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74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74화
174화
대처할 틈도 없이 심장에 꽂혀 버린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당연히 남자를 말하는 것은 아닐 터. 진용은 반쯤 굳어버린 몸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파란 하늘이 흐릿해 보였다.
“예.”
짧은 대답에 화인화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름다운 분일 것 같아요.”
“예. 특히 눈이…….”
죄없는 질경이 꽃대만 계속 화인화의 발길에 녹초가 되도록 얻어맞았다. 흰색 꽃가루가 분분히 날렸다.
“어느 분인지 보고 싶어요.”
“…….”
“이름이 뭐예요? 지금 어디 계세요?”
“…….”
“피이… 알려주면 어디 덧나요?”
“초연향이라고 합니다. 어디에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진용의 말이 아련히 떨려 나왔다.
“예?”
“얼마 전에 실종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릅니다. 지금 어디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달려갔어야 했는데…… 제가 멍청해서 그러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이 끝나는 대로 찾으러 갈 생각입니다.”
화인화가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멍하니 진용을 바라보고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미안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뇨. 화 낭자가 미안해하실 것은 없습니다.”
“어쩌다가…….”
“죄송합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들려 드리겠습니다.”
그 후로 한동안 말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실바람도 침묵이 거북스러웠는지 슬며시 두 사람을 돌아갔다.
햇살이 솜뭉치 같은 뭉게구름에 파묻혀 바둥거리고, 화인하의 발길질에 녹초가 된 질경이 꽃대가 힘에 겨워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다.
화인화가 졸고 있는 질경이 꽃대를 마지막으로 확 후려차고 벌떡 일어섰다.
“가요! 제가 맛있는 거 만들어 드릴게요.”
“예?”
“저 이래 봬도 음식 잘 만들어요. 봉황곡의 숙수들도 몇 가지 음식은 저에게 배울 정도라구요.”
화인화가 환하게 웃으며 앞장섰다.
진용은 힐끔 화인화가 앉아 있던 바위 밑을 바라보았다.
만신창이가 된 질경이 꽃대가 비틀거리며 악착같이 일어서고 있었다.
조용히 웃음을 머금은 진용은 화인화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래, 연향도 저렇게 살아났을 거야, 분명히!’
꼭 그래야만 한다. 아니면…… 정말로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3
날이 밝았다. 이제 하루가 남았다.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심지어 수경산장의 사람들조차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탕마단의 무인들처럼 얼굴이 굳어 있었다.
진용이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 뜻이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아침을 먹고 일행들과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긴장을 풀고 있는데 제갈민이 달려왔다.
“조금 전에 천혈교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천혈교가 그동안 비밀에 가려져 있던 총단의 위치를 밝혔다고 합니다.”
사도굉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총단?”
“그동안 몇 곳이 총단일지 모른다는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총단이 어딘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개방과 밀은각의 모든 요원들을 동원하고도 찾지 못했었지요.”
“어딘데?”
정광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제갈민이 한숨 쉬듯이 대답했다.
“동백산(桐柏山)입니다.”
“동.백.산? 그렇게 멀어?”
“그래서 지금까지 헛물만 켰던 것 같습니다. 천혈교가 초청장을 보낼 때 신양에 오면 안내할 사람이 있을 거라 해서, 초청장을 받은 모두가 천혈교 총단이 신양 인근에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분명 그리 생각했다. 천제성이나 정천무맹조차 그렇게 생각하고 신양 인근 백 리 이내만 샅샅이 뒤졌을 정도니까.
“으음, 치밀한 계산이 동반된 속임수였군요.”
진용이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정광이 고개를 흔들며 당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치밀한 건데?”
“초청장을 보내고 석 달입니다. 석 달간 천하를 다 뒤질 수는 없는 일이죠. 커다란 장원일 수도 있고, 계곡일 수도 있고, 현존하는 대문파일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의심되는 곳 주위부터 수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그사이 그들은 느긋하게 때가 오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가끔씩 수색 중인 무사들을 죽여 판단을 흐려놓고 말입니다.”
진용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남의 상계에서 별다른 정보가 들어오지 않을 때 조금은 의심해 봤어야 했는데… 제가 멍청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그들은 하남이 아니라 호북에서 모든 물자를 조달했을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하남의 물자 흐름만 조사했으니…….”
그때 정광이 눈을 뻐끔거리며 내뱉듯이 말했다.
“그렇게 치밀하게 준비해서 뭐 하려고? 그렇다고 날 싸움이 안 나나?”
순간 진용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느닷없는 변화에 말을 한 정광이 입을 뻐끔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왜… 왜 그러는가?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아뇨! 제가 미처 잊고 있었습니다. 멍청하기는!”
사람들이 정광과 마찬가지의 표정으로 진용을 응시했다.
진용이 벌떡 일어섰다.
“제갈 형, 가셔서 맹주님께 뵙잖다고 전해주십시오!”
의외였는지 제갈민이 고개를 번쩍 쳐들고 물었다.
“무슨 걱정되는 바라도 있으십니까?”
“일 년 전 당하(唐河)의 석산 하나가 통째로 무너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생존자도 거의 없이 모두가 무너진 석산에 깔린 채 실종되었다더군요.”
그게 어떻다고?
사람들이 의문의 눈길을 던졌다. 진용이 말을 이었다.
“최근 단기간에 상상을 초월한 자금이 구룡상방과 천화상단을 통해 천혈교로 흘러들어간 것은 아시지요?”
듣다 말고 제갈민이 굳은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실종된 석공들, 상상을 초월한 자금, 비밀 유지. 설마 기관?”
“지금은 어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즉시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갈민이 나가자 진용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전신을 엄습했다.
‘시르, 너무 긴장하지 마. 시르는 죽지 않을 테니까.’
‘나 때문이 아니야. 만일 내 생각이 맞다면 많은 사람이 죽을 거야.’
‘그거야 어쩔 수 없지 뭐.’
세르탄이 역시나 마족답게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러나 진용은 마족이 아니었다. 죄없는 사람들이 죽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제갈민이 돌아왔다.
“맹주님께서 모셔오라 하십니다.”
4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이제 불만 밝히면 됩니다, 태상!”
“교주는?”
“아직 대법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음… 너무 오래 걸리는군.”
“늦어도 내일 아침이면 끝날 것입니다. 너무 심려 마시지요.”
“역사적인 날이다. 교주의 위엄이 살아야 교도들이 죽음으로써 교주를 받들 것이야.”
“이미 일천 천혈교도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만이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고개를 든 공야무릉의 눈에서 활화산이 일렁였다.
“그날이, 이제 내일이군. 후후후흐흐흐…….”
그런 공야무릉을 바라보는 야율립의 노안에서도 미미한 혈광이 넘실거렸다.
‘그렇소이다. 내일, 신혈의 세상이 도래할 것이외다.’
그 시각, 천혈교의 지하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던 괴인이 고개를 들었다.
괴인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 잡혀 들어왔다.
본래 천혈교도들은 괴인을 발견하자마자 죽이려 했다. 하지만 죽일 수가 없었다. 괴인의 몸은 도검이 통하지 않았고, 손은 도검보다도 무서웠다.
결국 나중에 소식을 듣고 합류한 장로 셋아 나서서야 괴인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괴인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괴인을 잡은 사람은 야율립이었다.
뒤늦게 나타난 야율립은 경악한 표정으로 괴인을 빤히 바라보더니, 유령대법을 펼쳐서 그의 정신을 흐트러뜨린 후, 괴인의 혈을 제압했다. 그러고는 수하들에게 지하 뇌옥의 독방에 가두도록 명령했다. 이지를 조종해서 천혈교의 전사로 쓰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반대하는 사람이 몇 명 있긴 했지만 이미 그의 가공할 파괴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야율립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들의 뜻대로 이용할 수 있는 절대고수가 한 명 생길 테고, 그만큼 자신들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게 분명했으니까.
그게 사흘 전의 일이었다.
괴인은 눈을 뜨고는 음울한 웃음을 흘렸다.
“우흐흐흐, 내 반쪽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봐…… 나를 부르고 있잖아?”
괴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괴이한 일이었다. 야율립이 제압한 혈이 풀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괴인은 아무런 제약도 없이 일어서더니 굵은 쇠창살로 된 뇌옥의 문을 잡아당겼다. 뇌옥의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뚜벅, 뚜벅.
괴인은 천천히 걸어서 뇌옥 안에서 사라졌다.
얼마 후 한 사람이 들어섰다. 괴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한 몸집과 행색을 한 자였다.
그는 뇌옥 안으로 들어가더니 손을 바깥으로 빼서 팔뚝만 한 굵기의 쇠로 된 자물통을 잠가 버렸다. 그러고는 열쇠를 우그러뜨려 한쪽 구석의 석벽을 파서 만든 대변 통 속에 던져 버렸다.
5장. 동백산으로
1
맹주의 집무실에는 근 스무 명에 달하는 원로들이 기다란 탁자를 가운데 두고 양편으로 앉아 있었다.
구파오가의 대표들과 강호의 명숙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진용이 들어가자 그들이 일제히 진용을 쳐다보았다.
개중에는 진용을 직접 본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말로만 들은 사람들이었다.
진용은 탁자의 끝자리, 맨 상석에 앉아 있는 남궁창훈을 바라보았다. 남궁창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시오. 급한 일이라고 해서 회의 중에 불렀소.”
맹주인 남궁창훈이 존대를 하자 사연을 모르는 몇몇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남궁창훈이 간단하게 진용을 소개했다.
“고진용 공자요. 아마 들어본 분도 있을 것이오만, 최근에 천뢰서생이라는 별호를 얻은 공자외다. 그리고…….”
남궁창훈이 말을 이어가려 하자 진용이 재빨리 전음을 보냈다.
<맹주님, 제 지위는 당분간 밝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칫 위화감만 생겨 움직이는 데 지장이 있을 수가 있으니까요.>
남궁창훈도 이해했는지 어물쩡 다른 말을 꺼냈다.
“…십절검존께서 아끼시는 공자외다.”
그 말만으로도 반수 가까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공자가 십절검존 유 노사와 함께 다닌다는 그 공자란 말이오?”
무당의 영진 도장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놀란 표정을 지었을 뿐 조금은 얕보는 눈빛이었다.
하긴 그만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이 그랬다. 오직 소림의 요양만이 진용을 보며 조용히 웃을 뿐.
화산의 우명자가 탄식하듯이 말했다.
“허, 십절검존께서 동행을 허락했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실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겠소. 정말 젊은 사람이 대단하구려.”
역시 진정이 깃들지 않은 말이었다.
진용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포권을 취했다.
“고진용이라 합니다. 잠시 맹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 들렀습니다.”
“그래,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원로들만 계시는 자리니 걱정 말고 어서 얘기해 보게.”
당상명이 길게 찢어진 눈으로 진용을 흘겨보며 말을 재촉했다.
진용은 맹주의 집무실에 들어온 지 일각은커녕 반의 반 각도 되지 않아서 남궁창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해서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 뭐하다면, 그들의 총단에 대해 자세한 정보가 있기 전까지 초청에 응하는 것을 미루었으면…….”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종남의 정호 진인이 탁자를 가볍게 내려쳤다.
탕!
“어허! 이미 결정된 사항일세. 그런 사소한 정보 때문에 우리가 물러선다면 강호의 동도들이 얼마나 웃을 것인가?”
정호 진인이 눈을 부라리자 공동의 명운자가 손을 저었다.
“정호 도우, 아직 젊다 보니 생각이 앞서서 그런 것이 아니겠소. 너무 뭐라 하지 마시구려. 그러다 유 노사께서 화내시겠소이다. 허허허.”
정보가 사소한 것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웃음거리가 될 게 무서워 제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겠다는 말인가?
진용의 표정이 굳어졌다.
생각 같아서는 마안을 이용해서라도 정호 진인의 마음을 거꾸로 돌려놓고 싶었다.
한두 사람의 마음만 돌려서 일이 제대로 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보아하니 상황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열 명이 넘는 사람의 마음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마안이 완벽한 것도 아니었다.
‘케케케. 시르, 그냥 놔둬. 죽고 싶어 환장한 인간들인데 뭐 하러 신경 써.’
정말 세르탄의 말대로 놔둘까 하는 마음까지 든다.
그때 요양이 나섰다.
“일단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소이다.”
그 말에 대여섯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남궁창훈의 옆에 앉아 있던 청의장삼노인이 나직이, 그러면서 무게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소이다. 하나 일개 마도방파의 뒷수작을 두려워할 거라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나선 것이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