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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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50화
150화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뿐, 가벼운 탄성이 진용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아! 기막힌 향이군요!”
처음에는 목구멍에 불이 붙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목울대를 타고 입 안 가득 퍼지는 향기는 전신이 상쾌해질 정도였다.
소서노인이 힐끔 진용을 바라보더니 다시 한 잔을 가득 따라주었다.
“자세히는 모르겠네만, 심정이 괴로울 땐 술 몇 잔 마시는 것도 괜찮다네.”
흘러가듯 하는 말에 진용은 고소를 지었다. 노인이 자신의 내면을 알아본 듯하다. 그만큼 스스로가 마음을 주체치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보였나요?”
“나와 내 마누라는 자네가 과연 젊은 사람인지 아닌지 매우 궁금했다네. 그런데 이제 확실히 알 수 있겠군. 자넨 젊은 사람이 맞아.”
“훗, 그건 맞습니다. 저는 젊은 청년이지요.”
“그것도 아주 강한. 젊은 사람들 중에선 적수가 드물 정도로 강한 젊은이지.”
“그건 잘못된 말이오.”
유태청이 술잔에서 입을 떼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저 젊은 친구는 젊은 사람들뿐만이 아니고 천하를 통틀어봐도 적수가 몇 안 되는 고수요. 그러니 노형은 말을 고쳐야 하오.”
“컥! 콜록! 콜록!”
충격에 술이 얹혔는지 소서노인이 기침을 해댔다. 그가 눈물이 맺힌 눈으로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그 거짓말, 정말이오?
고개를 끄덕이는 유태청.
-내가 뭣 때문에 거짓말을 하겠소?
천천히 진용을 향하는 소서노인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진용이 고수라는 것은 그도 안다. 돈화파파가 일장에 밀렸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 이유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이십삼 년 동안 무공을 제대로 써보지 못해 밀렸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십절검존 유태청이 아니라고 말한다.
술이 확 깨는 말이다. 아무리 십절검존의 말이라지만 믿을 수가 없다.
“큭, 유 형은 저 고가 꼬마가 마치 십천존만큼이나 강한 것처럼 말하는구려.”
“본래 한 오 년 후 정도면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소. 그런데 요즘 와서 생각이 바뀌었소.”
“호! 오 년이면 십천존과 대등할 만큼 강해질 수 있다 이 말이오? 굉장하군. 강호에 새로운 전설이 탄생하는 건가? 한데 생각이 바뀌었다는 말씀은 또 뭐요? 아무래도 오 년은 너무 짧다 생각하신 거요?”
유태청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가만히 손가락 두 개를 들었다.
한참 동안 그 뜻을 생각하던 소서노인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이… 년이면……?”
유태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멈칫하더니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내가 잘못 알았을지도 모르겠소.”
그럼 그렇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소서노인의 일그러진 얼굴이 빠르게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그러자 유태청이 여전히 묘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는데 말이오.”
소서노인이 정지된 눈빛으로 유태청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진용이 술병을 거꾸로 잡고 탈탈 털더니 더 이상 술이 나오지 않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보기 좋게 달아오른 얼굴에는 아쉬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풀썩 웃음이 나왔다. 어이가 없었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혼자서 술병을 다 비워 버렸다. 그 독하디독한 백매향을.
그러고도 모자라는지 밖으로 나가려 한다. 뻔했다. 아마 술이 더 필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아무리 봐도 그런 고수는 아닌 것 같은데……?’
보면 볼수록 유태청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
문득 호기가 솟구쳤다. 술기운 때문인지도 몰랐다.
저 정도쯤이야, 그런 마음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그를 유혹했다.
“이봐, 고가 젊은이. 괜찮다면 손을 한번 나눠보고 싶네만. 어떤가? 나를 이긴다면 내가 숨겨놓고 아껴서 마시는 기막힌 술을 내주지.”
유태청이 말리려 손을 들었다 그냥 내려놓았다.
말린다 해서 들을 상황이 아닌 듯했다.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더니, 소서노인이 꼭 그 짝이었다.
하긴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말한 자신도 믿기가 힘든데.
유태청의 손이 내려감과 동시, 밖으로 나설까 말까 망설이던 진용이 뒤돌아섰다.
“그거 좋죠.”
밝은 웃음이 피어나는 얼굴이었다.
‘잘됐군. 그러잖아도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고 싶었는데.’
객잔의 뒤쪽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강물과 객잔 사이의 거리는 이십 장 정도가 되었는데, 객잔 뒤의 황토담 너머로는 모래사장이 이어져 있어 공터가 꽤나 넓었다.
진용과 소서노인은 모래사장까지 걸어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걸음을 멈추고 마주 섰다.
휘영청 허공에 걸린 달빛이 두 사람을 내려 비춘다.
구경꾼이라고는 달랑 유태청 한 사람뿐이었다.
물론 겉보기로만 그랬다. 객잔의 창문을 통해 번들거리고 있는 눈들까지 합한다면 족히 이십 쌍에 가까운 눈들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몇 장으로 그을까?”
또 다른 누군가가 대답했다.
“오 장.”
“아냐, 삼 장으로 그을걸?”
“내기할까? 난 오장에 두 냥.”
삼 장, 오 장, 십 장. 수군거리며 여기저기서 돈 걷는 소리가 들렸다.
“난…… 안 긋는다에 두 냥.”
마지막으로 두충이 말했다.
거의 동시 진용과 소서노인이 서로를 향해 부딪쳐 갔다.
“뭐, 뭐야? 왜 안 긋는 거야?”
여기저기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겼다!”
두충이 환호성을 질렀다. 정광이 웃기지 말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흥! 임마, 너는 늦었어. 무효야, 무효!”
“무슨 소리예요! 내가 말한 다음에 움직였다고요!”
“헛소리 말아! 우리가 다 봉사들만 모인 줄 알아?”
누군가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내가 봐도 늦은 것 같아.”
“그건 그래…….”
“아무래도 그렇지?”
“시끄러워요!”
보다 못한 운아영이 빽 소리쳤다. 한창 격전 중이던 진용과 소서노인이 손발이 엇갈려 휘청거릴 정도였다.
“좋아요. 간단하게 묻겠어요. 만일 거짓말하면 그 사람은 남자가 아니에요. 알았죠?”
시끄럽던 객잔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자, 묻겠어요. 저 두 분이 먼저 움직였다는 분 오른손, 두 공자가 먼저 말했다고 생각하시는 분 왼손. 올리세요!”
잠시 후.
“흥! 한 사람만 빼고 다 왼손이네요. 그럼 이 돈은 두 공자 거예요. 불만있으신 분? 없어요?”
“있을 리가 없지, 그럼.”
“당연한 것 가지고 싸우면 남자가 아니지.”
“우리가 뭐 그런 것도 못 볼 정도로 하순가?”
오직 정광만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궁시렁댔다.
“배신자들…….”
진용은 일수를 나누고 뒤로 물러서서 침잠된 눈으로 소서노인을 바라보았다.
시커멓게 물든 그의 손이 달빛에 번질거리고 있었다.
소서노인이 자랑하는 최강의 무공, 묵왕수(墨王手)였다.
“이십삼 년 만에 펼치는 거네만 그렇게 녹슬진 않았을 거네. 조심하게나.”
이미 느낌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소서노인의 묵왕수는 이십삼 년이나 펼쳐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더욱 무서워졌을 것이다. 그 마음의 깊이만큼이나.
진용은 천천히 늘어뜨린 두 손을 움켜쥐었다.
푸르스름한 건곤천단공이 두 주먹에 응집되었다.
술기운은 이미 모공을 통해 모두 빠진 상태였다.
스르르, 진용이 일보를 내디뎠다. 밀려나는 달빛이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순간 소서노인이 땅을 박차고 진용을 향해 쇄도했다. 갈라지는 어둠 사이로 시커먼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십여 개로 나누어진 묵왕수의 압력에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짓눌림.
진용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 사이사이에서 시퍼런 뇌전이 뭉클거리며 피어났다.
콰광!
부서져 나가는 묵왕수의 그림자들. 그 사이로 뇌전이 파고들었다. 소서노인의 손에서도 시커먼 묵강이 빠르게 재생되었다.
떠더덩!
대기를 울리는 십여 번의 굉음. 두 사람이 튕기듯이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물러섰다 느껴진 순간 다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촤아악!
두 사람이 딛고 선 모랫바닥이 원을 그리며 밀려난다.
달빛조차 가려질 정도의 묵광. 그 묵광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부숴 버리는 청광.
대기가 비명을 지르며 찢겨진다!
모랫바닥이 폭죽처럼 터져 나간다!
강기의 파편에 십여 장 반경 내에 있던 것은 무엇이든 다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어느 순간, 힘에서 밀린 소서노인이 뒤로 물러섰다.
찰나간의 틈이 벌어지자 진용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더니 빙글, 허공에서 한 바퀴 휘돌며 소서노인의 전신을 짓눌렀다.
이를 악다문 소서노인이 쌍장을 쳐들어 힘겹게 올려 쳤다.
허공 가득 펼쳐진 시커먼 강기의 그물.
그때였다. 허공에 떠 있던 진용의 몸이 기묘한 각도로 휘어졌다. 그 휘어짐만큼이나 두 발도 빠르게 방향을 바꿔 휘돌려졌다.
묵왕수의 그물망을 교묘히 가르며 떨어지는 일 퇴. 발끝에 매달려 있던 시퍼런 뇌전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공격.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방향 전환.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소서노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헉!”
막기에는 이미 늦었다 생각했는지 소서노인은 대경하며 몸을 눕혔다. 그리고 일순간, 발뒤꿈치를 땅에 박고 옆으로 휘돌았다. 철판교(鐵板橋)에 이은 회룡추(回龍趨)의 신법. 절묘한 배합이었다.
소서노인은 연이어 두 가지 신법을 펼치고서, 피했다 싶었는지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기는커녕 코앞에 닥친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혼신으로 몸을 틀어야만 했다.
당연히 허공을 스쳐 지나가리라 믿었던 진용의 공격이 직각으로 구부러지며 그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몸을 뒤튼 것은 오직 느낌에 의존한 본능적 회피였다. 덕분에 다행히도 정타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피한 것은 아니었다.
찌익, 옷자락이 찢겨지며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둔중한 충격이 가슴을 헤집는다.
소서노인은 충격에 숨이 턱 막혔다. 스쳐 간 여력치고는 너무도 가공할 위력이었다.
거의 구르다시피 몸을 피한 소서노인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순간, 갑자기 대경해 소리쳤다.
“안 돼!”
반대편에서 돈화파파가 소리도 없이 어둠을 가르고 허공을 날아 진용을 덮치고 있었다.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 그녀의 옷자락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하마공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포룡공(捕龍功)이 극한으로 펼쳐진 증거였다.
하지만 소서노인이 염려한 것은 진용이 아니었다. 자신의 아내이자 평생의 동반자였던 돈화파파를 염려함이었다. 포룡공이 아니라 포룡공 할아버지라도 진용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직접 깨달은 것이다.
소서노인의 목소리가 한밤의 강가에 울려 퍼지고, 진용이 무심한 신색으로 몸을 돌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몸을 돌린 진용의 손이 허공을 움켜쥐듯이 자연스럽게 들렸다. 한 바퀴 휘저은 우수를 따라 좌수가 연이어 내질러졌다.
달빛이 비틀리며 허공이 뻥 뚫려 버렸다.
고오오오!
대기가 깊은 신음을 토하며 태풍에 휩쓸린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떨어댔다.
이제는 뒤에 서 있게 된 소서노인이 질린 표정으로 주춤 물러섰다. 그가 원해서가 아니다. 진용의 몸에서 인 기운이 그를 밀어낸 것이다. 마치 더 이상의 암습은 허용치 않겠다는 듯.
순간 쿠웅, 작은 격돌음이 일더니 돈화파파의 신형이 거꾸로 튕겨졌다.
훌훌 날아간 그녀는 안간힘을 다해 중심을 잡고 땅에 내려섰다.
쿵! 쿵! 쿵!
다져진 땅이 그녀의 발이 옮겨감에 따라 움푹 파였다.
진용도 창백해진 얼굴로 그 자리에 선 채 석 자가량을 밀려났다. 발밑에 죽 그어진 두 줄기의 선. 깊게 가라앉은 눈빛. 사위가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힘겹게 다섯 걸음을 물러선 돈화파파가 떨리는 눈을 들어 진용을 쳐다보았다. 입을 열고 싶어도 열 수가 없었다. 무너질 것 같은 육신을 붙잡고 있기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야만 했다.
돈화파파와 눈이 마주치자 진용이 고저가 없는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저는 암습을 싫어합니다. 지금까지 당한 것만 해도 충분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