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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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49화
149화
마안을 말함이었다. 진용은 굳이 정확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런 능력으로도 어르신의 정신을 흔들 수 없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미지의 힘이 어르신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어 저의 능력을 튕겨낸다고나 할까요? 만일 어르신께서 그 미지의 힘을 스스로 이용할 수만 있다면, 아마 그 힘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그게 무상력인지 뭔지는 몰라도 말입니다.”
자기 자신은 생각도 못하고 있던 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유태청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내가 육체적인 무공은 펼치지 못해도 정신적인 무공은 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인가?”
“그 능력을 굳이 무공으로 표현한다면,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 무공. 유태청은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개념의 무공에 헛웃음이 나왔다. 더구나 자신에게 그런 무공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에는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허! 거참.”
소서노인은 진용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좀 전에는 자신과 돈화파파를 혼자서 가지고 놀더니 이제는 십절검존과 무공에 대해 논한다. 보고도 믿기가 힘든 일.
‘저 서생이 누군데 십절검존과 무공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거지?’
그때 탁자로 다가온 돈화파파가 불쑥 물었다.
“너 누구야? 정말 새파랗게 젊은 놈 맞아?”
그럼 내가 젊은 놈이지, 늙은 놈이오?
진용은 톡 쏘아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두 노인에게 되물었다.
“보시다시피 새파란 청춘입니다. 그건 그렇고, 두 분께선 왜 여기서 객잔을 하고 계신 겁니까?”
소서노인과 돈화파파의 얼굴이 동시에 와락 일그러졌다.
“신경 꺼!”
“그놈의 혈선인 때문에…….”
“조용해, 이 여편네야!”
돈화파파가 무심코 입을 열었다가 다그치는 소서노인의 기세에 찔끔 목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혈선인이라는 이름에 적어도 세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그중 한 사람, 진용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지금 혈선인이라 하셨습니까?”
소서노인이 고개를 홱 돌리고는 진용을 쏘아보았다.
‘역시 단순히 젊은 놈이 아니야! 젊은 놈이 어떻게 혈선인이라는 이름을 알겠어? 당금 강호에서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열도 되지 않을 텐데. 분명 껍데기는 새파래도 속은 겉보다 몇 배 더 묵은 놈일 거야.’
소서노인은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며 나름대로 결론이 내려지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 이름을 아는가?”
“놀랍군요. 혈수의 주인 이름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나오다니. 그런데 혈선인 때문이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단순히 혈수의 주인이라는 말만 덧붙였는데도 소서노인이 듣기에는 진용이 마치 혈선인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들렸다.
문득 흘러간 이십수 년 동안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소서노인의 코밑에 난 가느다란 수염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벌써 이십 년이 넘었나?’
쭈그렁바가지가 다 되도록 가슴에만 품고 있었던 이야기였다.
이제는 털어놓아도 되지 않을까?
“예전에 자그마한 붉은 손바닥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소. 괜찮다면 듣고 싶구려.”
유태청마저 재촉하자 소서노인이 돈화파파를 돌아다보았다. 돈화파파가 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때요? 약속 기한도 지났는데.”
코를 씰룩인 소서노인이 힘없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긴…….”
그는 엽차 한 잔을 따라 단숨에 들이켜고는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어 허공에 눈을 두고는 나직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십 년도 훨씬 전 이야기야. 우리 부부가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서 황산을 지나가는 중이었는데, 황산검문의 잡놈들이 우리를 죽여 무림의 정의를 세우겠다며 떼거지로 덤벼들더군. 해서 몇 놈을 죽여 버렸지. 사실 그때만 해도 물불 안 가리던 때라 용서란 것을 몰랐어. 열 놈이나 때려죽이고도 도망가려는 두 놈을 마저 죽이려 했으니까. 한데…….”
사도굉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때 그가 나타났군요.”
소서노인이 자신의 말을 끊은 사도굉을 노려보았다. 제 버릇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연 사도굉은 찔끔해서 황급히 옆구리 터진 포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한 번만 더 해봐라’ 그런 눈빛으로 사도굉을 노려본 소서노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는 별 특징도 보이지 않았네. 다만 붉은 도포가 유난히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이었지. 그런데…… 그가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오더군. 훗, 우스웠지. 죽지 못한 놈이 또 있군, 하면서 말이야.”
이야기를 이어가던 소서노인의 얼굴에서 점차 핏기가 사라졌다.
“그가 말하더군. ‘그대들이 먼저 손을 써서 벌어진 일이 아니니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이십 년 동안 일반인처럼 살아라.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 무공을 써서도 안 된다. 만일 무공을 쓰고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 들리면, 지옥보다도 더 참혹함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줄 것이다’라고 말이야. 크크크크, 우리는 미친놈을 당장에 때려죽이겠다며 덤벼들었어. 놈이 손을 들더군. 피칠을 한 것처럼 빨갛게 물든 손을 말이야…….”
그때의 광경이 생각나는지 소서노인의 탁자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떨리는 눈빛, 그것은 공포였다.
모두가 아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가 악다문 이 사이로 씹어뱉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딱 삼 초였어. 삼 초 만에 우리 부부는 굼벵이처럼 바닥을 굴러야 했지. 크크크…….”
그가 창백한 얼굴로 자조의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누구도 함께 웃는 사람은 없었다.
삼 초. 혼세십팔마에 속하는 광소쌍마가 단 삼 초 만에 패하다니.
객잔 안이 조용해졌다. 포자 씹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다시 소서노인의 목소리가 음울하게 울렸다.
“그렇다고 제 버릇이 도망갈까? 우리는 삼 일도 지나지 않아서 사람을 팼지. 그리고 이틀 후에 그가 나타났어. 우리는 그제야 그가 한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두 노인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부르르 몸을 떤 소서노인이 힘들게 말을 이었다.
“지옥, 지옥이 뭔지를 알게 되었거든.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우리 손으로 자결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래도 듣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그들이 느낀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검입사이 사이검난(儉入奢易 奢入儉難)이라.
검소한 자가 사치스러워지기는 쉬워도, 사치스럽게 살던 자가 검소하게 살기는 힘든 법이라 했던가.
강호도 마찬가지다. 약한 자가 노력해 강해지면 그 나름의 삶을 살게 되지만, 패도를 추구하던 자가 힘을 잃으면 그는 강호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호랑이가 강아지처럼 살아갈 수 없듯이.
진용은 두 노인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수많은 갈등을 했을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이 바로 이 객잔의 전 주인이었네. 우리는 사흘 만에 깨어나서 그가 만들어준 포자를 먹었지. 들으면 우습겠지만, 그때 포자가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
“난 그게 싫었어!”
돈화파파가 툭 쏘아붙였다.
“그래서 난 포자나 만들며 살아야겠다 생각했고, 이 여편네는 싫다며 양육점을 차렸다네. 그리고 이십삼 년이 흐른 것이지.”
사도굉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삼 년 전에 약속 기한이 끝났는데 왜 아직도 이곳에 있는 겁니까?”
소서노인이 갑자기 훌러덩 앞가슴을 젖혔다. 앙증맞은 손바닥 하나가 사람들의 눈을 휘어잡았다.
검붉은 손바닥, 혈수였다.
“이십 년이 넘도록 이것을 봐왔지. 그러다 보니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도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 그것뿐이야.”
옷을 내리는 소서노인의 눈엔 두려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십 년이 넘도록 광소쌍마의 정신을 옭아매고 있는 혈수의 공포. 진용은 탁자 아래 놓인 주먹을 자신도 모르게 움켜쥐었다.
피가 끓었다. 심장이 벌떡거리며 고동쳤다.
누군가를 이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는 처음이었다. 구양무경을 죽이겠다는 마음과는 또 다른 승부욕이었다.
‘혈선인……. 아직도 살아 있을까?’
이어지는 침묵이 버겁게 느껴지는지 소서노인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러자 진용이 물었다.
“그 후로는 만나지 못했습니까?”
소서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답답함을 이기기 위해 자주 다투었지. 그나마도 삼 년 전까지는 내공을 쓰지 않았다네. 가끔씩 흑도의 건달들이 오긴 했지만, 우리 부부가 싸우는 것을 보고는 누구도 우리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었어. 좀 심하게 싸웠거든. 어쨌든 그래선지 그 이후로는 혈선인을 보지 못했네.”
아마 다른 사람을 해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가 만든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좀 심하게 싸웠다?
그제야 진용은 왜 돈화파파가 나타나면 손님들이 모두 자리를 피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포자가 맛있어도 날벼락을 맞고 싶은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
그때 율천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진용이 있는 탁자로 다가왔다.
그는 회한에 잠겨 있는 소서노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차마 말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에, 또…… 이보시오. 혹시… 만들어놓은 포자 더 없소?”
소서노인은 분위기 생각도 않고 포자만 찾는 율천기에게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을 툭 내뱉었다.
“그대들에게 갖다 준 것이 전부일세.”
율천기는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 떨어졌다는군.”
여기저기서 아쉬운 탄성이 쏟아졌다.
“내가 가져다준 고기도 있잖아!”
포자만 찾는 게 약오르는지 돈화파파가 한마디 했다. 그러자 북리종이 흘끔 반 정도 남은 양육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고기보다 포자가 체질이라서…….”
소서노인이 몸을 일으켰다.
“만들어놓은 것은 없지만 새로 만들 수는 있네. 어차피 쉬었다 갈 거라면 방에 가서 조금만 기다리게나.”
사람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정광도 손에 든 양육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포만감이 들 정도로 배를 채운 사람들이 각자의 방을 돌아간 지도 한 시진 이상이 흘렀다.
진용은 창문을 열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창밖의 은하수를 따라 흐르는 달빛이 유난히 창백해 보인다. 자신의 하얗게 비어만 가는 마음을 보는 듯하다.
진용은 내심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초연향은 괜찮은지, 찾기는 했는지. 아직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걱정을 하는 당사자에게는 지독한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때 바로 가봤어야 했나?’
진용의 고민은 거기에 있었다. 아버지를 찾는 일과 진행해야 할 일 때문에 초연향의 어려움을 알고도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훗날 하주령에게 그 죗값을 받는다 해도, 구룡상방을 멸한다 해도 초연향이 잘못되고 나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제가 잘못한 걸까요?”
진용은 스스로에게 묻듯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생각했을 때, 제정신이 아닌 아버지를 찾는 일과 위급에 처해 있는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는 일 중 어느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는가?”
유태청이 되물었다. 진용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걸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은 아버지를 찾는 일이 훨씬 더 중하다 생각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보니 속마음은 갈팡질팡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에 대한 결론을 명쾌하게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없을 것이네.”
그때 누군가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가도 되겠소?”
소서노인의 목소리였다.
진용은 굳이 이유를 묻지 않고 방문을 열어주었다. 소서노인이 한 손에는 술병을, 다른 한 손에는 간단한 안줏거리와 술잔을 들고 서 있었다.
이미 한 잔 걸친 듯 그의 얼굴은 불콰하니 혈기가 올라와 있었다.
“여편네하고 한잔했네. 싫다면 가지.”
“아닙니다. 들어오세요.”
그는 묵묵히 들어와 방 가운데 있는 탁자 위에 들고 온 것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의자에 앉더니 두 사람의 잔에 술을 따르고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가득 따랐다.
은은한 매화향이 술잔에서 흘러넘쳤다.
“좋구려.”
유태청이 감탄하며 주향을 음미하는 사이 진용은 단숨에 술잔을 목구멍 속으로 털어 넣었다.
순간 진용의 표정이 쓴 약을 먹기라도 한 것처럼 이지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