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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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27화
127화
석회가 두 치가량 깎여 나가자 시커먼 벽이 드러났다. 철벽이었다.
그런데 조금도 우그러진 곳이 없다. 도대체 얼마나 두꺼운 걸까?
그러고 보니 창문도 닫혀 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창문. 아무래도 창문 역시 철판으로 막아놓은 듯하다.
들어올 때 느꼈던 차가운 느낌은 그래서였던가?
진용의 눈이 서서히 굳어졌다.
일순간 백리성의 입가에 조소가 스쳤다.
“이곳은 철저히 격리된 곳이지. 암습을 막기 위해 설치했는데, 거꾸로 쓸 줄은 몰랐군.”
“으으음…….”
옆에서 들리는 유태청의 신음. 마음이 조급해진 진용은 빠르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무기를 뽑아 든 천강오령위가 오행의 방위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엄청난 고수들이다. 예상했던 대로 둘을 상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고수들. 셋이면 자신이 없다.
과연 성주의 최후를 지키기 위한 고수라 하더니 빈말이 아니다. 게다가 자신조차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백리성이 과연 가만있을까?
그때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
‘아차! 밖에 있는 사람들!’
진용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백리성이 말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은 숙부뿐이네. 자네와는 싸우고 싶지 않아.”
나와 싸우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황궁과 적대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별로 고맙지 않군요. 유 어르신을 놔두고는 저도 갈 수 없습니다.”
“자네는 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고 하는군.”
“흥! 내가 이곳에 온 것을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하십니까? 설마 황궁을 상대로 싸워보겠다는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백리성이 처음으로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네는 자네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모양이군. 나에게도 금의위 한 사람의 죽음쯤은 무마할 수 있는 힘이 있다네.”
“동창의 힘을 이용해서 말입니까?”
“글쎄, 어찌 생각하든 그것만 알아두게.”
“하하하하!”
진용이 갑자기 대소를 터뜨렸다.
백리성의 비릿하던 미소가 살소로 바뀌었다.
진용이 눈을 부릅뜨고 백리성을 쏘아보았다.
“동창 따위의 힘을 믿고 나를 어찌해 보겠다?”
이제는 진용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대가 감히 죽이겠다고 한단 말인가!”
말투도 바뀌었다. 갑작스런 변화에 한기가 서려 있던 백리성의 눈빛이 찰나간 흔들렸다.
‘저놈이 뭘 믿고 저러지? 천호장이라는 지위에 겁먹을 본좌가 아니거늘.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진용은 백리성을 쏘아보며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듯했다. 그래도 비릿한 미소를 지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에 마안의 능력마저 끌어올렸다. 비록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을 테지만 일단은 최선을 다하고 볼일이다.
진용이 코웃음 치며 다시 소리쳤다.
“흥! 천자의 명을 받고 나온 나를 죽이겠다?”
백리성의 얼굴이 움찔 흔들렸다. 진용이 한 번 더 충격을 가했다.
“천자를 대리해 명을 수행하는 수천호령사를 죽여놓고 동창 따위로 무마하겠다고? 하하하하! 정말 어이가 없는 말이군!”
수천호령사?
백리성의 얼굴이 썩은 땡감을 씹은 듯 와락 일그러졌다. 마안의 능력에 충격적인 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자 심경이 크게 흔들린 것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조부처럼 가까이 했던 분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지위가, 임무가, 비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진용은 품속에서 수천호령패를 꺼내 들고 절대음의 능력마저 끌어올렸다. 연속된 능력의 시전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말도 안 되긴! 본인이 바로 수천호령사다! 무릎을 꿇어라, 백리성!”
백리성의 전신에 떨림이 일었다. 천장을 뚫고 날벼락이 정수리에 떨어진 듯 부르르 떠는 그의 눈이 한껏 커져 있다.
“감히 항거하겠다는 것인가!”
진용이 마지막 일성을 내지르고 불타는 눈으로 백리성을 노려보았다.
백리성이 이를 악문 채 수천호령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가늘게 떨리는 몸. 반쯤 감기는 눈. 이마에 맺힌 땀방울.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때마침 세르탄이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지독한 인간! 내공으로 시르가 펼친 능력을 해소하려 하다니!’
‘뭐야?’
진용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촌각이 일 년처럼 느껴졌다.
마안과 절대음도 통하지 않는 상대라니. 아무리 자신이 익힌 단계가 낮다고 해도 결코 인간이 버텨낼 수 없는 능력이거늘!
그때였다.
“하마터면 당할 뻔했어. 사술을 쓰다니 말이야.”
마침내 백리성이 정신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그는 진용의 눈을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 겨우 해소하긴 했지만, 다시는 당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아직도 등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백리성은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른 은근한 분노에 입술을 깨물었다. 사술에 당할 뻔한 자신에게도 화가 났고, 감히 자신을 그런 상태로 몰고 간 진용에게도 화가 났다.
“사술을 쓰는 수천호령사라…… 죽여도 나중에 할 말이 있을 것 같군. 후후후, 그대가 그렇게 원한다면, 그대도 내기에 끼워주지. 시작해라!”
명이 떨어지자마자 천강오령위의 몸에서 강맹한 기운이 회오리쳤다. 일순간, 거대한 강기의 회오리가 두 사람의 몸을 휘감았다.
그때 유태청의 전음이 들려왔다.
<고 공자, 나는 어차피 가망이 없네. 하니 자네라도 빠져나가게!>
<어르신!>
<내가 검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세 번뿐이야. 자네는 그 후에 움직이게. 그리고 살아나가거든, 아영이를 구해주게나.>
미처 대답할 시간도 없었다. 빠르게 말을 마친 유태청이 꺼내 든 천유를 양손으로 잡고 눈을 반쯤 감았다.
언뜻 그의 전신에서 하얀 빛이 폭발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도 그때였다.
백리성이 그 빛의 의미를 알았는지 대경하며 소리쳤다.
“모두 공격해!”
천강오령위가 일시에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다섯 줄기의 강기가 나선을 그리며 유태청과 진용을 향해 휘몰아쳤다.
“어르신!”
진용이 비감에 젖어 소리쳤다.
유태청이 쓰고자 하는 방법을 아는 까닭이었다.
그는 선천진기를 모조리 끌어올린 것이다.
이제 그의 말대로 세 번의 검을 쓰고 나면, 그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것이다. 껍데기만 남은 몸이 될 테니까.
분노가 진용의 이성을 집어삼켰다. 구양 할아버지와 다름없이 진정 조부처럼 생각해 온 분이거늘. 그런 분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모두 죽여 버리겠다!”
그의 손에서 올올이 푸른 강기가 실처럼 일어났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유태청의 천유에서 백색 검강이 폭발하듯이 뻗어나갔다.
대라탄천(大羅彈天)!
고오오오……. 후우웅!
진용이 뇌전을 떨칠 시간조차 없었다.
백색검강이 천강오령위가 펼친 강기의 회오리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물러서라!”
백리성이 대경해 소리치고는 유태청을 향해 양손을 휘둘렀다.
웅혼한 황금빛 장력이 그의 손바닥에서 쏟아진다.
천제성의 삼대신공 중 하나. 천추금황장(千秋金晃掌)이다.
그제야 진용도 두 손 가득 뭉친 뇌전을 떨치고, 유태청도 천유를 빙글 휘돌렸다.
천망회(天罔回)!
시퍼런 뇌전이 번쩍이는 가운데, 백색 검강이 황금빛 강기를 끌어들인 채 휘돌았다.
찰나의 순간, 휘황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빛의 광란! 찬란한 폭풍이 대전을 휩쓸었다.
고오오오! 콰과과광!
“끄억!”
“컥!”
쥐어짜는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옴과 동시, 천강오령위가 달려들 때보다 더 빠르게 튕겨졌다. 그중 수(水)령위와 운(雲)령위가 튕겨진 그대로 널브러져 버렸다.
숭숭 뚫린 옷 사이에서 솟구치는 피분수. 자욱한 혈향. 비릿한 살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쿵! 쿵! 와직!
백리성 역시 견딜 수 없는지 청석 바닥을 으깨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유태청을 노려보았다.
하얗게 탈색된 입술 사이로 핏물을 꾸역꾸역 넘기는 유태청. 그러나 표정만큼은 담담하기만 하다.
백리성의 말이 떨려 나왔다.
“과연, 십절검존!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부상을 당했다더니, 거짓이었습니까?”
대답 대신 느릿하게 들어 올려지는 천유.
유태청이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입에서는 여전히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 번 더 받아봐라, 어리석은 놈!”
“안 돼!”
진용이 놀라 소리쳤다.
천유가 힘겹게 들린 순간, 번쩍! 천유에서 뿜어진 하얀 빛이 대전을 하얗게 물들였다.
대라무연(大羅無然)!
유태청이 말년에 얻은 초식이었다. 그의 최후를 장식하려는 듯 천지를 밝게 비춘다!
진용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세 번째. 마지막이다! 유태청의 모든 것!
제기랄! 제기랄!
으스러져라 움켜쥔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용서하지 않겠다! 백리성!’
비릿한 핏물이 입 안에 고였다.
가슴이 터져 흐르는 피였다.
‘오늘의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 것이다!’
진용은 두 손에 뇌전의 능력을 끌어올린 채 앞으로 뛰쳐나갔다.
백리성과 천강오령위 중 셋이 아연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치켜들고 있었다.
빛이 뻗어나가는 곳에선 소리도 없이 모든 것이 부서진다.
뻗어나가는 빛 사이로 진용의 신형이 환영처럼 흩어져 스며들었다.
천강오령위 중 하나가 그를 막았다. 지(地)령위였다.
뇌전으로 인해 더욱 커 보이는 진용의 손이 허공에서 그를 향해 떨쳐졌다.
쩌저저적!
시퍼런 뇌전이 빛의 바다를 가르며 뻗었다.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해!
한 놈씩 죽인다! 어디 받을 테면 받아봐라!
그때 풍(風)령위가 옆에서 달려들었다.
진용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쳐내는 손을 멈추지도 않았다.
측면의 공격을 도외시한 채 쳐낸 일격!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지(地)령위는 해쓱하니 질린 안색으로 반 토막만 남은 검을 들어 뇌전을 맞받아쳤다.
콰광!
찰나였다. 지(地)령위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뒤로 튕겨졌다. 튕겨진 그의 한쪽 팔이 피안개로 화해 사라진다.
동시에 진용의 신형이 팽그르르 돌며 넷으로 나누어졌다.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검강. 옷자락이 찢겨지며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측면을 공격한 풍(風)령위가 다시 검강이 서린 검을 치켜들고 진용을 향해 쇄도했다.
“막는 자는, 죽인다 했다!”
진용이 분노의 일성을 내지르며 양손을 휘저었다.
하늘과 땅이 뒤틀리며 시퍼런 벼락 십여 줄기가 전면을 쓸어간다.
콰콰콰쾅!
천웅전을 뒤흔드는 굉음!
뇌전과 검강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윽…….”
“크윽!”
철벽에서 부서져 내린 석회 가루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뭉게구름이 진용과 풍령위를 집어삼켰다.
두 사람을 집어삼키고도 모자랐는지, 뭉게구름은 유태청과 백리성과 천령위에게 밀려갔다.
그 순간이었다!
백리성의 쌍장에서 다시 한번 황금빛 강기가 피어올랐다. 천령위도 검과 한 몸이 되어 유태청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상대는 십절검존이다. 여유를 부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 그런 만큼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일순간 대라무연과 천추금황장과 천령위의 검강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콰우우웅!
대전이 터져 나갈 것처럼 흔들렸다.
뭉게구름도 그 여파에 사방으로 밀려났다.
쾅!
“커억!”
진용은 풍령위의 가슴에 일장을 후려치고는 재빨리 물러서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두 발이 단단하기 그지없는 청석에 박혀 있어 키가 반 자가량 줄어든 유태청이 보인다.
반대쪽에선 대여섯 걸음 물러선 백리성이 눈을 부릅뜬 채 이를 악 다물고 있고, 나동그라진 천령위가 재빨리 몸을 일으키고 있다.
진용은 억눌린 목소리로 유태청을 불렀다.
“어르신! 괜찮습니까?”
“가게나. 어서…… 가.”
유태청은 나직이 진용을 재촉하고, 천유를 중단에 올린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그에게서 느껴졌다.
그것은 무위, 무상.
남은 것이 없으니 잃을 것도 없었다. 곧 아무것도 없음이었다.
젠장! 이럴 수는 없어! 이래서는 안 되는 거야!
“어르신!”
언뜻 유태청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듯 보인다. 웃음이다.
어서 가게나! 다른 사람들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말을 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