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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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24화
124화
흑암수의 마기는 진용의 몸속으로 들어오자 순한 양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진용의 인도에 따라 세르탄이 웅크리고 있는 머리 뒤로 움직였다.
그리고 한순간, 머리 뒤쪽에서 살짝 열기가 솟았다.
마기를 모두 빨아들이는 데 일각가량이 걸렸다.
본래 반 각도 걸리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행여나 살기가 일까봐 조심스럽게 진행하다 보니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다행히 살기는 일지 않았다. 뒤통수에 살짝 열기가 솟긴 했어도.
진용은 은근히 기분이 묘했다.
이 엉뚱한 마족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흥! 말만 안 해봐라.
“으으음…….”
그때 풍유승의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용은 생각을 멈추고 즉시 자신의 정순한 내력을 풍유승의 몸에 집어넣었다. 마기에 당한 내상을 다스릴 수 있게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다시 일각이 지났다. 풍유승의 가슴에서 붉은 핏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얗던 얼굴에도 붉은 기가 비치고 있었다.
“내가 부르는 혈을 따라 내력을 인도하게.”
유태청이 나직이 말하고는 몸 내부를 다스리는 임맥의 혈을 하나하나 부르기 시작했다.
“기해에서 아래로 뻗어 석문, 관원, 중극, 곡골, 회음에 이르거든 다시 기운을 돌려 기해로 돌아가게.”
잠시 시간을 둔 유태청은 이번에는 위로 기운을 돌리게 했다.
“음교, 신궐, 하완, 중완, 상완, 거궐, 구미, 중정, 단중, 옥당, 화개, 선기, 천돌, 염천까지 올라가서 다시 기해로 내려오게.”
진용이 내력을 돌려 임맥의 혈을 한바탕 쓸고 내려오자 유태청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내가 말한 대로 움직이되, 이번에는 각 혈에서 가볍게 문지른다는 기분으로 셋을 셀 동안 머물고 다음 혈로 이동하게나.”
두 번째 이동은 처음보다 훨씬 쉬웠다. 한 번 씻어낸 혈도는 지저분한 기운이 깨끗이 밀려나가 통로를 지나가기가 한결 수월했던 것이다.
유태청의 말대로 각 혈도마다 속으로 셋을 세며 머물렀다. 가벼운 열기가 일며 풍유승 본연의 기운이 꿈틀댔다.
아래로 내려간 기운을 되돌려 위로 올라가자, 기해에서부터 풍유승의 기운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각의 시간이 흐르자 임맥의 혈도를 모두 거칠 수 있었다. 다만 입 안쪽 승장혈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유태청의 말대로 따랐다.
진용이 두 번에 걸쳐 진기를 돌리고 나자 풍유승의 얼굴이 확연히 붉어졌다.
“그 정도면 됐네. 타기통혈(打氣通穴)로 혈을 활성화시켰으니, 이제부터는 스스로가 몸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네.”
유태청의 말이 끝남과 동시, 풍유승이 시커먼 피를 게워냈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바람을 따라 사방으로 번졌다.
그렇게 두어 번을 게워내자 거칠던 숨소리가 제법 고르게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정신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정신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거네. 그렇다고 깨어날 때까지 이곳에서 마냥 기다릴 수도 없으니, 일단 누가 업고 길을 떠나는 게 좋을 것 같군. 어차피 누구에게 당했는지 알아야 할 테니 말이네.”
“상처를 먼저 싸매야겠어요, 할아버지.”
운아영이 나서서 풍유승의 장삼을 찢더니 꼼꼼한 손길로 풍유승의 가슴을 감쌌다.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비류명은 운아영이 일어서자 앞으로 나섰다.
“제가 업고 가겠습니다.”
“그러시겠어요?”
운아영이 싱긋 웃는다. 두충의 눈이 샐쭉해졌다.
‘내가 나설걸. 가만, 저 엉큼한 놈이 혹시?’
무양성이 저만치 황사 바람에 희미하게 보일 때쯤 풍유승이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드셨습니까?”
등에서 움찔거림을 느낀 비류명이 물었다.
“누, 누구……?”
힘없는 목소리가 풍유승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의아함과 곤혹스러움이 뒤범벅된 목소리였다.
“쓰러져 계시기에 모시고 왔습니다.”
풍유승은 안간힘을 다해 좌우를 돌아보았다.
몇 사람이 보였다. 노인도 있고, 청년도 있고, 도인도 있고, 여인도 있다.
문득 몸집이 커다란 청년과 생사를 걸고 싸운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손에 가슴이 뭉개졌었지.
그때의 엄청난 충격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들이 구한 건가? 분명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난 시간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을 당했거늘.
그때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든 것 같으니 잠시 쉬었다 가지요.”
냇가의 버드나무에 기댄 풍유승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자신의 옷을 찢어 감싼 가슴이 붉게 물들어 있다. 고개는 들 수 있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이 든 상태.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구해줘서 고맙소.”
누구 하나를 가리켜 한 것이 아니다. 그냥 앞에 보이는 모두에게 했다.
그때 누군가가 검을 불쑥 내밀었다. 자신의 애검 홍운이었다.
“받으세요.”
운아영이 홍운을 건네는 데도 풍유승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조부님이 그러시더군요. 진짜 검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날이 잘 서 있더군요. 금방 벼린 것처럼.”
조부님? 저쪽에서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풍채 좋은 노인인가? 아니면 옆의 나무 아래서 젊은 서생하고 담소를 나누고 있는 노인?
언뜻 검을 건네준 여인의 눈이 나무 아래를 향한다.
“저분이 그러셨소?”
풍유승의 힘없는 말에 운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과분한 칭찬이오. 그대도 보지 않았소. 처참하게 패해 널브러진 내 모습을.”
운아영을 따라온 두충이 별걸 다 걱정한다는 투로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러슈.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도 있는데.”
“큭, 글쎄…….”
풍유승이 힘없이 자조의 웃음을 지을 때였다. 누군가가 물었다.
“누구에게 당하신 겁니까?”
유태청에게 풍유승을 치료할 때 행한 진기요상법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있던 진용이었다.
“젊은 사람이었소.”
“당한 무공이 흑암수라는 것은 알고 계셨습니까?”
“흑암… 흑암수? 쿨룩, 쿨룩!”
고개를 갸웃거리던 풍유승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는 마름기침을 토해냈다.
“겨우 혈맥만 안정시킨 것이니 너무 격동하면 몸에 안 좋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시지요.”
진용의 말에도 풍유승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어쩐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있었다.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정신을 잃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런데 이제 보니 그런 고통의 원인이 암흑마련의 마공, 흑암수에 있었던가 보다.
하지만 믿기가 힘든 말이었다.
흑암수라니, 흑암수가 언제 사라진 마공인데…….
“정말…… 흑암… 수였단… 말이오?”
사도굉이 냇가에 발을 담근 채 흥얼거리다 고개를 돌렸다.
“그 사람 참, 고 공자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다 죽어가는 사람이 살린 사람을 못 믿겠다는 거야, 뭐야?”
자신을 살린 게 저 젊은이라고?
놀란 표정의 풍유승에게 진용이 다시 물었다.
“귀하에게 손을 쓴 사람이 누군지 혹시 아십니까?”
“처음 보는 자였소. 으음…… 이름이… 한… 구양이라 했던가?”
“한구양?!”
이번에는 풍유승과 석무심과 사공하를 제외한 모두가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는…… 자요?”
풍유승이 힘겨운 가운데서도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진용은 미간을 찌푸린 상태로 고개를 저었다.
“잘은 모릅니다. 그저 한 번 봤을 뿐이지요.”
사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저 길 지나다 마주친 사람이었으니까.
“한구양이라…….”
하지만 사도굉만은 마치 어려운 수수께끼를 마주 한 사람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한구양의 이름을 되뇌었다.
“뭐 생각나는 거라도 있수?”
정광이 그런 사도굉에게 물었다.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닌데…… 자꾸 오죽장이라는 말이 걸려서 말이지.”
“한구양이라는 그 도우의 집이라던 그곳 말이오?”
“응. 언젠가 그 비슷한 말을 들어본 것 같거든.”
“흠, 잘 생각해 보시구랴. 어쩌면 그곳에 암흑마련의 후예들이 떼거지로 모여 있을지도 모르니까.”
풍유승은 암흑마련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정광을 쳐다보았다.
암흑마련. 참으로 놀라운 이름이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도장도 그렇지만, 아무도 암흑마련이라는 이름에 놀라는 이가 없다.
‘대체 이 사람들이 누구기에……?’
6장. 웅천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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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양의 동쪽 외곽, 각상산을 등에 지고 한 채의 장원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무양 일대의 제일부호이자 천제성의 지부인 웅천산장이었다.
새털구름을 불태우며 태양이 붉게 물들어갈 무렵. 그 웅천산장을 향해서 곧게 뻗은 관도에 몇 사람이 들어섰다. 풍유승을 무양의 의원에게 맡기고 곧장 웅천산장을 찾아온 진용 일행이었다.
관도의 양편에는 하늘을 향해 치솟은 백양나무와 아름드리 소나무가 어우러져 한결 웅천산장의 웅장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웅천산장(雄天山莊)]
오 장 넓이의 커다란 정문 위에 내걸린 현판은 백 장 떨어진 곳에서도 확연히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검은 바탕에 금빛으로 빛나는 글씨만도 한 글자의 크기가 족히 사방 열 자는 되어 보였다.
“겁나게 크군. 돈깨나 발랐겠어.”
사도굉이 아니꼬운 말투로 말했다. 정광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래도 구룡상방의 현판보다는 작은 것 같은데?”
두충이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황궁의 현판에 비하면 저건 현판도 아니네요, 뭐.”
“황궁은 빼야지.”
“황궁의 현판은 현판 아니우?”
애들처럼 현판 크기를 가지고 다툼 아닌 다툼을 벌인다. 그 모습에 유태청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운아영도 혀를 찼다.
“쯔쯔쯔, 애들도 아니고, 왜 현판 갖고…….”
그때 진용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우리 고가장 현판도 색칠 좀 해야 하는데…….”
이십여 장으로 가까워지자 웅천산장의 정문을 지키던 무사들 중 두 명이 기세등등하니 진용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무서운 것 없는 정광이 대답했다.
“무슨 일로 오기는, 볼일이 있어서 왔지. 문 좀 열어주겠나? 어르신들 좀 들어가게.”
무사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어졌다.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문을 열라 마라 하는 것이냐?”
“젠장, 개나 소나 ‘감히’라는 말을 달고 사는군.”
중얼거리듯 한 말이지만 면전에서 했으니 못 들었을 리 없다.
챙!
무사가 검을 빼 들었다. 정광이 눈을 부라렸다.
빡!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할 사이도 없이 무사의 몸이 뻣뻣이 선 채 뒤로 넘어갔다.
“어디서 행패냐!”
다른 무사가 소리를 질렀다. 동료를 부르기 위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문 옆쪽에 난 작은 문이 열리더니 기다렸다는 듯 대여섯 명의 무사가 쏟아져 나왔다.
“무슨 일이야? 누가 감히 행패를 부린단 말이냐?”
역시 개나 소나 ‘감히’다.
“제대로 한번 해보자 이거지?”
정광이 어깨를 펴고 한 걸음 나섰다. 그제야 석무심이 다급하게 나섰다.
“우리는 정천무맹에서 왔소. 시끄러워지는 건 원치 않으니 책임자를 불러주시오.”
“정천무맹? 정천무맹에서 온 사람이면 아무나 패도 되나?”
무사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나섰다.
그때였다.
“막으면 다 눕혀 버려요. 죽지 않을 정도로 패서.”
사람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목소리의 주인은 진용이었다.
그답지 않은 폭급(?)한 명령에 모두가 입만 뻐끔거렸다. 정광마저도.
“고, 고 공자?”
석무심이 황당한 표정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진용의 눈은 웅천산장의 대문을 향해 있었다.
“대문이야 부수고 들어가면 되니까.”
“이곳이 어딘 줄 알고 망발이냐!”
수장으로 보이는 무사가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정광의 손이 먼저였다.
허락이 떨어진 이상 망설일 것도 없었다. 자신의 이상과 딱 맞아떨어지는 말이 아닌가 말이다.
“비켜, 이놈아!”
휭!
정광의 주먹이 대경해 물러서는 무사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간다.
“어쭈?”
주욱 앞으로 미끄러진 정광의 주먹이 다시 허공을 갈랐다.
뻑!
호박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무사의 신형이 훌훌 날아간다. 정광은 스윽 다른 무사들을 훑어봤다.
너무 갑작스런 상황. 대들 생각도 못하고 무사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선다.
“이놈들, 다! 이 도사님 거다. 다른 사람은 손 대지마!”
정광이 히죽 웃으며, 흔들흔들 무사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동안 쌓인 화를 풀 절호의 기회였다. 더구나 진용이 먼저 패도 좋다고 하지 않았는가.
‘으흥! 이놈들 잘 만났다!’
끼이익!
그때 거대한 정문이 육중한 소음을 내며 열렸다. 정광의 고개가 정문을 향해 돌아갔다. 다급한 표정으로.
‘어? 아직 나오면 안 되는데.’
하지만 상황은 정광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문이 반도 열리기 전이었다. 백의를 걸친 중년인이 정문을 나섰다.
그는 흔들거리며 웅천장의 무사들에게 다가가는 정광을 보더니 웃음 띤 표정으로 말했다.
“엉덩이가 가벼운 도사님이시군. 아무래도 도사님은 산속에서 수양을 더 닦으셔야 할 것 같소이다.”
순간, 정광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그러더니 점차 붉게 달아올랐다.
엉덩이? 엉덩이라고? 저놈이 분명 엉덩이라고 했지?
“으아아! 너 이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