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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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72화
172화
4장. 수경산장
1
수경산장에 대한 첫 느낌은 일단 거대하다는 것이었다.
웅천산장을 본 진용이나 정광조차 눈을 휘둥그렇게 뜰 정도였다.
신양제일갑부, 하남제일장. 객잔의 점소이에게 물었을 때 들어본 말이지만 솔직히 실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점소이의 말은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다.
수경산장은 야트막한 야산 세 개를 통째로 가산으로 사용할 정도로 거대한 장원이었다. 그런데도 천혈교가 건드리지 않고 놔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신양성의 성주가 수경산장 장주 나성득의 형이었고, 황궁의 병부상서가 장주의 동생이었으며, 그 형제들이 황궁의 요직과 관문에 두루두루 퍼져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소림이 암중으로 막대한 무력을 지원해 주고 있었다.
아무리 삼왕을 포섭할 정도의 천혈교일지라도, 힘을 갖추기도 전에 벌집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삼왕이 반역에 성공했다면 몰라도.
그런 수경산장의 정문으로 일행이 걸어가자 이십대의 도인 두 명이 다가왔다.
“무량수불, 도우들께선 어떻게 오신 것인지요?”
도인들의 어깨 너머로 삐죽이 튀어나온 검병이 보였다. 검병의 흔들거리는 수실 사이로 보이는 송문(松紋). 무당의 제자들이었다.
같은 도사라고 정광이 나섰다.
“빈도는 태산의 정광이라 하네. 어느 산에 계신 분들이신가?”
무당의 제자들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그중 키가 큰 도인이 입을 열었다.
“무당의 청오라 합니다. 하온데 무슨 일로…….”
“무당? 무당에서 여기는 어쩐 일이신가?”
그야말로 듣는 사람이 답답해할 말을 정광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듣던 청오도 답답한지 자신의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는 무당의 제자들로 탕마단에 속해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아! 탕마단. 험, 우리도 탕마단을 찾아왔네.”
진용은 정광이 나서자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최대한 얌전히 행동하겠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숨을 세 번 쉬기도 전에 후회스런 감정이 밀려들었다. 다행히 사도굉이 나서서 어지러워지기 전의 사태를 수습했다.
“이보게, 무당의 제자라 했나?”
이번에는 키 작은 도인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빈도는 청은이라 합니다.”
“우리는 맹주님을 만나러 왔네. 허허허, 안내해 주겠나?”
중후한 풍채의 사도굉이 말하자 두 무당 제자들의 자세가 금방 달라졌다. 그들의 눈에는 사도굉이 일행의 최고 어른으로 보였다.
“노도우께선 어인 일로 맹주님을 찾으시는지요?”
“허허허, 그야 작은 힘이나마 보태보려 하는 거네.”
“참으로 고마운 말씀이십니다. 저희를 따라오시지요.”
“험, 그러지.”
청오가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거대한 정문 옆에 있는 쪽문이 열렸다.
“들어오시지요.”
일행은 두 사람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사도굉이 나서면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랬다. 정광이 말을 붙이기 전까지는.
“사도 선배, 전에 무당과 한바탕했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저 사람들이 선배를 몰라보는 걸 보니 거짓말이었나 보구려.”
앞장서서 걸어가던 두 도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것도 모르고 사도굉이 말했다. 곧 죽어도 거짓말쟁이 소리는 듣기 싫은 그였다.
“아직 어리잖아. 그러니 모르는 거지. 영 자 배라면 다 아는 사실이야.”
그때 청오가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그런데 맹주께 노도우의 함자를 뭐라 말씀드려야 하는지요?”
사도굉이 말했다,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사도굉이라 하네.”
무당의 제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십여 장 정도 걸어갔을 때였다. 청오와 청은이 걸음을 멈추더니 천천히 돌아섰다.
“혹시, 월조옹이라 불리시는 분 아니십니까?”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사도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어서 가세나.”
“정말 저희 무당의 상청궁에서 볼일을 보신 그 월조옹이십니까?”
어째 목소리에 날이 서 있다.
그런데 볼일?
진용은 사도굉마저 문제를 일으킬 것 같자 즉시 앞으로 나서려 했다.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사도굉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쯔쯔쯔, 아직도 그때 일을 잊지 않았단 말인가? 십 년도 넘은 일인데. 그때 본 덩어리들은 말라비틀어져서 먼지가 되었어도 진즉 먼지가 되어 날아갔을 것이거늘. 에잉.”
율천기가 물었다.
“그럼 전에 말한 일이 정말이었단 말입니까?”
“뒷간을 찾을 수가 있어야지.”
어이없는 대화에 진용은 골머리가 아팠다.
아무래도 조용히 넘어가기는 틀린 것 같았다.
할 수없이 진용이 나섰다.
“남궁 맹주님께 일단 보고를 올려주시겠습니까?”
답변은 냉랭한 코웃음이었다.
“흥! 월조옹을 따라왔다면 알 만한 사람들이군. 당장 나가주셔야겠소!”
진용 일행 중 그가 나가란다고 해서 나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아홉 명.
청오는 분노가 일었다.
“아무리 사람이 필요하다 해도 당신들은 필요없소!”
그는 검병에 손을 가져가며 진용 일행을 노려봤다.
자신의 사형을 따라 분노를 쏟아내려던 청은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이야 비록 대단한 고수는 아니지만, 이곳은 탕마단이 모여 있는 곳이다. 강호무림의 누가 감히 이곳에서 호기를 부릴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눈앞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겁먹거나 초조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사람들, 뭐야?’
때마침 정문으로 중년인이 들어섰다. 그는 진용 일행과 무당의 제자들이 대치한 모습을 보고는 이상함을 느꼈는지 진용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청은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무당의 청은이 황보 대협을 뵙습니다.”
“무슨 일인데 이곳에서 소란인가?”
“별일 아닙니다. 월조옹 사도굉 도우가 오셨는데, 본 문과 오래전에 약간의 일이 있었는지라 그 일을 따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황보 성의 중년인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청은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네들이 어찌 사도 선배께 따진단 말인가?”
“저희는 행여나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킬까 그것이 걱정되어서…….”
월조옹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월조옹 사도굉이 아닌가. 청자 배 제자들이 따질 신분이 아니었다.
자신이라면 몰라도.
“사도 선배, 저는 황보경이라 합니다. 이곳에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맹주를 만나러 왔다고 이미 말했네.”
“맹주님을?”
황보경이 눈매를 움찔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분은 왜 만나시려는 것입니까?”
“그걸 꼭 말해야 하나?”
“말씀하셔야 합니다. 지금은 전시 상태나 마찬가지외다. 설마 무작정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흠, 뭐 말하라면 할 수 없지.”
의외로 쉽게 수긍하는 사도굉의 대답에 황보경의 표정도 곧바로 풀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고 공자, 자네가 말하게.”
사도굉이 대답을 진용에게 넘겼다. 순간 황보경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진용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고진용이라 합니다. 맹주님과 일전에 약속이…….”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보경이 인상을 쓰며 말허리를 잘랐다.
“자네 말을 듣자는 것이 아니네.”
진용은 그런 황보경을 담담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황보 대협께선 무엇을 알고 싶으신 겁니까?”
“어린 자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라니까.”
그때 율천기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황보경의 태도가 못마땅한 그였다. 자연히 말뜻이 고울 리 없었다.
“고 공자가 나서지 못할 자리도 있나? 대단하군. 정천무맹의 맹주 자리가 천자의 자리보다 높다는 것을 이제야 알다니, 나도 멍청한 놈이군.”
“뭐요?!”
황보경이 발끈하며 율천기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포은상이 조용히 말했다.
“그의 말을 잘 새겨보시게.”
황보경이 비록 제멋대로인 성격이긴 해도 멍청한 자는 아니었다.
‘무슨 뜻이지?’
그는 재빨리 율천기의 말을 처음부터 음미해 봤다.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천자보다 높다는 말은 반역을 의미하는 말이 아닌가 말이다.
“귀하는 말을 너무 함부로 하시는구려.”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율천기가 느릿하니 답했다.
황보경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율천기를 노려보았다.
“귀하는 뉘시오? 이름없는 삼류 나부랭이는 아닌 것처럼 보이오만.”
“율천기.”
“……?”
잠시 그 이름을 생각하던 황보경의 눈이 급작스럽게 커졌다. 율천기라는 이름이 생각난 것이다.
십은 중의 한 사람.
“벼, 벽월… 율천기?”
“지금은 저기 포은상과 함께 고 공자의 수하지.”
율천기가 장난처럼 씩 웃으며 말했다. 진용이 피식 실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수하입니까? 동료지요.”
황보경은 일단 마음을 진정시켰다.
율천기의 말이야 장난으로 치부하면 될 일. 일단은 이들이 찾아온 이유를 알아야 했다.
“무슨 일로 맹주님을 만나시려는 겁니까?”
“아까 고 공자가 말했지 않은가? 약속이 되어 있다고 말이야.”
사도굉의 말에 황보경은 힐끔 진용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일개 서생에 불과했다.
내공도 느껴지지 않고, 무기도 보이지 않았다.
허리춤에 꽂힌 지팡이가 보이기는 했지만, 화주 한 병과도 바꿀 수 없는 쓸모없는 지팡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대체 왜 이 사람들은 저 서생을 앞세우는 걸까? 게다가 말투도 서생을 제법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알 수가 없군.’
황보경은 원로들이 머무르고 있는 영성원(永誠園)에 이르기까지 못내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황보경의 안내로 맹주와 원로들이 모여 있다는 영성원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침 밖으로 나오던 소림의 장로들이 진용 일행을 발견했다. 그들 중에는 요양도 있었다. 그가 진용을 알아보고는 급히 다가왔다.
미처 황보경이 인사를 올릴 틈도 없이 요양이 먼저 진용에게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이게 누구신가! 고 시주가 아니시오?”
“오랜만입니다, 요양 선사님.”
“허허허. 언제고 다시 보고 싶었는데, 그때는 황망 중이라 미처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소이다. 장문 사형께서도 언제든 다시 뵈었으면 하시더이다.”
“별말씀을요.”
황보경은 인사할 생각도 잊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 어인 일로 이곳까지 오셨소?”
“맹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그래요? 허허허, 그럼 내 바쁜 분을 잡을 수야 없지. 어여 들어가 보시구려.”
“예, 그럼.”
진용이 고개를 숙이며 합장을 하자 요양이 보기 좋은 웃음을 지으며 황보경에게 말했다.
“황보 시주, 시주가 마저 모셔다 드리게나.”
“예? 예.”
당황하는 황보경의 모습을 보고 슬며시 웃는 사람이 있었다. 사도굉이었다.
‘크크크, 이놈아, 궁금해서 미치겠지?’
영성원만 해도 일개 장원의 크기였다.
일단 맹주가 있는 그곳에는 진용과 율천기, 포은상만 들어가기로 했다. 사도굉과 정광은 조씨 형제와 북리종, 소진호와 함께 입구의 빈객전에 남기로 했다.
황보경이 잔심부름을 하는 무사들을 불러 사도굉 등에게 빈객전의 방을 내주라 하자 정광이 넌지시 말했다.
“먹을 것도 좀 넣어주게나. 술이 있으면 더 좋고.”
세 사람이 황보경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몇 사람이 일행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황보경을 보고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대부분이 중년 이상의 무인들로 적어도 장로 이상은 되어 보였다.
일행은 황보경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서야 남궁창훈이 머무르고 있는 전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위의 풍경은 늘어진 수양버들과 작은 호수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황보경은 잠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안을 향해 말했다.
“황보경이 맹주께 아뢰옵니다!”
“무슨 일이오?”
남궁창훈이 아닌 석장진의 목소리였다.
황보경은 공손한 어조로 진용 일행이 찾아왔음을 알렸다.
“고진용이라는 소협이 맹주님을 찾아오셨…….”
덜컹!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거세게 열렸다. 역시 석장진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남궁창훈마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진용이 인사를 올리자 남궁창훈이 빙그레 웃었다.
“고 소협이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네. 그동안 말은 많이 들었지. 하하하, 멋진 별호도 생겼더구먼.”
“말 많은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일 뿐이지요.”
“하하하, 그런가?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세. 아! 황보 아우, 고 공자를 안내하느라 수고하셨네.”
황보경은 미칠 것 같았다. 대황보세가의 장로인 자신이 꿔다 논 보릿자루 신세가 된 것만 같다.
“별말씀을…….”
그때 남궁창훈이 주위를 둘러보는 척하더니 진용에게 물었다.
“십절검존께선 오시지 않으셨나?”
황보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십절검존? 그럼 저 서생이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