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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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63화
163화
일곱 번째 서(序)
“후욱! 후으읍! 후욱!”
거칠고도 무거운 숨소리가 동굴의 광장 안에 울려 퍼졌다.
대기를 짓누르는 숨소리는 광장의 한가운데에 있는 다섯 자 높이의 옥대 위에서 흘러나왔다.
붉은 기운이 뭉쳐 있고, 핏빛 안개가 덩어리져 휘돌고 있는 옥대 위. 사람의 형체를 한 붉은 기운은 숨소리가 한 번씩 들릴 때마다 머리 부분이 갈라지고 있었다.
갈라진 사이로 잠깐씩 보이는 모습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두 눈이 붉게 타오르고 있는 황금빛 수라탈!
그 수라탈이 한 번씩 숨을 내뱉을 때마다 사람의 심장을 터뜨릴 것만 같은 거대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마기였다. 만마가 머리를 조아릴 정도의 패도적인 핏빛 마기!
핏빛 마기는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붉은 덩어리를 더욱 크게 부풀리고 있었다.
일 장, 이 장…….
한없이 커질 것 같던 붉은 덩어리가 삼 장 크기로 커졌을 때다.
단순히 기운이 뭉친 것으로만 보였던 붉은 덩어리, 마기가 서서히 하나의 형상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오오오! 그것은 아수라!
인간 세상을 짓밟으며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아수라였다!
양팔을 벌린 아수라의 활활 타오르는 붉은 두 눈에서 핏빛 광기가 일렁거렸다.
어느 순간! 아수라의 중심에 앉아 있던 수라탈인이 깊고 길게 숨을 들이켰다.
“후우우욱!”
그와 동시, 핏빛 마기가 금면수라탈인의 입과 전신 모공을 통해 급속도로 빨려 들어갔다.
점점 줄어드는 아수라의 형체!
삼 장 크기의 아수라가 일 장 크기로 줄어들었을 때였다.
핏빛 마기가 요동치더니 더 이상 줄어들지 않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금면수라탈인의 붉은 두 눈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합쳐질 것 같던 자신의 마기와 아수라의 마기가 분리되고 있었다.
두 마기가 합쳐져야 자신의 염원을 이룰 수 있거늘!
번개처럼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합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소멸된다. 절대의 능력, 아니면 전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 금면수라탈인의 눈빛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이, 이, 이런! 완벽한 것이 아니었던가?’
빨아들이는 자와 들어가지 않으려 저항하는 핏빛의 아수라!
하늘 아래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둘만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동굴 안에 느닷없이 광풍이 휘몰아쳤다.
광란이었다!
핏빛의 광란!
천장 지하 미로를 지나야만 하는 그곳에 혈포를 입은 한 사람이 들어선 것은, 동굴의 광장이 핏빛 광풍지옥으로 변해 있을 때였다.
들어선 자는 전신을 저미는 듯한 광풍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광풍의 회오리 한가운데를 노려보았다.
“우흐흐흐……. 어디 갈 데까지 가보자. 마로(魔路)의 끝까지!”
그는 천천히 광풍의 중심을 향해 걸어갔다.
핏빛 아수라의 눈이 그를 향했다.
고통에 일그러진 금면수라탈인의 시뻘건 눈도 천천히 그를 향했다.
당황한 눈빛이었다.
“그대는……?”
광풍은 여전했다. 오히려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그는 금면수라탈인이 앉아 있는 옥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어 알아들을 수 없는 괴이한 주문을 외웠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핏빛 아수라도, 금면수라탈인의 두 눈에 어린 붉은 마기도. 마치 종속된 원념들이 부름을 받고 모이듯이 모조리 그의 숨구멍을 통해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일각, 한 시진, 두 시진…….
그렇게 만 하루가 지났을 때다.
아수라가 사라지고, 금면수라탈인의 몸이 빈 포대자루처럼 무너져 내렸다.
떼구루루. 툭!
옥대 위에서 금면수라탈이 떨어지며 동굴을 울렸다.
광풍이 멈춘 상태. 동굴의 광장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태초의 그때처럼.
천천히 눈을 감은 그는 자신의 몸속에 들어선 기운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자신이 가진 힘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선.
하루, 이틀, 사흘…….
얼마나 지났을까, 동굴 안으로 한 마리 박쥐가 길을 잃고 날아들었다.
푸드득!
동굴 안을 한 바퀴 돌아본 박쥐는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절대 복종의 자세로.
순간,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핏빛보다 더 선명한 붉은빛이 그의 두 눈에서 폭사되었다.
“이제 새로운 세상을 만들 때가 된 것인가?”
그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황금빛의 수라탈이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는 금면수라탈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하얀 웃음을 지었다.
이제 그가 수라탈의 주인이 되었다.
“우후후후. 어떤가, 이 거대한 힘이 즐겁지 않은가?”
그가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누군가가 대답했다.
“이런 기분……. 싫다. 나는 이런 기분이 싫어…….”
“곧 좋아질 거야. 피란 아주 황홀한 것이거든.”
1장. 암구호
1
“뭐라고?”
포은상이 다급히 들어와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단순한 정보에 불과했지만, 모든 사람을 긴장시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천제성과 천혈교가 일전을 벌였다!
신양에서 올라온 장사치들이 자기들끼리 하던 말이라 했다. 헛소문은 아닌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태청은 그 말을 듣고 즉시 운아영을 정양서원에 보내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라 했다.
운아영이 돌아온 것은 한 시진 만이었다.
“사실인 것 같아요, 할아버지. 그러잖아도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해요.”
곧바로 율천기에게 연락을 취해 불러들였다.
천제성과 천혈교가 맞부딪쳤다면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우리도 가겠소.”
소서노인과 돈화파파가 자신들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한 사람이라도 아쉬운 판이었지만, 막상 받아들인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마도의 인물이었다고 해서가 아니었다.
이십 년이 넘게 강호를 떠난 사람들에게 다시 피를 묻히게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단호했다.
유태청은 하는 수 없이 진용의 결정에 따른다는 조건을 걸고 두 사람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을 때다. 정양서원에서 소식이 전해졌다.
“탕마단마저 신양에 접근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천제성과 손을 잡고 천혈교를 칠 생각인 것 같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전면전을 하겠다는 말인가?
함부로 무모하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흐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천제성과 탕마단이 천혈교를 얕보고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유태청이 결론을 내렸다.
“일단 신양으로 들어가세. 이삼 일이면 고 공자가 올 것이니 그에게 전할 소식을 남겨놓고 먼저 떠나도록 하지. 아무래도 정천맹주를 만나 상의해 봐야 할 것 같아.”
그때 두충이 나섰다.
“고 공자가 흑도의 종주라 할 수 있는 백마성과 교분이 좀 있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말이죠, 이곳의 흑도 무리들에게 말해놓으면 고 공자가 돌아오자마자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정양서원의 사람들에게 계속 정양을 돌아 보라 할 수도 없어 바로 소식이 전해질지 걱정이었던 터였다.
그러던 차에 나온 두충의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진용이 흑도의 건달들과도 친하다는 말처럼 들린 것이다.
무인이라 할 수도 없는 흑도의 건달들과 진용.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율천기가 재밌다는 투로 말했다.
“허, 그 사람 참. 좌우간 희한한 사람이라니까.”
포은상이 피식 웃었다.
“희한하기는, 멋진 사람이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귀잖아. 솔직히 말해서 젊은이가 그 정도 지위에 그토록 강한 무공을 지녔다면 뻐기기에도 정신없을 텐데 말이야.”
“그런 정신이라면 그만큼 강해지지도 않았겠지.”
“하긴 그렇지…….”
어쨌든 지금은 무엇이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용해야 할 판이었다. 운아영이 두충에게 슬며시 말했다.
“그럼 두 공자가 그들에게 가서 말해봐.”
“내가?”
“고 공자가 흑도 문파를 잘 안다면, 그럼 두 공자도 조금은 알 것 아냐?”
“알기야 알지. 하지만 혼자 가서 말하는 것보다는 고수들과 함께 가서 말하는 것이 나은데. 건달은 일단 기를 죽여야 하거든.”
두충은 마치 자신이 건달들의 성격을 잘 아는 것처럼 말했다.
운아영이 그까짓 것은 걱정거리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여기 비 공자와 서문 공자가 함께 가면 되지 뭐.”
두충의 얼굴에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그럼! 그래야지. 나만 가면 저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뭐, 그렇다면야……. 갑시다!”
두충이 물귀신처럼 물고 들어가자 비류명은 두충을 한 번 노려보고는 운아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운 낭자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어찌 따르지 않겠소.”
그는 최대한 멋진 말투로 대답하고는 벌떡 일어나 객잔을 나섰다. 서문조양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심경으로 그 뒤를 따랐다.
비류명과 서문조양이 칼과 창을 앞세우고 정양에서 제일 크다는 흑도 문파를 찾아갔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비류명과 서문조양의 무공은 이미 일류의 경지를 넘어 절정의 초입에 다다랐다고 봐야 했다.
일개 흑도 문파가 그런 두 사람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세 사람이 들어간 지 일각. 삼십수 명의 건달이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무적회의 회주 응도삼도 오 초를 넘기지 못했다. 그는 비류명의 도가 목에 얹혀지자 이를 갈며 무릎을 꿇었다.
그로선 피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어렵게 얻은 무공을 죽어라 연마해서 이제는 나름대로 고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겨우 오 초 만에 무릎을 꿇어야 하다니!
‘쪽팔리게 수하들 앞에서 이게 무슨 꼴이야!’
그때 비류명이 말했다.
“우리가 모시는 분이 며칠 사이에 정양에 들어올 것이오. 최대한 빨리 그분께 소식을 전해주었으면 좋겠소.”
응도삼의 숙여진 고개가 움찔했다.
이런 고수들이 모시는 분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까지 죽지는 않았다. 그저 패자는 유구무언이라는 말대로 딱 한마디만 뱉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알았소.”
그런 응도삼을 향해 두충이 말했다.
“하북 백마성의 혁청우 성주님과 친구인 분이오. 그리고 성질 더러운 말코도 함께 있으니까 알아서 하시구려.”
‘백마성 성주님과 친구? 혹시!’
응도삼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가 왕방울만 하게 커진 눈으로 물었다.
“그럼, 혹시… 고씨 성을 쓰시는…… 분?”
“어? 고 공자를 아시오?”
응도삼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얼마 전, 백마성 주재로 개봉에서 흑도의 비밀 회의가 열렸다. 그 자리에 백마성의 혁청우가 직접 나와서 백 명의 흑도 수뇌에게 명령 아닌 명령을 내렸다.
어떤 일에 대한 정보를 모으면서 강호가 조용해질 때까지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힘을 키우라는 것이 그 명령의 주된 골자였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혁청우는 그가 도움을 청하면 무조건 도와주라고 했다.
사람들이 그가 누구기에 자기들이 도와야 하느냐며 웅성거리자, 북경의 흑호가 주위를 살피고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가 바로 백마성의 위당조 어른을 개 패듯 패고 난 뒤, 자루 부러진 망치를 쥐어주며 자기 장원의 정문을 고치게 만든 고가장의 장주요. 자루가 부러져 망치질이 잘 안 되자, 결국 위당조 어른은 주먹으로 못을 때려 박았다 하오. 정말 대단한 분이 아니오? 음하하! 바로 그분이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고 가셨다오!”
그때의 충격을 어찌 잊으랴.
알게 모르게 퍼진 고가장의 전설을 모르는 흑도인이 누가 있을까.
응도삼은 하얗게 굳은 얼굴을 땅바닥에 처박으며 말했다.
“그분이시라면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제가 직접 전하겠습니다!”
두충은 흐뭇한 마음으로 슬며시 말 몇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그분께 이 말도 전해주시오.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는 아직도 성질을 고치지 않았냐!’고 말이오.”
“예?”
“아, 그냥 그분과 나 사이의 암구호요. 그냥 큰 소리로 그리 말만 하면 되오.”
“알겠습니다,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