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79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79화
179화
―못 봤어. 괴상한 늙은 인간이 있으면 내가 금방 알아봤을 텐데.
괴상한 늙은 인간?
심각하던 진용조차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광이 흘끔 뒤를 돌아다본다.
진용은 재빨리 정색을 하고서 실피나에게 말했다.
<그분들 보거든 바로 나에게 알려줘. 알았지?>
―알았어! 그럼 그다음에는 싸우는 거야?
<그럼! 단, 때가 되면. 가봐.>
이해하기가 힘든지 고개를 갸웃거린 실피나가 정광의 어깨에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갔다.
진용은 실피나가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다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대열을 이탈하지 말고 철저히 함께 움직이세요. 천혈교의 총단에 들어가더라도 분위기에 휩쓸리지 마십시오.”
귀를 기울여도 들릴 듯 말 듯 나직이 흘러나온 음성이었다. 하지만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던 듯 서른두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본래의 진용 일행을 뺀 사조원 중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짓고는 진용을 응시했다.
그들의 눈에는 경악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작은 소리를 모두가 함께 들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제야 어렴풋이 들었던 소문이 그들에게 현실로 다가왔다.
―십절검존과 천뢰서생이 스무 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적혈문을 비롯해서 다섯 개 대방파를 단 며칠 사이에 봉문시켰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그저 십절검존이 존재하고 십은이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들을 이끌기로 한 고진용이 그 소문의 주인공임을 알고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어쩌면 그 일의 중심인물이 천뢰서생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천혈교의 총단을 본 순간, 진용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진용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양쪽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백 장 높이로 치솟아 안개구름을 뚫고 있고, 그 가운데에 무려 수만 평에 이르는 평지가 거짓말처럼 펼쳐져 있다.
한 채에 수백 명을 품을 수 있는 거대한 건물 십여 채가, 흐르는 계곡물과 수많은 고목을 품은 채 조화를 이루며 지어져 있다.
거기에 실피나가 말한 석탑이 그 조화로움에 편안함을 더해준다.
입구 주위의 인공 가산에 만발한 이름 모를 꽃들. 향기를 찾아 날아온 온갖 나비들. 천혈교라는 피 냄새 나는 이름만 아니라면 가히 지상낙원 같은 풍경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이미 안으로 들어간 선두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도 당황한 듯했다.
진용은 굳은 안색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용을 따라 사조의 사람들도 정문의 문턱을 넘었다.
드넓은 연무장이 나타났다. 얼마나 넓은지 이천이 넘는 인원을 품고도 여유가 있었다.
그때 문득, 진용의 눈에 천제성 사람들이 보였다.
안쪽 깊숙한 곳에 서 있는 그들의 인원수도 탕마단에 못지않았다.
근 일천은 족히 되어 보인다. 이미 놀람이 지나갔는지 그들은 차분히 정렬한 채 뭉쳐 있었다.
언뜻 팽기한을 비롯한 팽가의 무인들이 보였다. 천제성과 나란히 서 있던 그들은 탕마단과 합세하기 위해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같이 왔나 보군.’
마침 팽기한이 진용을 발견하고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팽 노선배님,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진용이 전음으로 묻자 팽기한도 전음으로 답했다.
<자신도 잘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군. 그러면서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았네. 이번 일이 끝나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더군. 우리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단 수락하고 이곳으로 온 것이네.>
모른다? 그럴 리가 없다.
‘흥! 간교한 자!’
어쨌든 그 일은 팽기한이 알아서 할 일. 그리고 당장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조심하십시오. 아무래도 상황이 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으니까요.>
<알겠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대화를 끝냈다.
일각쯤 지나자 거대한 연무장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족히 이천오백 명은 될 듯했다.
그때 커다란 북소리가 계곡을 울렸다.
둥! 둥! 둥!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닫고 연무장 끝에 지어진 단을 쳐다보았다.
단상에는 어느새 한 노인이 서 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홀연한 등장이었다.
단상의 노인은 길고 가느다란 백염을 가슴에 휘날리며 이천이 넘는 군웅들을 쓸어보았다.
오연한 표정,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서 있는 그에게서 위엄마저 느껴졌다.
여기저기서 정파의 명숙들이 웅성거렸다.
노인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몇몇은 노인의 정체를 짐작하고 주위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때 그가 천천히 손을 들어 포권을 취하고는 힘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본인은 야율립이라 하오! 이렇듯 방문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는 바요!”
유령신마 야율립. 바로 그였다!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여기저기서 놀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자가 유령신마 야율립?”
“정말이었군. 유령신마가 천혈교에 있었어.”
웅성거림은 야율립이 손을 듦과 동시에 잦아들었다.
“특히 천제성의 성주님과 정천무맹의 맹주께서 수많은 분들을 이끌고 본 교의 개파대전에 참석해 주셨으니, 이는 본 교의 홍복이외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야율립, 헛소리하지 마라! 누가 천혈교의 야욕을 모를 줄 아는가! 우리가 온 것은 네놈들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야율립의 눈이 소리난 곳으로 향했다.
천제성의 무사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장한 하나가 소리를 지르다 말고 황급히 입을 닫았다.
야율립이 가느다란 살소를 지으며 장한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좋은 날이니 한 번은 용서하겠다.”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닫은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는지, 장한은 야율립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흥!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
그때다. 이십 장의 거리를 두고 야율립의 손이 흔들렸다 싶은 순간, 뿌옇게 흐려진 장영(掌影)이 빗살처럼 장한을 향해 쏘아졌다.
몇 사람이 그것을 간파하고 경고성을 발했다.
“헛! 조심해! 유령장(幽靈掌)이다!”
진용도 보긴 했지만 관여하지는 않았다.
대신 천제성 쪽에서 두 사람이 장한의 앞으로 나섰다. 삼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눈빛이 날카로운 자들. 비천검단의 고수들이었다.
“타앗!”
그들은 동시에 쌍장을 내밀며 밀려오는 암경에 마주쳐 갔다.
콰르릉!
일순간 천둥소리가 울렸다.
“크윽!”
“커억!”
마주쳐 갈 때보다도 빠르게 뒤로 밀려난 두 사람. 그들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비칠거리며 겨우 중심을 잡은 두 사람을 향해 야율립이 말했다.
“더 이상은 용서하지 않는다. 백리 형의 얼굴을 봐서 오늘은 이 정도로 멈추겠다.”
오만한 말인데도 오만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는 바로 십천존의 일인, 유령신마인 것이다.
진용은 내심 감탄하며 유령신마를 직시했다.
‘십천존! 과연 명불허전이다. 비천검단의 두 사람을 단 일장으로 곤란지경에 빠뜨리다니.’
천제성 쪽에서 한 사람이 나섰다.
“야율 선배, 손속에 사정을 봐줘서 고맙소만 굳이 더 말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적유였다. 그가 나서자 천제성의 무리에서 작은 움직임이 일었다.
극히 미미해서 쉽게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움직임.
그러나 처음부터 천제성에 신경을 쓰고 있던 진용은 그 움직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괴인들! 천제성의 무사들 틈에 숨어 있던 그들이 적유를 에워싸고 있다. 무슨 뜻이지?’
백리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 점이 이상한 것이다.
진용이 의아해하고 있는 사이 유령신마가 적유를 향해 말했다.
“천제성에 인물이 있긴 있었군. 하지만 너무 나대지는 말게. 아직 노부의 말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하하하! 야율 선배가 교주는 아닐 것 아니오? 우리는 천혈교의 교주를 만나 따지러 왔지, 야율 선배와 말다툼하려고 온 것이 아니외다!”
적유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군웅들이 그 말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랬다. 자신들은 싸우러 왔지 야율립의 웅변을 감상하러 온 것이 아니다.
“야율 도우! 교주를 나오라 하시오! 이곳에 본 맹의 맹주께서 오셨는데, 왜 교주는 얼굴도 비치지 않는 것이오?”
화산의 우진자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율립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개파대전이 시작될 것이오. 조금만 기다리시오, 결코 실망시키지는 않을 테니까.”
“흥! 우리는 개파대전에 관심 있어서 온 것이 아니외다! 교주를 불러내시오!”
우진자가 기세를 올리며 소리쳤다.
야율립이 하얗게 웃었다.
“지금 남의 잔칫집에 와서 시비를 걸자는 건가?”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진용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몰라도 야율립이 상황을 이상하게 몰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서서히 불길을 키워가는 형국.
그런데 그 불길에 종남의 정호 진인이 기름을 끼얹었다.
“야율립! 종남의 제자들을 죽인 것이 천혈교가 아니었더냐? 그래 놓고 무슨 개파란 말이냐!”
그때다!
“갈! 누가 그러던가! 본 교의 제자들이 종남의 제자들을 죽였다고!”
갑자기 벼락같은 목소리가 단상 뒤쪽의 건물에서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한 사람이 허공을 걷듯이 단상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 동시에 단상의 좌우로 사십여 명 정도 되는 혈의인들이 늘어섰다.
노인을 본 진용은 유태청의 말이 떠올랐다.
“작은 키, 긴 눈썹, 바짝 마른 몸, 눈빛이 푸른빛이거든 그가 바로 공야무릉이라 생각하게나.”
그런데 단상에 내려서고 있는 노인. 노인의 눈빛이 푸른빛이다.
‘저 노인이 공야무릉인가?’
단상에 내려선 공야무릉이 정호 진인을 향해 소리쳤다.
“다시 말해보게! 본 교의 제자들이 정말 종남의 제자를 죽였단 말인가?”
서슬 퍼런 공야무릉의 말에 정호 진인은 식은땀을 흘렸다. 눈이 마주치면서부터 꼼짝할 수가 없었다.
정호 진인은 억지로 입을 열어 악을 쓰듯 외쳤다.
“강호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외다!”
“누가 알고 있단 말인가? 그대가? 그대가? 아니면 그대가?”
공야무릉의 손끝이 정천무원의 원로들을 무작위로 가리켰다.
얼굴이 시뻘게진 원로들이 이를 악물고 공야무릉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공야무릉의 기세에 눌린 그들은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적어도 남궁세가를 친 것만큼은 분명한 일이 아니오!”
보다 못해 남궁창훈이 나섰다.
공야무릉의 눈이 남궁창훈을 향했다.
“그건 인정하겠소, 남궁 맹주!”
말투가 존대로 바뀌었다. 정천맹주에 대한 예의로 보였다.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그 말을 듣더니 원로들의 악다문 입에 힘이 들어간다.
진용은 그 미미한 변화를 눈치 채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젠장! 능구렁이 같은 노인이 자중지란을 유도하고 있다! 도대체 어쩌자는 걸까? 이 상황에서 한바탕하겠다는 걸까?’
어차피 싸울 거라 생각은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지금은 아니다. 천혈교의 사람들은 기껏해야 백수십 명밖에 보이질 않는 것이다.
그들이 제아무리 절정지경을 넘어선 고수들이라 해도 이런 상황에서의 싸움은 말도 되지 않는다.
물론 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관을 이용하려면 폐쇄된 공간이어야 하는데, 정천무맹과 천제성의 고수들은 모두 연무장에 있다.
진용이 곰곰이 공야무릉의 태도를 분석하고 있을 때다. 남궁창훈이 분노의 일갈을 내지르며 단상을 향해 걸어갔다.
“교주를 나오라 하시오! 본 가를 쳤을 때는 그만한 대가를 각오했을 터!”
“대가? 왜 대가를 치러야 한단 말이오?”
“그걸 그대가 모른단 말이오?”
공야무릉이 갑자기 낄낄거리며 웃었다.
“킬킬킬! 대가라! 그럼 정천무맹이 죄없는 마도의 방파를 칠 때도 대가를 주고 쳤는가?”
갑작스런 변화에 남궁창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절대 그리하지 않았지요!”
늘어선 혈의인들 뒤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그를 본 남궁창훈의 눈이 부릅떠졌다.
“혈마(血魔) 육두상?”
그는 오십 초반의 초로인이었는데, 눈이 하나 없었다. 게다가 팔도 하나 없었다.
눈 대신 보석을 박고, 팔 대신 철수(鐵手)를 몸에 매단 육두상이 냉랭한 코웃음을 날리며 남궁창훈에게 말했다.
“흥! 우리 혈마방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해봐라! 잘못도 없는 혈마방을 치고도 대가로 무엇을 줬는지 말해봐라, 남궁창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