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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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51화
151화
그녀에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진용은 소서노인을 돌아다보았다.
“술은 제 것이 된 것 같군요. 설마 약속을 잊은 것은 아니시겠지요?”
멍하니 진용을 바라보던 소서노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 어찌 약속을 잊을 수 있겠나? 어쨌든 미안하군. 저 여편네가 달려들 줄은 미처 몰랐네.”
진용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유태청을 향해 싱긋 웃었다. 왠지 열기가 없는 웃음이었다.
“가시죠. 오늘은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싶습니다.”
그의 어깨에 어느 때보다도 쓸쓸해 보이는 달빛이 내려앉았다.
그때 털썩, 돈화파파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서노인이 놀라 달려갔다. 진용이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자, 급히 돈화파파의 맥문을 잡고 상태를 살핀 소서노인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기운이 흔들려서 그런 것 같네.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안정이 될 것 같으니 너무 마음 쓰지 말게.”
3
“자, 자, 제가 한턱낸다니까요? 음하하하!”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이 두충의 호쾌한 웃음소리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만취한 기분의 뒤끝은 그렇게 좋지가 않았다. 속이 울렁거리고 골이 띵하니 아파왔다.
‘시르, 왜 이렇게 뒷골이 아프지?’
세르탄도 투덜거린다.
마실 때는 기분이 좋다고 시끄럽게 떠들어서 정신 사납게 하더니, 이제는 뭐? 골이 아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술에 약한 마족이라니. 처음으로 안 사실이었다.
언뜻 진용의 눈빛이 반짝 빛을 발했다.
‘흠, 잘하면 악착같이 감추고 있는 것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술에 취한 세르탄이 있는 말 없는 말 주절거리는 것을 생각하자 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그때였다.
“고 공자, 일어나셨습니까?”
밖에서 비류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무슨 일입니까?”
“유 어르신께서 급히 뵈었으며 하십니다.”
그제야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이 생각났다. 함께 있어야 할 유태청이 보이지 않는다.
“어? 어디 가셨지?”
어이가 없었다. 한심하기만 했다. 누가 목을 따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을 놓다니.
유태청은 아래층에 내려가 있었다.
진용이 비류명과 함께 내려가자 유태청이 한 장의 서신을 내밀었다.
“조금 전에 우리의 진로를 풍림장에 알리려고 아영이 비류명과 함께 정양서원에 갔다 왔네. 그런데 이틀 전에 이 서신이 도착했다고 하더군.”
정양서원의 원주는 풍림당의 원로였다. 진행 방향을 꾸준히 풍림장에 전했더니 서신을 그리로 보낸 듯했다.
진용은 천천히 봉투의 밀봉을 뜯고 서신을 꺼냈다.
서신의 겉면에 쓰인 ‘지급’이라는 글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단 한 장의 서신. 지급. 그리고 드러나는 첫줄.
[초연향에 대한 건.]
진용의 눈빛이 굳어졌다.
[태행산 줄기에서 흔적을 발견하고 추적했으나 다수의 시신만을 발견했을 뿐, 초연향과 하군상은 발견하지 못했다 합니다. 천화상단주의 아들인 탁인효가 그 일에 끼어들었다가 중상을 입고 남경으로 후송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탁인효를 만나면 보다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문으로 듣기에는 초연향이 나타난 곳에 마도의 절대고수가 출현했는데, 그자가 어쩌면 혼세십팔마 중 한 사람일 거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진용의 굳어진 눈에서 새파란 빛이 번뜩였다.
마도의 절대고수가 혼세십팔마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당금 천하에서 구룡상방의 일에 그런 고수를 동원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천.혈.교!”
놈들이 초연향을 추적하는 일에 끼어든 것 같다.
아마도 하주령이 끌어들였을 것이다.
그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여자니까.
이틀 전에 온 서신. 서신이 전해진 기간과 소식을 전해받은 기간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열흘 전의 일이었다.
열흘 전에 초연향의 행방이 또 사라졌다.
젠장! 제기랄! 멍청이!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자신이 직접 갔으면 찾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랬다면 마도의 고수가 누군지 몰라도 자신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이가 악다물렸다.
좋아! 그랬단 말이지? 한번 해보자 이 말이지?
진용은 소서노인에게 부탁해 지필묵을 얻었다. 그리고 풍림당을 통해서 보낼 서신을 작성했다.
[하남을 향한 구룡상방의 모든 상거래를 조사해 주기 바람. 구룡상방과 천혈교와의 비밀 거래 증거를 찾았으면 함.]
백마성의 혁우청에게 보내는 서신이었다.
금의위가 직접 조사를 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증거도 없이 구룡상방을 몰아붙이면 분명 그들이 동창을 통해 반격을 해올 터. 자칫 역풍을 맞을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증거를 찾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천혈교는 몰라도 구룡상방은 한순간에 태풍에 휘말린 가랑잎 신세로 만들 수가 있다.
단순한 상거래가 아닌, 역모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천혈교와 깊은 거래를 하고 있는 이상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주령이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비밀을 유지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용은 백마성에 한 통의 서신을 쓰고는 두 통의 서신을 더 썼다.
그중 하나는 공손각에게 보내는 서신이었다.
암암리에 구룡상방을 압박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직접 조사가 아닌 금의위의 압박만으로도 구룡상방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수십만 냥의 황금을 쏟아 부은 일인 만큼 조금만 흔들려도 그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와중이라면 증거를 찾는 일이 훨씬 더 수월해질 듯했다.
또 다른 하나는 해룡선단에 보내는 서신이었다. 아마 그들 역시 급박하게 변하는 상황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이미 해룡상단의 총단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구양 할아버지도 그 일에 휘말려 들지 몰랐다. 초연향이 자신의 부탁을 초정명에게 전했다면, 천궁도를 나온 구양 할아버지가 해룡선단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석 장의 서신을 다 쓴 진용이 운아영에게 서신을 건네주었다.
서신을 건네받은 운아영은 진용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즉시 객잔을 나섰다. 두충과 비류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운아영을 따라나섰다.
“어쩔 셈인가?”
그제야 유태청이 조용히 물었다. 진용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사도굉을 바라보았다.
“사도 선배님, 천화상단의 총단이 어디에 있죠?”
엽차를 후르륵 한 모금 마신 사도굉이 자신있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야 남경에 있지. 왜?”
“한번 가보려고요.”
“너무 시간이 촉박하지 않겠나?”
유태청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진용의 일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없었다. 천혈교가 공표한 오월 초하루가 이제 열흘도 남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설령 남경에 가서 탁인효라는 자를 만난다 해도 뭔가가 확실하게 밝혀진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지를 않은가 말이다.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자네 혼자?”
“저 혼자라면 오월 초하루 전에 돌아올 수 있습니다.”
“너무 위험해. 남경을 가기 위해선 삼존맹의 주 영역인 안휘성을 가로질러야 하네.”
진용이 빙그레 웃었다.
“자랑이 아니라, 제가 피하고자 하면 누구도 저를 잡을 수 없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유태청이 쓴 미소를 지었다.
“글쎄, 그건 그렇지만…….”
“너무 걱정 마십시오.”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만 있던 정광이 벌떡 일어섰다.
“그냥 같이 가지. 유 노사를 보필할 몇 명만 이곳에 남고 말이야.”
“흠,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소. 그렇게 합시다.”
사람들이 분분히 일어났다. 그들은 무인들. 기다리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용이 없으면 왠지 알맹이 없는 포자 같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난관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난관.
진용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함께 가면 오월 초하루 전에 오기가 힘들 겁니다.”
바로 그것이었다. 혼자 가면 그때까지 올 수가 있지만 함께 가면 절대 올 수가 없었다.
“여러분께선 제가 올 때까지 정보를 모아주십시오. 풍림당이나 정천맹에서 얻는 정보는 지엽적일 뿐입니다. 그 정도로는 적을 상대하기에 불충분합니다. 천혈교, 천제성, 정천맹. 분명 그들의 움직임에는 우리가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비밀스런 움직임들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해주실 일은 바로 그런 정보를 모으는 겁니다. 변수가 될 수도 있는 정보 말입니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용이 없는 상황이라도 자신들이 할 일은 차고도 넘쳤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 정광만은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신발 들고 따라가면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될까?”
6장. 차도살인
1
두 사람은 객잔을 노려보았다. 객잔의 문이 열리고 건(巾) 대신 무명 끈으로 머리를 묶은 서생이 희색이 만연한 도사와 나오고 있었다.
만붕성의 정보망을 통해 수상한 자들이 정양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눈이 빠져라 찾아다니던 중 객잔에 들어가는 덩치 큰 여인을 본 것이 한 시진 전이었다.
거검을 등에 멘 덩치 큰 여인, 분명 급전으로 전해온 목표의 일행 중에 그런 여인에 대한 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주 목표인 서생이 객잔에서 나온다. 놈의 일행 중 하나인 도사와 함께.
드디어 제대로 찾아냈다.
얍삽한 인상의 염소수염을 단 중년인이 옆을 바라보았다.
“맞지? 저놈이 만붕성에서 찾는다는 그 서생이지?”
한여름 대낮 햇볕에 사흘은 태운 것처럼 시커먼 얼굴의 장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주, 저 서생을 죽이려고 본 곡의 고수들이 수십 명씩이나 나온다는 겁니까?”
“나도 잘은 몰라. 그냥 저놈을 죽이면 특별 수당에 직위를 올려준다고 해서 찾아다닌 것뿐이야.”
흑면의 장한이 눈빛을 번뜩였다.
“그럼 우리가 죽이죠.”
염소수염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나도 그러면 좋겠는데, 위에서 발견하면 보고하고 대기하라고 해서……. 저 안에 있는 놈들도 보통 놈들이 아닌 것 같고…….”
“그거야 높은 양반들이 공을 독차지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까짓것, 놈들이 먼저 덤벼서 죽였다고 하죠 뭐. 더구나 객잔에 있는 놈들은 나오지도 않을 것 같은데.”
염소수염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그럴…… 까?”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높은 놈들 하는 꼬라지가 항상 그랬다. 자신들이 죽어라 쫓아다녀서 일을 성사시키면 공은 모조리 자기들이 차지했다. 한 번쯤 자신들이 공을 차지해도 될 성싶었다.
설마 죽이기야 할까?
마침 객잔 안에 있는 수상한 놈들과도 떨어져 있으니 다시 오기 힘든 좋은 기회였다.
염소수염은 주먹을 움켜쥐고 힘주어 말했다.
“좋아! 늦으면 본 곡의 고수들 차지가 될지도 모르니까, 놈들이 정양을 벗어나면 바로 죽이자. 애들 불러!”
결정이 내려진 이상 망설일 것이 없었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굳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진용과 정광의 뒤를 따르려 했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하다. 뒷덜미를 타고 기어오르는 오싹한 기분.
부르르 몸을 떤 두 사람은 재빨리 돌아섰다. 아니,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마음뿐이었다.
덥석!
“그전에 네놈들에게 한 가지만 묻자.”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두 사람의 뒷덜미를 잡아챈 것이다.
“컥! 웬 놈…….”
“이런 건방진 인생을 봤나. 언제 봤다고 놈이야, 놈이!”
사유귀검 문승학이 눈을 부라리자 흑면장한의 마혈을 제압한 이몽인이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 내 뭐랬나? 그냥 목을 따버리자고 했잖아.”
나른한 목소리. 사람 죽이는 것을 심심할 때 하품이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지 아무런 감정도 없는 어투였다.
염소수염과 흑면장한의 얼굴이 누렇게 떠버렸다.
‘이, 이놈들 뭐야? 언제……?’
잠시 후 객잔의 한가운데에 두 사람이 던져지고, 일명 삼탁의 무사들이 그들을 에워쌌다. 세 개의 탁자에 나눠 앉아서.
“그놈 참 이상하게 생겼군. 얼굴이 시커먼 것이 어디 아픈가?”
“시커먼 놈도 그렇지만, 저 염소수염도 얼굴에 ‘나 나쁜 놈이오’ 하고 써놓은 것 같은데?”
웅성거리는 와중에 포은상이 물었다.
“어디에 속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