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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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69화
169화
화인화에게서 진용에 대해 들은 그녀였다. 새삼스런 눈이 진용을 빠르게 훑었다.
진용은 멋쩍은 눈을 돌려 화인화를 향했다.
그녀 역시 진용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덥군.’
마차 안이 덥게 느껴진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진용은 무심결에 입을 열어 화예령에게 물었다.
“그분께 복수를 부탁하려 하시는 겁니까?”
화예령의 눈꼬리에서 미미한 떨림이 일었다.
“그럴 생각은 없네.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도 잘 아니까. 우리는 그냥… 그분을 만나보고자 할 뿐이네.”
부친을 만나고 싶어하는 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이었다.
진용이 말했다.
“지금 이 일대는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일단 탕마단과 함께 계십시오. 제가 그분을 만나면 반드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겠나?”
진용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 이상 자신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녀간의 애환은 결국 그들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제자들의 시신을 추슬렀으니 출발하겠습니다, 궁주님.”
밖에서 은서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마차의 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
4
초연향은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어봤다.
밖에서 약탕기를 달이고 있던 소녀가 고개를 돌리더니 환하게 웃는다. 초연향도 빙긋이 웃었다.
마음은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상태였다.
다친 목도 많이 나아져 의사소통을 하는 정도는 무리가 없었다.
얼굴의 상처도 가라앉아 딱지가 져 있었다.
“언니, 조금만 기다려요. 이제 다 달여졌으니까요.”
초연향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참 맑은 소녀였다.
저 아이를 보면 자신이 얼굴 때문에 절망에 빠졌던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얽은 얼굴에 다리가 꼬인 아이.
설움도 많았을 텐데, 용케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초연향은 안개가 낀 듯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래, 이 정도나마 멀쩡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자. 고 공자를 잊어야 한다는 게 가슴 아프지만, 내 복이 이것뿐인 걸 어쩌겠어.’
초연향은 한참 만에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래 끓는 목소리로 소녀를 불렀다.
“소연아.”
“왜요?”
“이따가 언니랑 언덕으로 꽃구경 갈까?”
“정말?”
“응. 언니가 수레 밀어줄게.”
소연이가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초연향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묻는다.
“언니, 혹시 말인데…… 언니 이름이 초연향 아니에요?”
초연향은 흠칫하며 소연이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이름을 그냥 ‘향’이라고만 말했다.
어디서 듣지 않았다면 절대 초연향이라는 이름을 알 리가 없었다.
“어디서… 들은 거니?”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 나왔다.
소연이가 입까지 쩍 벌리고 환하게 웃었다.
“우와! 정말 맞구나.”
“누구에게 들은 거야?”
초연향이 다시 물었다. 소연이가 말했다.
“궁의 언니들이 그랬어요. 요즘 하북 일대가 초연향이라는 여인을 찾느라 난리도 아니래요.”
“누가… 찾아?”
“황궁에서도 찾고, 흑도에서도 찾고, 강호의 대문파들도 찾고. 좌우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대요. 내가 가서 말할까요? 언니 여기 있다고.”
초연향은 황급히 소연이를 말렸다.
“안 돼! 절대 안 돼, 소연아.”
“왜요?”
“만일 내가 여기 있다는 게 알려지면 큰일 나. 그리고 이 언니도 큰일 나고.”
소연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요? 휴우, 큰일 날 뻔했네. 그냥 궁의 언니들한테 물어보려다 언니한테 먼저 물어본 건데.”
“잘했어. 절대 말하면 안 돼. 알았지?”
“걱정 마요. 여기는 약 냄새 때문에 언니들이 잘 안 와요. 내가 말 안 하면 누구도 모를 거예요.”
초연향은 문득 소연이가 자꾸 말하는 궁의 언니라는 말에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궁의 언니들이 누구야?”
“궁의 언니들? 그야 궁의 언니들이죠 뭐.”
소연이가 막상 대답을 못하자 마침 부엌에서 나오던 노파가 대답했다.
“환밀궁(幻密宮)의 아이들을 말하는 거다. 알지 모르겠지만.”
초연향이 눈을 부릅떴다.
그녀가 비록 무인은 아니지만 무림에 대해 알 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환밀궁이라면 여인들만으로 이루어진 세 문파 중 한 곳이 아닌가.
“그럼 환밀궁의 여인들이 이곳에 온단 말이에요?”
“가끔씩 온다.”
“가끔씩요? 여기서 가까운가 보죠?”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도 환밀궁에 속해 있다.”
초연향은 입을 벌리고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노파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환밀궁에 있다는 말이 아닌가.
노파가 말을 이었다.
“너에 대해서는 궁주께서도 알고 계신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건 없다. 환밀궁은 필요한 물품을 구하러 나갈 뿐 세상과 교분을 나누지 않은 지 오래되었으니까.”
초연향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노파는 초연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면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구나.”
“부탁요? 말씀하세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들어드릴게요.”
“그래? 그럼 나도 말하기가 편하구나. 내 부탁은 다른 게 아니다. 궁주께서 너를 양녀로 삼고 싶어하신다. 선택은 네가 할 일이다만, 내 마음으로는 네가 승낙을 했으면 한다. 그분도 불쌍한 분이시다. 아마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게야.”
“양… 녀요?”
“그래. 내일쯤 오실 거니까, 그때까지 생각해 보도록 해라.”
“한 가지, 저도 물어볼 게 있어요.”
“물어보거라.”
“만일 제가 궁주님의 양녀가 되면 밖에 나갈 수 있나요?”
노파는 초연향의 갈등이 가득한 표정을 보더니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세상과 교분을 나누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고 했지 나갈 수 없다고는 안 했다.”
그 말에 초연향은 눈을 감았다.
입술을 떼던 고진용의 붉어진 얼굴이 바로 코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나간다 해도…… 내가 고 공자를 만날 수 있을까? 부를 수 있을까? 이 얼굴로? 이 목소리로?’
감긴 그녀의 두 눈에서 맑은 이슬이 방울져 흘러내렸다.
3장. 무서운 사람
1
신양의 겉모습은 평상시와 별다를 게 없이 조용했다. 양민들은 강호인들끼리의 싸움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간혹 도검을 차고 다니는 사람들이 마주치면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한 발씩 옆으로 돌아가곤 했다.
진용 일행이 신양의 북문에 들어섰을 때는 그런 긴장감이 최고조에 올라 있었다. 그 즈음, 막 한 가지 소문이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강호인들의 단체인 정천무맹의 탕마단이 신양에 들어오고 있다!
사실과는 조금 다른 소문이었다. 그들은 신양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신양에 인접한 수경산장에 머무를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양민들에게는 오십보백보였다. 그저 불똥이 엄한 자신들에게 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진용이 정광과 남궁환을 이끌고 북문에 들어서자 한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는 천탁 이조에 속한 풍혈도 설가종이었다.
“고 공자.”
“설 대협, 저희를 기다리셨습니까?”
설가종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 노사께서 생각보다 빨리 올지 모른다며 아침부터 살펴보라 하셨소. 그런데 정말 빨리 왔구려. 남경까지 벌써 갔다 오신 거요?”
“다행히 중간에 별일이 없어 빨리 왔습니다. 그건 그렇고, 유 어르신께선 어디 계십니까?”
“그리 멀지 않은 곳이오. 일단 갑시다.”
유태청은 북문에서 백여 장 떨어진 객잔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르신, 고 공자께서 당도했습니다.”
설가종이 안에 대고 진용의 도착을 알렸다. 안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들어오게나.”
유태청의 약간 웃음기 띤 목소리에 진용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율천기와 포은상은 진용이 들어서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의 눈은 휘둥그레져 있었다. 유태청의 말을 듣고도 설마 벌써 오랴 했는데, 정말 진용이 나타나자 놀란 것이었다.
“정말 남경에 다녀온 것인가?”
율천기가 궁금한지 다급히 물었다.
진용은 태연히 대답했다.
“예. 생각보다 멀지 않더군요. 한데 다른 분들은?”
“생각보다 멀지… 않아? 남경이?”
유태청이 거보란 눈으로 황당한 표정의 율천기와 포은상을 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대부분은 밖에 나가 나름대로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보며 정보를 모으고 있네. 저녁을 먹기 전까지는 돌아올 것이야. 그래, 갔던 일은 잘 되었는가?”
유태청이 조금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진용은 유태청이 묻는 의도를 알고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개인적인 일은 잘된 것도 잘못된 것도 없습니다만, 그 외에 덤으로 좋은 일이 생겨 기분이 괜찮습니다.”
봉황거에 대해 말할까 했지만 일단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봉황곡과 유태청의 관계는 아직 세상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질 않던가. 그런 만큼 유태청이 만인 앞에서 알려지는 것을 꺼려할지도 모르는 일. 아무래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둘만 있을 때 조용히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마음 아파하실지도 모르겠군.’
진용이 그리 생각할 때다. 유태청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덤?”
왠지 흥미로운 눈빛이다. 진용의 기분을 바꿀 정도의 덤이라 하면 결코 작은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인 듯했다.
“그보다 먼저 소개해 드릴 분이 계십니다.”
진용은 잠시 말을 멈추고 뒤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정광이 남궁환의 옷깃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런데 남궁환이 들어오지 않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훗! 어르신, 들어오시지요.”
진용이 부르고 나서야 남궁환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정광이 답답한지 남궁환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아, 왜 그러시는 겁니까? 갑자기 안 들어가겠다니요?”
남궁환이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더니 진용의 귀에 대고 말했다.
“무서운 사람이 있어.”
“예? 누가요. 누가 무서운데요?”
“저기 저 사람.”
남궁환이 손을 들어 유태청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모두 ‘무서운 사람’, 유태청을 쳐다보았다.
사실 유태청도 진용의 뒤를 따라 정광과 함께 들어서는 노인을 보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진용이 데려왔을 때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러려니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뭐 그럴 수도 있지. 율천기와 포은상의 기세가 어디 보통 기센가?’ 그렇게 생각했다. 노인이 나간 것은 순전히 율천기와 포은상 때문이라고.
그런데 뭐라? 자기더러 무서운 사람?
유태청이 오랜만에 눈을 부라려 봤다.
“이보시오, 내가 어디가 무섭다는 거요?”
남궁환이 찔끔 놀란 몸짓을 하며 말했다.
“눈이 무서워. 꼭… 아무것도 없는 눈 같아. 나는 그런 눈이 무섭거든. 옛날에 나 때린 사람 눈도 그랬어.”
유태청은 어이가 없는 와중에도 노인의 말투가 신경 쓰였다.
‘제정신이 아닌 노인인가? 검을 찬 걸로 봐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때 남궁환이 진용을 바라보고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유태청은 어디 있어?”
“…….”
진용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유태청은 참지 못했다.
“내가 유태청이오, 노인장. 그러는 노인장은 뉘시오?”
남궁환이 놀란 눈으로 유태청을 빤히 쳐다보더니 버릇처럼 불쑥 말했다.
“나? 남궁환.”
“…….”
이번에는 유태청이 눈을 크게 뜬 채 말을 잊었다.
율천기와 포은상은 두 노인의 웃기지도 않은 대화를 들으며 속으로 낄낄 웃다가, 갑자기 유태청이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자 남궁환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저 노인이 누군데 어르신께서 그렇게 놀라시는 겁니까?”
유태청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노인이 바로 치검 남궁환이네.”
두 사람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두 사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궁환과 자신을 번갈아 보자 유태청이 간결한 말로 두 사람을 이해시켰다.
“남궁세가의 사람이지. 비혼마검 구유격으로 하여금 검을 꺾게 만든 사람이야.”
율천기와 포은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남궁환은 몰라도 구유격은 알았다. 멋모르고 구유격에게 덤벼들었다 패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노인이 그 살벌한 구유격을 이겼단 말이지?’
두 사람이 억지로 표정을 풀고 동시에 남궁환을 쳐다보았다.
“뭘 봐!”
눈을 부라리며 남궁환이 대뜸 소리쳤다.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젠장!’
‘끄응…….’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