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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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66화
166화
남궁환이 행여나 놀자고 할까 봐, 그들 중 누구도 남궁환을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에 보도록 하세, 고 공자.”
“살펴 가십시오.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진용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그들은, 떠나기 직전 일제히 남궁환을 향해 돌아서며 허리를 숙였다.
“어르신, 저희들은 먼저 떠나겠습니다! 만수무강하소서!”
“어? 어.”
남궁환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순간 광풍이 몰아치듯 흑백쌍노를 비롯한 열두 명의 고수가 사당을 떠나갔다.
진용은 그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깊게 침잠된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란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북쪽으로, 북쪽으로.
2장. 봉황을 노리는 자들
1
정양으로 들어서자 누군가가 급히 다가왔다.
“혹시 고 공자가 아니신지요?”
언뜻 보아도 건달기가 넘쳐흐르는 자였다. 그럼에도 자세는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누구신데…… 무슨 일인가요?”
“저는 무적회의 응도삼이라 합니다! 공자를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무적회?
거창한 이름이다. 하지만 처음 들어보는 문파 이름이었다.
그가 다시 보충 설명을 했다.
“저희 무적회는 정양의 흑도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공자.”
흑도?
그럼 그렇지. 그런데 무슨 일이지? 혹시……?
“다름이 아니라, 대포객잔에 머물던 분들이 떠나시면서 고 공자께서 돌아오시면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일행들이 객잔을 떠났다고?
정광이 동그래진 눈으로 진용을 돌아보았다.
진용이 물었다.
“어디로 가셨습니까?”
“신양으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신양이라고요? 무슨 일로 가셨는지는 모르는가요?”
진용이 묻자 응도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모르셨습니까? 사흘 전에 천제성과 천혈교가 한바탕 큰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무사들이 백 명도 넘게 죽었다고 하던데…….”
그거였나? 오면서 들었던 강호인들끼리의 싸움이라는 것이?
그렇다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유태청이 자신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갔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흐르고 있다는 뜻.
“소식을 전해주어서 고맙소. 내 잊지 않으리다.”
응도삼은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허리를 깊이 숙였다.
“별말씀을.”
진용도 마주해서 가볍게 포권을 취하고는 방향을 돌렸다.
그때 응도삼이 깜박 잊었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참! 한 가지 전할 말이 더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응도삼이 진용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는 아직도 성질을 고치지 않았는가!”
“…….”
“이.상.입니다!”
진용은 한참 동안 응도삼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정광이 가슴에 활 맞은 호랑이처럼 그르렁거리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
정광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씩씩거리다가, 진용이 웃음을 터뜨리자 분노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화가 더 나야 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상황이 좀 묘하긴 하지만, 진용이 웃었다. 모든 것을 떠나 통쾌하게! 근 팔 일 만이었다.
저 웃음 한 번이 얼마나 갚진 것인지 그만은 안다.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할 웃음이란 것을 말이다.
‘참자, 참자. 태산거사 정광의 넓은 마음을 보여줘야지……. 끄응.’
정광은 마음이 조금 가라앉자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보였다. 그가 응도삼의 얼굴에 바짝 머리를 디밀고 물었다.
“혹시 얼굴이 뺀질뺀질하고 등에 보따리를 멘 놈이 그리 말하라 하지 않던가?”
“예! 그분이 그렇게 말하면 아신다고…….”
그럼 그렇지! 으드득! 그 말을 듣자 또 화가 치밀었다.
두고 보자! 두충, 이놈!
2
세 사람은 일단 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응도삼이 간절히 바란 이유도 있었지만, 어차피 아침도 못 먹었으니 가던 도중에 식사를 해야만 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시간은 반 시진에 불과했다. 단 반 시진. 하지만 그 반 시진이 응도삼에게는 사십 년 동안 써먹을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다.
반 시진 후,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입이 귀에 걸린 응도삼의 환송을 받으며 즉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 시진을 나아가자 회하가 세 사람의 발길을 막았다.
다행히 도선(渡船)이 곧 있는지, 선착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물어보니 반 시진마다 도선(渡船)이 오간다며 곧 올 거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말을 듣는 와중에 정광이 소리쳤다.
“고 공자, 저기 도선이 오네!”
사실 조금 무리한다면 못 건널 것도 없었다. 많은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판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선이 온다면 실피나를 불러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정광이나 남궁환은 당연히 기다려야만 하는 줄로 알고 이미 줄을 서 있었다.
그렇게 진용을 비롯한 세 사람이 양민들과 함께 도선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뒤쪽에서 급박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모두 물러서시오! 미안하지만 우리가 먼저 타고 건너야겠소!”
뒤에서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말투로 누군가가 외치는데, 그 말투에 북방의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정광이 삐딱하니 고개를 꼬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진용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무사 십여 명이 양민들을 밀어내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저것들은 또 뭐야?”
정광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진용의 눈이 반짝였다.
‘도? 설마 팽가?’
다가오는 장한들의 어깨 위로 삐죽이 솟은 도병이 보였다. 게다가 하북의 말투에, 그들의 복장은 색만 다르다 뿐이지 팽기한과 팽가의 장로들이 입었던 옷과 똑같았다. 잘못 보지 않았다면 팽가의 무사들이 분명했다.
‘저들이 무슨 일이지? 혹시 탕마단 때문에?’
진용이 그들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그들이 진용 일행의 앞에까지 다가왔다. 그때까지도 정광은 여전히 삐딱한 눈길로 그들을 계속 쏘아보고 있었다.
뒤늦게 정광의 눈길을 느꼈는지 다가오던 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그들 중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는 정광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도장,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이해해 주시오.”
정광이 웃기지도 않는다는 투로 말을 받았다.
“우리도 급하네. 그러니 우리더러 다음 배 타라는 소리는 하지 말게나.”
그자가 다시 말했다.
“우리는 하북에서 온 사람들이오. 한시를 다투는 판국이니 양해를 바라겠소. 대가는 드리리다.”
조금 전보다 강해진 말투였다.
정광은 또 그게 마음에 안 드는지 코웃음을 치며 눈을 치켜떴다.
“흥! 하북이라면 팽가를 잘 알겠군. 설령 그들이라 해도 우리에게 비키라 할 수 없다네.”
그자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도장은 팽가를 잘 아시나 보구려.”
“조금은 알지.”
“그럼 우리가 누군지는 아시오?”
네놈들이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아?
정광은 입가에 조소를 매단 채 비꼬듯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자네들을…….”
그때 진용의 전음이 정광의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도장님, 그들이 바로 팽가의 무사들입니다.>
정광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모를 수 있겠는가? 자네들이 바로 팽가의 무사들이 아닌가?”
기가 막힌 임기응변이었다.
정광을 몰아붙이려던 장한이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장은 뉘시오?”
정광이 삐딱한 자세를 풀고 어깨를 떡 폈다.
“나? 나는 태산거사 정광이라고 하네. 그런데 자네들만 왔나? 팽기한 노도우는 안 오셨나?”
“예? 예, 그 어르신께선 아직…….”
“허, 이 양반, 겁나게 바쁜 모양이군. 술 한잔 나누자더니, 만나야 술을 나누던가 합치던가 하지 원. 험!”
정광의 너스레에 장한은 급히 쏘아보던 눈빛을 아래로 숙였다.
“도장께서 벽력도 어르신과 친분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뭐, 그럴 수도 있지. 한데 뭐가 그리 바쁜가?”
정광이 질문을 함과 동시 뒤쪽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장한은 뒤를 돌아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간단하게 입을 열었다.
“그 일은 제가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습니다. 곧 본 가의 어르신들께서 당도하실 것이니 그분들께 물어보십시오.”
“그래?”
정광도 벌써부터 장한의 어깨 너머로 빠르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팽가의 사람들이란 것을 짐작했던 터였다.
그는 곧바로 말을 진용에게 넘겼다.
“고 공자, 팽가의 사람들이 오네. 아무래도 우리는 팽가와 인연이 있나 보네그려. 음허허허!”
진용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백여 장 밖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모두 삼십 명 정도로 보였다.
아마도 먼저 온 열 명은 정찰조 겸 길을 트는 역할을 수행하던 자들인 듯했다.
“벽력도 어르신도 오시는군요.”
“그래?”
조금 찔리는 게 있는지 정광은 진용의 말에 가볍게 대답하고는, 슬쩍 달려오는 자들을 쳐다보았다.
팽기한이 뒤에 처진 채 걷는 듯하면서도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구먼. 그 양반, 나이도 든 양반이 좀 쉬지……. 험!”
정광은 중얼거리며 슬그머니 몸을 돌려 남궁환의 옆으로 갔다. 그러자 물끄러미 회하를 바라보던 남궁환이 정광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저기 배가 오네. 저 배 타고 가는 거 맞지?”
“맞습니다, 노도우.”
“이봐! 고가 친구. 배가 오네. 빨리 와!”
남궁환이 손까지 흔들며 진용을 불렀다.
“예, 곧 갈 테니 걱정 마세요.”
진용은 고개를 반쯤 돌려 대답하고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팽가의 무사들이 지척에 당도해 있었다. 그들 중에 진용이 아는 사람은 팽기한 한 사람뿐이었다.
그가 자신을 발견했는지 앞으로 나오며 놀란 눈을 크게 뜬다. 진용은 양손을 맞잡고 포권을 취했다.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이게 누군가? 고 공자가 아닌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큼, 어째 방구석에 처박혀 있지, 왜 나왔느냐는 소리처럼 들리는구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반가워서 그러지요.”
“안 본 사이 좀 능글능글해진 것 같군 그래.”
능글능글이라…….
그 말을 들으니 문득 구양 할아버지의 말이 떠오른다.
“어째 갈수록 능글능글해지는 것 같구나.”
할아버지도 그랬었다.
진용은 쓴웃음을 지으며 담담히 말했다.
“세상이 그사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렇다면 세상 잘못 아니겠습니까?”
“허허, 그게 그렇게 되나? 아! 내 깜박 잊었군. 전에 자네가 보낸 서신을 받아보았네.”
팽기한의 말에 진용의 표정이 굳어졌다.
“팽가의 정보망에 혹시 걸리는 것이 없나 예의 주시했는데, 제대로 알아낸 것이 아무것도 없다네. 나중에 태행산 중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정말 미안하네.”
역시 팽가도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한 듯했다.
진용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별말씀을요. 저도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팽가도 화령옥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텐데요.”
팽기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정광을 돌아다보았다.
“그런데 저 엉터리 도사는 왜 저러고 있나?”
진용이 물었다.
“혹시 정광 도장님하고 술 약속하신 것 있으십니까?”
“술 약속? 없는 것 같은데?”
“그래서 저러고 계신 겁니다.”
그때 정광이 고개를 돌리고는 소리쳤다.
“고 공자! 이야기 그만 하고 오게! 배가 곧 도착하네. 어? 노도우, 오랜만입니다.”
“흠, 거 인사 한 번 받기 어렵군.”
“음하하! 제가 그만 이 노도우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깜박했습니다. 원시천존.”
“나원…….”
어이가 없는지 팽기한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팽기한은 기이한 느낌에 눈을 가늘게 뜨고 정광의 옆을 바라보았다.
‘뭐지? 저 늙은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텅 빈 허공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진용을 바라보았다. 저 늙은이 누구지? 하는 눈빛으로.
“남궁환 어르신입니다.”
“남궁환?”
그는 남궁환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한 노인이군.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달관한 노인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제정신이 아닌 노인 같기도 하고…….”
진용이 빙그레 웃었다.
“원래 그런 분입니다.”
그렇게 진용과 팽기한이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팽가의 주력이 도착했다.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팽기한이 앞으로 나아가던 때부터 의아하게 생각한 그들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저 어르신이 서두르시는 걸까?
그런데 앞서 간 팽기한이 새파랗게 어린 진용과 말 따먹기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숙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