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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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40화
140화
2장. 풍운강호
1
강소성 상주(喪主).
서쪽에 남경, 동남쪽에 소주를 두고 장강의 수로와 뱃길을 장악하고 있는 주요 거점이 바로 상주다.
상주가 문인에게는 북송제일의 시인이었던 동파거사 소식, 소동파가 귀양이 풀려 돌아오던 중에 죽은 곳으로 유명하다면, 상인들에게는 장강의 금력이 집결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무인들이 상주를 모르는 이가 없는 이유는, 그곳에 바로 삼존맹의 한 축인 일양회의 총단이 있기 때문이다.
일양회의 총단은 거미줄 같은 수로와 흩어져 있는 작은 호수들이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야산에 위치해 있었다. 마치 평범한 상인의 장원처럼 별다른 특색도 없는 그곳에는 십여 채의 전각만이 덩그러니 지어져 있을 뿐이었다.
일양회의 절대자인 일양마검 천인효가 본래 남에게 드러나 보이는 것을 싫어한 탓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주의 사람들 중에는 일양회의 총단을 진짜로 단순히 상인의 장원이라 믿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아침 햇살이 잠들어 있는 장강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깨울 즈음.
그 일양회의 총단 한가운데 있는 전각 안에서 심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단순한 한마디의 물음이었다. 그러나 그 물음에는 만 근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묻는 사람이 바로 십천존의 일인이자 일양회의 절대자 일양마검 천인효인 것이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선우청이 미치지 않고서야 영호 곡주를 죽였겠습니까? 자신을 아들처럼 생각하고 있는 곡주를 말입니다.”
천인효는 자신의 군사이자 의동생인 소후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하나 분명한 것은 염마존 영호광이 죽었다는 거다. 그것도 염천마곡, 자신의 거처에서 말이다.”
“후, 저도 그래서 머리가 아픕니다. 영호광도 죽고 선우청도 죽었습니다. 게다가 들리는 말로는 선우청이 자신의 죄를 시인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염왕사혼이 확인했다 하니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우청이 왜 영호광을 죽였는지 그것을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천인효가 갑자기 묘한 눈빛으로 소후천을 바라보았다.
“구양 맹주는 알고 있을까?”
소후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은 곧 그가 그 일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니까.
소후천은 천인효의 눈에 자신의 눈을 똑바로 고정시킨 채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형님이 만붕성에 가는 것도 불안합니다.”
“불안하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가?”
“구양 맹주는 무서운 사람입니다. 왠지 모르게 저는 영호 곡주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구양 맹주가 떠올랐습니다.”
“흠…….”
천인효의 미간에 깊게 골이 파였다.
지난 삼십여 년 소후천을 지켜본 그였다. 소후천은 결코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그가 잘 안다.
그런데 그런 소후천이 구양무경을 불신하듯이 말하고 있다.
“아우는 염천마곡의 일에 구양무경이 무슨 수작을 부리지 않았는지 그것이 걱정되나 보군.”
조금 전에 자신이 물은 것 때문인가?
하지만 자신은 어떤 확신이 있어서 그리 물은 것이 아니다.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의문, 단순히 그러한 마음 때문이었을 뿐.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형님, 꼭 만붕성에 가셔야만 합니까?”
소후천의 걱정스런 물음에 천인효는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염천마곡에선 제자가 스승을 죽였다. 그런데 자신의 의동생은 의형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천인효의 굳어졌던 표정이 절로 풀어졌다.
“너무 걱정 말게나. 내 아우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주의를 기울일 테니까.”
가겠다 한 이상 갈 것이다. 자신의 말을 번복치 않는 게 의형이다.
소후천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음 또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차선책을 찾아야 할 때다.
“정 가시겠다면 삼비(三秘)뿐만이 아니라 칠양객(七陽客)도 모두 데리고 가십시오.”
삼비는 회주의 비밀 호위, 칠양객은 일양회 최강의 전위 조직이다.
“칠양객까지 모두?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나?”
“천하의 염마존 영호광이 자신의 거처에서 죽었습니다, 형님. 지금 제 마음 같아선 그들뿐만이 아니라 십팔령까지 딸려 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허! 아우가 어지간히 불안한가 보군. 알겠네. 내 그들을 모두 데리고 가지. 하나 십팔령은 안 되네. 그들마저 떠나면 이곳은 무주공산이나 마찬가지야.”
소후천이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그도 십팔령까지 빠져나가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럼에도 십팔령을 운운한 것은 그만큼 불안감이 크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그의 의형은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칠양객까지는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 우선은 그거면 됐다.
일양마검 천인효에 삼비와 칠양객이면 제아무리 구양무경이라 해도 함부로 딴마음을 먹을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소후천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구양무경은 결코 그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날, 오후가 되기 전에 천인효는 삼비와 칠양객을 데리고 상주를 떠났다.
폭풍의 한가운데로.
2
이번에도 뒷일을 본다며 숲 속으로 들어갔다.
실피나가 공터의 나무에 기댄 채 졸고 있었다. 비둘기는 그녀의 발치에 뭉쳐진 채 눈만 말똥거리고 있었다.
‘저 덜떨어진 정령은 만날 자고도 졸린가 봐, 시르.’
‘그래도 시키는 일은 잘하잖아. 누구보다…….’
‘설마, 그게 나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세르탄도 잘하기야 하지. 비둘기를 못 잡아서 그렇지.’
‘누가 못 잡아? 나도 잡을 수…….’
세르탄이 빽 소리치다 말고 말꼬리를 내렸다.
진용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잡을 수 있다고?’
‘아니, 그게 아니고……. 옛날 같으면 잡을 수 있다는 말이지.’
‘세르탄.’
‘어.’
‘솔직히 말해봐. 나한테 말한다고 해서 내가 뭐라고 하겠어? 대체 숨기고 있는 것이 뭐야?’
‘내가 뭐어얼?’
‘혹시 말인데…… 이제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거 아니야?’
‘나갈 수 있으면 진작 나갔지!’
‘글쎄, 그럴 수도 있지만, 나가봐야 귀찮을 것 같으니까 안 나갈 수도 있잖아. 아니면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이 더 편해서 그럴 수도 있고.’
‘내가 미쳤어? 나갈 수 있으면 지금이라도 나간다니까?’
‘그럼 대체 뭐야? 뭔데 그렇게 숨기는 거야?’
‘숨기기는 뭘 숨겨? 나 아무것도 안 숨겼어!’
-말하기 싫을 뿐이야. 우헤헤!
‘정말이지?’
‘그래.’
‘대전사의 명예를 걸 수 있어?’
‘…무, 물론이지.’
-대전사의 명예를 언제 시르가 알아주기라도 했어? 알아주지도 않는 명예, 시르가 다 가지라구! 킬킬킬!
‘좋아, 일단 믿어주지.’
아무래도 아직은 아닌 듯했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을걸? 세르탄, 두고 보자구.
-시르, 내가 말할 줄 알고? 헹!
진용은 세르탄에 대한 추궁을 멈추고 실피나가 잡아온 비둘기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실피나가 잡아온 전서구는 네 마리였다.
의외였다. 진용이 본 전서구는 세 마리였는데 한 마리를 더 잡아온 것이다.
실피나가 눈을 뜨더니 자랑스럽게 말했다.
―세 마리를 잡아서 오는데 또 한 마리가 날아오잖아. 그래서 잡아왔어. 주인아, 나 잘했지?
“그래, 잘했어. 멍청한 마족들보단 훨씬 낫다. 가서 쉬어.”
‘시르! 비겁하게!’
진용은 일단 입 발린 칭찬을 하고는, 세르탄의 외침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전서통을 열어보았다.
역시 삼존맹의 전서와 천제성의 전서,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제삼자의 전서였다.
내용은 진용 일행이 방성을 출발했다는 것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몇 명의 고수들이 합세했다는 것. 그리고 다음 일에 대한 지시를 바란다는 것이 전부였다.
어디에고 합세한 고수들이 그들에게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의 말은 없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기운을 갈무리할 정도의 고수들. 더구나 출발하자마자 거리를 둔 것이 그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 듯했다.
진용은 조소를 머금고 나머지 한 장의 전서마저 펼쳐 보았다.
전서에 쓰인 종이는 짙은 핏빛이었다.
“억!”
전서를 펼친 진용의 입에서 갑자기 억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르, 무슨 일이야?’
처음 보는 진용의 반응에 세르탄이 급히 물었다. 하지만 진용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전서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초지급! 혈신께서 한중에 재림(再臨)하셨음!]
단 한 줄이었다. 뜻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용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에 당혹감마저 느껴졌다.
혈신의 재림? 무슨 뜻일까?
[……혈신만이 남았도다. ……혈신을 둘로 나누었다. ……혈신의 저주를 풀길 바라노라.]
왜 지하 서고에서 보았던 글귀가 생각나는 것일까?
‘혈신? 서고에서 봤던 그 이상한 책에 나온 혈신과 같은 혈신일까?’
세르탄도 기억이 나는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진용의 느낌이 말하고 있었다.
―혈신!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과 어떤 식으로든지 관계가 있다!
진용은 석 장의 전서를 전서통과 함께 가루로 만들어 흩뿌리고는 붉은 서신만 접어 품속에 넣었다.
‘아무래도 조사를 해봐야겠어.’
그때 숲 속으로 누군가가 들어오며 소리쳤다.
“고 공자, 뭐 하나?”
정광의 목소리였다. 뒤돌아보자 정광이 사도굉과 함께 잔가지들을 헤치고 공터로 들어오고 있었다.
언뜻 그들의 눈길이 바닥으로 향한다. 진용은 그제야 바닥에서 파닥거리고 있는 비둘기들이 생각났다.
‘아차, 전서구.’
정광이 고개를 들더니 진용을 흘겨보았다.
“혼자…….”
진용이 급히 말했다.
“금방 잡았습니다. 사실 혼자 먹기에는 좀 많지요?”
정광이 침을 흘리며 비둘기들을 노려보았다.
“험, 살이 통통한 걸 보니 셋이 먹으면 충분하겠군.”
그때 비둘기를 자세히 보던 사도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집에서 키우는 비둘기 같은데? 거 왜 전서구처럼 말이야.”
귀신같은 노인네.
진용이 속마음을 감추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요, 집에서 키운 비둘기는 먹지 못합니까? 그럼 버리죠 뭐.”
사도굉이 후다닥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 집에서 키운 것도 맛만 좋다네! 허허허!”
“그럼, 나도 태산에 있을 때 벽하사에서 많이 잡아먹어 봤지. 하.하.하!”
3
백리성이 고개를 들어서 적유를 바라보았다.
“그들을 찾았다면서?”
“예, 성주. 겨우 찾긴 했습니다만 별다른 소식은 전해오지 않고 있습니다.”
적유의 대답에 백리성이 곤혹한 표정을 지었다.
“흠, 이상하군. 너무 조용해. 우리의 이목을 따돌린 이유야 짐작이 가지만, 조용히 웅크리고 있을 이유는 없잖은가.”
“뭘 하려 해도 그들만으로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정천무맹에 힘을 보탤 수도 있겠지.”
“그리한다면 분명 적잖은 위협이 될 것입니다. 하나 문제는 그가 관리라는 것입니다. 정천무맹의 원로들이 좋아할 리 없지요. 게다가 정천무맹의 주적은 천혈교지 우리가 아닙니다. 어찌 보면 차라리 그리되는 것도 저희에겐 해될 게 없는 일이지요.”
“그럼 그냥 두고 보자는 건가?”
“지금으로선 그게 나을 거라 생각됩니다. 차라리 그보다는 삼존맹에 신경을 써야 할 때 같습니다.”
“삼존맹이라……. 영호광의 죽음에 대해 더 밝혀진 것은 없는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구양무경이 관여한 것 같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성주.”
“구양무경이? 으음, 충분히 가능한 말이군. 그게 사실일 경우 우리에게 미칠 영향은?”
적유가 미간을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좋지는 않습니다. 신임 곡주인 사중광은 구양무경의 뜻을 거스를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구양무경을 형제처럼 따르는 자이지요. 그렇다면 셋이었던 삼존맹의 머리가 둘로 되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으으음.”
침음을 흘리는 백리성을 보며 적유가 마저 말을 이었다.
“만일 천인효마저 구양무경을 따른다면, 강호에 몸통은 세 개인데 머리가 하나인 거룡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천인효가 구양무경을 따른다?”
백리성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는 자존심이 강한 자야. 동료는 될지언정 수하는 되지 않을 자지.”
절대자가 하나인 삼존맹.
그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삼존맹이 셋으로 갈려 있었기에 천제성이 단일 방파로는 천하제일이었다.
그러나 삼존맹이 하나로 합쳐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실 누가 천하제일방파냐 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진짜 큰 문제는 합쳐진 삼존맹이 어떤 길을 가는가 하는 것이다.
그 향방에 따라 천하가 출렁일 것이 분명한 만큼 그들의 입김은 더욱 세질 것이고, 강호는 그들의 뜻을 거스르려 하지 않을 테니까.
한마디로 삼존맹이 천제성을 적대시하면, 그동안 천제성을 따르던 강호의 방파 중 많은 수가 그들의 뜻에 따라 천제성에 거꾸로 검을 들이댄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구양무경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천혈교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지. 선봉에 백검전과 위지홍을 내세워. 천제령의 명이라면 감히 거부할 수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