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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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76화
176화
3
진용은 정광과 율천기, 포은상만 데리고 정천무맹 탕마단과 동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유태청이 지휘하기로 했다.
정광을 포함시킨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변수가 생겼을 경우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풍혼을 익힌 정광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광은 기고만장해서 사도굉을 놀려댔다.
“음하하! 내가 말이오, 남경을 칠 일 만에 다녀온 사람이라오. 만일 중간에 벌어진 일만 없었다면 닷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오. 도우는 그렇게 할 수 있겠소? 그러니 너무 섭하게 생각지 마시구려.”
수경산장에서 동백산까지는 삼백 리 길.
정오가 지나자 제갈민이 탕마단의 출발 시각을 알려왔다.
“점심 식사가 끝나면 출발한다 합니다.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천제성에서는 한 시진 전에 출발했다 합니다.”
한 시진 먼저 가나 두 시진 먼저 가나 차이가 있을 것은 없었다. 어차피 초청 날짜는 내일이니까.
그런데도 탕마단에서는 천제성의 출발에 은근히 신경을 썼다.
호승심 때문이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똥개도 안 물어갈 호승심 때문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삼 단 중 한 곳을 택해 함께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만.”
제갈민이 물었다.
“삼단과 함께 가기로 하죠.”
진용은 일단 일반 중소문파와 자원한 무사들이 모여 있는 제삼단에 편입되어 따라가기로 했다.
구파오가의 무사들과 함께 가기에는 껄끄러운 면이 많았다.
첫째는 견제하는 듯한 원로들의 눈빛이 은근히 신경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유태청이 왜 탕마단에 합류하지 않으려 했는지 실감날 정도였다.
그리고 둘째 이유는 귀찮아서였다. 구파오가의 제자들이나 장로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떠보듯이 기세를 쏘아내는데 일일이 상대할 수도 없는 일이지 않은가.
더구나 화인화가 진용을 위해 요리를 직접 해줬다는 소문이 돌면서, 오룡의 눈빛은 먹잇감을 놓고 사투를 벌이는 늑대의 눈빛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느니 차라리 세르탄의 잔소리를 하루 종일 듣는 것이 나았다.
제갈민도 제갈세가의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진용의 생각에 적극 찬성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리고 제가 살펴봤습니다만, 삼단에 의외로 대단한 고수들이 몇 있습니다. 그들을 끌어들인다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갈민의 눈썰미는 이미 정무관에서부터 인정한 터였다. 얼굴 한두 번 보고 수백 명을 기억한다는 것은 결코 머리만 좋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 분석력 또한 뛰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제갈민이 대단하다고 평한 사람. 진용은 호기심이 생겼다.
“제갈 형은 그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모아보세요. 지금은 무조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 강한 사람보다 말입니다. 바로 제갈 형처럼.”
진용이 장난처럼 말하며 싱긋 웃었다.
제갈민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감격이었다.
“알겠습니다. 저… 그리고 앞으로는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십시오. 속하가 불편합니다, 주군.”
마지막 한마디에 정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군? 언제부터?”
율천기와 포은상도 진용과 제갈민을 번갈아 힐끔거렸다.
진용이 머쓱한 얼굴로 웃자 제갈민이 어깨를 떡 펴고 말했다.
“마음은 오래전부터, 몸은 오늘 아침부텁니다!”
‘음, 조심해야 할 놈이군.’
정광은 긴장했다. 두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말솜씨가 뛰어난 놈이었다. 머리는 말할 것도 없고.
그때 진용이 말했다.
“그렇다고 당장 이름으로 부르기는 그렇군요. 이렇게 하죠. 앞으로 제갈 형이 총관을 맡으세요. 제가 고가장의 장주니까 고가장의 총관, 어떻습니까?”
일단 삼단과 함께하기로 결정되자 진용은 제갈민을 석장진에게 보냈다.
그에게 먼저 양해를 구해놓는 게 나을 듯했다. 다른 대에 속한 사람을 마음대로 끌어들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석장진은 그러잖아도 원로들과의 일로 인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터라 반대하지 않았다.
4
정천무맹의 주력은 장로급 고수 오십여 명으로 이루어진 정천무원과 탕마단으로 나누어졌다.
탕마단도 삼단으로 나누고, 일단과 이단은 대(隊)당 일백 명씩 삼 대로 분리해서 새롭게 구성했다. 그리고 다시 일 대는 삼십여 명씩 삼 조(三組)로 나누었다.
삼단만 인원이 많은 관계로 사 대 사 조로 나뉘었다.
진용 일행은 삼단의 사대 사조를 청해 배정받았다.
탕마단의 수뇌부는 별 이견 없이 진용의 청을 순순히 받아주었다.
일단과 이단의 단주들로선 진용 일행이 껄끄러운 마당에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제갈민은 그들의 말을 듣고 혀를 찼다.
‘구명줄을 저버린 멍청이들.’이라 생각하면서.
정천무맹은 탕마단이 새롭게 정립되자 각기 다른 색으로 된 띠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모두 팔에 차시오! 구별을 하기 위함이니 같은 편의 칼을 맞기 싫거든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외다!”
진용 일행이 건네받은 파란색 띠에는 삼사사(三四四)라는 숫자가 짙은 먹물로 쓰여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하루 이틀 땀에 절어도 지워지지 않을 듯했다.
단별로 오 리 정도의 거리를 둔 채, 탕마 일단이 앞장서고 정천무원이 그 뒤를 따랐다.
탕마 제삼단은 맨 뒤로 처져 따라갔다. 숫자가 가장 많은 만큼 그 줄도 길었다. 멀리서 보면 뱀이 꼬리를 물고 대지를 가르는 것 같아서 가히 장관이었다.
삼단의 단주는 철검대협 위지강이었다. 천하십검 중의 한 사람인 위지강은 오십대 초반으로 섬서 위지 가문의 주인이었다.
오대세가를 위협할 정도로 세력이 커진 네 개의 가문을 사람들은 신주사가(新州四家)라 불렀다.
특히 위지 가문은 신주사가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가문으로 머지않아 육대세가로 불릴 거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진용은 위지강을 보고 신주사가라는 이름을 새롭게 인식했다.
“기상이 대단한 사람이군요. 위지가의 무사들도 모두 괜찮아 보이는데요?”
“신주사가는 근 백 년 사이에 일어난 가문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섬서의 위지 가문은 본래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가문이었는데, 이십 년 전부터 급격히 컸습니다. 삼십대의 위지강 대협이 가주로 취임하면서부터였지요. 벌써부터 십천존의 뒤를 이을 사람이라는 소문이 돌 정돕니다.”
제갈민이 조용히 위지강에 대해 설명을 했다.
진용도 제갈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위지강의 무공은 이미 절정의 끝에 다다른 듯 느껴졌다. 인품 또한 괜찮아 보였다. 삼단의 나이 먹은 노고수들이 군말없이 따르는 것만 봐도 그가 강호에서 어떤 평판을 받는지 알 듯했다.
굳이 단점을 꼽으라면 자신감이 지나치다는 것, 그 정도였다.
5
석양이 지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석양의 끝물이 왠지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시각. 회하(淮河)의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던 중 강가에 넓은 초지가 나오자 행군이 멈췄다.
동백산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백여 리.
멈춰 선 사람들의 옆으로는 붉게 물든 회하가 굽이치며 탕마단이 지나온 길을 따라 흐른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내일 새벽에 출발하겠소! 모두 편히 쉬시오! 단,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너무 멀리 이탈해선 안 되오!”
삼단의 삼대주인 월혼장(月魂掌) 종리군이 삼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제갈민의 말에 따르면, 그는 신주사가 중 하나인 산서 종리가의 사람이라 했다. 가주인 종리청의 바로 아래 동생으로, 산서에서 내로라하는 장법의 고수로 알려졌다 했다.
하지만 그는 제갈민이 말한 ‘대단한 고수’ 중에는 들지 못했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대문파에 속한 자는 일단 제외했기 때문이다.
진용은 초지 위 듬성듬성 놓인 바위 중 하나를 골라 등을 기대고 앉았다. 정광과 율천기, 포은상 등이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제갈민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진용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천천히 주위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으는 중이었다. 그가 돌아올 때쯤이면 진용은 알지 못했던 몇 명의 강호고수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새삼 제갈민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진용은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일천 수백 명이 모두에게 지급된 건량이 든 주머니였다.
그는 마른 육포를 씹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득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진용은 느낌의 주인을 찾아 고개를 돌려보았다.
주위에 수십 명이 있는데도 진용의 시선은 곧장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십여 장 정도 떨어진 곳의 바위에 기대앉아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느낌은 그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삼십대? 아니면 사십대?
나이를 짐작키 힘들었다.
입은 옷은 평범한 갈의.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행색이었다. 옆구리에 대충 끼워져 있는, 폭이 좁은 도신이 완만하게 휘어진 기형도 한 자루만이 조금 특이할 뿐.
마침 그가 고개를 돌린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진용은 그의 눈에 떠오른 이채를 놓치지 않았다.
‘나의 눈길을 알아챈 건가?’
한줄기 전음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왜 나를 보는 건가?>
전음은 일류 이상의 고수면 대부분이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전음에도 격이 있다. 단순히 소리 나지 않게 말을 하며 그 울림을 진기에 실어 보내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진기 자체에 진동을 줘 귀에 직접 전달하는 방법도 있다.
전자는 입술을 직접 달싹여야 하고, 후자는 입술의 떨림이 없이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런데 갈의인의 전음은 둘 중 어느 것과도 달랐다.
그는 아예 아무런 진기의 파동도 없이, 마치 직접 머릿속에 새겨 넣듯이 전음을 구사하고 있었다. 육합전성(六合傳聲)이나 소림의 혜광심어(慧光心語)처럼.
절정의 고수라 해도 할 수 있을까 싶은 전음이었다.
<뉘신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진용도 비슷한 방식으로 전음을 보냈다.
갈의인의 눈에 어린 이채가 더욱 짙어졌다.
<먼저 밝히는 것이 예의 아닌가? 서생의 옷을 입을 걸 보니 그 정도는 알 것 같은데 말이야.>
<고진용이라 합니다.>
<나는 독고무종이라 하네. 아직 처음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것 같네만.>
몇 마디 말을 나누는 사이, 진용은 자신이 느꼈던 그 느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진용이 말했다.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이 이곳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순간 눈매가 가늘게 좁혀진 갈의인의 입술이 길게 늘어졌다.
진용은 그가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훗! 대단하군. 어떻게 알았나?>
<제가 남보다 감이 좀 예민하거든요.>
<흠, 언제 그 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싶군.>
<저도 조금 전에 대협이 행한 자연스럽게 사람을 밀어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그리 쓸모있는 재주는 아니네.>
<저에게는 쓸모가 많을 것 같습니다. 요즘 귀찮은 일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흠,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
그 말을 끝으로 갈의인의 고개가 돌아가며 묘한 대화가 끝이 났다.
그러나 진용은 쉽게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저자, 절대지경의 고수다. 결코 십천존에 뒤지는 자가 아니야.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