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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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77화
177화
진용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갈의인이 고개를 돌린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상대, 진용에게 경악한 표정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저 젊은이는 누군가? 천결(天決)의 도를 완성해 천하에 적수가 열 이상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거늘……. 더구나 곁에 있는 자들도 모두가 진정한 고수들이 아닌가?’
* * *
제갈민이 돌아온 것은 반 시진이 지나서였다.
그는 진용의 옆에 앉더니 나직이 입을 열었다.
“네 명 정도로 압축해 봤습니다. 지나가듯이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들어도 봤습니다. 일단 제가 보기로는 상당히 마음이 곧은 사람들입니다. 개중에는 조금 외고집적인 성격도 있습니다만,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닌 듯 보였습니다. 그래도 제 말을 들어주었으니까요.”
제갈민이 말한 네 사람은 모두가 대문파와는 관계가 없는 자들이었다.
한 사람이 문파에 속해 있었지만, 이미 잊힌 문파였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의 문파를 새롭게 세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제갈민이 그들을 시선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다.
먼저 동쪽에 있는 자를 바라보았다.
“저쪽의 소우상은 광동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전검(戰劍)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서른 중반으로 개중에 가장 젊은 자인데, 무공은 족히 절정에 달했다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시선을 약간 오른쪽으로 틀었다.
“저기 풀밭에서 세 사람과 함께 앉아 있는 자는 반천수(搬天手) 적수운입니다. 사천 사람으로, 한때 사천칠웅에 이름을 올렸던 자입니다. 부상을 입고 근 오 년간 강호를 떠나 있었는데, 마침 강서 남창에 들렀다 소문을 듣고 왔다 합니다.”
시선이 좌측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저기 바위 밑에 앉아 있는 중년인은 백유현이라는 자입니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호남 장사 신룡문의 당대 문주입니다.”
그자는 서너 사람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웃는 모습이 무척 유해서 마치 학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진용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도 제갈민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성격이 진중한 데다 생각이 깊어 보여서 사람은 딱 마음에 드는데, 무공 수준이 종잡기 힘듭니다. 엄청 강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약하지는 않은 자입니다. 딱히 문파에 속하지 않은 사람 중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 세 사람을 따르고 있습니다.”
잠깐 말을 멈춘 제갈민이 턱짓을 하며 독고무종을 가리켰다.
“마지막으로 저잡니다. 독고라는 성을 쓰는 자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는 자입니다. 무공 수준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용이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의 무공은 십천존에 못지않습니다.’라고 말하면 제갈민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이름은 독고무종입니다.”
진용이 그의 이름을 말하자 제갈민이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조금 전에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정광과 율천기, 포은상마저 관심이 있는 듯 고개를 돌려 독고무종을 쳐다보았다.
세 사람의 눈이 기이하게 빛났다.
‘한 번 부딪쳐 보고 싶은 자군’ 그런 눈빛이었다.
“일단 저 사람은 제외하고 제갈 총관이 나머지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그리고 마음이 있다고 하면 저에게 데려오세요.”
고가장의 총관, 제갈민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장주.”
날이 어두워지자 여기저기 모닥불이 피워졌다.
하나둘 피어오른 모닥불이 수십 곳에서 동시에 피어오르자 초원 위가 환하게 밝아졌다.
진용 일행도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았다.
둘러앉은 사람은 모두 아홉 명이었다. 진용 일행이 다섯, 그리고 제갈민이 데려온 세 사람.
독고무종은 모닥불 곁으로 사람들이 모이자 스스로 알아서 다가왔다.
그가 털썩 자리에 앉자 진용의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그어졌다.
“웬일이십니까?”
“자네가 불렀지 않은가?”
“제가요? 언제 말입니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하지 않았나?”
툭툭 쏘는 듯한 말에 진용이 조용히 웃었다. 그때 율천기가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더하군.”
독고무종이 고개를 돌려 율천기를 쳐다보았다.
율천기가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언제 한번 손을 나눠보지 않겠나?”
갑작스런 율천기의 말에 독고무종의 입술이 가늘게 늘어났다.
“쉽지 않을 거요.”
“그건 나도 아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야.”
두 사람의 대화에 서서히 날이 서는 듯하자 진용이 끼어들었다.
“나중에, 천혈교의 일이 끝나고 하시죠.”
율천기가 한 번 더 독고무종을 바라보고는 모닥불로 시선을 돌렸다.
“아쉽지만, 고 공자가 그리 말하니 어쩔 수 없군.”
독고무종의 눈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이름을 알지는 못하지만 율천기는 고수다. 중원에 들어와 처음 만나본 진정한 고수.
그런 율천기가 서생의 말 한마디에 뜻을 접는다?
‘정말 사람 궁금하게 만드는 서생이군.’
독고무종이 곤혹한 눈빛으로 진용을 바라볼 때다.
타닥, 탁!
모닥불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불꽃이 튀었다.
답답한지 적수운이 제갈민에게 물었다.
“우리를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네만.”
소우상과 백유현도 제갈민을 바라보았다.
제갈민의 눈이 진용을 향했다. 진용이 먼저 이름을 밝히며 입을 열었다.
“저는 고진용이라 합니다. 세 분께선 천혈교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적수운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중요하죠. 적 대협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니까요.”
“내 목숨이 달렸다고?”
불쾌감이 가득한 목소리다.
“적 대협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의 목숨이 달려 있다면 이해하시겠습니까?”
“천혈교가 강할 거라는 것 정도는 나도 짐작하고 있는 바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탕마단과 천제성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네만.”
“그리 생각할 것 같아서 부른 것입니다.”
“나는 백유현이라 하네.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자세한 것을 듣고 싶군.”
백유현이 끼어들자 진용이 말했다.
“조금 수상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맹주님과 원로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만,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더군요. 해서 나름대로 대책을 세워보려는 겁니다.”
“수상한 정보? 심각하게 생각지 않는다? 맹주님이나 원로들이 그리 생각했다면 따라야 하지 않겠나?”
바로 이어서 적수운이 말했다.
“자네가 젊어서 그리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나? 솔직히 맹주나 원로가 젊은 자네의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겠나?”
소우상과 백유현도 그의 말에 동조하는 표정이었다.
하긴 진용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한 누구든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진용은 구구절절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율천기나 포은상은 물론이고 정광조차도 입을 다문 채 쳐다보기만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지 않던가? 입 아프게 떠들 이유가 없었다.
“만일 제 생각이 맞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백유현은 제갈민의 말대로 조용하면서도 생각이 깊은 자인 듯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단 그 정보가 뭔지 알고 싶군.”
진용은 아침에 제갈민과 나눈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이야기했다.
백유현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기관이 설치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정말 그들이 기관을 설치했을 시, 그 정도의 준비를 해서 만들었다면 적어도 수백 명이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겁니다.”
“개파대전을 열겠다는 자들이 정말로 기관을 작동시키는 그런 미친 짓을 할 거라 생각하나?”
“자신들이 죽게 생겼으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으음, 그러니까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니 함께 대처하자 이 말이군.”
백유현이 신음 소리처럼 나직이 말했다.
“그깟 함정으로 탕마단과 천제성의 힘을 막을 수 있겠소?”
소우상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별걱정 다 한다는 투였다.
참지 못하겠는지 결국 정광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지 뭔 말들이 이렇게 많아?’ 꼭 그런 표정으로.
“천제성 놈들은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고, 탕마단은 이전투구로 힘이 분산되어 있소. 솔직히 나는 그들이 급박한 상황이 되면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지 믿을 수 없소.”
백유현의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그럼 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단 말이오? 천제성도 탕마단도 못하는 것을?”
진용이 나직하면서도 힘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완벽한 대처는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할 말은 다 했다. 이제 결정은 본인들이 각자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다.
진용은 입을 닫고 세 사람의 대답을 기다렸다.
모닥불이 약해지자 제갈민이 몇 개의 나무를 던져 넣었다. 꺼져 가는 듯하던 불길이 다시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정광은 ‘저 불길에 고기를 구워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를 생각하며 군침을 흘리고, 율천기와 포은상은 독고무종과 무언의 신경전을 벌이더니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독고무종이 예상했던 것보다 강함을 인식한 것이다.
그사이 진용은 커져 가는 붉은 불길을 보며 한 가지 의문점을 떠올렸다.
‘구양한이 말한 그는 누구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보에 없는 자였다. 그런 자가 구양한을 단숨에 죽음 직전까지 내몰았다. 홍양마검을 일패도지시킨 구양한을.
최소한 십천존에 필적하는 자라는 말이다.
게다가 그가 나타난 곳은 동백산. 진용은 왠지 그자에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덩치가 크다 했으니 아버지는 아닌 것 같은데…….’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던 세 사람이 진용을 바라본 것은 근 반 각이 지나서였다. 백유현이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 세 사람만의 일이라면 쉽게 가부를 결정할 수 있는 일이네만, 어쩌다 보니 우리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신중할 수밖에 없었네. 어쨌든 결론은, 좋은 뜻으로 힘을 합하자는 것이니 함께하겠다는 거네. 우선 함께할 분들에 대해 알았으면 싶군.”
정광이 맨 먼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태산의 정광이오.”
이어서 율천기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율천기라 하오.”
“포은상이오.”
포은상마저 이름을 밝히자, 잠시 기억을 더듬던 세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 십은(十隱)이라 불리시는, 벽월과…… 북천산인……?”
율천기와 포은상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무종은 십은이라는 말에 허리춤의 도병을 쓰다듬었다. 비록 개별적인 이름은 모르지만 ‘십은’이라는 말은 들어본 것이다.
‘좋군, 좋아. 진짜 적수다운 적수를 만났어!’
세 사람은 완전히 달라진 자세로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들 일행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독고무종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진용 일행에게 달라붙었다.
“혼자 다니니 심심하더군.”
그런 이유를 대고서.
진용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은 겁니까?”
“내가 원래 조용한 사람이라서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거든.”
글쎄, 과연 정말로 그런 이유 때문일까?
진용은 속으로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편히 이야기들 나누고 계십시오. 저는 잠시 위지 단주를 만나고 오겠습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제갈민이 진용을 따라 후다닥 일어섰다. 그러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았다.
꼭 호랑이 떼 사이에 낀 여우 같은 기분이랄까?
그러자 남은 사람은 넷.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네 쌍의 눈이 참았던 불길을 뿜어냈다. 금방이라도 도검을 빼 들고 한판 붙을 것 같은 표정들.
“정말 좋은 밤이군. 안 그런가?”
율천기가 하얗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정말.”
“내일이 기대되는군.”
나머지 세 사람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