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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서생 211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8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법서생 211화

 

211화

 

 

 

 

 

 

 

6

 

 

 

 

 

삼경 무렵.

 

발이 여덟 개 달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법에 일가견이 있는 팔족추풍(八足追風) 서평이 제갈민의 서신을 들고 풍옥산에 들어섰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삼백 리 길을 네 시진 만에 주파한 것이다.

 

이마에 땀이 흐르는데도 그의 얼굴에는 자랑스런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천뢰서생이 내린 명령을 일행들 중 첫 번째로 이행했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흐흐흐, 발만 빨라서 어디다 써먹냐고 했지? 어리석은 놈들. 세상이 어디 힘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인 줄 아나? 그래서 네놈들은 아직 멀었다는 거야!’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입구를 지나기도 전에 몇 사람이 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정천무맹의 경비무사들인 듯했다.

 

“멈추시오! 이곳부터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되돌아가시오!”

 

서평은 한 사람의 이름을 파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천뢰서생의 서신을 가지고 왔네! 맹주님을 뵙게 해주게!”

 

“천뢰서생?”

 

저것 봐! 놈들이 놀라잖아!

 

서평은 즐거웠다. 그동안의 고생이 말끔히 씻겨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놈들 중 제법 강해 보이는 청년이 삐딱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시간이 삼경이오.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주시오.”

 

곧 죽어도 꿀리지 않겠다는 뜻일 게다.

 

서평이 또 다른 비책을 내놓았다.

 

“만일 이 서신이 전해지지 않아서 큰일이라도 난다면, 그대가 책임지겠나? 그렇다면 그대의 이름을 좀 알았으면 싶네만!”

 

청년이 움찔한다.

 

공격할 때는 기세를 잃지 말아야 하는 법. 서평이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혈신에 관계된 서신이네. 이럴 시간이 없네!”

 

혈신! 그 이름만으로도 청년의 안색이 누렇게 뜨는 게 확연히 보였다.

 

마침내 청년이 옆의 동료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따라오시오.”

 

서평은 어깨를 쭉 펴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이제 곧 정천무맹의 맹주에게 직접 서신을 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러나 이후의 일은 그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흘렀다.

 

서신은 세 단계의 검열을 더 거쳐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맹주인 요료에게 서신이 전해지기까지 한 시진이 더 걸렸다. 

 

그나마도 밀은전의 제갈운문 손에 들어간 후에야 맹주에게 전달되는 시간이 빨라졌다.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시간이 얼마나 더 걸렸을지 모를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신빙성없는 내용의 서신을 전하기 위해서 맹주의 단잠을 깨우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서평이 풍옥산 탕마단의 거처에 들어온 지 한 시진이 조금 지난 후, 정천맹주인 요료는 서신을 읽고 고개를 들었다.

 

충분히 충격적인 내용일 텐데도 요료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맹주께선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서신을 전한 제갈운문이 나직이 물었다.

 

요료는 고요히 가라앉은 표정으로 제갈운문을 바라보았다.

 

“아미타불, 제갈 전주의 의견을 먼저 듣고 싶구먼.”

 

제갈운문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속하의 생각으로는, 그 가능성이 절반 정도는 있다고 봅니다.”

 

“가능성이 절반이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제갈운문은 그 말을 준비하기 위해 이각 이상을 생각해야만 했다.

 

“혈신이 상리(常理)에 어긋난 자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는 단숨에 천혈교를 장악하고 신혈교를 일으켜 강호에 칼을 들이댄 자이다. 그것만 봐도 분명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자는 아닐 것이다.

 

요료가 물었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을 확률도 절반이라는 말인데,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

 

“신혈교에 과연 그만한 힘이 있느냐입니다. 백리군학의 말도 그렇고, 본 맹의 정보로도 그렇고. 신혈교는 천제성과의 싸움에서 상당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혈신 역시 백리자천과 천령오호법을 물리치긴 했지만,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며칠 만에 움직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럼 전주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일단은 신혈교가 움직인다는 가정 하에 계획을 세울까 합니다.”

 

“흠, 당장은 전력 모두를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탕마단 중 이단 정도를 미리 움직여서 전진 배치하면 어떨까 합니다.”

 

요료가 다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그때 밖에서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렸다.

 

“맹주,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우양자의 목소리였다.

 

요료는 눈을 뜨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들어오시게.”

 

방안으로 들어온 우양자는 제갈운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자마자 요료가 물었다.

 

“소식을 듣고 오신 겐가?”

 

“그렇습니다. 마침 제갈 전주도 있으니 잘 되었군요.”

 

“그래,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지 말해보시게.”

 

“만일 누군가가 탕마단을 이끌고 내려가야 한다면, 제가 가볼까 합니다.”

 

“부맹주가 직접?”

 

요료가 의외라는 눈빛으로 우양자를 응시했다.

 

조금도 사심없는 눈빛이었다.

 

“제갈 전주의 말로는 반반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네. 허탕만 칠 수도 있다는 말이지.”

 

“어차피 천제성과 격돌한 그들이 언제까지 한곳에 머물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들을 쳐야 할 터, 제가 그 길을 뚫어볼까 합니다.”

 

요료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결정을 내린 듯 제갈운문에게 명령을 내렸다.

 

“인시 초까지 탕마단의 이 개단을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게.”

 

그러고는 우양자에게 말했다.

 

“준비가 되면 부맹주가 그들을 이끌고 가시게. 단, 너무 무리하게 움직이지는 말고 백 리 정도의 거리를 두시게.”

 

“알겠습니다, 맹주.”

 

 

 

 

 

7

 

 

 

 

 

혈신이 지나간 흔적을 발견한 것은 각산을 떠나 혈신의 뒤를 쫓은 지 한 시진 만이었다. 

 

천공삼탁을 따르는 무사대 오 대 중 이대의 대주, 철산검객(鐵傘劍客) 역고성이 작은 장원에서 그들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장원 앞에서 진용이 오기를 기다렸다.

 

일각 후, 진용이 그곳에 도착하자 진고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쪽에 싸움이 벌어진 흔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놈들 짓 같습니다.”

 

그는 작은 장원을 가리켰다. 대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장원 안에서 짙은 혈향이 풍겨오고 있었다.

 

진용 일행은 장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역고성이 말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말한 흔적이라는 것은, 시신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로 뭉개진 인육덩어리들이었다.

 

시신은 무려 삼십여 구에 달했는데, 하나같이 성한 것이 없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소름이 끼쳤다.

 

이놈들은 사람이 아니다. 악마다!

 

악마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아직 피가 완전히 식지 않았군. 지나간 지 반 시진 정도 된 것처럼 보이네.”

 

시신을 살펴본 사도굉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반 시진.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에 놈들이 있다.

 

만일 누군가가 가로막았다면 중간에 만날 것이고, 막지 못했다면… 풍옥산에서 볼 수 있으리라.

 

그것은 최악의 경우였다.

 

정천무맹이 아예 움직이지도 않았다는 말일 테니까.

 

진용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놔두고 계속 갑시다.”

 

냉정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반발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없다.

 

 

 

* * *

 

 

 

이제 풍옥산까지 남은 거리는 이백 리 정도. 아직까지는 정천무맹 놈들이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이 앞길을 막으려 했을 것이다.

 

야율립은 선두에서 유유히 허공을 가르며 나는 혈신의 등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하얀 웃음이 번졌다.

 

‘혈신을 택한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야율립은 입술을 깨물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앞장서서 날듯이 나아가던 혈신이 걸음을 멈췄다.

 

뒤따라가던 야율립과 등우광도 걸음을 멈추고, 삼혼신마와 잔혼쌍살마를 비롯한 신혈교의 이백 고수가 일제히 전진을 멈췄다.

 

그들의 앞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그 옷이 도복이라는 것이다.

 

혈신의 걸음을 멈추게 한 자. 그것만으로도 야율립은 충분히 놀라고도 남았다.

 

야율립은 경악한 표정으로 붉은 도복을 입은 노도인을 바라보았다.

 

그때 혈신이 말했다. 

 

“너는 누구냐?”

 

왠지 열기가 느껴지는 목소리.

 

야율립은 그 목소리에 또 한 번 놀랐다.

 

혈신이 즐거워하고 있다. 피가 아닌 사람을 보고. 백리자천 때와 같은 반응이다.

 

그렇다면 저 붉은 도복의 도인이 백리자천 정도의 고수란 말인가?

 

하지만 야율립은 곧이어 세 번째 놀랄 만한 말을 들어야만 했다.

 

혈신이 말했다.

 

“너는 백리자천보다 더 강한 인간이로구나. 정말 재미있는 일이야! 그대와 같은 인간이 있다니.”

 

백리자천보다 더 강한 고수?

 

야율립은 믿을 수가 없었다. 천하에 그런 고수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때 혈선인이 말했다.

 

“그대는 왜 인간 세상에 나와서 천기를 어지럽히는가?”

 

순간 혈신의 눈이 놀람과 흥분으로 출렁거렸다.

 

“내가 누군지 아는가?”

 

“인간계의 정신을 지니지 않은 자, 삼천계 중 마의 경계 너머에서 온 자가 아니던가?”

 

“크하하하하! 인간 중에 마계를 아는 자가 있었다니! 정녕 놀라운 일이로다!”

 

혈선인의 굳은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짐작은 했지만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런데 혈신의 말로 모든 것이 확인되었다. 

 

혈신은 삼천계 중 하나인 마계에서 온 자인 것이다!

 

“본좌는 마계의 전신, 휼탄! 지금은 신도율단이라 부르노라! 나를 알아본 대가로 고통없이 죽여주겠다! 내가 두 번째로 인정한 인간이여!”

 

순간, 혈신의 전신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지더니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야율립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거력이 실린 기운.

 

“뒤로 물러서라!”

 

야율립이 다급히 소리치며 뒤로 신형을 날렸다.

 

등우광을 비롯해 삼혼신마도 정신없이 뒤로 물러섰다.

 

오히려 전면에 서 있는 혈선인만이 표표히 도복을 휘날리면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손을 들어 올리는 그의 표정은 엄숙하기만 했다.

 

결코 많은 겨룸이 필요없을 것이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다.

 

그런 상대가 자신을 상대로 최선을 다하려 하고 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원하는 만큼의 흠을 낼 수 있을까?

 

하긴 이제 와서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랴. 최선을 다하면 그뿐.

 

혈선인의 손에서 붉은 손바닥이 아롱지며 피어올랐다.

 

갓난아이의 손바닥처럼 작은 손바닥이었다.

 

그걸 본 혈신의 눈에 놀람이 떠올랐다.

 

“굉장하군! 멋진 능력이야!”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휘돌던 붉은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

 

찰나! 혈선인의 혈수인이 허공을 단축하며 혈신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쿠우웅!

 

그리 크지 않으면서도 둔중한 기음이 울렸다.

 

주춤, 뒤로 한 걸음 물러선 혈신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웃음이었다. 미칠 듯한 즐거움이 서린 마소!

 

“크카카카! 역시 대단하구나! 이번에는 나의 공격을 받아보아라!”

 

악령의 웃음소리가 그치기도 전이었다. 혈신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선혈처럼 붉은 기운이 혈선인을 향해 밀려갔다.

 

그런데 혈선인을 덮어가는 붉은 기운이 웃는다.

 

혈신의 모습을 그대로 한 채!

 

아수라(阿修羅)의 마소!

 

혈선인의 표정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이, 이건…… 대체…….”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혼신의 기운을 끌어올렸는데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겨우 두 손뿐이다.

 

마지막! 자신의 최후가 보이는 듯했다.

 

혈선인은 끌어올린 두 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았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남길 것도 없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가라! 악마의 종자여!’

 

육신과 정신의 모든 기운이 두 손을 통해 빨려 나간다.

 

고오오오오오!

 

갓난아이 같던 혈수인이 호두만 한 점처럼 작아졌다.

 

혈신의 붉은 기운이 웃음을 멈추고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렸다.

 

쿠웅!

 

고막을 먹먹케 하는 북소리가 울렸다.

 

대기가 흔들리며 낮게 깔린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휘말리는 것은 무엇이든 가루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바위도, 나무도, 지나가던 바람도 스러져 사라졌다.

 

그리고 반쯤 파묻힌 혈선인의 작은 몸 위로 정적이 내려앉았다.

 

“으음…….”

 

혈신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눈을 부릅뜬 그는 혈선인을 노려보았다.

 

혈선인은 이미 생명의 기운이 거의 빠져나간 뒤였다.

 

그가 마지막 힘을 다해 손을 움켜쥐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끝이었다.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정말 굉장했어, 건방진 인간!”

 

가볍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 혈신의 입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신을 어렵게 만든 최초의 인간. 그가 죽어간다.

 

확실히 죽여줄까? 아예 가루로 만들어 버릴까?

 

아니지, 그래도 이런 인간이 하나쯤 있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갈등이란 것은 애초에 그가 느낄 감정이 아니었다. 그나마 잠시의 갈등도 그가 인간의 몸이기에 하는 것일 뿐.

 

마음이 일자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냥 놔둬라. 그는 내가 만난 인간 중 가장 강한 자. 강한 자에게는 그만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혈신이 다시 붉은 기운에 휩싸인 채 몸을 날렸다.

 

야율립과 등우광 등은 격동에 찬 눈으로 혈선인을 바라보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혈신을 곤란하게 만들고, 혈신으로부터 인정받은 강자.

 

앞으로 누가 또 저런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도복의 도인, 그는 자신들에게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자였다.

 

“가자! 새로운 세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혈신을 위해!”

 

“새로운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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