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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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52화
152화
염소수염, 나찬강은 마혈이 짚여 잘 움직이지도 않는 고개를 억지로 돌려서 힐끔 주위를 둘러보고는 힘을 주어 말했다.
“나는 염천마곡의 나찬강이라 하외다. 보내주시오. 그러지 않으면 동료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또다시 사람들이 웅성댔다.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데?”
“영호광도 죽었겠다, 아예 이 기회에 염천마곡을 쓸어버릴까?”
“에이, 그래도 까칠한 놈들이 제법 있다던데. 쉽지는 않을 거야.”
나찬강은 정신이 없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자들이 나온 것이지? 왜 만붕성에선 이런 자들에 대해선 정보를 주지 않은 것이지?
수상한 자들이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을 일수에 제압하는 고수들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었다.
환장할 일이었다.
지켜보고 있던 유태청이 제정신이 아닌 나찬강에게 물었다.
“몇이나 나왔나? 구양무경이 염천마곡을 정리할 생각인가 본데, 그럼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만 보냈겠군.”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나찬강은 유태청을 바라보고는 버릇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 그게 무슨 말…….”
딱!
“건방지게, 어디서 어르신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가! 뭐라? 당신?”
율천기의 노호성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멍했다.
그 틈에 누군가가 하는 말이 귀청에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십절검존 어르신에게 눈살을 찌푸리고 당신이라고 부르다니, 간댕이가 제법 큰 놈이군.”
‘누구? 십절…… 헉! 십.절.검.존?’
골이 멍하니 울리는 와중에도 나찬강은 눈을 부릅뜨고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전신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맙소사! 저 사람이 십천존 중 삼태천으로 불린다는 그 십절검존?
가만, 뭐야? 그럼 우리더러 십절검존을 죽이라고 했단 말이야?
“저, 정말… 어르신이……?”
“유태청이라 하네. 아마 구양무경의 사주를 받은 것 같은데, 아는 사실을 모두 털어놓는다면 내 책임지고 보내주겠네.”
나찬강은 황급히 자신이 받은 명령을 털어놓았다.
“그게 아니고…… 우리의 목표물은 고진용이라는 서생입니다요.”
나찬강은 그런 간절함을 담은 눈빛으로 주위에 늘어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당신들이 사람을 잘못 봤다. 정말이다. 십절검존은 우리와 하등의 상관이 없다.
그런데 조금 묘하다. 고개를 끄덕이는데, 어찌 보면 가소롭다는 표정들이다.
“저놈들이 고 공자를 죽이려 왔다는군, 미친놈들.”
“염천마곡도 다됐군. 역시 영호광이 죽으니 종이호랑이가 된 건가?”
“고 공자가 심경도 안 좋은데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이지나 않을지 모르겠군.”
“설마 다 죽이기야 하겠어? 어이, 그런데 몇 명이나 왔지?”
북리종이 나찬강에게 툭 던지듯이 물었다.
“예? 아, 예. 제 수하들이 이십 명쯤…….”
“자네 수하들 말고 다른 고수들도 있을 텐데?”
“제가 알기로는 삼십 명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중 우선적으로 십여 명이 곧 정양에 온다고…….”
“흠, 삼십 명이 조금 넘는 고수들 중에 십여 명이 이곳으로 온다고?”
율천기가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저희가 가보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음,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이면 강호가 고 공자를 주목할 텐데, 그것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닐 것 같군. 하다못해 뒷정리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
“일단 몇 명만 가보지요.”
“그럼 천기, 자네가 조원들을 이끌고 가보게. 그러다 됐다 싶으면 되돌아오고. 고 공자의 말대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야.”
그때 이몽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혹시 이경인이라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소?”
나찬강이 고개를 돌리고 이몽인을 바라보았다.
나른한 목소리. 바로 그였다, 자신의 뒷덜미를 잡아챈 자. 사로잡는 것보다 목 따는 것을 더 좋아하는 자.
나찬강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이 호법도 나오셨소.”
순간 이몽인의 얼굴에 퍼져 있던 나른함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가 유태청을 바라보고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허락하신다면 저도 가봤으면 합니다.”
이몽인, 이경인. 이름만으로도 뭔가 사연이 있을 법했다. 그리고 유태청은 그 사연을 알고 있는 극소수 중 한 사람이었다.
유태청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몽인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게나.”
2
정양을 벗어난 진용은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귓바퀴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점차 가슴의 고동 소리와 하나가 되어갔다.
사람이 보이면 속도를 늦추고, 보이지 않으면 속도를 빨리했다. 한 시진 만에 백오십여 리를 달려갔다. 그러면서도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뒤따라가던 정광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풍혼을 펼치고도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헥, 헥! 진짜 사람도 아니라니까.’
진용의 몸을 밀고 있는 실피나를 모르는 이상, 정광에게 진용은 괴물 그 자체였다.
진용은 정양을 벗어나자마자 실피나를 불러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서였다. 실피나는 귀찮은 표정이면서도 싱그러운 햇살에 기분이 좋은지 곧 표정을 폈다.
―아! 좋아! 이곳의 공기는 마나는 적은 대신 너무 깨끗해.
가끔은 너무 세게 밀어 속도가 당혹스러울 정도로 빨라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힘은 덜 들고 속도는 빠르니 대만족이었다.
간간이 비마법(飛魔法)을 섞어 백오십 리를 달렸는데도 숨결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흠, 역시 세르탄보다 활용도가 낫단 말이야.’
‘흥! 저 덜떨어진 정령이 뭐가 대단하다고…….’
게다가 가끔씩 세르탄의 비위를 건드리는 재미도 있었다.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혼자 가겠다는데 끝까지 따라붙은 정광의 숨소리였다. 그나마 정광이었기에 그 같은 속도로 백오십 리를 따라왔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 한계가 보이고 있었다.
<실피나, 도장님도 함께 밀어봐.>
―저 이상한 인간도? 저번에 밀었더니 헛소리만 하던데…….
아직도 실피나에게 정광은 이상한 인간이었다.
진용은 웃음을 참고 전음을 보냈다.
<이제 안 그럴 거야.>
―쳇, 할 수 없지. 주인이 하라면 하지 뭐.
할 수 없다 생각했는지 실피나가 정광의 등도 함께 밀었다.
느닷없이 바람이 뒤에서 등을 밀자 정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어? 웬 미친 바람이냐?”
순간, 뒤에서 밀던 바람이 갑자기 맞바람으로 바뀌어 버렸다.
훌렁!
정광이 갑자기 바뀐 바람에 적응을 못하고 발랑 뒤로 넘어졌다.
“으헉, 어이쿠! 이놈의 바람이 진짜로 미쳤나!”
진용은 걸음을 멈추고 실피나를 바라보았다. 실피나의 볼이 한 주먹은 나와 있었다.
―봐! 저 이상한 인간이 나더러 미쳤다고 하잖아!
“끄응.”
진용은 이마를 짚고 실피나와 정광을 번갈아 보았다.
엉거주춤 일어서던 정광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모로 꼬고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을 더듬었다.
“혹시…… 설마…… 조금 전에 그게……?”
진용은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정광이 바람의 정체를 무엇으로 생각하는지는 둘째 문제였다.
<도장님, 그냥 허공에 대고 미안하다고 한번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진용의 전음이 귓속을 파고들자 정광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뭔가 눈치를 챘는지 동그랗게 뜬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런데 하필 정광이 바라보는 곳이 실피나가 떠 있는 곳이었다.
실피나가 눈을 부릅뜨고 정광을 노려보았다. 뭣도 모르는 정광이 때마침 허공에 대고 입을 열었다.
“미안하오. 내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런 거니까 이해하시구려.”
막 한 소리 내지르려던 실피나가 입을 다물고는 진용을 바라보았다.
<봐, 도장님도 미안하다고 하잖아. 됐지?>
―쳇, 바람의 창으로 확 엉덩이를 찌르려고 했더니…….
엉덩이!
진용은 공연히 가슴이 뜨끔했다. 정광이 실피나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자, 가자. 이제 도장님도 고마워할 거야.>
실피나의 마음이 풀어진 것 같자 진용은 다시 정광을 재촉했다.
“가시죠. 바람이 불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몸을 맡기세요. 훨씬 힘이 덜 들 겁니다.”
진용이 다시 신법을 펼쳐 앞으로 나아갔다. 정광도 반신반의하면서 풍혼을 펼쳤다. 그러자 실피나가 두 사람을 밀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도 않아 갑자기 정광이 소리쳤다.
“우와! 진짜 굉장한데? 멋져! 진짜 멋져!”
그 말에 언제 기분이 상했냐는 듯 얼굴이 환해진 실피나가 힘을 내 밀어댔다.
―오호호홋! 더 세게 밀게!
쏘아진 살처럼 날아가는 두 사람.
“으아아아! 기분 좋다!”
정광이 눈을 부릅뜨고 환호성을 질렀다. 덩달아 실피나도 신이 났다.
―음호호! 이상한 인간아, 좋지!
‘젠장! 미치겠군!’
진용은 공연한 짓을 한 것만 같았다.
‘그냥 고생을 좀 더 시킬걸.’
순식간에 이십여 리를 지나쳤다. 다행히 그동안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사람이 없을 리는 없는 일. 잔뜩 신경을 쓰고 앞을 주시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앞길이 꺾어지는 곳에서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실피나, 멈춰!>
진용이 급히 전음으로 소리쳤다.
한참 기분 좋게 두 사람을 밀던 실피나가 갑자기 바람을 멈추고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정광은 신나게 날아가던 중에 갑자기 바람이 사라지자 기우뚱거리며 앞으로 몇 걸음 더 나아가서는 중심을 잡았다. 때마침 꺾어진 길 쪽에서 나타난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도사가 대낮부터 술에 취했나 보군.”
중심을 겨우 잡은 정광이 와락 인상을 찡그리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나타난 사람들은 열 명이 넘어 보였다. 모두가 무인들이었다.
삼십대에서 오십대까지 나이가 골고루 섞인 그들에게선 일류 이상의 기세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광의 눈빛이 보이지 않게 번뜩였다. 서너 명은 절정의 기운을 지닌 자들이다. 쉽게 볼 수 없는 고수들.
‘어디서 오는 놈들이지?’
자신이 서 있는 곳은 안휘의 초입. 동료가 될 자들이라기보다는 적이 될 소지가 많은 자들이다. 심상치가 않다.
“험, 길을 막고 그렇게 사람을 비웃는 게 아니외다.”
정광이 딴에는 점잖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지나간 자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멈춰 섰다는 말. 돌아서는 기척이 이어진다.
<실피나, 저들이 우리를 보고 있어?>
―어, 주인을 빤히 쳐다보고 있어. 바람의 구슬로 눈알을 쳐버릴까?
살벌한 정령 같으니라구.
<놔둬, 그냥.>
그때 뒤에서 가벼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살기가 섞인 웃음이었다.
“훗! 이십대의 서생에다가 건도 쓰지 않고 주먹이 애기 머리통만 하다고 했던가?”
“일행 중에 괴상한 도사도 있다 했지요.”
“다른 놈들도 있다 했는데, 헤어진 건가?”
“그가 원하는 것은 서생이니 오히려 잘된 일 아니겠습니까?”
진용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천천히 돌아섰다.
햇살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 바람에 그들은 진용의 무심한 눈빛을 보지 못했다.
검을 등에 멘 청의중년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가 입술을 비틀며 물었다.
“그대는 혹시 정양에서 오지 않았나?”
진용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양에서 온 것은 맞습니다만, 무슨 일이신지요?”
“그럼 그대의 이름이 고진용인가?”
“제가 고진용입니다. 한데 그리 묻는 분은 뉘신지요?”
청의중년인의 뒤에 서 있던 자들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진용과 정광을 가운데 두고 기러기 날개를 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진용이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삼존맹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청의중년인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알고 있었나? 우리는 염천마곡에서 왔다. 후후후, 재수가 좋군.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를 빼앗기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야.”
“흠, 글쎄요. 재수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두고 봐야겠죠. 그런데 구양무경이 보냈습니까?”
구양무경의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이 이상하게 들렸는지 진용을 둘러싸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움찔거렸다.
“그 이름을 자네처럼 부르는 사람은 처음 보는군.”
우측으로 다가오던 갈의의 초로인이 입을 열며 인상을 찌푸렸다. 진용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만 해도 저도 같은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는 너무 실망해서 말이죠.”
초로인은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실망을 했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