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99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99화
199화
제갈민이 일어서서 서신의 내용을 설명했다.
“구양무경이 본격적으로 천인효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강호가 혼란한 틈을 타서 주위부터 정리하겠다는 뜻인 듯합니다.”
말투로 인해선지 상황이 급박하게 느껴진다.
날아가는 파리의 날갯짓 소리가 귀청을 울릴 정도로 크게 들린다. 모두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제갈민의 말이 이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제갈민이 간략하게 서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말했다.
“천인효 회주가 우리의 도움을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구양무경을 끌어들일 테니 만붕성을 공격해 달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항상 입던 백의가 아닌 깨끗한 청삼을 입은 진용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황산과 염천마곡의 이탈자들과 강남 무림이 돕고 있지만 삼존맹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일 겁니다.”
율천기가 진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장주, 신혈교가 세를 늘리고 본격적으로 움직이려 하는 마당에 그곳까지 도울 여력이 있겠소?”
신혈교뿐이 아니다. 정천무맹도 탕마단을 완벽하게 재구축했다. 거기다 백리자천이 이끄는 천제성마저 무양의 웅천산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일촉즉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풍림당의 예측대로라면, 보름 전후가 문제였다.
보름, 결코 긴 시간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삼존맹이 완벽히 정리된다면, 항상 등 뒤를 노리는 화살을 신경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참, 능구렁이 같은 작자로구만. 교묘하게 시기를 이용하고 있어.”
사도굉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구양무경의 노련함이 적시에 드러나고 있었다.
정천무맹도 안휘의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남궁세가조차 전전긍긍하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누구도 천인효를 돕겠다고 나설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움직여 볼까 합니다.”
진용이 갑작스레 결정을 내렸다. 사람들의 커진 눈이 진용을 향했다.
미처 반박할 시간도 없이 제갈민이 나서서 말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장주님을 뺀 나머지 분들이 가서 그들을 치고 빠지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장주님이 함께 가서 보다 더 큰 피해를 입히는 것.”
돕는다면 당연히 그 방법밖에 더 있나? 새삼스럽게…….
모두가 그런 눈으로 볼 때다. 제갈민이 말을 이었다.
“신혈교가 가장 꺼려하는 분은 장주님입니다. 장주님만 이곳에 있다면 저들 역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하나 그리 되면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만큼 저들을 돕는 효과가 반감됩니다.”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제갈민을 향했다.
누가 뭐래? 그런 눈빛을 한 채.
기분은 조금 나쁘지만 사실이니까.
제갈민은 당연히 그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오히려 그런 눈빛을 즐기는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하하, 뭐 너무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저야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라서. 어쨌든! 제대로, 보다 빠르게 효과를 보려면 장주님이 나서야 합니다. 해서 장주님이 나설 경우를 대비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눈길이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뭔데?
“장주님이 그냥 이곳에 계시는 겁니다.”
호기심이 서서히 살기로 바뀌어갈 때였다. 제갈민이 잽싸게 불을 껐다.
“물론, 저들이 볼 때는 말이죠.”
서서히 커진 눈들이 다시 좁아들더니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정광이 빽 소리를 질렀다.
“속 시원히 말 안 할래?”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남들은 다 고개를 끄덕이는데 자신만 머리를 싸매야 하다니.
제갈민은 한계가 왔음을 느끼고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허수아비를 세우는 거죠. 장주님 대신. 단 며칠만 속일 수 있어도 그만큼 이득이 아니겠습니까? 장주님의 신법이라면, 일이 벌어지더라도 며칠이면 동백산까지 가실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사실 만붕성을 완전히 부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약화시키는 거라면 며칠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정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가 대신 해라.”
“제가요? 저는 장주님을 따라가서…….”
“고 공자만큼 머리 잘 돌아가는 젊은 놈이 없잖아?”
“두 공자도…….”
“쟤는 안 돼. 머리가 받쳐 주지 않아.”
구석에 앉아 있던 두충이 정광을 째려봤다.
‘좌우간, 누가 말코 아니랄까 봐.’
그때 진용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은 총관과 조금 다릅니다.”
그러려니 하고 있던 사람들이 홱 고개를 돌려서 진용을 바라보았다. 진용이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단순히 약화시키는 것 정도로는 안 됩니다. 기회가 왔을 때 만붕성에 치명타를 가할 생각입니다. 할 수 있는 한, 철저히!”
한기가 장내를 뒤덮었다.
사람들의 가슴이 싸늘히 식었다.
그런 와중에 의문이 들었다.
우리만으로 만붕성을? 가능할까?
각자가 마음속으로 내린 답은 비슷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천뢰서생이잖아. 괴물이 뭘 못하겠어? 더구나 구양무경도 없다는데.
그런데 진용이 아쉬움을 담고 말했다.
“구양무경이 없다는 게 조금 마음에 안 들지만 하는 수 없죠.”
모두가 또 생각했다.
―역시 괴물은 생각하는 것도 우리와 달라!
* * *
달조차 구름에 가린 칠흑 같은 밤.
장원의 문이 열리고 마차 한 대가 장원을 나섰다. 사람을 가득 태운 채.
“엉덩이 좀 치워봐.”
“나도 좁소. 선배 엉덩이가 너무 커서 그런 거니 좀 참으슈.”
“거 좀 조용히 합시다. 숨어 있는 놈들이 눈치 채겠소.”
“그냥 무릎 위에 앉아서 가요. 조금만 참으면 될 테니까.”
“뭐가 콕콕 찌르니까 그러지.”
“늙은이 엉덩이 찔러봤자지 뭐.”
멀리 나무 위에서 마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흑의인이 옆을 바라보았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군. 별것 아닌 것 같네. 그도 안에 있고 말이야.”
장원의 안채 창문에는 불빛에 그림자가 보이고 있었다. 항상 봐왔던 그 모습 그대로. 장원의 주인이 있는 방이었다.
주인만 있다면, 다른 사람은 나가든 들어오든 별 상관이 없었다. 그들이 교에서 받은 명은 오직 하나, ‘고진용의 움직임을 보고하라!’ 였으니까.
“천이통을 수련한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런데 마차가 좀 흔들리는군.”
“길 때문에 그러겠지.”
그 시각.
“나이 먹은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뭐? 이놈이 어디서!”
우당탕탕!
“이 좁은 데서 뭐 하자는 겁니까?”
“뭐 하긴? 저 산적 같은 놈 때려잡으려는 거지.”
“누가 사도 선배에게 죽어주기나 한대요?”
“그려, 이놈의 말코, 한 번 해보자!”
마차가 좌우로 흔들리자 결국 진용이 한숨을 쉬며 나섰다.
“후우, 지금부터 일각 동안 떠드는 분은 장원으로 돌아가겠다는 걸로 알겠습니다.”
사도굉이 들었던 손을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끄응, 늙은 내가 참아야지.”
쇠신발에 손을 대었던 정광도 슬며시 손을 무릎에 올려놨다.
“무량수불.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다 했으니 참자, 참아. 원시천존. 그러고 보니 고 공자, 경장도 잘 어울리는데?”
그제야 마차 안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힐끔 진용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의가 아닌 청의 서생복을 입은 진용은 백의 서생복을 입은 진용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무림세가의 귀공자 같다고나 할까?
진용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냥 흰옷을 입을 걸 그랬나?’
그러고는 천천히 마차 주위에 강하게 펼쳐 놨던 방음막을 조금 약화시켰다.
그러자 진용에게서 흥미를 잃은 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이 조용해진 것을 아쉬워하며, ‘그냥 놔두지, 재미있었는데’ 그런 표정으로 일각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멀리서 지켜보던 두 흑의인은 마차의 움직임이 고요해지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길 때문이었나 보군.’
장원 안채의 방에서는 여전히 주인이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어제와 똑같은 자세로.
2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동물이 천리마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은 사람도 그렇게 달릴 수가 있었다. 강호의 절정고수들이라면. 힘들어서 그렇지.
“헥, 헥!”
사도굉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마의 땀을 닦아낸다. 정광이 그 모습을 보고 한 소리 해댔다.
“그러게 오지 말라고 했잖수.”
“걱정 마! 헥헥, 아직 만 리도 더 갈 수 있으니까.”
“만 리는커녕 백 리도 힘들겠구만. 하여간 노인네가 고집은.”
사실이 그렇다. 백 리야 갈 수 있을 테지만, 더 이상은 무리다.
그냥 먼저 가라고 할까?
사도굉은 그런 생각을 골백번도 더 해보았다. 정광의 비웃음만 감당할 자신만 있었다면 진즉 그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저 무식하고 산적 같은 도사놈에게 비웃음을 받을 수는 없잖은가 말이다!
다행히 하늘이 보우하사 진용이 걸음을 늦춘다.
“조금 쉬었다 가죠.”
아마도 진용의 옆에서 달리고 있는,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놈 때문인 듯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살아난 것이 의심스러웠다는 놈. 그런 놈이 며칠 만에 일어나더니, 이제는 자신보다 더 싱싱해졌다.
회한이 들었다. 공연히 우울해진다. 이제 진짜 늙었나?
툭! 정광이 사도굉의 어깨를 치더니 씩 웃었다.
“내가 놀렸다고 화난 거유?”
“에휴, 관둬라. 너하고 무슨 말을 하겠냐.”
“너무 그러지 마슈. 내가 그렇게 했으니까 그래도 여기까지 따라온 것 아뇨.”
그건 그렇지.
‘썩을 놈. 그럼 좋은 말로 하지 왜 성질을 건드려? 어디 두고 보자, 이놈!’
* * *
천옥산의 산꼭대기가 까마득히 보였다.
저곳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안휘다.
‘영하(潁河)를 타고 내려가면 바로 팔공산으로 갈 수 있다고 했지? 좋아! 구양무경은 천인효를 직접 상대하기 위해 만붕성을 떠나 있는 상황. 놈들의 심장부를 친다! 그러고 나서 천인효를 만난다.’
이미 나름의 계획은 서 있는 상태였다.
짧으면 닷새, 길면 열흘. 그 안에 결말을 봐야 한다. 신혈교가 그동안 조용히 해주기만을 바란 채.
정천무맹과 천제성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곧 신혈교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어쩌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지금까지처럼 조용히 움직이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 진용의 생각이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열흘.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시간이다. 강호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뀔 정도로.
풍림당이 예측한 보름 전후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열흘. 그 차이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막상 상황이 벌어지면 중요한 것은 결과일 뿐.
제갈민에게는 따로 명을 내려두었다.
“열흘이 지나면 장원을 떠나라. 주위에 모여든 무사들과 함께. 장소는 무양 오십 리 남쪽의 무강. 천제성의 영향권 아래로. 그리고 천제성이 신혈교를 상대하기 위해 남하하면 그 뒤를 따라 남으로 내려와라. 심양에서 만나자.”
진용은 천옥산에서 고개를 돌려 하군상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낮, 당연히 하군상이 의지를 지배하는 시간이었다.
“견딜 만합니까?”
“솔직히… 제가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고 형.”
“아마 앞으로 더 놀랄 일이 많이 있을 겁니다.”
세르탄이 슬슬 제 힘을 찾기 시작했으니까.
“하 형은 세르탄의 엉뚱한 짓만 단속 잘하면 됩니다.”
하군상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하루의 반만이 나의 생활이지만, 세르탄에게 고맙기만 합니다.”
―음하하하! 당연히 그래야지. 저 시르 같은 악당만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라고!
진용은 꼭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세르탄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테니까.
어쨌든 하군상의 밝은 표정을 보는 것이 자신도 기분이 좋았다.
그때 정광이 다가오더니 하군상을 요모조모 살펴봤다.
“알 수 없단 말이야. 너, 정말 하군상 맞아?”
“맞는데요? 정광 도장님이야말로 정말 도장님 맞아요?”
“나야 당연히 맞지. 좌우간 이상해. 얼마 전만 해도 다 죽어가던 놈이 갑자기 살아나더니 절정고수로 탈바꿈했으니 말이야.”
그러면서 슬쩍 진용을 훔쳐보는 정광이다.
혹시 고 공자가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 아니야? 그런 의심의 눈빛으로.
진용이 말했다.
“정 의심스러우면, 도장님도 한 번 똑같이 되어보세요. 제가 한 달 정도 지나서 하 형처럼 만들어볼 테니까.”
‘미쳤나? 차라리 그냥 살고 말지.’
이각가량의 휴식 동안 간단하게 운기를 마친 사람들이 일어서자 진용은 다시 출발을 알렸다.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천옥산 자락까지는 도착을 해야 내일의 일이 수월해질 터였다.
그렇게 달린 덕분인지, 어둠이 그물처럼 내려앉을 즈음 일행은 여녕(汝寧)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데 지친 일행이 여녕의 객점에 들어가려 할 때였다. 서너 명의 포졸이 창을 내밀며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정지!”
진용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 중 포두로 보이는 자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
어지간해서는 포졸들이 강호 무인들의 앞을 막지 않는다. 자기들도 죽기는 싫으니까.
그러한 만큼 앞을 막았다는 것은, 그만한 절박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전에 머물렀던 곳은 어디였소?”
사도굉이 으쓱 어깨를 추켜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서쪽에서 왔네. 오후에 각산을 들렀지.”
풍채 좋고 근엄해 보이는 사도굉이 나서자 포졸들의 표정도 다소 누그러졌다.
포두로 보이는 자가 다시 물었다.
“오는 중에 혹시 수상한 자를 보지 못했소? 도복을 입었는데.”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정광을 향했다.