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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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94화
194화
진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황보인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저희는 갈 길이 바빠서 그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러고는 군청우를 바라보았다.
“군 대협, 가시지요.”
“음, 그럽시다.”
“아아, 잠깐만 기다리시게.”
황보인이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
진용은 무심한 눈으로 황보인을 쳐다보았다. 황보인이 진용의 위아래를 쳐다보더니 빙긋이 웃었다. 깔보는 웃음이었다.
“서생의 간이 제법 크군. 이런 상황에서도 태연하다니 말이야.”
“고 공자 간 큰 거야 세상이 알아주지.”
그때 정광이 일어서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황보인의 눈이 정광을 향했다. 진용이 여전히 무심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다른 일이 없다면 그만 갈까 합니다. 비켜주시겠습니까?”
황보인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지더니 가늘어진 눈매에서 싸늘한 안광이 뿜어졌다.
“이제 보니 보통 서생이 아니었군. 수상해. 강호가 혼란한 상황에서 정보 암상을 찾는 서생이라.”
진용은 굳이 말다툼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겁날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보다는 시간이 아까웠다.
“비켜달라고 했습니다만…….”
황보인의 입가에 새파란 웃음이 번졌다.
“나는 황보인이라 하네. 황보세가의 사람이지. 사람들은 나를 파벽권이라 부르기도 하네. 자네는 잠시 우리와 함께…….”
진용이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귀하가 진천권왕 황보청이라 해도 상관없소. 비켜주시겠소?”
진용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황보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주위에 늘어서 있던 황보세가의 사람들도 멍하니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너도나도 나서서 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건방진 자!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어디서 노가주님을 들먹이는 것이냐!”
그중에 나중에 들어온 세 사람 중 하나인 청년이 앞으로 나서며 진용을 향해 소리쳤다.
“감히 할아버님의 함자를 함부로 들먹이다니! 건방진 놈!”
제갈민이 황급히 나섰다. 미처 자신이 나설 기회를 놓쳐 바라보고만 있었지만, 자칫 싸움이 크게 번질지도 모르는 상황.
“공자께선 노가주님을 욕보이려 하신 것이 아니외다.”
“시끄럽다! 어차피 네놈도 이놈과 같은 패거리.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제갈민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을 밝히고 제갈세가의 이름을 앞세우면 해결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은 세가를 떠나기로 작정한 몸.
그게 아니라도 진용의 이름을 밝히면 해결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진용이 원치 않는 것 같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가문을 등에 업으니 무서운 것이 없나? 어리석은 자. 에라 나도 모르겠다.’
제갈민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제갈민이 무서워 물러났다 생각한 청년이 제법 호기있게 소리쳤다.
“우리 황보세가는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무릎을 꿇어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하지만 진용은 그를 본 척도 하지 않고 뒤를 향해 말했다.
“가시지요. 쓸데없이 시간만 흐르는군요.”
“그러지.”
율천기가 건너편 탁자에서 일어섰다. 그를 따라 다른 탁자에서도 사람들이 일어섰다.
순식간에 자신들보다 많아진 숫자를 보고 황보인의 눈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별다른 기운이 느껴지지 않자 서서히 눈빛을 풀었다.
황보인의 표정 변화를 재빨리 깨달은 황보세가의 청년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진용을 쳐다보았다.
“흥! 제법이구나. 숫자가 많다 이건가? 하지만 저들만으로는 오늘 너의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진용은 무저갱처럼 가라앉은 눈빛으로 청년을 바라보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비켜주겠소?”
청년 황보진이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흥! 능력이 있다면 어디 뚫고 가봐라.”
“원한다면.”
두 걸음 만에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다섯 자 거리로 줄었다.
황보진의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피어났다.
황보인과 그의 형제인 황보중을 비롯해 황보세가의 무사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조금 전의 분노조차 잊은 표정으로 느긋이 상황을 구경했다.
군청우는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며 추진상을 원망했다.
‘문둥이 같은 자식! 하필이면 저런 앞뒤도 모르는 미친놈을 보내서 나를 매장시키려고 하다니!’
그때다.
우두둑!
갑자기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군청우는 이를 악물고 앞을 노려보았다. 여차하면 튈 생각으로 다리에 힘을 잔뜩 준 채.
진용과 황보진이 겹치듯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얼굴이 일그러진 것은 황보진이다.
‘어떻게 된 거지?’
그가 의문을 품을 사이도 없이 진용의 우수가 황보진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동시에 붕! 황보진의 몸뚱이가 앞을 향해 휘둘러졌다.
분분히 물러서는 황보세가의 무사들. 그들 사이에서 황보인과 황보중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진아! 이놈! 네놈이!”
황보진이 파리채처럼 휘둘러지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안색은 금방이라도 퍽 터질 것만 같았다.
단 두 번의 손질이 오가는 과정에 벌어진 일이었다.
휙!
황보진의 몸뚱이가 황보세가의 무사들을 향해 날아가자 황보인이 황급히 손을 뻗어 황보진을 받아 들었다.
왼팔이 거꾸로 낫처럼 꺾여 있었다. 목에는 커다란 손가락 자국이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네놈이 감히 이따위 짓을 하다니!”
황보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며 진용을 올려다보았다.
“비키라 했다. 그리고 그는 실력으로 뚫고 나가라 했지. 나는 그렇게 했을 뿐이야.”
당연한 일을 당연히 했다는 투의 무심한 목소리.
황보중이 이를 갈며 앞으로 나섰다.
“네놈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쉽게 뚫리지는 않을 것이다.”
창! 스릉!
황보세가의 무사들 중 몇 사람이 무기를 빼 들었다. 무기를 들지 않은 자들도 침중한 표정으로 자세를 갖추었다.
결코 그냥 보내지 않겠다는 뜻.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주군.”
비류명이 천천히 칼을 감싼 천을 풀며 앞으로 나섰다. 서문조양도 두 자루의 단창을 꺼내 들고 비류명가 나란히 섰다.
오랜만에 자신들이 할 일이 생겼다는 것에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비류명의 구유도가 새하얀 도신을 드러낼 즈음이었다. 자신을 가로막는 황보중을 보고 율천기가 짜증나는 투로 말했다.
“황보광호가 이 일을 알면 좋아하겠군.”
포은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라면 당연히 좋아하겠지. 아마 황보세가의 전력을 동원해서라도 고 공자를 집으로 모셔가려고 할 걸?”
“하긴, 사람 사귀기 좋아하는 그 성격이 어디 갔을라구.”
움찔한 황보중이 율천기와 포은상을 번갈아 봤다.
전대 가주인 황보청에 이어 이제는 현 가주인 황보광호의 이름마저 나왔다. 느낌이 이상했다.
“당신들은 누군데 가주님의 함자를 들먹이는 거요?”
“그래도 저자보다는 낫군. 아! 이름을 물었던가? 저 사람은 포은상이라고 하네.”
“자네도 참. 저 친구는 율천기라고 하지.”
자신의 이름 대신 서로 상대의 이름을 밝히는 두 사람이다. 황당한 답변에 황보중의 얼굴이 멍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포은상? 율천기?”
두 사람의 이름을 무의식중에 입 밖으로 내뱉은 황보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북천산인……? 벽월……?”
문득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하얗던 얼굴이 새파랗게 변색되었다.
그의 거세게 떨리는 눈이 천천히 진용을 향했다.
“천뢰서생, 고진용!”
순간 객잔 안에 적막감이 맴돌았다.
황보세가의 무사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황보진을 껴안고 있던 황보인이 툭, 황보진을 떨어뜨렸다.
“천뢰무적, 마법진천, 고.진.용?”
황보인이 멍하니 중얼거리며 진용을 올려다봤다.
군청우는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왕방울처럼 눈을 홉떴다.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진용은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가시지요.”
후다닥 손에 든 무기들을 뒤로 감춘 황보세가의 무사들이 쫙 갈라졌다. 그 사이로 진용이 걸어가자 정광이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뒤따라갔다.
입술을 깨물고 걸어가는 제갈민의 눈에 열기가 피어올랐다.
‘바로 이거라니까! 정무관을 나오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어!’
비류명과 서문조양은 나서보지도 못하고 상황이 끝나자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칼을 다시 천으로 감싸고 단창을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
율천기와 포은상이 황보중의 양옆을 스쳐 갔다. 뒤따라가던 북리종이 황보중의 어깨를 툭 쳤다.
“괜히 소문내지 마시오. 지금 고 공자가 무지 바쁘거든. 기분도 굉장히 안 좋고. 앞을 막으면 그게 누구든 성치 못할 것이오. 설령 황보세가라고 해도 말이오.”
거리로 나서자 군청우가 가슴을 치며 말했다.
“이 군청우, 한 번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외다. 걱정 마시오! 내 직접 여러분들을 하북으로 안내하겠소이다! 음.하.하.하!”
“돈이 너무 적어서 미안합니다.”
“돈? 무슨 말씀! 이 군청우, 돈 몇 푼에 우정을 사고파는 사람이 아니외다!”
가자미눈을 뜬 정광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군청우를 째려보았다.
‘저놈도 두충 못잖은 놈이군.’
두충과 비교하다 보니 왠지 두충이 그리워진다.
‘그래도 뒤통수를 아무 때나 갈길 수 있는 것은 그놈뿐인데…….’
3장. 빙의
1
태행산은 깊고도 넓었다.
끝 보이지 않게 늘어선 준봉들을 보노라면, 조사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암담하기만 했다. 그러나 백 냥의 위력이 그러한 우려를 반쯤 무마해 주었다.
군청우의 졸개들은 결코 무능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주 간단한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도 찾지 못했다는 것. 결국 같은 방식으로 찾아서는 십 년이 걸려도 찾지 못할 거라는 것.
첫 번째로 방향부터 다르게 잡았다.
누구든 백이면 백, 남쪽으로 내려가며 찾았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북쪽으로 가보자고.”
진짜 북쪽으로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쪽으로 가지도 않았다.
또한 사람들은 강줄기만을 뒤졌을 것이다.
“까짓것 우리는 산속도 뒤져 보는 거야.”
물론 산꼭대기로 올라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산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는 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무시했을 것만 찾아 돌아다닌 지 열흘, 덕분에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진용 일행이 석가장에 도착하자 즉시 군청우의 졸개들 중 일조가 보고를 올렸다.
“천계산에 사는 사냥꾼을 어렵게 만나 물은 결과―솔직히 산에서 길을 잃었다가 만났다―물줄기가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하나는 평범하게 계곡을 타고 흐르지만, 다른 하나는 잠룡동이라는 굴을 통해 평산호의 외곽으로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 말고는 없을 거라는 했습니다.”
다른 자가 말을 이었다.
“한데 그의 말에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서, 저희는 모든 역량을 다해 조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상한 점?”
진용이 눈을 빛내며 반문했다.
보고를 올리던 장한은 군청우가 하늘처럼 떠받치는 서생이 누군지 궁금했지만,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평산호의 서쪽에 운무가 짙게 낀 곳이 있는데, 그곳은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곳과 물줄기와의 관계는?”
“그곳이 사냥꾼이 말한 물줄기가 솟구치는 곳입니다.”
제갈민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하지 않았소? 한데 어떻게 사냥꾼이 그곳에 대해 안단 말이오?”
“그가 그곳을 아는 이유는, 그도 계곡에 빠져 그곳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거의 다 죽어가는 몸으로. 그는 잠깐 그곳을 보고 다시 정신을 잃었는데,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바깥쪽이었다 합니다.”
간략하면서도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이었다.
말을 적절하게 할 줄 아는 자였다.
“안내해 줄 수 있겠소?”
2
평산호는 길게 뻗어 있었다.
진용 일행이 호숫가를 따라 서쪽으로 나아간 지 두 시진, 운무에 싸인 계곡이 보였다.
그 뒤로 커다란 산 하나가 꼭대기만 삐죽 내민 채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앞서 가던 장한이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저깁니다.”
그가 굳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아도 진용은 알 수 있었다.
기이한 기운이 넘쳐흐른다. 그물처럼 펼쳐진 기운이 안개를 움직이지 못하게 옭아매고 있다. 인위적인 조작.
‘누군가? 누가 저렇듯 자연을 조작할 수 있단 말인가?’
제갈민이 벙찐 표정으로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운무만상대진(雲霧萬象大陣)? 설마……?”
동백산의 기관을 봤을 때만큼이나 놀란 표정이다.
“세상에 저렇게 넓은 지역을 감싼 대진이라니…….”
어쩐지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고도 찾지 못한다 했더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아무리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다 해도 기문진에 정통한 자가 없다면 공염불이었을 게 분명했다.
“들어갈 수 있겠어?”
정광이 멍한 표정으로 운무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갈민이 고개를 저었다.
“잘해야 입구 정도만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제갈세가의 기재라며?”
“천재는 아니었습니다.”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제갈민을 흘끔 쳐다본 정광이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진용이 말했다.
“우선은 그 정도에 만족하죠. 안에 사람이 산다 들었으니 그들에게 말을 전하면 뭔가 반응이 있지 않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실피나를 불러 안으로 들여보냈다.
잠시 후, 돌아온 실피나가 고개를 저었다.
―이상해, 자꾸 되돌아와져. 대기의 기운이 비틀려서 어지러워.
이마를 짚고 눈살을 찌푸리는 실피나를 보며 진용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결국 직접 들어가는 수밖에 없단 말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