 고수들.
부친이 움직였다면 당연히 그들도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들이 아니어도 백리성은 부친의 안전에 신경 쓸 생각이 없었다.
‘아버님, 당신은 너무 강하십니다. 지나칠 정도로. 마주서면 숨도 못 쉴 정도로 강한 아버지를 둔 아들의 마음을 아십니까? 저는…… 오래전부터 그게 싫었지요. 아버지 앞에서 숨도 못 쉬는 제 자신이……. 그래서 이제는 그리 살지 않으려 합니다. 굳이 용서해 달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7장. 생사원
1
진용은 실피나를 불러내 뒤를 살펴보게 했다.
비류명과 사공하는 서문조양과 석무심이 업고 달렸다.
운아영은 유태청을 내놓지 않으려 했지만, 힘이 달리자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정광에게 내어주었다.
정광은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유태청을 안고 달렸다.
진용도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천웅전을 뚫고 나오기 위해 고위급 마법과 뇌전의 능력을 한꺼번에 쓰면서 대부분의 내력을 소모한 터였다.
다행이라면 신수백타 자체가 동공(動功)이어서 달려가면서도 조금씩 내력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디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진용은 운아영이 유태청의 상태를 살펴보자고 하는 것도 뒤로 미루고 달리기만 했다.
일단은 웅천산장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이 중요했다. 따라 잡히면 그나마 유태청을 살릴 마지막 기회도 사라질 테니까.
대신 진용과 정광과 사도굉이 돌아가며 유태청의 몸에 진기를 불어 넣어 맥을 유지시켰다.
삼십여 리 정도 달렸을 때다. 진용은 조금 뒤로 처져서 실피나를 불렀다. 처져서 따라오던 실피나가 휘리릭 날아왔다.
“실피나, 너는 흔적을 남기면서 저쪽으로 날아갔다가 되돌아와. 꼭 우리가 지나간 것처럼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았지?”
―어. 알았어!
실피나가 날아가자, 진용은 일행의 뒤를 쫓아 신형을 날렸다.
사실 실피나에게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잠시만이라도 추적자들의 눈을 속일 수 있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위험을 반으로 줄일 수 있을 테니까.
진용은 뒤를 따르면서 눈에 띄는 흔적을 최대한 지웠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샛길이 보이면 오히려 그곳에 사람이 지나간 듯한 흔적들을 남겼다.
추적자들이 흔적을 보고 뒤를 쫓는다면, 족히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리라.
반 시진이 지나서야 실피나가 진용을 찾아왔다.
―주인아! 확실하게 흔적을 남겨놓고 왔어!
사실 그 말을 듣고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실피나가 제대로 임무를 수행했는지 시간이 흘러도 추적대가 쫓아오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실피나가 남겨 놓은 ‘확실한 흔적’으로 인해서 어떤 결과가 빚어졌는지.
2
“단주!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비천검단을 이끌고 진용 일행을 추적하던 백리양은 수하의 보고에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한두 놈도 아니고 부상자까지 낀 자들을 찾지 못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그게 아니고, 아예 숲이 통째로 뭉개져 있어서…….”
“뭐? 그게 무슨 소린가?”
다급히 능선 위로 올라간 백리양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계곡의 숲이 완전히 초토화되어 있었다. 엄청난 태풍이 그곳만 휩쓸기라도 한 것처럼 나무들이 쓰러져 있어서 일반사람들은 지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일단 반대쪽으로 수하들을 보내기는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 그대로였다. 난장판이 된 숲에서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찾기는 백사장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 거와도 같았다.
그렇다고 숲의 계곡을 빙 둘러 가며 흔적을 찾으려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
“제기랄! 일단 비룡단에 알리고, 놈들의 행방을 찾는 대로 연락을 취하라고 해!”
멀리서 분노하고 있는 백리양을 바라보고 있는 눈이 있었다. 그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백리양과 달리 숲 건너편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차라리 잘 되었는지도 모르겠군. 후후후, 아직 백리양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서는 좋을 게 없으니까.”
그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나직이 명을 내렸다.
“혈편복, 광혼단을 이끌고 놈들을 추격하라. 만일 삼존맹의 놈들이 보이거든 함께 쓸어버려.”
“그.리.합.지.요, 적. 대.형. 클.클.클! 가.자, 미.친. 마.귀.들.아!”
한 마리 거대한 박쥐가 앞장서자, 그 뒤를 따라 다섯의 흑의복면인이 말없이 움직였다.
그들이었다. 광혼단의 악마들!
3
일행은 석양 무렵이 되어서야 걸음을 멈췄다.
진용과 사도굉을 뺀 모두가 지쳐 있었다. 그중에서도 두충은 혀를 빼물고 곧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진용이 동굴을 하나 발견하고 쉬어 가기로 하자, 두충은 십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반가워했다.
동굴은 깊지 않았다. 그래도 하룻밤 쉬어 가기에는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진용은 사람들이 동굴 안의 자갈들을 치울 동안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낙엽을 한 아름 안고와 바닥에 깔았다. 유태청을 위해서였다.
“이곳에 눕히세요.”
진용은 정광이 유태청을 눕히자 맥을 짚어보았다.
맥이 가느다랗게 뛰고 있었다. 끊어지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그로부터 반 시진, 진용은 유태청에게서 배운 진기요상법으로 유태청의 전신 혈도를 어루만졌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유태청의 상태는 나아질 줄을 몰랐다.
사실 선천진기가 사라진 유태청의 몸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인정하기가 싫었을 뿐.
정광이 석무심과 먹을 것을 구하러 간 사이에도 진용은 끊임없이 유태청의 몸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걸고서.
이각가량이 지나고, 진용이 잠시 쉬기 위해 진기요상결을 멈추었을 때다. 세르탄이 말했다.
‘시르, 건곤흡정진혼결을 거꾸로 해보면 어떨까?’
진용의 몸이 잘게 떨렸다.
갑작스런 말, 생각지도 못한 의견이었지만 진용은 뇌리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거꾸로! 그러니까 건곤흡정진혼결을 반대로 해서 진기를 집어넣는다? 지금까지처럼 치료 목적으로 단순히 넣어 돌리는 것이 아니고, 마치 격체전력으로 진기를 넘기듯이?
될까? 잘못하면 도리어 죽음만 앞당기는 일이 될 텐데?
‘시르가 익힌 건곤흡정진혼결과 비슷한 능력이 마계에도 있거든. 지옥제혼이라고. 그런데 그 능력을 전개하면 펼친 자의 능력이 닿는 곳에 있는 모든 사물을 그 능력자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있다고 들었어. 뭐, 정확한 방법은 알 수 없지만 내가 들은 대로라면 자신의 능력을 다른 사물에 전이시켜서 그 혼을 다스린다고 했던 것 같아.’
능력을 나누어주고 마음대로 움직인다?
믿을 수 없는 말이다. 아니, 마계니까 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물론 그리만 된다면 유태청의 목숨만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능력자의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다시 말해 정신적인 종속을 의미했다.
제정신이 아닌 유태청. 과연 옳은 일일까?
진용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목숨을 살리는 일이 급해도 그건 아니었다. 그건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것이다.
그때 문득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건곤흡정진혼결에는 흡정결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세르탄의 생각이 전혀 쓸모없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군.’
완전히 살릴 수는 없다. 대신 자신의 기운을 심어 생명을 연장시킬 수는 있지 않을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때까지 만이라도.
그래, 해보자.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잖아?
“운 낭자, 저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조금 위험합니다. 자칫하면 그나마 이어져 있던 어르신의 맥이 끊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다면 시행해 보고 싶습니다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용의 치료를 바라만 보고 있던 운아영은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미 고 공자가 아니었다면 돌아가셨을 분이에요. 설사 잘못된다 해도 조부님께서는 원망하지 않으실 거예요. 굳이 저에게 허락을 얻을 필요가 없어요. 해보는 데까지 해보세요.”
“좋습니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했으니, 최선을 다해보지요.”
진용은 유태청의 몸을 뒤집어 눕히고는 명문혈에 손을 얹었다.
건곤흡정진혼결의 주요 요결은 흡(吸)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반대로 출(出)을 해야 했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진용이 하기로 결정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요결 중에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러면서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해서 마음에 두지 않았던 구결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바로 반출결이 그것이었다.
정(正)이 있으면 반(反)이 있다지만, 흡정결에 반출결은 너무 극과 극이어서 감히 시험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었다.
하나를 얻고, 둘을 얻으면, 그 너머에 새로운 뭔가가 있어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 돌고 도는 사이 새로운 뭔가가 만들어진다.
그것이 흡정결의 요지였다. 반출결은 그 이후에 행하는 요결이다.
쌓이면 내보내고 또 쌓이면 내보낸다. 그사이 새로운 뭔가가 쌓인다.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단순히 내보내는 게 아니라 나의 것을 나누어 주위의 기운을 동화시키라는 것일까?
지금까지는 살기를 쏟아내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꼭 그것만이 아닌 듯했다.
더구나 단순한 듯 보이지만 자신의 진신내력을 쏟아내는 이상 자칫 위험을 자초할 수가 있다.
그러나 유태청을 살릴 수만 있다면, 약간의 위험 정도는 감수하지 못할 것도 없다.
진용은 한참 동안 눈을 감은 채 건곤흡정진혼결을 되새김질하며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몇 번이나 요결을 살펴봤다.
그러다 이각여가 지났을 즈음, 결심이 서자 진용은 천천히 유태청의 명문혈을 통해 유태청의 기운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