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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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78화
178화
6장. 하늘도 땅도
1
“곧 출발할 것이오! 모두 출발준비를 갖추고 대기하시오!”
아침이 되자 출발을 알리는 목소리가 초원에 울려 퍼졌다. 이미 탕마일단의 일대가 출발한 이후였다.
진용 일행이 포함된 삼단 사대 사조는 이각의 차이를 두고서 맨 나중에 출발했다.
사조의 면면은 상당수가 바뀌어 있었다.
종리군은 그것이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드러내 놓고 불평을 하지는 않았다. 위지강이 따로 불러 말한 데다, 그렇게 된 중심에 벽월과 북천산인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십은의 보호를 받고 있는 서생 같은 애송이야 그의 관심 밖이었고.
‘십절검존의 후광이 좋긴 좋군. 십은이 보호하다니…….’
천뢰서생에 대한 소문을 그도 듣긴 했지만 직접 보니 코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천혈교의 마도 놈들과 마주치면 오줌이나 싸지 않을지 모르겠군.’
종리군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동백산이 까마득히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진용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멀리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
아직 오십 리 정도는 남은 듯했다. 그런데 자신들을 주시하는 눈길이 따라붙었다. 문제는 그 눈길의 주인이 천혈교가 아닌 듯 느껴진다는 것이다.
“실피나.”
진용은 실피나를 불러냈다. 연녹색 하늘거리는 모습의 실피나가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 상쾌하다는 표정으로 밝게 대답했다.
―불렀어? 왜? 시킬 일 있어? 뭐 할까?
그런데 어째 말이 많아졌다.
‘말도 많네. 누가 덜떨어진 정령 아니랄까 봐.’
떠버리 세르탄이 있지도 않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숲에 숨어서 따라오고 있는 자들을 찾아봐.>
―알았어.
막 날아가려던 실피나가 멈칫하더니 물었다.
―그런데, 그냥 찾기만 해?
왠지 어떤 상황을 기대하는 눈치다.
진용이 그 기대가 무엇인지 모를 리 없었다.
‘킁! 두들겨 패고 싶겠지!’
세르탄도 짐작한 듯 코웃음을 쳤다.
<일단은 찾기만 해. 싸우는 것은 나중에 실컷 시켜줄 테니까.>
―음호호호! 알았어, 갔다 올게!
한줄기 연녹빛 바람이 진용이 바라본 방향을 향해 일직선으로 사라졌다.
일각이 조금 지나자 실피나가 돌아왔다.
실피나는 돌아오자마자 정신없이 떠들어댔다.
―빨간 놈들이 두 놈 있었거든? 그런데 주인이 간 쪽을 바라보더니 새를 날리잖아. 그래서 내가 냅다 발로 차버렸어. 새가 비틀거리면서 떨어지니까 두 놈 중 한 놈이 놀라서 정신없이 달려가는 거야. 오호호호! 가서 또 날리면 또 차버릴까?
‘그냥 보고만 오라니까 말도 되게 안 듣네.’
‘그러게 저 덜떨어진 정령은 믿지 말라니까.’
―실피나나 너나!
진용은 세르탄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실피나에게 물었다.
“새가 어디로 날아갔지?”
―저쪽!
실피나의 손이 동백산을 가리켰다.
동백산인가? 그럼 천혈교?
‘내가 잘못 알았나?’
2
동백산(桐栢山) 무자곡(霧自谷) 초입에 이르자 천혈교의 교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동백산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천제성은 조용히 안으로 들어간 듯했다.
아니라면 한바탕 싸움의 흔적이라도 남아야 했는데, 입구는 너무나 고요했다.
혹시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입구의 우측에서 펄럭이는 깃발에 천제성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대문파의 이름을 깃발에 써서 걸어 놓고 있는 듯 수많은 문파의 이름이 깃발에 쓰인 채 펄럭이고 있었다.
입구를 십 리 남기고부터 정천무원이 선두로 나선 상태였다.
선두에 서서 무자곡 입구로 다가가던 남궁창훈은 펄럭이는 천제성의 깃발을 보고 이마를 찌푸렸다.
천제성이 입구에서부터 싸움을 벌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버젓이 깃발이 걸리게 놔두었을 줄이야!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일천이 넘는 엄청난 인원이 무자곡의 입구로 밀려가자 천혈교도 십여 명이 선두를 향해 다가왔다.
그중 흑염을 길게 기른 초로인이 먼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는 남궁창훈을 보고는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동호양이 남궁 맹주를 뵈오.”
그의 이름에 남궁창훈을 비롯해 정천무원의 원로들이 모두 눈을 부릅떴다.
“귀혼살마 동호양?”
동호양은 겉보기와 달리 칠십이 다 된 노마(老魔)로 혼세십팔마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탕마단의 원로들이 놀란 것은 결코 그의 이름 때문이 아니었다.
혼세십팔마의 한 사람이 초입에서 손님 접대를 하고 있다는 것. 그것 때문에 놀란 것이다.
“동 선배가 이곳에 계신 이유는 본 맹을 맞이하기 위함이오?”
동호양이 흔들림없는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허. 대정천무맹의 맹주를 맞이하는데, 어찌 소홀할 수가 있겠소?”
“본 맹이 좋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왔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싸울 때 싸우더라도 격식은 갖춰야 하지 않겠소? 천제성도 그 점을 인정했기에 순순히 안으로 들어간 것이오. 설마 천제성에서도 지킨 격식을 정천무맹이 나 몰라라 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오만.”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입구에서부터 싸움을 벌일 수는 없었다.
천제성도 그냥 지나간 길을 정천무맹이 싸워서 뚫고 지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아직 안쪽의 상황도 모르는 상태가 아닌가.
남궁창훈은 예기치 못했던 천혈교의 급습에 표정을 굳히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싸움에서 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동백산에 총단이 있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싸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남궁창훈이 뒤를 돌아보자 기세등등하던 원로들이 대부분 고개를 돌렸다.
맹주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이었다.
남궁창훈은 차갑게 웃으며 동호양을 바라보았다.
“안내해 주시겠소?”
“물론이오. 그러기 위해 기다린 것이 아니겠소?”
동호양은 당연하다는 듯 머리를 약간 숙이고는 망설임없이 몸을 돌렸다.
돌아선 그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슬쩍 매달렸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다.
진용이 속한 삼단 사대 사조는 여전히 맨 뒤에 처져서 따라갔다. 덕분에 진용은 무심을 가장하지 못한 천혈교 무사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비릿한 조소였다.
이들이 왜 조소를 짓고 있을까? 자신들을 함부로 못한다는 생각에? 아니면 탕마단이 생각보다 별 볼일 없다는 생각에?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호랑이 입속으로 들어가는 탕마단이 우습게 보였다는 것.
그럼 그만큼 자신들의 힘이 강하다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저들은 확신하고 있다. 저 안쪽 천혈교의 총단에, 천제성이든, 탕마단이든, 그 누구라도 저 안에서는 제압할 자신이 있다고.
진용도 확신했다.
저 안에 기관이 설치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것도 천제성과 탕마단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기관이!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천제성과 탕마단을 제압할 수 있단 말인가.
<실피나!>
허공에 떠서 졸졸 따라오던 실피나가 휘리릭 날아와서 진용을 빤히 바라보며 앞에 섰다.
움찔한 진용이 실피나를 쳐다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큰 싸움이 일어날 것을 예감이라도 하고 있는지 얼굴이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휴, 눈치도 세르탄처럼 빨라졌군.’
‘왜 그걸 나하고 비교해! 눈치하면 시르가 최고지!’
세르탄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 내가 최고고 네가 두 번째다.’
‘그야 당연히…… 응……?’
이상한지 세르탄이 말을 흐렸다. 세르탄이 말꼬리를 잡기 전에 진용이 재빨리 실피나에게 전음을 보냈다.
<실피나, 안으로 들어가서 상황을 살펴봐. 먼저 들어간 우리 일행들도 좀 찾아보고. 할 수 있지?>
―응? 응. 해보지 뭐.
<그걸 확실히 알아야 실피나가 싸울 수 있나 알게 되니까, 최대한 알아봐. 그리고 내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와서 알려줘. 알았지?>
―알았어!
역시 싸움을 시켜준다는 말이 최고의 약이다.
실피나가 휭 하니 사라졌다.
‘이 싸움꾼 실피나야, 제발 많이만 알아와라.’
세르탄에게 장난까지 걸어가며 마음을 안정시켜 보려 했지만 점점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아무래도 피를 많이 봐야 할 것만 같다.
진용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피를 봐야 한다면, 나도 마다하지 않겠어!’
마차가 한꺼번에 두어 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정돈된 길을 따라 십 리를 들어갔다. 그런데도 천혈교의 총단은 나오지 않았다.
선두와는 십 리 정도 떨어져 있을 터. 그럼 이십 리라는 말이다. 선두가 총단에 들어갔으면 소식이 전해졌을 텐데 아직 전해진 소식은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보다 깊은 계곡의 양편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무너진 자갈들로 이루어진 급경사였다. 기호지세인지라 안으로 들어가고는 있지만, 선두도 초조한 마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조의 사람들도 언제부턴지 진용 일행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도 서서히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십여 리를 더 가자 갑자기 계곡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다듬어놓은 길도 넓어졌다. 마차 서너 대가 비켜갈 수 있을 정도다.
그때였다. 앞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들려왔다.
“천혈교의 총단이다!”
동시에 실피나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주인아!
실피나가 빠르게 날아오더니 마침 진용의 앞을 걷고 있는 정광의 어깨에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순간 정광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뭐가 내 어깨를 누른 것 같았는데…….”
진용은 자꾸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실피나에게 물었다.
<말해봐. 뭐가 있지?>
―큰 건물들. 열 개 훨씬 넘어. 그리고 동굴이 많이 뚫려 있어. 인간들이 사는 동굴이야.
실피나의 말을 풀이하면, 건물은 열 채를 넘어서 스무 채에 가깝고, 동굴에서 주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다른 이상한 것은?>
―별것은 없는데…… 탑이 많이 서 있어.
<탑?>
―어, 건물 전체를 빙 둘러서 탑이 서 있어. 열 개가 다섯 개쯤 돼.
그럼 오십 개쯤 된다는 말.
‘실피나가 신경을 많이 썼군. 그걸 다 세어 오다니.’
이번에는 세르탄도 반발하지 않고 순순히 인정했다.
어쨌든 수상한 일이었다. 탑이 왜 그렇게 많이 있단 말인가?
<또 다른 것은?>
갑자기 실피나의 얼굴에서 홍조가 사라졌다. 파르스름한 얼굴로 실피나가 말했다.
―무서운…… 인간이 있어.
말도 떨려 나왔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진용이 다급히 물었다.
<누군지 봤어?>
실피나가 고개를 저었다.
―보진 못했고… 땅속에 있는 것 같았어. 무서워서… 가보지는 않았어.
그러더니 진용을 힐끔거리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꼭…… 주인의 속에 있는… 어…… 그… 것하고 비슷한 느낌이었어.
진용이 눈을 부릅떴다.
세르탄도 깜짝 놀라서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억! 저 덜떨어진 정령이 설마 나를…….’
왠지 불안한 목소리.
하지만 진용은 실피나가 세르탄을 눈치 챘다는 것에 놀라서 세르탄이 왜 불안해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언제, 어떻게 알았지? 내 머릿속에 뭔가가 있다는 걸?>
진용이 순순히 인정하자 실피나가 조금은 밝아진 표정으로 빠르게 말했다.
―저번에 이상하게 주인의 기운이 강해졌을 때부터. 왠지 주인 눈이 무섭게 보였어. 꼭 마계의 멍청한 마족들을 소환한 대마법사의 눈 같았거든. 근데… 주인아, 그게 뭐야? 정말 마족이야? 어떤 멍청한 마족이 인간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거야?
세르탄이 불끈 성질을 내려다 꾹 참았다. 지금 상황에서 진용의 심기를 건드려 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꿍하니 숨겨온 비밀이 탄로 날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열은 났다.
―정령 같지도 않은 것이 어디서 감히!
하지만 진용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멍청한 마족’이라는 말이 연이어 실피나의 입에서 나오자 세르탄이 열을 낸다 생각했다. 그 이상은 아무리 진용이라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후, 이름은 세르탄이라고 해. 좌우간 그것에 대해선 나중에 알려줄 테니까, 혹시 다른 것이 없나 계속 살펴봐. 그리고 우리 일행들 중에 먼저 들어간 사람들은 못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