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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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28화
128화
“크윽!”
진용은 슬픔을 억누르고 천천히 돌아섰다.
이곳에서 유태청의 몸을 끌어안고 한없이 머물 수는 없었다. 유태청이 바라는 바 또한 그러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돌아서서는 안 되거늘, 돌아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불길이 피어나야 할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너무도 깊어 끝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어 나온 눈물이었다.
진용은 그 상태 그대로 앞을 주시했다.
뿌연 먼지조차 대전 안에서 흐르는 기운의 무게에 짓눌려 이제 모든 것이 확연히 보일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정확한 상황을 알 리 없는 천령위는 달려들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 백리성조차 눈을 부릅뜬 채 바라만 보고 있다.
절호의 기회!
진용은 지팡이를 빼 들어 지팡이를 든 손으로는 불의 마법을, 나머지 한 손에는 뇌전의 능력을 동시에 끌어올려 봤다.
마법은 중단전의 내력을, 뇌전의 능력은 하단전의 내력을 사용했다. 두 기운을 동시에 끌어올린 것은 처음이었지만 생각보다 그리 큰 이질감은 없었다.
‘좋아! 아주 좋아! 싹 태워 버려!’
세르탄이 감탄하며 외쳤다.
진용은 거기에 분노의 힘마저 더했다.
순간, 지팡이 끝에서 눈부신 화광이 뿜어지더니 반경 일 장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찰나간의 일이었다.
백리성과 천령위의 눈길이 진용에게로 옮겨졌다.
진용의 입에서 나직하면서도 대기를 짓누르는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하늘이 분노하니 세상을 태우도다! 화룡격(火龍擊)!”
시동어가 흘러나온 순간!
시뻘건 화룡이 용틀임을 하며 지팡이에서 솟아오르고, 새파란 번개가 왼손에서 넘실거렸다.
“뭐, 뭐야? 막아!”
경악한 백리성이 다급히 소리쳤다. 근엄함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때늦은 명령이었다.
콰우우우!
화룡은 천지를 울리는 용음을 터뜨리며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대전의 문을 향해 날아갔다.
백리성과 천령위를 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 혼자만으로는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다.
설령 이긴다 해도 심각한 부상을 입을 건 자명한 일. 그래선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럼 밖에 있는 사람들도 죽을 테니까.
한시가 급한 상황. 우선은 나가고 본다!
쾅!
굉음! 천웅전이 무너질 듯이 뒤흔들렸다.
한 치 두께의 철문이 움푹 파였다.
동시에 화르르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화룡의 파편이 벽마저 시뻘겋게 달구어 버렸다.
그 뒤를 곧바로 강력한 뇌전이 강타했다.
쩌저저적!
철문이 시퍼런 뇌전을 따라 깨어져 나간다.
가히 가공할 광경!
백리성과 천령위는 진용에게 달려들다 말고 경악한 얼굴로 동작을 멈추었다.
“저건…… 뭐야?”
두 사람이야 놀라든 말든 진용은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지팡이를 앞으로 뻗었다.
‘한 번만 더하면 무너뜨릴 수 있다!’
중단전에서 폭발한 힘이 지팡이로 몰렸다.
“하늘의 불! 천화의 힘! 염화탄!”
또다시 가공할 열기가 대전 안을 후끈 달궜다.
화아아악…… 콰광!
마침내 깨진 문틈이 벌어지며 터져 나갔다.
백리성과 천령위는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기만 했다.
진용이 빠져나가는 것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이. 유태청만 잡으면 된다는 것처럼.
그사이 진용은 전력으로 풍혼을 펼쳐서 깨어진 문틈으로 빨려들 듯이 빠져나갔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왜 그들이 지켜보기만 했는지. 왜 자신을 막지 않았는지.
천웅전의 앞, 청석이 깔린 광장에 수백 명에 달하는 무사들이 서 있었다.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젠장!
짐작을 못한 것은 아니다. 죽이려 작정한 이상 빠져나가도록 그냥 두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나 막상 눈앞에 대하자 절로 이가 갈렸다.
“흥! 천제성의 성주가 약속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었던가?”
뒤따라 대전을 나온 백리성이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 약속은 지켜야겠지.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
그때였다!
콰아앙!
갑작스럽게 터진 엄청난 굉음이 그의 말을 삼켜 버렸다.
진용의 눈빛이 기이하게 변했다.
‘폭음! 혹시?’
백리성을 비롯한 천제성의 모두가 대경한 표정을 지은 채, 굉음이 터진 곳을 바라본다. 진용도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백리성과는 조금 다른 뜻이 담긴 눈빛이었다.
우르르르릉!
사 장 높이의 이층 건물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누군가의 외침!
“개새끼들! 다 덤벼! 다 죽여 버리겠어!”
두충이었다. 이어 정광의 목소리도 들렸다.
“두가야! 조금만 움직이면 던져 버려! 어디서 먹는데 건드리고 있어! 개 같은 도우들이!”
졸지에 개새끼가 된 무사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선다.
물러서는 그들을 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
두충이 양손에 벽력탄을 들고 있었다.
정광도, 사도굉도, 벽력탄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한발한발 전진하던 정광은 진용을 발견하고는 지옥에서 부처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고 공자! 이놈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네!”
두충도 소리쳤다.
“이 개새끼들이 비겁하게 공격하는 바람에 비 형과 사공 대협이 크게 다쳤습니다, 고 공자님!”
그 이유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진용이 잘 알고 있는 일.
때마침 진용과 그들 사이에 있는 무사들이 당황하며 주춤거렸다. 진용은 이때라는 듯 일행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뒤늦게 몇 사람이 막으려 하자 백리성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냥 놔두어라.”
그러자 단숨에 이십여 장의 거리가 단축되더니 진용의 신형이 정광과 두충 사이에 내려섰다.
진용은 내려서자마자 운아영을 바라보았다. 입을 여는데 목소리가 살짝 떨려 나왔다.
“유 노사께서…… 당하셨습니다.”
운아영이 창백해진 얼굴로 놀라 소리쳤다.
“뭐라고요? 할아버지가요? 그게 정말인가요?”
진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운아영을 바라보았다.
덩치가 커다란 운아영이 눈물을 글썽거린다. 움켜진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격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우리를 죽이려고 하기에 고 공자와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생각은 했었는데…….”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진용이 빠져나온 천웅전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런 그녀의 눈에선 어느새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강한 여인이다. 슬픔을 안으로 삭일 줄 아는 여인.
차가운 눈물을 흘리며 그녀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나요?”
“아직은…….”
그때 문득 스치는 생각에 진용은 백리성을 직시했다.
‘그래! 잘하면…….’
눈이 마주치자 백리성이 먼저 말했다.
“도망갈 수는 없다. 그대의 지위를 생각해서 순순히 항복한다면, 목숨은 보전시켜 주지.”
진용은 코웃음을 치며 하얗게 웃었다.
“흥! 별 웃기는 개소리를 다 들어보겠군. 누가 누굴 걱정해 주는 거지?”
한쪽에 서 있던 백리양이 소리쳤다.
“목숨을 살려주겠다는데 말이 많구나!”
“입 닥쳐!”
진용의 일갈에 백리양이 입만 뻥긋거렸다.
“너…… 네놈이…….”
“그대 따위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입 다물고 있지 않으면 저 문처럼 태워 죽여 버리겠다!”
“……!”
창백한 얼굴의 백리양은 이제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제야 커다랗게 뻥 뚫린 철문이 눈에 가득 찬 것이다.
어떻게 저런 일이!
진용은 그를 상관하지 않고 백리성을 향해 소리쳤다.
“누가 누굴 위할지, 이제부터 따져 봐야겠지!”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두충을 바라보았다.
“두 위사! 가진 벽력탄 중 몇 개를 썼지?”
갑작스런 질문에 두충이 황급히 답했다.
“세 개요.”
“그럼 스무 알 중 열일곱 개가 남았군.”
“그게…… 예. 맞습니다, 고 공자. 두 개를 괜히 써서…….”
역시 잔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두충이다.
덕분에 벽력탄은 열 개가 늘었다. 보따리가 크니 의심할 건더기도 없을 것이다.
진용은 여전히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씩 웃으며 백리성에게 말했다.
“벽력탄이 열일곱 개 남았다는데, 어때? 나와 우리 일행도 한가락 하는 사람들인데, 거기에 열일곱 개의 벽력탄이면 한 번 해볼 만하겠는데 말이지?”
진용의 계획을 눈치 챈 정광과 사도굉이 큰소리로 떠들었다.
“고 공자, 그냥 싹 쓸어버리자고! 누가 죽는지 한 번 보게!”
“하나에 건물 하나씩이면 오늘부로 웅천산장은 사라지겠군! 잘하면 수백 명을 저승길의 동반자로 삼을 수 있겠어. 크크크…….”
“수백 명이 죽으면 제아무리 천제성이라도 더 이상 힘자랑하기가 힘들 텐데, 다른 곳에서 가만 놔둘지 몰라? 삼존맹, 천혈교……. 아마 벌 떼처럼 달려들걸? 우히히!”
정광이 히죽거리며 말을 받았다. 말 그대로 협박이었다.
다 부숴주마! 수백 명은 죽을 것이다! 그럼 천제성도 무사할 수 없을걸!
백리성의 안색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감히 자신을 상대로 협박을 하다니! 죽일 놈들!
문제는 허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벽력탄의 위력은 모두를 겁먹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나의 폭발로 건물 하나가 내려앉지를 않았는가 말이다.
게다가 저 서생의 괴이한 술법은 자신조차도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었다.
“아버님, 놈들을 놓아주면 안 됩니다! 소문이 나면 천하가 저희에게서 등을 돌릴 겁니다.”
백리군청이 재빨리 나섰다. 하지만 백리성의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
진용은 그것이 갈등이라 생각했다. 백리성의 생각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목숨이 달린 갈등.
진용이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갈등의 추를 흔들었다.
“유 어르신을 넘겨줘. 그럼 우리는 조용히 물러갈 테니까. 그리고 내 장담하거니와 황궁은 오늘의 일을 따지지 않을 거야. 당신도 약속을 어기지 않은 셈이니 그 또한 좋은 일이겠지.”
백리성의 눈빛이 흔들린다. 추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설마 다 죽어가는 유 어르신의 몸과 천제성의 미래를 바꿀 생각은 아니겠지?”
파르르, 반쯤 감긴 백리성의 눈빛이 더욱 거세게 흔들렸다.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없는 유태청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바로 저놈! 저놈만큼은 꼭 죽여야 하거늘!’
그러나 위험 부담이 너무나 컸다. 황궁의 반격도 반격이지만, 놈들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 당장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분이 노할 것이다. 분명히!
그때 머릿속을 울리는 듯한 전음이 백리성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놈들을 놓아주어라. 유태청도 넘겨주고.>
흡! 설마……?
<이미 죽은 거와 다름없더구나. 그 정도면 됐다. 더구나 유태청이 저들의 걸음을 늦출 것이니, 차후에 일을 도모해도 될 일이다.>
천리전성의 전음. 맙소사!
‘언제 아버님이 오셨단 말인가?’
아버님? 그럼 천무제 백리자천!
백리성은 보일 듯 말 듯 일그러진 표정으로 진용을 노려보았다. 그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여는 듯한 목소리로 천천히 명을 내렸다.
“그대가 가서 유 노사를 안아 들고 오게.”
천령위가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진용이 입을 열어 천령위의 행동을 막았다.
“잠깐! 그분은 우리 쪽 사람이 모셔 올 거다! 운 소저, 가셔서 어르신을 모셔 오세요.”
운아영이 부르르 몸을 떨고는 앞으로 나섰다. 누가 막아도 상관이 없다는 듯 거침없는 태도였다.
천령위가 백리성을 바라보았다. 백리성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들이 데려가도록 놔두게나.”
“아버님!”
백리군청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로선 백리성의 노한 눈빛을 받아낼 배짱이 없었다.
“네가 아비의 결정에 토를 달겠다는 말이더냐?”.
“어찌…… 소자가…….”
“그럼 내 말을 따르도록 하거라.”
빙 둘러선 자들 중 백리성의 결정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적유조차도.
백리성은 적유와 눈이 마주치자 전음을 보냈다.
<적유, 아버님이 오셨다. 무조건 내 말에 따르도록 하고 수하들에게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 전하라.>
적유의 눈빛이 격랑을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마기가 번뜩였다.
하지만 백리성은 미처 적유의 그 눈빛을 보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운아영이 유태청을 안고 나왔다. 그녀의 눈에선 굵은 눈물이 줄기를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깨문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백리성을 돌아보았다.
“언제고, 이 빚을 꼭 갚고 말 거야. 두고 봐!”
더 이상 천제성의 무사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진용은 조용히 입을 열어 운아영을 물러서게 했다.
“갑시다, 운 소저. 어르신의 몸을 치료하려면 한시가 급합니다.”
숨이 거의 끊어져 있었다. 맥박도 희미하기만 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두충이 재빨리 그녀의 옆에 섰다.
“비켜! 던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